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055화
말을 하는 와중에 버스가 정차하며 문을 열었고, 학과 간부들의 통제 하에 다들 내리기 시작했다.
“고생했어, 얘들아.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고 엠티 뒷풀이는 다음주 평일 중으로 할거야.”
학회장의 말에 다들 피곤했는지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리자마자 다들 흩어져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기들이 해산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딱 붙어서 둘만의 데이트를 떠났다.
“음…. 오빠 숙취는 없어?”
“약간?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 왜?”
“어차피 지금 밥도 먹어야 될 거 같은데…. 혹시 해장국 먹으러 안 갈래? 꼭 먹어보고 싶어….”
연희는 약간 민망해하며 발을 동동 굴리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현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너 혹시 해장국 한 번도 안 먹어봤어?”
“응. 집에서는 먹어볼 기회가 없었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저번에 휴게소 음식 먹을 때도 처음 먹어보는 거였어?”
“응, 티비에서 먹는 거 보고 꼭 먹어보고 싶었거든. 아빠가 절대 못 먹게해서….”
“….”
‘아무리 봐도 재벌댁 딸래미 같다.’
현수는 속으로 확신을 내리고 연희를 해장국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가앞으로 20년은 우려먹을 집이야. 근처에서 제일 맛있어.”
“정말?기대해도 되지?”
“당연하지, 근데 해장국이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다.”
말하고 있던 와중에 식당이모님이 주문을 받으러 오셨고, 현수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여긴 뼈해장국이 제일 맛있는데, 이걸 시켜말어?’
현수의 고민이 길어질 때쯤, 연희가 입을 열었다.
“나 뼈해장국 먹고싶은데, 오빠는?”
“어? 너 그거 먹을 수 있겠어? 그냥 먹기 편한걸로 하지.”
“그래도 먹고 싶은데….”
“알겠어. 그럼 뼈해장국 2개로 주세요.”
몇 분 뒤, 뼈해장국 두 그릇이 나왔고 현수는 그녀가 뼈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해졌다.
‘재벌도 뼈 집어들고 먹을까?’
하지만 현수의 기대와는 다르게 연희의 젓가락질은 신들린 듯 뼈 사이사이에 붙은 고기를 쉽게 떼어냈고, 신기하게도 그녀의 먹는 모습이 품위있게 느껴졌다.
‘와…. 여태까지 몰랐는데 알고보니까 되게 품격있네. 교육 제대로 받았나보다.’
왠지 모를 동경심이 피어올라오며 저런 여자가 자신의 배에 깔려서 교성을 지르는 모습을 상상하자 묘한 쾌감이 올라왔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뭐 더 하고싶은거 있어?”
순간 연희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변하며 양 손을 맞잡고 말했다.
“응! 나 꼭 하고싶었던게 있어.”
“뭔데?”
“피씨방 가고 싶어.”
현수는 진짜 드라마에서나 보던 재벌이 서민 체험하는 모습에 이 광경이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게임 할 줄 아는거 있어?”
“딱히 없긴 한데…. 나도 휴대폰게임 말고 진짜 피씨게임 해보고 싶어.”
‘초보자에 여자가 할만한 게임이라….’
현수도 게임에 손을 놓은지 어언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 청년 특유의 게임부심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초보자가 하기 쉬운거면…. FPS류 게임 어때?”
“FPS?”
“응. 총 쏘는 게임이야.”
“헐, 나 너무 좋아. 빨리 가자.”
연희를 데리고 피씨방에 도착한 현수는 연희에게 간단한 조작 방법을 알려주고 같이 연습 삼아 게임을 몇 판 시작했다.
“죽어라! 죽어!”
‘뭐야…. 처음하는거 맞나? 왜 이렇게 잘해?’
마치 오랜 시간 게임을 해본 사람처럼 엄청난 상황 판단능력과 뛰어난 에이밍에 현수는 당황했다.
‘씨발…. 너무 오랜만에해서 손이 잘 안 따라주는데….’
현수는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구차한 변명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게임부심이무너질 것 같았다.
몇 시간 뒤.
“오빠, 뭐해? 아니, 거기서 왜 죽는거야?”
“미안….”
“아니, 그냥 뒤에 있으면 되잖아.”
“알겠어. 미안해….”
