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087화 (87/112)



〈 87화 〉087화

몇 마디로 연희를 구워삶은 현수는 오랜만에 하는 소개팅에 설레임이 올라왔다.

‘기대되네.’

현수는 멀리가지 못한 채 그를 지켜보고 있던 종우에게 다가갔다.

종우는 현수가 자신에게 똑바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 있었지만, 현수의 웃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덜었는지 도망가지는 않았다.

“종우야, 네 말만 하고 가면 어떡해. 내일 8시까지 가면 되지?”

현수의 말에 종우는 크게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진짜 오는거지?”

“그래. 가서만약에 네가 맘에 드는 애가 있으면 골라서 신호 줘. 내가  닿는데까지 도와줄게.”

“그, 그렇게까지 해준다고?”

종우의 눈이 한껏 커지며 입이 벌어졌다.

“그럼, 동기잖아.”

그는 마치 천사를 목격한 듯 현수를 성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저,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맙다. 아무튼 내일은 내가 다 살테니까 꼭 나와줘!”

종우는 너무 신이 났는지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며 사라졌다.

‘하여간 저 자식은 돈 없는거 내가 다 아는데 또 허세부리고 자빠졌네. 하여간 아가리파이터새끼….’

현수는 왠지 모를 아련한 눈빛으로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

“언니, 혹시 과팅할 사람 없어요?”

세희여대 모델과 2학년으로 재학중인 혜정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응? 갑자기?”

혜정이 평소 예쁘게 보던 후배들이 과팅을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네, 이제 입학한지 시간도 좀 지났고, 대학교 오면 과팅 이런거 해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기회가 없네요.”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후배들을 보자 혜정은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긴한데.’

“음…. 한국대 의대 다니는 친구가 한 명 있긴 한데,  번 물어볼까?”

“한국대 의대요? 너무 좋은데요?”

“저, 저도요! 세 명 데리고 오라고 하셔야되요.”

시무룩해하던 그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알겠어. 한 물어는 볼게. 근데 너무 기대는 하지마.”

“싫어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언니!”

“소연아…. 하…. 알겠어. 노력해볼게.”

혜정은 저렇게 발랄한 그녀들이 시무룩해있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하필 그 녀석이 떠올라서는.’

그녀에게 소연이 과팅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문득 떠오른 모쏠찐따같은 친구.

혜정은 휴대폰을 꺼내 그 친구의 번호를 눌렸다.

[박종우]

“이게 맞나…?”

혜정은 다시 생각해봐도  친구를 부르는 게 맞는지 후회가 되었다.

“하….”

그러나 이미 한국대 의대를 다니는 친구를 부르겠다고 말을 꺼냈기에 혜정은 어쩔 없이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맨날 공부만쳐하다가 어찌저찌 의대까지 들어갔는데, 그래도 이번 생에 여자랑  정도는 한 번 섞어 봐야지.’

혜정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가 솔로인 친구가 불쌍하게 느껴져서 이번 한 번쯤은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야, 박종우.”

-왜.

“너 과팅할 생각 있냐?”

-뭐? 과팅? 누구랑?

“우리 과. 후배 2명.”

시큰둥하던 종우의 반응은 혜정이 다니던 모델과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목소리 톤부터 달라졌다.

-모델과!?

“반응봐라? 근데 나도 낄거야.”

-아 씨, 뭐야? 내가 너랑? 미쳤어?

“이런 씨, 하…. 사진 보여줄테니까 3초안에 사과해라.”

혜정은 종우에게 사진 3장을 첨부해 보내줬고, 그 직후 요상한 소리와 함께 귀가 아프도록 그가 소리를 질렀다.

-잘못했습니다!!

“그래, 너 근데 세 명 맞춰 올 자신있어?”

-당연히 있지!! 나만 믿어 무조건 데리고 갈게!

“너 도환인가 뭔가 걔 말고 친구 없잖아.”

