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066화
“미친새끼. 난 너랑 할 얘기 없으니까 꺼져.”
현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석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렇게 과민반응을 해버리면 내가 너라고 확신할 수 밖에 없잖아.”
순간 한석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으며 자리를 박차고 먼저 동아리실을 나섰다.
‘역시 저 새끼였네. 병신새끼,티라도 내지를 말던가.’
현수도 한석을 따라나서서 장소를 이동했다.
어느 정도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한 한석은 곧장뒤로 돌아 현수의 멱살을 잡으며 으르렁거렸다.
“너 씨발새끼야, 너 이미지관리 잘 하더라? 남의 여자친구 뺏았다고 소문나서 자퇴하고 싶지 않으면 말 잘해라?”
현수는 자신의 멱살을 잡고있는 한석의 손을 쉽게 떼어내고 비웃으며 말했다.
“증거는 있고?”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무슨 개소리야.”
“근데 왜 바로 소문 안 냈지?”
“그, 그건.”
“보통사람이었으면 소문을 바로 내거나, 나를 찾아왔을건데.”
현수의 당연한 소리에 한석은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차, 찾아가서 죽여버리려고 했어. 그, 그리고 네가 뭔데 지금 이렇게 당당해?”
“내가 당당할 수밖에 없지. 너나 나나 똑같은 놈인데.”
“뭐?”
“너 어제 효주 집에 몰래 들어온거 다 알고있어. 그래서 어디가서 말도 못하는 거잖아.”
한석의 눈이 엄청나게 커지며 입이 벌어졌다.
“그, 그걸 어떻게…. 증거, 증거 있어? 너도 그냥 심증만 있을 뿐이잖아.”
현수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내가 CCTV랑 홈캠까지 다 확인했어. 넌 남자친구란 애가 집에 홈카메라가 달린 것도 몰랐어? 여자만 둘이 사는집에 그 정도는 달려 있을거라고 생각해야지.”
한석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이 크게 흔들리며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개소리하지 마! 내, 내가 집에 들어갔건 어쨌건 너넨 다 끝이야!”
“한석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싸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한석이 현수의 마지막 말을 듣자 한석의 표정은 좆됐다라는 표현이 매우 적절해 보이게 변했다.
“너 옷장 안에서 딸이나 치고 뭐하는거야.”
* * * *
그날, 술집.
효주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화장실로 향하자 한석은 그녀를 따라 나섰다.
“효주야, 괜찮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다가 물로 세수를 하는 그녀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석이 물었다.
“하... 괜찮아. 걱정하지마.”
“속 안좋으면 먼저 들어갈래?”
“아냐, 진짜 괜찮아 상관 안해도 돼.”
한석이 봤을 때, 그녀는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효주의 성격을 아는 그는 더는 먼저 들어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고 지금 당장 신경쓰이는 것을 말했다.
“효주야,그럼 계속 있을거면 일단 내 옆자리로 넘어올래?”
그러자 효주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으며 그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한석아, 굳이 이런 자리까지 와서도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해? 같이 노는데 매번 분위기 좀 망치지 말아줘.”
한석은 그저 자기 옆자리로 와서 앉으라고 한 것뿐인데 효주의 반응에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쏘아붙었다.
‘내가 뭐 큰 실수했나?’
“뭐? 왜 이래? 왜 이렇게 예민한거야? 말을 뭔 그런식으로 해.”
효주는 이번에도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는 듯 인상을 팍 쓰며 짜증이 많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눈치가 없으려면 아예 없던가, 아니면 있는 척이라도 좀 하지마. 매번 자꾸 현수 이야기 꺼낼 때마다 진짜 짜증나. 이 자리 내가 만들었어? 다 동의한거 아니야? 왜 자꾸 나한테 그러는건데?”
한석은 구구절절 다 맞는 소리를 하는 효주 때문에 벙찐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맞는 말이라도 구겨진 자존심과 서운함 때문에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효주 또한 잠시 나갔었던 이성을 잡아 끌어왔는지, 미안한 말투로 한석을 달랬다.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했어. 방금은 정말 내 진심이 아니야. 신경을 쓰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불편하면 조금만 이따가 자리 일어나자.”
