소설리스트

〈 28화 〉028화 (28/112)



〈 28화 〉028화

효주는 다시금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드디어 나오는 진지한얘기에 최대한 감정을 삼키며 말했다.

“그건 내가 충분히 너한테 믿음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의심하는 느낌이 들어서 갑자기 눈물이 났었어.”

효주의 말에 한석은 굉장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치듯말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네가 현수를 너무 감싸는 기분이 들었어. 항상 내 편이던 사람이 다른사람 편을 들어주니까 너무 서운했어.”

효주는 한석이 고작 자기편을 안 들어줬다고 삐친 아이 아이같이 느껴졌다.

“난 네가 절대  험담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솔직히 실망이 커서 그랬어. 절대 현수 편을 들려고 한 건 아니야.”

효주는 저도 모르게 아이 달래듯 말을 했다.

한석은 뒷담을 까서 실망했다는 말과 달래듯 말하는효주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입을 꾹 다물었지만, 효주는 그것이 한석이 반성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효주는 속으로 뿌듯해하며 한석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한석아, 난 누가 뭐래도 네 편이야. 남 험담하는게 좋은건 아니잖아. 그런 점은 고쳤으면 좋겠어.”

‘됐다, 이정도면 화해할수있겠지?’

효주는 속으로 한석과의 긴 다툼이 끝을 맺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한석이 한숨을 길게 푹 내쉬고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하…. 효주야. 솔직히 내가 보살도 아니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 험담  할 수 있는거아니야? 우리가  정도도 안 되는 사이야? 그리고 왜 이렇게 날 애 다루듯 말하는 건데?”

효주는 덜컥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아, 아니 그니까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방금까지 좋았던 기분이 나락 끝까지 처박힌 기분이었다.

‘왜 또 이렇게 된 거지? 잘 얘기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한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효주에게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너랑계속 이렇게 다투기 싫어 효주야. 그냥 예전처럼 하던 대로 서로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어.”

효주는  이상 말할 힘도 의지도 잃었다.

그저 한석을 향해 같이 억지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뿐이다.

한석은 마치 한숨 놓았다는 표정으로 후련해 보였다.

이후로 효주는 한석과 평범한 일상 대화를 나누며 집에 도착했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한 기분이 가시지를 않았다.

* * *

엠티가기 전날 밤, 현수는 아직 연락이 없는 효주에게 먼저 연락을 건냈다.

[효주야 한석이랑 잘 풀었어?]

이제 오는 답장에 따라 현수가 취할 행동이 달라지겠지만 풀면 푼대로 재밌을 것 같고 안 풀렸으면 엠티에서 효주를 꼬셔볼 생각에 신이 났다.

[응.. 풀긴 풀었는데 잘 모르겠어..]

‘풀긴 풀었다? 훨씬  재밌을 거 같은데?’

[풀었는데 왜  몰라 ㅋㅋ 무슨 일 있었어?]

[그게 그러니까….]

효주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현수는 엠티날이 너무 기대되기 시작했다.

‘환장하겠네. 진짜 꼬여도 이렇게 꼬이냐.’

물론 효주와 한석 커플의 입장에서 꼬였다는 것이지, 현수의 입장에선 꼬아놓는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동아리 엠티 당일 날.

버스  현수의 옆자리엔  동기인 주해인의 남자친구 백성민이 앉아있었다.

“현수야 저번에 해인이랑 얘기 좀 해봤다며?”

“네. 되게 수줍음이 많던데요? 저 싫어하는 줄.”

“아냐 걔 원래 그정도는 아니고 그냥 갑자기 네가 와서 놀랬다던데? 해인이가완전 너 팬이야. 너무 잘생겼다고 난리라니까?”

성민은 웃으며 해인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형. 너무 띄워주지마요.”

현수는 순간 ‘혹시 해인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성민의 성향을 봐서는 현수의 능력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나 사실만 말하는거야. 진짜 남자친구두고 그런  하는거 봐 미쳤다니까?”

성민은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현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에이 형도 잘 생기셨잖아요. 아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거죠.”

