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041화 (41/112)



〈 41화 〉041화

“자리는 어디야?”

 넓은 상영관에 현수가 자꾸 위쪽으로 향하자 효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일 뒤쪽이야.”

그들이 들어온 상영관은 맨 뒤쪽 두 줄은 ‘스위트 박스’라고 불리는 커플석이 존재했는데, 스위트 박스에 예매했다는 소리에 효주가 조금 당황한 얼굴을 했다.

“비싼 데 했네….”

팔걸이가 없는 둘만의 공간에 앉은 효주는 아까의 농담을 떠올렸는지 약간의 기대감과 긴장한 표정으로 드러난  의미없는 말을 내뱉었다.

“혼자 영화 보러 올 때 마다 여기 앉아 보고 싶었거든….”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현수의 모습에 효주가 긴장이 풀린 듯 코웃음을 쳤다.

“풋. 이럴 때 보면 진짜 여자 못 만나본 거 같기도 하고….”

영화가 시작되고 가지고 왔던 음식들을 배 속으로 집어넣으며 영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효주는 오늘 하루가 고단했는지 시작부터 조금씩 졸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고개를 꾸벅꾸벅 거리고 있었다.

‘잔다고? 이렇게?’

현수는 굳이 사람이 없는 한산한 시간대에, 상영기간이 끝물이라 아무도 안 보는 영화를 고르고, 또 굳이 돈을 더 얹어서 스위트 박스로 예매한 보람이 한 순간에 사라지자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화는 나지 않았다.

졸고 있는 효주의 얼굴을 보자 감정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 이렇게 피곤한 와중에도 나 보겠다고 온  얼마나 기특하냐.’

그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효주를 보며 이렇게 그냥 데이트 기분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수는 효주의 머리에 어깨를 내주었다.

그 후, 그가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뽀얗고 티 없는 하얀 피부에 순진하고 청순해 보이는 외모가 어딜 가도 사랑받을 것 같았다.

현수는 좀  자세히 효주를 보고싶다는 충동에그녀의 머리를 슬며시 붙잡고 천천히 자신의 무릎에 내려주었다.

자세가 바뀌면서 효주가 눈을 떴고, 누워있는 자신을 인지 했는지 일어나려고 했지만 현수가 이를 제지하며 말했다.

“괜찮아. 피곤하면 조금 자고 일어나. 다음에  보면되지.”

현수의 말에 효주가 미안한 눈빛으로 다시 현수의 무릎에 누우며 말했다.

“미안…. 이러면 안 되는데…. 조금만….”

효주는 말을 하는 도중에 금세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현수는 잠에 빠져드는 중인지 꼼지락 대는 손가락을 슬며시 쥐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를 재웠다.

스크린에서 밝은 화면이 나올 때마다 비치는 아기처럼 새우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상영되고 있는 영화보다 오히려 시선이 더 많이 갔다.

‘아주 그냥 경계심이  풀려있네.’

한석에 대한 죄책감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수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순간만큼은 한석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짜릿한데.’

엄한 남자 한  바보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현수는 짜릿함이 치고 올라왔다.

그것은 굳이 효주와 격정적인 섹스를 나눌때만 느낄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현수에게 완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은 효주가 그의 무릎을 베고서 잠을 청하고 있을 때, 부드러운 그녀의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현수는 영화가 끝이 날 때 까지, 효주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녀의 얼굴과 머리칼을 만지느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효주는 그 손길에 잠에서 깨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그 손길에 더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새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할때도 효주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수는 효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효주야. 많이 피곤해?”

현수의 말에 효주가 움찔거리더니 눈을 조금 뜨다가 상황파악이 끝났는지 눈이 확 커지며 몸을 벌떡 일으키고 말했다.

“헐. 어떡해! 미안해…. 영화 끝난 거야?”

