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104화
그 모습을 본 현수는 일부러 놀래키듯이 그녀를 껴안으려고 했다.
현수의 의도대로 소연은 갑자기 들어오는 스킨십에 기겁을 하며 뒤로 빠졌다.
현수는 지금까지 지었던 은근한 서운한 표정에서 완전히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건드려서 놀랐어.”
“그래, 미안해.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네.”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분위기에 소연은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소연은 민망한 마음에 현수의 팔을 베게 삼아 껴안긴 뒤에 같이 휴대폰을 보며 계속해서 눈치를 봤다.
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웃으면 안된다. 현수야.’
하지만 속으로는 약간만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결국 무표정한 표정이 어느정도 미소를 짓는 정도가 되었고, 소연은 그 모습에 현수가 다 풀린 줄 착각했다.
현수도 갑자기 오르는 그녀의 심장박동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 와중에도 내가 자기를 건드릴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순수하다고 해야할지 응큼하다고 해야할지 소연은 정말 모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지금 당장 따먹고 싶긴 한데….’
현수는 애초에 오늘 그녀와 잠자리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재밌는 재료를 가지고 좀 더 맛있게 요리해서 먹고 싶었다.
처녀 주제에 오히려 자기 처음을 나한테 바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
현수는 그 모습이 보고 싶었다.
소연은 아무래도 자신을 건드릴 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현수는 끝까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실 시간이 다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소나기는 이미 그쳐서 소연이 말했던 화창한 날씨로 변해있었다.
“소연아,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이만 집에들어갈까?”
하지만 현수는 그 날씨를 보고도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소연에게 말했다.
집에 들어가려고하는 현수를 보면서 소연은 초조한 모습을 보이며 대답했다.
“마, 많이…. 피곤해? 날씨 되게 좋은데 조금만 더 이따가 갈래? 아니면 다른 방 잡아서 안에 들어가 있을까?”
어떻게든 현수를 붙잡아 보려는 심상으로 말을 내뱉는 소연을 보면서 현수가 차갑게 말했다.
“아니, 갑자기 몸 상태가 영 별로네. 미안해, 오늘은 먼저 들어가 볼게.”
현수는 팔짱을 끼고 있는 소연을 뿌리치고 집으로 향했다.
소연은 망연자실한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거지?’
그녀는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 . .
처음 현수가 이곳에 데리고 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매우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런 곳에 나를 데리고 와?’
대실을 하자는 말에 많이 겁이 났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켜주려고 하던 현수였다.
그리고 얼마전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에 소연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장소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기에 기대감을 품고이곳으로 왔다.
내심 그래서 소연은 호텔을 기대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렇게 호언장담을 한 약속을 지키려면 자연스럽게 호텔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여기는 정말….’
하지만 너무나도 허름해 보이는 모텔의 외관에 현수에게실망하는감정이 무심코 올라왔다.
“여, 여기야?”
“응. 여기가 가격이 좀 괜찮더라고.”
현수는 말을 하다가 자신의 표정을 보았는지 갑자기 굳은 얼굴을 했다.
‘아, 내가 너무 싫은 티를 냈나?’
소연이 혹시나 드러난 자신의 표정을 보고 현수가 실망 했을까봐 당황했다.
미안함이 올라온 그녀는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래도 내부는 나름 괜찮을거야.’
그러나 내부에 들어섰을 때, 외관보다는 깔끔한 느낌이 들었지만 소연은 이 좁은, 누군가가 숱하게 섹스하러 오는 이곳이 자신의첫 경험의 장소라고 생각하자 굉장히 심란해졋다.
‘여기서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
그녀의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이 되며 의욕이 사라졌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나 그냥 안 먹어도 될까?”
도무지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소연은 고민도 하지 않고 현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또다시 현수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 알겠어. 입맛이 별로 없나 보네.”
‘내가 또 너무 티를 내버렸어!’
우울한기분를또 현수에게 티내버린 상황에 소연의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래. 고작 2~3시간 있을건데 내가 너무 예민했어. 지금이라도 오빠랑 있는 시간을 즐기자.’
이번에는 마인드컨트롤이 잘 되었는지, 현수의 옆에 누워 휴대폰을 보면서 모텔의 허름함에 대한 실망감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소연의 마음속은 묘한 기대감과 두려움만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 정말 하는 거야? 여기서? 진짜로?’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느라 휴대폰으로 틀어둔 것이 동영상인지 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있었다.
