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048화 (48/112)



〈 48화 〉048화

변호수의 집무실.

”동향보고입니다.“

그는 비서가 내민 서류를 건네받고 있었다.

변호수가 서류철을 열어보자, 안의 내용은 지나치게 간단했다.

보고서가 한 문단으로 끝나 있었다.

비서는 단촐한 한 장 짜리, 심지어 한 문단짜리 보고서가 민망했는지 직접 말을 덧붙였다.

”그날 이후로 여자들만 계속 만나고 다닙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흔적은 없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변호수는 의아했다.

‘뭐하자는 거지?’

변호수는 며칠 전 술자리를 떠올렸다.

당당하게 자신을 찾아와서 한 자리 달라고 말한 의대 청년.

사람 상대하는 데에 최소한의 경지에는이르렀다고 생각하는 변호수였다.

그렇기에 그는 현수가 이렇게 단순하거나, 허풍밖에 없는 존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말해.“

”더 이상 관찰하실 필요가 있으실까요?“

비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비서실 사람들의 사기도 생각해야 했다. 저렇게 한량마냥 여자 뒷꽁무늬만 졸졸 따라다니는인생을 감시 시킬만큼 여유로운 인재들이 아니였다.

”사흘만 더 찾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대충 훑기만 해. 이정도면  다른 그룹이랑 접점은 무조건 없는 놈이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현수에 대한 문제가 정리됐을 때였다.

우우웅.

비서의 품 속에서 진동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변호수가 시선을 돌렸다.

비서의 바지주머니가 아닌, 자켓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은 변호수의 업무용휴대폰이었다.

휴대폰 스크린에 뜬 이름을 확인한 비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김현수입니다.“

변호수는 헛웃음이 나왔다.

”양반은 못 되겠군. 줘봐.“

변호수가 손을 내밀자 비서가 공손하게휴대폰을 내밀었다.

변호수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네. 안녕하세요. 상무님.

”무슨 일이지?“

-시험 문제 다 풀어서 채점 받으려고요.

방금 전 보고서를 읽은 변호수의 입장에선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현수의 말은 변호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와봐.“

-언제 갈까요?

”지금.“

. . .

 시간 뒤.

현수가 준비된 차를 모금 마시더니 두리번 거리며 사무실 내부를 구경했다.

”이런 곳이 대기업 간부 분들의 집무실이군요.“

”어때?“

”드라마보단 되게 좁고, 단촐하네요.“

”드라마니까 그렇지.“

”뭔가 대답에서 빨리 본론을 말하고 싶으신 거 같네요.“

”궁금한 건 사실이야. 도대체 뭘 준비해왔길래 허락한 기간의 반도 안되는 시간만에 해결한 거지?“

현수는메고 온 크로스백에서 태블릿 PC를꺼냈다.

그는 태블릿 PC에서 무언가 앱을 켜더니, 변호수에게 건넸다.

변호수가 태블릿을 건네받자 가장 먼저 올라온 것은 의아함이었다.

”주식?“

태블릿 화면에 떠오른 건 주식 매매 프로그램이었다.

”설마 주식 매매를  한다 돈 굴린 다 그런  아닐테고.“

”그런 거 여의도 가서  많이 준다 하면 얼마든지 구할 있잖아요. 번석이 뭐 주식 비자금으로 장난칠 수 있는 사이즈도 아니고.“

”안다니 다행이네.“

”주식 계좌에 뭐뭐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변호수는 현수의 말대로 계좌에 들어가봤다.

“많이도 샀네.”

“분산투자가 주식투자의 기본이잖아요.”

[BS전자 - 2주
BS디스플레이  1주
BS바이오  3주
,,,
KJ미디어 – 2주
...
LA하이텍- 3주]

변호수는 별 생각 없이 술술 주식들을 읽으며 내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호수는 주식 옆의 주식 개수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변호수는 스크롤을 내리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변호수는 스크롤을 다시 제일 위로 올렸다.

‘됐다.’

그것을  순간 현수는 자신의 노림수를 변호수가 이해했음을 직감했다.

그는 제일 위부터 천천히 다시 주식 계좌 속 주식들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슥슥 넘긴다면 이, 삼분이면  읽을 내용들이지만, 변호수는 이십 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따금씩 골똘히 고민하고, 태블릿을 노려보고, 헛웃음을 짓기를 반복하며 매우 천천히 그 종목들을 읽어갔다.

그리고 그 종목들을 전부 다 읽고 난 후, 변호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봤다.

“넌 진짜 미친놈이냐?”

. .

‘오케이.’