마치 병주고 약주는 그녀의 태도에 한석은 기분이 많이 안좋아졌지만, 티를 내지 않고 다시 자리로 향했다.
‘진짜 좆같네…. 이게다 김현수 때문이야.’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악의에 한석은 효주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곧장 현수에게 풀어냈다.
취기가 완전 올라온 한석은 속마음에 있던 말을 다 내뱉어내며 현수를 도발했다.
“야, 김현수. 너 효주한테 너무 붙어있는 거 아니야?”
“어, 미안하다. 떨어질게.”
‘띠껍네 씨발놈이. 진짜 왜이렇게 죽여버리고 싶지?’
한석은 아무리 생각해도 효주와 현수가 자꾸 엮이는 모습이 눈에 걸렸고, 이제 점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현수에 대한 묘한 열등감과 의심, 그리고 효주를 의심한 자신에 대해 더욱 심한 자괴감이 들어왔다.
이성이 나가버린 한석은 현수에게 온갖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고, 결국 성민에게 멱살을 잡히기에 이르렀다.
치기심에 성민을 데리고 밖으로 까지 나온 한석은 아무리봐도 그를 이기기엔 무리가 있어보인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게 된 한석은 곧장 성민에게 사과를 하며 용서를 빌었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효주에게 더욱 쪽팔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만 한석은 더 깊은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성민을 따라가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짓거리며 성민을 달래주다가 술을 더욱 마셔버린 한석은 어느새 택시에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 또 언제 필름이 끊겼냐.’
“저기, 기사님. 혹시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신가요?”
택시기사는 분명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찝찝한 느낌이 사라지고 있지 않았다.
‘아! 씨발, 지금 김현수랑 효주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기사님! 일단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주세요.”
한석은 이때 효주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됐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눈으로 확인을 했어야 됐는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택시에서 내린 한석은 처음 술을 마셨던 가게로 향했고, 그곳에는 빈 자리만 보일 뿐이었다.
‘하, 어디간거지? 전화해봐야겠다.’
한석은 드디어 머리를 사용하기로 한것인지,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이, 이게 왜 없냐?’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고, 택시에 두고 내린 것 같다는 강한 직감만 들었을 뿐이었다.
‘아…. 산 지 며칠도 안됐는데….’
한석은 얼마 전에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새로 샀었는데, 또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멘탈이 나가버린 한석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부여잡고 생각에 빠졌다.
‘씨발, 진짜 좆같네….’
택시회사에 전화를 하려고해도 휴대폰이 없었기에 한석은 일단 휴대폰은 뒤로 두고 제일 중요한 효주를 찾아나섰다.
길거리를 잠깐 배회하며 갈만한 곳을 둘러보았지만, 효주는 보이지 않았다.
‘하, 그래. 여기서 김현수 그 새끼랑 같이 놀고있는게 말이 안되지. 아마 집에 가 있을 테니까 집으로 가보자.’
한석은 생각을 마친 뒤, 곧장 효주의 집을 향했다.
그렇게 효주의 집 문 앞에 선 한석은 벨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직 안들어왔나?’
한석은 다시금 가슴을잠식해오는 불안감에 문에 귀를 대보았지만,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씨발! 통금시간도 지났는데 설마 아직도…?’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김현수와 같이 있다는 소리였기에 한석은 제발 집에서 자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확인만 하는거야 확인만….’
한석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효주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 전에 몰래 외워뒀었는데 그대로네.’
한석은 도둑처럼 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갔다.
그리곤 혹시나 자고 있을 그녀를 확인하려고 방의 문을 열어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한석의 머릿속에는 안 좋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김현수 이 새끼 설마 효주한테 술 먹인 다음에 따먹기라도 하려는건 아니겠지?’
‘아니면 어디 땅바닥에서 골아 떨어진 건 아니야?’
효주가 바람을 핀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한석은 효주의 침대에 앉아 온갖 걱정을 하며 현수를 상상속으로만 수십번을 때리고 죽이는 상상을 했다.