혜정의 뼈를 때리는말에 종우가 잠깐 할말을 잃었다.

-뭐, 뭔 소리야! 도환이 데리고 갈  맞는데, 가자면  애들 수두룩 하거든?

“지랄. 모델과라고 하면 가기야 가겠지. 근데 너 안친한 애랑 같이  자신은 있고?”

혜정은 같잖다는 말투로 또다시 종우의 뼈를 후려갈겼다.

- ….

“야, 그리고 도환이 걔는 좀 그런데….”

끼리끼리 만난다고, 종우와 도환이라는 친구는 비슷한 면이 꽤나 많았다.

-왜내 친구까지 건드려. 도환이가 얼마나 착한데. 그리고  꾸미면 좀 괜찮은 애거든?

혜정은 다시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냥 다시가서 다른 친구한테 물어본다고 할까….’

“하…. 그래.  괜찮겠다.”

-혜정아, 우리 그래도 인연이 있잖아. 이렇게 말만 꺼내고 안해줄건 아니지?

종우의 안쓰럽기까지  목소리에 혜정은 연민이 올라왔다.

‘그래. 애들이 실망해도 다른 애로 해주면 되잖아? 그리고 만약에 한 명 못데리고 오면 그 핑계로 다시는 안해주면 될거야.’

“해줄게, 대신에 무조건 세  맞춰와야 된다? 한 명은 누구 데리고 올 생각인데?”

-만약에….  명 안되면?

“당연히 없었던 일이지.”

-그, 그건 걱정하지마. 우리 과 애들이랑 다 친해서 내가 제일 괜찮은 애로 데리고 갈게.

“참나, 너네 과에 괜찮은 애가 어딨다고.”

혜정은 종우의 허세에 피식 웃으며 넘어가려다가 문득 익명의 대학교 커뮤니티 어플인 올타임에서 봤던 한국대 의대 유명 신입생이 떠올랐다.

“야, 그럼 너네 과에 김현수? 그 엄청 잘 생겼다는 애 데리고 올 수 있어?”

-김현수? 네가 걔를 대체 어떻게 아는거야?

“몰랐어? 걔 올타임에서 엄청 유명한데. 잘생긴 걸로. 그래서 데리고 올 수 있냐고.”

혜정은 당연히 종우가 못 데리고 올 줄 알고 질문한것이었다.

‘또 허세 부린다고 데리고 올 수 있다고 하겠지.’

종우는 어렸을 때부터 허세가 심한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고,  녀석을 볼 때마다 느껴왔던 생각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얘는 진짜로 그냥 평생 혼자 살 팔자같다.’

아직까지도 우물쭈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종우를 보자 정신이  혜정은 그냥 없던 일로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그냥 없던….”

-야! 나 못 믿어? 나 진짜 걔랑 친해. 무조건 데리고 갈 수 있어.

그러나 종우는 머리가 돌아버린 것인지 과팅을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였는지, 혜정의 말을 끊으며 호언장담을 하고서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발끈까지 하는거야. 진짜 친한가?’

혜정은 너무 발끈해오는 종우를 보고 긴가민가한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인데, 그렇게까지 멍청한 애는 아닌데….’

“진짜로? 진심으로 같이 놀러다닐 정도로 친해?”

-아, 진짜라니까? 데리고 가지마?  애로 데리고 가?

현수가 온다는 말에 혜정은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아쉬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김현수. 걔로 무조건 데리고 와. 그럼 모레 우리 맨날 가는 주점에서 7시에 콜?”

-그래. 진작에 이랬어야지. 기대하고 있어라.

헤정은 너무 당당해 보이는 종우를 보며 께름칙한 기분과 함께 기대감이 올라왔다.

지금 전화를 받고있는 종우의 등짝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 * * *

다음날, 골목주점 앞.

“언니, 진짜 그 사람 온데요? 그렇게 잘생겼다고 소문이파다하던데.”