효주는 자신이 영화 시작부터 졸아서 끝날 때 까지 잠을 잤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현수는 자신에게 엄청 미안해 하는 효주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진짜 많이 피곤했나 보네. 오늘은 그냥 들어갈까?”

서운하거나 화내는 기색이 하나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현수가 오히려 더 무서웠던걸까.

효주는 더욱미안해하며 말했다.

“아냐, 진짜 이제 괜찮아졌어. 오늘 늦게 들어가도 되니까 같이 있자.”

원래 계획은 영화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바로 집으로  생각이었지만, 효주가 이렇게까지 같이 있자고 하니 현수의 마음도 달라졌다.

“나도 이제 조금 피곤해서 그래. 일어나자, 바래다 줄게.”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는 현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던 효주가 현수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많이 피곤해? 진짜 미안해…. 그럼 산책이라도 좀 하고 들어갈까?”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랑 같이 있고 싶어?”

현수의 말에 효주의 얼굴이 붉어지며 쑥쓰러운 듯 망설이며 말했다.

“응….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오늘도 그냥 같이 있을래?”

현수의 돌직구에 효주가 잠시 말문이 막혔는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음…. 근데 오늘은 언니가 집에 있어서….”

언니가 집에 있을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현수는 생각 외의 답변을 듣고 조금 당황했지만 여기서 멈출  없었다.

“아 그래…?그럼 그냥 집에 가자.”

급격하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운함을 표출하며 효주를 바라보자 그녀가 엄청 당황한 표정으로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지, 진짜…? 이렇게 가도 돼?”

현수는 자신을 붙잡는 효주에게 약간 기대감을 품은 눈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나랑 밤새 있는  상관없어?”

효주는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하고 현수를 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럼 일단 밖으로 나가자.”

* * *

봄이지만 오늘따라 쌀쌀한 날씨에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현수는 효주의 손을 쭈물대며 잡고서 자신의 겉옷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꽉 잡고 있는 두 손이 금세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현수가 말했다.

“배는 안고파?”

“좀 고픈 것 같아.”

“그럼 날도 추운데 먹을 거 사서 안으로 들어갈까?”

현수는 직접적인 말보다 살짝 돌려서 모텔을 가자는 말을 꺼냈다.

효주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얼굴이 붉어지며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를 달성한 현수는 효주를 이끌고 근처 음식점에서 먹을 것을 포장한 뒤 외관상 제일 좋아 보이는 모텔로 향했다.



모텔 카운터에서 현수는 어정쩡하게 섰다.

그러자 모텔 주인이 현수에게 살갑게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아…. 네.”

현수가 조금 어색한 투로 대답하자, 효주가 옆에서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숙박밖에 안 되는데 숙박이시죠?”

“네.”

현수가 옆의 가격표를 힐끔거리더니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카드키를 건네받은 뒤 방으로 들어간 현수는 불을 키려고 했지만 아무리 눌려도 켜지지 않는것을 보고 당황한 티를 냈다.

그러더니 이내 그는 문 입구 쪽의 카드키 홀더를 발견하고서 카드키를 꽂아 넣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효주가 다시 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 모텔도 처음이야?”

효주의 말에 현수는 민망하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왜, 뭐, 처음이면 안 돼?”

그 태도에 효주는 귀엽다는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진짜 너는 생긴 거랑 다르게 너무 순진하다 싶어서.”

현수는 자신을  취급하는 효주를 보며 그녀에게 장난치듯 말했다.

“넌 자주 와봤어?”

여태 자신이 놀리다가 갑자기 되받아치는 현수에게 당황한 효주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 아니…. 아닌데?”

현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자연스럽게 묘한 분위기를 내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효주는 현수가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오자 흠칫 놀랐다.

현수가 양손으로 효주의 얼굴을 감쌌다.

“내가 어리숙해서 싫어?”

“지금 보면 어리숙한  아닌 거 같은데….”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히며 이내 현수의 입술이 효주의 입술을 덮었다.

