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098화
‘너무 쓰레기인가?’
연희와 같이 데이트를하는 와중에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현수는 잠시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고 자위하며 자괴감을 지웠다.
현수는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생각했다.
‘평생을 얘한테 내 행적을 숨기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거고…. 내가 바뀔 수는 없으니까….’
“왜?”
“그냥. 예뻐서.”
자신을 향해 활짝 웃음꽃을 피우는 그녀를 보면서 현수는 마주 미소를 지어주었다.
‘네가 좀 바뀌어야겠다, 연희야.’
“오늘 뭐 할거야, 근데?”
연희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오늘 꽃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어때?”
“꽃?”
연희는 기쁨의 리액션을 취하며 현수를 껴안았다.
그녀의 표정은 누가봐도 기뻐 보였지만, 현수는 언뜻 아쉬움이 슬쩍 스쳐지나 가는 것이 눈에 띄였다.
‘설마 또 피시방 갈 생각하고 있었나?’
현수는 자신이 괴물을 만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좋아?”
“응! 좋아! 근데…. 그럼 저녁에는 뭐 할거야?”
여전히 기대감을 품고 있는 그녀의 모습.
‘이미 괴물이 되었구나….’
게임에푹 빠져버린 연희를 보며 자신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약간의죄책감이 느껴졌다.
“저녁에?”
“응!”
‘저녁에는 소연이 만나야 되는데?’
현수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 저녁에 약속이 있다며 이 분위기에 초를 치고싶지는 않았기에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저녁에는 밥 먹고 피시방 어때?”
“피, 피시방!? 너무 좋아!”
원하는 말이 튀어 나오자 연희가 기뻐서 다시금 현수를 꽈악 껴안으며 안겨들었다.
‘진짜 미치겠네…. 괜히 같이 갔나?’
현수도 게임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여자가 좋았다.
현수 뿐만 아니라 게임을 취미로 즐기고있는 한국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여자를 선호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보다 게임 잘하면 자괴감이 든다고….’
그렇지만 남자의 자존심 상 여자가 자신보다 게임에 재능도 뛰어나고실력도 뛰어나다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었다.
‘어쨌든 오늘은안 할거니까.’
현수와 연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서울 근교의 공원으로 향했다.
현수는 문득 든 궁금증에 연희에게 물었다.
“연희야, 근데 너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거 안 불편해?”
연희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말했다.
“응. 난 개인적으로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이렇게 지하철이랑 버스 타는 게 좋더라.”
“왜?”
이런 부잣집 딸래미가 불편한 대중교통을 선호한다는 소리가 현수는 너무 신기했다.
“평소에 매번 같은 풍경에 같은 기사아저씨만 보다 보니까 이렇게 다른 풍경으로 많은 사람들 구경하는게 좋더라고.”
‘낭만적이긴 한데, 기사 아저씨라니, 세상에나.’
현수는 그녀의 말이 어느정도 공감은 되면서도 새삼 그녀가 기사까지 딸려 있는 집안이라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다.
“다 왔다!”
어느덧 그들은 벌써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연희는 신이 난 강아지처럼 공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현수를 끌고 다녔다.
“어때? 매번 피시방 가는 것보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더 좋지?”
연희는 자리에 멈춰서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또 고민까지 할 일이야?’
“가끔 오면 좋긴한데, 그래도 난 피시방가는게 제일 재밌는 것 같아.”
현수는 그녀의 게임을 향한 강한 욕망에 혀를 내둘렀다.
‘진짜 대단하긴 하네.’
연희는 아마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게이머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참, 나 사진 좀 찍어줘.”
연희는 들고 온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어 현수에게 내밀었다.
꽤 비싸 보이는 카메라였지만, 카메라에는 관심이 없던 현수는 그것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근데 오빠는 같이 안 찍을 거야?”
“응. 나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알겠어….”
연희는 같이 사진을 안 찍는다는 소리에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나오는 소리로 대답을 했다.
사실은 현수도 지금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지만, 남겨서는 안되는 그의 입장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다.
‘찍기라도 열심히 해줘야겠네.’
현수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연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댔다.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어떻게 눌려도 예쁘게 나오는 연희의 모습.
‘진짜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분위기가 박살이 나는구나….’
사진에서도 담기는 연희 특유의 분위기에 현수는 감탄사를 남발했다.
“진짜 예뻐, 연희야.”
“아, 뭐래! 민망하게 갑자기 그런 말을….”
연희는 기분 좋은 현수의 말에 활짝 웃었고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넓은 공원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시간 진짜 빠르네. 벌써 해 진다.”
“그러게…. 아쉬워.”
내내 피시방을 가기만을 고대하던 연희였지만, 지금 당장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일단 이제 밥 먹으러 갈까?”
“응응! 우리 이제 밥 먹고 피시방 가는 거야?”
연희는 아쉬움은 어디로 갔는지 밥 먹자는 소리에 금세 텐션이 다시 올라왔다.
현수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과 설레이는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진짜 무섭다, 무서워.’
이곳까지는 맛집을 알지 못했던 현수는 서칭을 통해 분위기있는맛집을 향했다.
‘저기 있네.’