이젠 오히려 자신에게 되려 짜증을 내고 있는 연희를 발견하고서 현자타임이 온 현수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나 오기로라도 부풀려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마음으로 게임을 계속했다.
따다다닥.
‘남은 인원은 10명. 우리 둘을 제외하면 8명이니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있던그때 연희의 캐릭터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오며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연희야 거기 적 있어!”
따다다다다닥.
“응. 이제 없어.”
‘조, 존나 멋있네….’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로 압살해버리는 그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현수는 갑자기 날아온 수류탄에 목숨을 잃었다.
“아…. 아니, 오빠 뒤에만 있는데 안 죽는게 그렇게 힘들어?”
현수는 날아오는 수류탄보다 연희의 뼈를 찌르는 말이 더 아팠다.
“미, 미안….”
‘좆같네, 씨발….’
게임에서는 실력이 지위였기에,현수는 연희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그녀의 화면을 지켜봤다.
5명, 3명, 2명.
연희는 끝내 혼자 남으며 승리를 거머쥐었고, 여태껏 현수 때문에 이기지 못한 것을 풀기라도 하듯 굉장히 기뻐했다.
“이제 1등도 먹었으니까 나갈까?”
이렇게 말하는 현수의 목소리에는 힘이 쭉 빠져있었다.
연희도 그것을 느꼈는지 아쉬워하는 눈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네. 진짜 재밌었다 그치?”
“그러게. 너 진짜 잘하더라. 처음 하는거 맞아?”
현수의 칭찬에 연희가눈에 띄게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완전 재능있나 봐. 우리 자주 오자. 오빠도 게임 거의 안 해봤지? 나보다 못하는거 같던데.”
‘몇 년을 했어. 개같은년아.’
현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리는 그녀에게 차마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응, 난 공부한다고 게임 할 시간이 없었지.”
“맞아. 그렇게 보이더라구.”
마지막까지 확인 사살까지 마친 그녀는 순진한 눈빛으로 이제 뭘할까 생각하는 듯했다.
“아, 오빠 우리 이제 저녁 먹으러 갈까?”
“그러자.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음…. 근데 오빠 안 피곤해?”
‘게임 때문에 표정 관리가 안됐나, 얼굴이 피곤해보이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는 그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전혀 안 피곤해. 괜찮아. 걱정 안해도 되니까 저녁 먹으러 가자.”
“나 또 하고 싶은게 있는데….”
“응, 뭔데?”
“오빠한테 저녁 차려주고 싶어.”
“응? 밥을 어디서 해먹게?”
“당연히 우리집이지.”
* * * *
얼떨결에 연희의 집에 입성한 현수는 연신 감탄을내뱉고 있었다.
“혼자 사는 집이 이렇게 크고 깔끔할 수도 있어?”
연희는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구해줬어. 오빠한테 자랑하려고 들인 건아닌데…. 아무튼 편하게 누워서 쉬고 있어. 내가 요리해올게.”
굉장히 순수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해오겠다는 연희를 보며현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이거 조금만 늦었으면 난봉꾼, 아니 김종억한테 연희가 따먹히고 놓칠뻔 했네.’
다시 한 번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연희의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떻게 들어올까 고민했는데, 진짜 애가 참 쉽네.’
정말 새하얀 도화지처럼 연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그녀를 보며 현수는 더러운 욕정으로 그녀를 스스로도 모르게 능욕하고 싶었다.
‘떠나면 좆되는 수가 있으니까, 천천히 조교해야겠다.’
현수는 연희를 무조건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으로 sns를 차례대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김종억…. 이름이 그나마 찾기 쉬워서 다행이다.’
각종 sns를 모조리 뒤져가며 난봉꾼의 정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을 때.
‘찾았다.’
현수는 난봉꾼과 엮여있는 사람 중에서 이 녀석과 꽤 가까운 사람이면서, 누가 봐도 남자를 밝혀보이고 따먹기 쉬워 보이는 여자를 찾아냈다.
그리곤 친구 추가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며 이 여자의 정보도 하나하나 파악해나갔다.
‘허세가 좀 있는걸 보니 돈 많은 사람한테 붙을거고, 남자친구는없는데 사진에 다른 남자들이 있는걸 보니 원나잇도 자주 할거 같고. 이건 뭐 완전 골빈년이네.’