현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성민의 외모는 수준급이었고 현수의 옆에 있어서 그렇지 다른 사람 옆에 있다면 웬만한 사람은 오징어로 만들 수준이었다.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이 좋긴하네. 아무튼 요즘 매번 네 이야기해서 질투나 죽겠다니까?”

“하하. 그래도 형은 좋겠어요. 해인이도 엄청 예쁘던데요?”

현수는 저번에 얘기할 때 해인의 외모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약간의 스타일링만 해도 연희급은 아니더라도 연희 바로 아래 정도에 위치할 수 있을 정도로 예뻤다.

하지만 특유의 패션 감각이 문제였을까.

학창 시절을 모조리 공부에 쏟아부은해인은 그 외모를 오히려 집어삼킬 정도로 스스로를 못 꾸몄다.

‘나도 자세히 안 봤으면 영영 몰랐겠지.’

“그렇지? 해인이가 본판은 참 이쁜데 꾸밀 줄을 몰라…. 나는 뭐 그게 더 좋은 거 같기도 하고. 현수 너는 여자친구 없어?”

“네. 여자가 많아 보여도  다가오는 애들은없더라고요. 다가와도 마음에 들지도 않고.”

현수는 실제로도 여자친구가 없는 상태이긴 했다.

물론 남이 보는 현수는 아주 순수해 보이는 차이점이 있긴 했지만.

“내가 네 얼굴이었으면 지금 수십 명은 갈아치웠을 건데.”

성민이 은근한 표정으로 현수를 툭 찔러왔다.

“형도 충분히 수십명은 가능하실 거 같은데요?”

둘은 이렇게 목적지인 가평에 도착할 때까지 시답잖은 소리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떠들었다.

버스에서 내린 이후 동아리 선배들이 짜놓은 일정대로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행사라고 해봐야 별 것 없었고, 현수는 줄곧 여자들의 관심이 따라다녔다.

현수는  관심이 싫지 않았으나, 오늘은 타겟이 명확했기에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지자 기다렸다는  본격적으로 술판이 벌어졌고, 현수는 곳곳에서 주는 술잔을 받다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끼고 조용한 자리로 피신을 했다.

“이야, 현수 너 진짜 인기 많네.”

성민이 현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형 오셨어요? 아 진짜 죽을 거 같아요.”

성민이 죽을 거 같다는 표정을 익살스럽게 짓는 현수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래서 여기 숨어있어? 그럼 어디 소문 좀 내고 올까.”

현수는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성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에이, 형 그러지 말고 둘이서 한잔해요.”

“나도 장난이야 인마. 둘이서 조용하게 한잔하자.”

현수가 본 성민은 의외로 가면을 벗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고 꼼꼼한 성격이 닮았다는 것이다.

‘해인이를 꾸며서 한 번 따먹어 보고 싶었는데, 이런 사람이 남자친구면 많이 힘들지.’

성민은 외모도 멋있지만, 외모 이상의 매력이 성격과 분위기에 있었다.

그리고 성격과 분위기가 매력이라는 것은, 동성에게도 친구로써 충분히 끌리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현수는 성민이 친구로써 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중년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현수와 말이 통할 정도로 어른스러워 성민과 있으면 나름 즐거웠다.

현수는 성민과 술잔을 기울이며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현수야. 너는 의대니까 군대는 나중에 군의관으로 가겠네?”

갑자기 주제가 군대 이야기로 바뀌었다.

“음…. 네  그렇겠죠?”

현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성민을 보며 대답했다.

“하…. 좋겠네. 나는 이번 학기 끝나고 가기로 했거든.”

‘어?’

순간 현수의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그럼 6월이나 7월쯤에 들어가시겠네요?”

현수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성민.

“그렇지. 하…. 아직 많이 남긴 했는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스야.”

현수는 전생에 의대에서 잘린 이후 재판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고 늦깎이 나이로 입대했을 때의 심정이 갑자기 떠올랐다.

‘생각해보니까 군대를 또 가야 되네. 이번엔 군의관으로 가긴 하겠지만 갑자기 짜증 나는군.’

짜증이 솟구쳤지만, 현수는 성민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그를 달래주었다.