현수는 정확히 예상한 반응이 나오자 입가가 씰룩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대놓고 빵 터지는 무례를 범할 수는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웃음을 억누르며 살짝 입고리를 올리는 데 만족할  밖에 없었다.

“미국이랑, 중국 주식들도 정리해놨습니다. 확인해보세요.”

현수는 매입이 아닌,정리라고 했다.

그러나 변호수는 군말없이 곧바로 태블릿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렇게 중국과 미국의 계좌도 확인을 하고 나자 순식간에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어느새 현수의 앞에 놓여있는 차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변호수는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이걸 믿고 그렇게 막나갔었네.”

“막나가다뇨. 제 나이에 여자만나는 건 청춘에 충실하다고 하는 거죠.‘

”미행이 붙을  예상하고 있었다?“

현수로써는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씨익 웃어 넘겼다.

”이 정도 규모 시험에 감독관 하나  붙을 거라고 생각했을 리가요.  우리나라 재벌이 법 무서워하는 거   있습니까.“

변호수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한 마디를 안 지네. 가정교육 문제인가?“

”가정교육으로도 해결  되는 타고난 인성이었습니다. 타고난 머리랑 타고난 인성을 같이 얻었다고해두죠. 인성은 나쁜 쪽으로 타고난 게 문제지만.“

현수는 자신의 원래 나이가 있기에 굳이 자신을 납작 엎드리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과 같이 싸가지 없는 성격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이 태도는 변호수에게 불쾌함보다는 유쾌함으로 받아들여진  했다.

변호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웃더니 간신히 웃음을 다잡은 변호수가 입을 열었다.

”이런 정신 나간 놈은 진짜 처음이네. 이렇게 대놓고 웃은 적은 정말 오랜만인거 같은데.“

변호수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말을 이었다.

”어찌됐건 배포랑 머리 좋은 거는 인정하지.“

”감사합니다.“

”1주가 하락세인 회사. 2주가 상승세인 회사. 3주가 갈림길에 선 회사. 맞지?“

”맞습니다.“

현수는 주식을 딱 세 종류로 매입했다.

첫 번쨰. 단기간 내에 확실하게 상승세로 밀고 나가는 회사. 이 경우는 2주를 매입했다.

두 번째. 단기간 내에 확실하게 하락세로 밀려나는 회사. 이 경우는 1주를 매입했다.

마지막으로  번쨰. 현재 상승세인지 하락세인지  없으며, 장기간 뒤에 갈림길에 서게 될 회사. 이 경우는 3주를 매입했다.

”안목 하나는 인정하지.“

변호수가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고있던 회사들의 미래와 90퍼센트 이상이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BS전자는 왜 2주야?“

”스마트폰 사업 사활 걸잖습니까. 이거 터집니다.“

”장담할 수 있어? 생각보다 중국 업체 추격이 거세.“

”어차피 중국은돈 된다 하면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구조라서 그때쯤 되면 시장 과열입니다. 그때 되면 BS전자는 스마트폰은 밀려나도 부품으로  쓸어 담고 있을 겁니다.“

”BS디스플레이는?“

”OLED를 대형 위주로 투자하잖아요. 나중에 누가 TV봐요 다 자기 방에서 자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보지. 거긴 BS전자랑 이상하게 너무 따로 놀아요. 가전사업부랑 같이 떼어내서 계열 분리 준비한다더니 진짠가.“

그 외에도  가지 회사에대한 이야기를 더 나눴다.

현수는 이것이 변호수의 구두 테스트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최대한 신경써서 대답했다.

그러자 변호수의 입에서 합격이란 말이 떨어졌다.

”됐어. 알고  거 맞네.“

”그럼 진짜 궁금하신 건, 3주짜리 회사들일건데요.“

현수의 말에 변호수가피식 웃었다.

”잘 알고 있네.“

1주와 2주짜리 기업들은 변호수로써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기업들이었다.

그리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기업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3주짜리 기업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이 기업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 기업들이었다.

”아마  가치를 진짜 증명할 수 있는 건 3주짜리들이겠지. 하나같이 미래산업들 뿐인데,뭐가 터질지 알 수 없는 것들 뿐이니까.“

”반대로 말하면, 뭐가 터질지 알고서 하나만 선점해놔도 나중에 그룹의 캐시 카우로 써먹기 딱이겠죠.“

변호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십 년, 어쩌면 이십 년 농사로도 딱일거다.“

’어렵네. 이건 진짜 아무리 공부해도 안나오던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한 대답들은 현수가 회귀 전 알고 있던 잡지식과, 회귀 이후 검색한 지식들을 조합해서 만든 정보들이었다.
1주 짜리와2주 짜리들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근래의 미래에 터지고 몰락하는 기업들이기에 지금의 인터넷으로검색되는 정보들이 많았다.