혜정은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소연이 부담스러웠다.

‘나도 지금 긴가민가하단 말이야.’

“너무…. 믿지는 마. 그냥 소문일 뿐이잖아.”

혜정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지금 오시는 분들은 어때요?”

‘그건 더 걱정인데….’

혜정은 현수가 오는 것보다 종우와 도환을 소개시켜주는 것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갑자기 미안해지네. 그래도 얘네들도 솔직히 의대가려고 평생 공부만 하던 애들인데 크게 기대는 안하고 있겠지?’

혜정은 혹시나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까봐 그녀들에게 밑밥을 깔았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마. 그냥 뭐 거기 과 안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야. 맨날 공부만하면서 꾸밀줄도 모르던 애들인데 그냥 이번 기회에  번 경험해본다는 생각으로 가자.”

그녀들은 혜정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체념 섞인 말투로 말했다.

“하긴, 의대 다니는데 잘생기기까지 한 사람이 만나기 쉽겠어요.”

“맞아요. 우리 너무 기대는안할게요. 그냥 과팅 경험한다 생각하고 술 마시고 놀다 오죠 뭐.”

혜정은 푸념섞인 후배들의 말을 듣자 종우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기회는 줬다. 꼬시는  네 능력이니까 알아서 해라….’

그녀들은 대화를 마치고 주점 안으로 들어섰을 때, 종우는 이미 가게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혜정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이럴 줄 알았어.’

그녀는 종우에게 빠르게 다가가 쏘아댔다.

“야, 뭐야? 왜 너네 둘 뿐이야?”

혜정은 종우가 곧장 빌빌대며 머리를 숙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종우는 태연하고 덤덤한 태도로 그녀에게말했다.

“아, 조금 늦는데. 걱정하지마.”

태연자약한 종우의 태도에 혜정은 의심이 강하게 들었지만, 여기서 더 강하게 쏘아붙이기 애매했다.

‘이 자식 진짜 구라치는거 아니야?’

“너 진짜 안오면 가만  둔다?”

종우에게 경고성 멘트를 날려 준 뒤, 혜정은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말했다.

“소연아, 주영아. 한 명은 좀 이따가 온데.”

“아, 진짜요?”

소연과 주영 또한 의심스러운 눈을 하며 종우를 바라봤지만 종우는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어보였다.

“이, 일단 여기 앉으세요.”

헤벌레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벌써부터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는 박종우라고 합니다.”

“기, 김, 도, 환이에요….”

평소에 까불던 종우가 상당히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지만, 옆에 있던 도환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혜정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일단 그들에게 소연과 주영을 소개시켜줬다.

“얘네는 내 일 년 후배 정소연이랑 박주영이야.”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소연과 주영의 표정에는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어 보였다.

종우와 도환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될까 눈알만 굴려대고 있었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야, 일단 안주랑 술부터 시켜.”

“어, 어? 그, 그러자.”

혜정의 말에 약간 정신을 차린 종우가 후배들에게 말했다.

“드시고 싶으신거 있어요?”

“저희는 아무거나요.”

“아하하…. 아무거나 좋죠. 그, 그럼 혜정아?”

종우는 어떤 안주를 시켜야할지 판단 내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멘탈이 흔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저 병신….’

여기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울 수 있어보이는 건 자신 뿐이라고 생각한 혜정은 괜찮아보이는 안주를 시키고 소주를 처음부터 세 병을 시켰다.

술이 들어가면 어느정도 어색함이 사라질까 하는 혜정의 의도를 알아차린 종우는 안주가 다 나오기도 전에 벌써 소주를 까서  잔, 두잔 입에 털어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빨리 마셔도 되요?”

“아,  술 잘마셔서 미리 이정도는 마셔둬야 될거에요.”

긴장한 상태에서도 허세는 지울 수 없었던 걸까.

종우는 되지도 않는 술부심을 부리며 더욱 빠르게 도환과 함께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