그리고 그곳을 향하는 도중 현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연희야, 가게 저 앞이거든? 먼저 들어가 있을래? 나 잠깐만 통화 좀 하고 들어가야 될 것 같아.”
“응, 알겠어. 빨리 와.”
연희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먼저 가게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본 현수는 곧장 아까 봐 두었던 곳을 향해 갔다.
* * * *
“헐, 이게 뭐야?”
“꽃이잖아.”
연희가 기다리고 있던 가게에 섰을 때, 현수의 손에는 꽃이 들려있었다.
“오빠….”
갑자기 대뜸 내미는 꽃에 연희는 감동 먹은 표정을 지었다.
‘암만 있는 집안이라도 이런 선물은 못 참지.’
현수가 만났던 여자 중에서는 꽃을 싫어했던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갑자기 이걸 사 올 생각을 했어?”
연희의 말에 현수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통화하면서 걸어 오다가 주운건데.”
푸흡.
연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오빠 진짜 웃긴다. 아무튼 고마워….”
그리곤 연희는 꽃을 옆자리 의자에 두었다.
‘이제 슬 가야될 텐데.’
식사가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 현수는 소연이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내두었다.
그리곤 식사를 마무리하고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은이모]
하지만 현수는 소연을 작은 이모라고 저장해 두었고, 그녀에게서 전화오는 화면을 연희도 볼 수 있게 이미 테이블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었다.
-여보세요? 오빠 무슨 일이에요?
“네, 이모. 무슨 일이에요?”
갑작스러운 이모라는 말에 소연이 뇌정지가 왔는지 몇 초간 정적이이어졌다.
마침 타이밍이좋게 현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무거운 이야기를 듣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 네. 지금요?”
-네? 아니, 무슨 설명이라도 좀….
“아…. 지금 친구랑 같이 있어요.”
-친구요?
눈치가 아무리 없는 소연이라도 이쯤 되자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알아챘다.
“네. 어쩔수 없죠. 그럼 지금 가볼게요.”
-참나, 친구 만나고 있나보네. 좀 이따가 보기는 하는거에요?
“네, 그럼요. 친구도 다 이해해 줄거에요.”
수화기 너머로 소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웃긴다. 알겠어요. 이따가 봐요.
그리곤 전화기를 끊었다.
현수는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기는 화면까지도 연희에게 노출시키며 마무리지었다.
“뭐야? 무슨 일 생겼어?”
연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응…. 어쩌지?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현수는 방전된 체력을 회복하는 기간동안 연희에게 가족사정이라고 매번 말을 해왔었기 때문에 말해주기가 곤란하다고 해왔었다.
그리고 [작은 이모]라는 발신자명을 이미 봐서 그런지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벌써부터 짓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갑자기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연희야, 대신 내가 다음에는 피시방 밤샘도 같이 해줄게.”
연희는 어쩔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서운함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어보였다.
하지만 현수의 말에 조금이나마 표정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진짜 같이 해줘야 한다? 약속해.”
그녀는 새끼손가락을 내밀고서는 흔들었다.
‘진짜 귀엽네.’
그 모습도 귀엽게 느껴진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새끼손가락을 마주 꼬았다.
“정말 꼭 해줄게. 내일이나 모레 어때?”
“응! 알겠어. 꼭 해야한다? 바로 갈거야?”
“응. 미안해. 택시타고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카드를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연희 몰래 아까 선물해 주었던 꽃을 챙기며 돌아섰다.
그리곤 계산을 하고 연희와 인사를 건네고 택시에 타는 것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래서 연희는 꽃을 현수가 챙겨갔는지 인지도 하지 못한채 택시를 잡았고, 꽃을 두고왔다는 것을 알아채고 다시 가게로 돌아 왔을 때는 이미 꽃은 사라지고 없었다.
* * * *
소연의 마음은 복잡했다.
‘아까 전화는 대체 뭐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께름칙함을 느꼈다.
‘별일 아니겠지…?’
“하…. 사랑 참 어렵네.”
그녀는 현수가 한 몇 번의 밀당으로 인해 마음이 뒤흔들려 있었다.
그가 의도한 대로 완전히 현수에게 빠져버렸고, 고작 며칠이지만 현수의 하나하나에 마음이 움직였다.
현수와의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마저도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시간이 왜 이렇게 안가는 거야!”
그가 너무 보고싶었다.
부드럽게 잡혀오는 손길과 달콤했던 첫키스.
고작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연의 볼이 빨갛게 익어갔다.
‘내가 남자한테 이렇게 빠질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학창시절만 해도 그녀에게 다가온 남자만 한 트럭은 되었다.
심지어 지금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면 연락이 잔뜩 쌓여있었고.
지난 번, 현수와 연락을 하면서 그녀가 씹은 카톡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상처가 되었을지 생각하며 한 번에 답장을 다 해줬었다.
‘못할짓이라서 금세 관뒀지만.’
관심을 건네자 연락을 몇 배로 늘어나서 감당이 안되었고, 어쩔수 없이 다시 연락을 씹기 시작했다.
‘혹시 오빠한테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
소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현수를 만나기 위해 약속 시간이 30분이 넘게 남았는데도 약속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