‘처음 볼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개새끼.’
한석은 걱정과 분노를 반복하며 일단 집을 나서려던 찰나에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효주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반가운 마음이 강하게 들어왔지만, 지금 한석이 효주의 집에 몰래 들어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씨발, 좆됐다.어떡하지?’
한석은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나갈까 생각을 했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분명히 들릴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머리를 감싸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냥 걱정되서 한 번 들어와봤다고 둘러대야겠다.’
한석은 이딴 핑계조차도 욕을 엄청나게 들어먹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욕을 들어먹더라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어 문 앞에 서서 혼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밖에서들려오는 발소리가 이상했다.
‘뭐야, 왜 두 개지?’
다른 집인가 싶었지만 직감적으로 한석은 발걸음의 주인이 효주라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고, 다른 하나의 발걸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니인가?’
다른 사람이 있다는생각에 한석은 더더욱 숨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그리고 숨을 곳을 찾던 도중,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현수…?’
방금 전까지 상상속에서 몇 번이고 자신에게 살해당한 현수가 효주의 집으로 올라오는 것에 한석은 당혹스러움을 넘어서 오히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상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석은 최대한 빠른 몸놀림으로 효주의 옷장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
“뭐야? 그렇게 하고 싶어?”
“응...”
막연하게 상상했던, 하지만 매번 부정했던 광경이 오디오로 들려왔다.
“그럼 오늘은 같이 샤워해볼래?”
한석은 치가 떨렸다.
그렇게 사랑했던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모습을 상상하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이런 씨발년들이….’
한석은 조심스럽게 옷장 밖으로 나가서 화장실 앞까지 다가갔다.
화장실 앞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들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효주가 남자 몸을 씻겨준다고?’
‘...저런 데에서 펠라치오를 해준다고?’
‘...효주가 이런 애라고?’
배신감.
분노.
증오.
경멸.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한석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석은 화장실 문을 열고 두 사람에게 분노를 토해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두 사람이 샤워를 끝낸 기색이 보이자, 반대로 도망치듯 다시 옷장으로 숨어야만 했다.
한석은 옷장에서 나갈까 고민도 해봤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을 덮쳐서 빼도박도 못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다시금 움츠렸다.
옷장이라는 공간은 잔인했다.
정면이 침대여서 두 사람의 행위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보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침대에 오자마자 현수가 펠라치오를 요구하는 것과.
‘...효주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는 게 느껴지는 효주의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창피하다고 잘 해주지도 않는 뒷치기 자세로 구멍을 쑤셔지는 효주였다.
그리고 한석은 그 순간 처음으로 효주가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간 직후 현수를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효주의 눈까지도.
한석의 마음 속에는 분노의 옆에 또다른 감정이 피어났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이내 침대에 누워 헉헉대는 두 사람을 한석은 옷장 문의 틈새로 계속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한석은 도저히 옷장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한석은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씨발. 이게 뭐야.’
분명 화가 머리 끝까지 나야 정상일텐데, 지금 자신의 가슴속에서는 묘한 흥분이 차오르고 있었다.
‘씨발…. 진짜 뭐냐고...’
며칠 전 효주와 할 때는 제발 서달라고 빌어도 서지 않던 자지가 지금은 쿠퍼액으로 팬티가 젖어가는게 느껴질 정도로 빳빳하게 서서 자신을 만져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남자가 봐도 멋있는 몸매의 현수에게 깔려 교성을 지르는, 한석으로써는 처음보는 그녀의 즐거워보이는 표정에 충격을 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효주의 표정이 한석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한석은 좁은 옷장 안에서 바지춤으로 손을 집어넣어 자위를 시작했다.
* * * *
“한석아, 난 다 알고 있어. 네가 효주집에 들어와서 우리가 올라오니까 당황해서 옷장에 숨었고,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도.”
한석은 하늘이 무너진 것마냥 충격받은 얼굴로 수치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뒤처리를 잘했어야지. 근데 한석아, 내가 널 몰아세우려고 하는게 아니야. 네가 죽자고 달려들면 나도 입는 손해가 만만찮고. 우리 이제부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