문제는 3주짜리들이었다.

아무리 정보 검색을 해도이론이면 몰라도 이것이 상용화가 빠르게 될 근거같은 것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젠장 신문같은 것들 좀 열심히 읽어둘걸.‘

현수는 그저적당한 이유를 찾아내서 이야기했다.

”뭐 제가 꽂힌 산업은 크게 전기차, 바이오 시밀러, 파운더리, 클라우드.  가지 정도입니다.“

”이유는?“

”우선 전기차는 수소차에 비해서 구조적으로 상용화가 빠를 수 밖에 없어요.“

현수는 나름대로 공부한내용을 최대한 그럴싸하게 설명을 했다.

변호수는 가만히 그것을 듣고 있다가 현수의 말을 잘랐다.

”뭔가 말이 원론적인데.“

’제길. 당연히 원론적이지 대충 이론서나 뉴스만 보고 씨부리는건데.‘

변호수는 팔짱을 끼더니 현수에게 물었다.

”내가 너한테 묻고싶은  왜 굳이 이 기업이냐 이건데.“

’좆됐다.‘

이건 준비한 말이딱 하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뭐 각 그룹 회장님들의 마음이 변할 경우 달라질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는 저게해당 그룹들이 찍은 다음 이십 년 농삿거리니까요.“

”버티면 이길 수 있다?“

’그러게 이기더라고.‘

”네. 저는 그럴 거라고 봅니다.“

”흠... 그렇군.“

변호수는 뭔가 개운치 않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이게 최선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변호수가 중얼거렸다.

”조금 짜증나네.“

그 말을 들은 순간 현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현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그에게 반문했다.

”네?“

그런데 변호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어설프게 아는 애랑 나랑 예상하는 게 이렇게 비슷하다고 하면, 짜증 나지 안 나냐.“

’시발 존나 놀랬잖아.‘

다행히도 심각한 이야기는아니였다.

변호수가 현수에게 말했다.

”일단 시험은 통과야.“

’오케이.‘

현수는 예상했던 결과이지만, 막상 대답을 듣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이어서 들려오는 변호수의 질문에 기분이 다시 급락했다.

”그런데, 남은 돈은 어쨌어? 주식은 이천만  정도밖에   거 같던데.“

그 질문에 현수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X발....‘

현수는 다시 생각해도 분노가 올라왔다.

그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속으로 괜찮다고 되뇌이며 대답했다.

”벌었는데요. 잃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변호수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혹시 재벌이시면 도박같은 해보셨습니까?“

”뭐 해외 출장 가면 한번  해보긴 하지?“

”음. 저는 이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법 도박이란  해봤는데요.“

”뭐?“

변호수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거기 졸업이라는 게 있는데, 돈을 왕창 따는 놈들을 일방적으로 IP차단 시키고 입을 싹 닦는 겁니다.  마디로 먹튀를 하는 거죠.“

”그래서, 먹튀를 당했다?“

”...네.“

”얼마를?“

”...시험에는 저것만으로도 통과할 거 같아서.“

현수는뒷말을 스스로가 하기에도 민망했는지 살짝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팔천만 원 전부 다요.“

현수의 말에 변호수는 순간  찌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푸하하하하!!!“

’시발.... 누군 속 쓰려 뒤지겠는데....‘

변호수는 어지간히 웃기던지, 아예 고개를 젖히고서 웃어제꼈다.

’X발. 사기 당했다는  저렇게 웃기나.‘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웃음을 간신히 가라앉힌 변호수가 현수에게 물었다.

”그래서, 도박으로 전부 다 잃었다?“

”잃었다고 하니까 되게 기분 묘하네요. 돈만 제대로 받았으면 열 배로 받았을 겁니다.“

한창 프리미어 리그에 미쳐있던 시절이었다.  중 경기 전체의 흐름이 인상깊게 남아있던 시합이었기에 모든 흐름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었다.

”깡패새끼들 약속을 믿은 네가 멍청한거지... 넌 멍청한 거냐 순진한 거냐.“

”도박 한  안 해본 티가 나지 않나요? 순진한 걸로해주세요.“

”에휴... 김 비서.“

”네 상무님.“

현수는 갑자기 비서를 부른 변호수 때문에 의아했는데, 이내 그의 이어진 말에 깜짝 놀랐다.

”열   챙겨주면 인생 교육이 안되니까, 사억만 뽑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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