키스가 시작되자 방금 전까지의 말랑말랑한 분위기는 삽시간에 증발하고, 방 안에는 야릇한 느낌이 피어올랐다.

현수는 어제 이미 서툰 척을 충분히 해뒀기에, 오늘은 거침없이 혀를 움직였다.

그가 효주의 입술을 빨고 입술 속으로 혀를 넣어서 그녀의 혀를 부드럽게 얽자 효주의 몸에서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사람의 키스가 끝났을 때, 둘 사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입술이 떼어진 후, 효주가 감았던 눈을 뜨자 현수가 그녀에게 말했다.

“씻고 올래?”

효주가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효주가 먼저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현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톡을 보냈다.

[오늘 조금 늦을 거 같아. 먼저 자고 있어.]

가윤에게 메시지를 보내놓은 뒤, 현수는 머릿속으로 오늘은 어디까지 진도를 뺄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다.

‘두 사람이 성향이 조금 다르니까 자꾸 헷갈리네.’

효주와 가윤의 성향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고, 그렇기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현수가 오늘 어떤 섹스를 할지 고민을 마칠 때쯤, 효주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가운으로 몸을 가린  나온 효주의 모습이 눈에 담긴 순간 현수의 성욕이 끓어 올랐다.

‘진짜 얼굴이  하네.’

새삼 현수는 외모의 중요성을 느꼈다.

“왜 그렇게 봐…. 너도 얼른 가서 씻고 와.”

청순한 얼굴의 효주가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현수는  얼굴을 당장이라도 수치심으로 물들이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았다.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응….”

화장실로 들어가기 직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자 효주는 이불 속으로 몸을 쏙 하고 집어넣어 침대에 몸을 실었다.

그리곤 이내 그녀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하는 순간, 효주가 흠칫 놀랐다.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고서 현수는 입꼬리가 올라가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현수는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몸을 빠르게 씻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수의 물건이 점점 빳빳하게 세워졌다.

현수는 효주를 가윤을다루듯이 그녀를 대하고 싶은 욕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침착해.’

효주는 가윤이 아니였다.

아직까지 효주와는 부드러운 섹스를 해야만 했다.

샤워를 마치는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장실을 나온 현수는 곧바로 침대로 향했다.

효주는 현수가 다가오자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했다.

그러다가 현수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현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현수야….”

그러나 현수는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에게 곧장 키스했다.

효주는 이번에도 순응하듯이 키스를 받아주었다.

한  더 진한 키스를  뒤, 효주가 다시한 번 머뭇거리는 투로 입을 열었다.

“저기…. 현수야.”

현수는 그녀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현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응?”

오히려 현수가 그런 식으로 나와버리자 효주는 더 민망한지 한참을 망설였다.

현수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애무를 시작했다.

그가 곧바로 효주의 목덜미를 빨기 시작했다.

“하아….”

효주의 손이 반사적으로 현수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런데 평소보다 현수의 머리를 밀어내려는 효주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것을 거부의 의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수는 이것이 거부가 아닌 수치스러움으로 인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강하게 목덜미를 빨았다.

그러자 효주의 입에서 다시금 야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수는 그렇게 그녀의 목덜미를 빨다가 그 위의 귓바퀴를 살살 깨물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손은 조심스럽게 가슴팍까지 끌어 올라가 있는 이불을 붙잡았다.

그 순간 현수의 머리를 붙잡고 있던 효주의 손이 현수의 손을 움켜쥐었다.

“안 돼….”

두 눈을 감고서 현수의 애무를 참고 있던 효주가 어느새 눈을 뜬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는 효주의 애타는 표정에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가 이내 그녀가 괜히 내숭부린다고 오해한 것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은  다시금 이불을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효주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현수의 손을 더욱 강한 힘으로 붙잡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현수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효주가 어쩔수 없이 말했다.

“천장….  봐봐….”

그 말에 현수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고서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천장을 가득 메운 거울이 침대 전체를 선명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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