“형은 어차피 미래가 창창하잖아요. 앞으로치열하게 사실 건데 그냥 2년 정도 휴식 취한다고 생각하고 갔다 오세요.”

현수의 말에도 성민의 기분은 나아질 생각이 없었다.

“하…. 해인이 두고 어떡하냐. 다른 애들이 해인이 건드릴까 걱정돼서 못 살겠다.”

현수는 그런 성민의 걱정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남은 시간 동안 해인이랑 친해져서 한 눈 못 팔게 할게요.”

현수의 행복회로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이쁘게 각 나오는데?’

현수는 방금 전에 들었던 성민과 진지하게 친해져 보고 싶다던 생각이 순식간에 휘발되기 시작했다.

성민은 현수의 말에 살짝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나 군대 가기 전까지 내가 진짜 잘해줄  현수야. 형은 너만 믿을게.”

현수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성민은 지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그럼요 형. 저도 군의관으로 들어갔을 때 형이 도와주실 거잖아요. 그리고  같은 사람 두고 어디 가겠어요?”

술에 취해 감성적이던 성민은 결국 눈물까지 글썽이며 현수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진짜 다른 남자들 접근  하게 잘 감시해줘야 해 현수야. 응? 알겠지?”

현수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

‘내 남이랑 공유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자신이 가질 건데 왜 남이 접근하게 한단 말인가.

“형. 아직 한참 남았어요. 뭘 벌써부터 그렇게 걱정을 해요. 제가 절대 ‘다른 남자’들은 접근 못 하게 할게요.”

의외로 주량이 많이 약했던 성민은 취한 상태로 계속 현수에게 같은 말만 반복해왔고, 현수는 행복회로를 돌리며 성민의 꼬장을 받아주었다.

우우웅. 우우웅.

약간의 시간이 지나 현수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려왔다.

[정효주]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본 현수의 얼굴에 방금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악마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여보세요?”

현수의 귀에는 휴대폰 너머로 건너오는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현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됐다.’

판이 깔렸다는 확신이 섰다.

한참을 우는 것을 듣다가 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때쯤 현수는 입을 열었다.

“효주야. 무슨 일이야?”

-현수야. 잠깐 나와줄 수 있어?

“응. 어디쯤이야?”

-건물 밖에 벤치에 있어. 빨리 와줘.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현수는 즐거운 미소를 띤 채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형  잠시 밖에 나갔다가 올게요.”

성민은 약간 벙찐 표정을 짓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믿을  하나 없네….”

밖으로 나온 현수는 가로등 불빛 아래 홀로 앉아 훌쩍이고 있는 효주에게 다가갔다.

현수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효주의 등 뒤에 서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여주었다.

효주의 몸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고 훌쩍거림도 거의 없어졌을 때쯤, 효주가 고개를 돌려 현수에게 눈짓했다.

현수는 효주의 옆자리에 앉아 은근슬쩍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넸다.

“혹시 또 한석이 때문이야?”

효주는 손을 빼지 않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걸을래?”

현수는 말을 꺼내면서 효주의 손을 잡고 약간 힘을 주며 일으켜 세웠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훌쩍거림도 거의 멎은  같이 걸어가던 중 효주는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얼굴을 약간 붉힌  어색해하고 있었다.

“실컷 울고 나니까 이제  민망해?”

효주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치켜뜨고 현수를 잠깐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좀 민망하네. 하…. 남한석 나쁜 새끼.”

“저번에 잘 푼 거 아니었어? 이번엔 또 왜?”

효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현수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 * * *

효주는 행사 내내 주목받는 현수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한석에게만 신경을 썼다.

“와 현수 진짜 장난 아니네.”

한석이 먼저 현수 얘기를 꺼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주제를 꺼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석도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더이상 현수에 관한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은 술자리에서 벌어졌다.

현수 테이블 쪽으로 대부분의 여자들이 몰려가자 몇몇 남자친구 있는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찝쩍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한석이 옆에 있는데 대놓고 찝쩍대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것도 술자리가 길어지고 점점 취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효주야 술 한잔 해야지. 잔 받어.”

효주는 동아리 내에서 가장 이쁜 편이었고 한석이 옆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선은 지키지만 계속 술을 권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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