이런 저런 글을 보다보니 정말 이용하기 쉬워 보였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답장이 날아왔다.
[누구세요? 사진 본인 맞으세요?]
현수는 여러 말을 하는 것보다 종이와 펜으로 날짜와 시간을 적은 뒤 셀카로 스스로를 인증했다.
[아, 본인 맞으시구나. 무슨 일이세요?]
현수의 예상대로 잘생긴 얼굴을 보자마자 태세 변환을 하며 내숭을 떨어오는 그녀를 보며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ㅋㅋㅋㅋ 진짜 재밌으시다. 그래서저한테 관심 있으신거죠? 그럼 술부터 한잔할까요?]
그녀는 금세 현수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만남까지 제안을 해왔고, 현수는 그녀와 약속까지 정하는데 고작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존나 쉽네.’
약속을 잡는 동안 연희가 음식을 다했는지 현수를 불러왔다.
“오빠~ 다 됐어 나와.”
현수가 나와서 테이블을 확인 했을 때, 웬만한 음식점을 능가하는 비주얼의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보기좋게 익어있는 스테이크와 데코까지 완벽한 파스타, 먹으면 살이 금세 찔 것 같은 비주얼의 감바스까지 오래 걸린다 싶었는데 오히려 빨리 만든 수준이었다.
“술은? 와인도 있는데 마실래?”
“와인 너무 좋은데?”
연희의 위장은 끝이 없는지 셋이서 먹어도 배부를 양을 어느새 다 처리하고 둘은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워낙 음식이 많아서 마신 와인의 양도 꽤 많았는지 연희의 볼이 바알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빠는 내가 왜 좋아요?”
‘취했네.’
취기가 확 올라왔는지 자신에게 돌직구를 던져대는 연희를 보며 현수는 당장이라도 따먹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좋다고 한 적 없는데?”
“에이, 뭐야. 거짓말 하지마요.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안 좋아한다고 한 적도 없고.”
연희가 샐쭉한 표정으로 현수에게 달라붙으며 말했다.
“저 좋다는 사람 많거든요? 다른 사람한테 가버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응, 기껏해야 나랑 그 새끼만 남은 거 다 알아.’
술이 들어간 연희는 맨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말들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연희의 유혹에도 현수는 꿋꿋이 욕구를 참아냈다.
‘아빠가 그렇게 보수적인데 딸이 개방적일 리가 없지. 지금 따먹으면 역효과다.’
그저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지만 억지로 참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왜 이래. 너 많이 취했어, 지금.”
의도적으로 티를 내는 현수를 보며 연희도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현수에게 들어대는 느낌이었다.
“아닌데요? 저 안 취했는데? 맨정신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밀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연희의 돌직구에 현수는 빠르게 김종억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씨발, 이 년 아무한테나 이럴 거 생각하면 좀 좆같긴 한데.’
현수는 나중에 연희를 조교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후로도 연희의 질척거림은 그녀가 골아 떨어질때까지 끊임없었다.
* * * *
시간이 지나 현수는 김종억의 SNS를 뒤져서 연락이 닿은 여자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진짜 모델인줄 알았다니까? 의대생이 이렇게 잘생겨도 되는거야?”“내가 좀 다 가지긴 했지. 술잔 비었다.”
그들은 초면부터 술집에서 만나서 벌써 세 병째 비우고있었다.
마치 목적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짠.
술잔이 부딪히며 술이 약간 튀었고, 여자의 얼굴에는 내내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재수없어. 난 사진 받았을 때 구라같은 느낌이었지만 혹시나 해서 나왔는데 진짜 똑같이 생겼네.”
“너도 의외로 똑같이 생겨서 놀랐어. 내 이상형이라서 연락해봤는데.”
“아, 뭐야~.”
그녀는 말로는 싫은 척 하면서 은근슬쩍 현수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오~ 뭐야? 운동도 해?”
“응, 공부하려면 체력이 있어야지. 복근도 있는데.”
현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배에 가져다 댔고,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예린이, 너도 운동 좀 한 거 같은데?”
현수가 슬쩍 보았던 예린의 몸매는 SNS에 자랑을 할만큼 꽤나 육감적이었고, 그런만큼 따먹을 맛이 나보였다.
“응, 보정된 거랑 별로 다를거 없는데 한 번 볼래?”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