“깍!”
그때, 갑자기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심지어 깜짝 놀라면서도 너무 놀라버린 자신에게 또 한 번 놀랐다.
그때 굉장히 어이없어하는 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큰일 났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현수는 지금 그의 손길을 자신이 격렬하게 거부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현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소연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연은 본능을 따라 현수에게 최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도 했고, 그의 품에 안기며 나름의 애교도 부리기도 했다.
‘하…. 다행이다.’
자신의 노력이 통했을까, 현수가 미약하게나마 미소를 지어주는 게 보였다.
‘이제 풀렸으니까 정말로 하는 건가?’
다시 고개를 들추고 올라오는 기대감.
하지만 대실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현수는 자신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현수는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두고 집으로 떠나버렸고, 소연은 벌써 마음 속 깊히 들어온 그를 놓칠까봐 엄청난 초조함이 밀려왔다.
. . .
“하아….”
소연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소연아, 무슨 고민 있어?”
그때, 걱정스러운 표정의 혜정이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 언니 왔어요? 하아….”
이제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오며 혜정의 표정을 더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왜, 뭔데? 무슨 일이길래 이러고 있어?”
‘말해도 될까…?’
지금 상황이 아주 안 좋지만 소연은 혜정에게 현수를 만난다는 사실을 밝힐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연은 너무 답답한 마음에 누군가에게는 지금 상황을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니, 제 이야기는 아니고 친구 이야긴데요.”
소연은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냥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혜정은 소연의 말을 듣자마자 피식 하고 웃는 것이 아닌가.
‘응?’
“뭐예요? 왜 웃어요? 나 심각한데.”
“아, 아니야. 미안해, 계속 말해.”
자신은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인데웃음을 터트리는 것에 약간 기분이 상했다.
“아무튼 제 친구가 남자친구랑 처음으로 모텔을 갔데요.”
“응.”
“근데 그 친구가 첫 경험이었거든요.”
“아 그럼 되게 긴장했겠네.”
“아... 네. 그런데 그 친구 남자친구가 무조건 첫 경험은 좋은 곳에서 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모텔을 데려갔다?”
“네... 그것도 분위기 잡은 것도 아니고 갑작스럽게요.”
“음…. 응. 뭐 그럼 여자 입장에선 되게 서운할 만 하지.”
“네, 그래서 당황한거 숨기고 방 안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결국 자기가 첫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우울하더래요.”
“응. 지금까지는 뭐 남녀 입장은 다 이해가 가네.”
“...남자 입장이 이해가 가신다구요?”
“그 남자랑 네 친구, 나이차이가 많아?”
“...아뇨 한두 살 차이?”
“그 오빠라는 사람도 어리네. 그럼 자기가 해주고 싶은 마음은 커도, 그걸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한창 서툴 수 밖에 없는 나이잖아.”
혜정의 말에 소연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떡해.’
혜정이 그렇게 말하자 소연은 현수가왜 서운해 했는지 확 와닿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직 소연의 가장 큰 실수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녀가 현수의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머뭇거리는 소연을 보며 혜정이 피식 웃더니 말을 꺼냈다.
“말 하는 거 보면, 텔 안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을 거 같은데?”
족집게처럼 완벽하게 꿰뚫는 혜정을 보며 소연은 속이 뜨끔했다.
소연은 이걸 말해도 되나 싶었다. 흑역사라는 것이 인지가 된탓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고민 끝에 소연은 혜정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언니라면 이 상황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정확하게 파악해줄 수 있을거야.’
결심이 선 소연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제일 문제는 남자친구가 친구 몸에 손을 댔는데...”
“응.”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데요.”
소연의 말에 혜정은 안타까운 듯헛웃음을 지었다.
“아…. 왜 그랬데?”
“모르겠어요. 너무 놀라서 그랬데요.”
“그건 남자친구가 좀 많이 서운하겠는데? 뭐 남자친구도 잘한 건 없지만.”
소연에게 뒷말은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오롯이 앞의 ‘남자친구가 많이 서운하겠는데?’에 꽂혔다.
“그, 그렇겠죠?아무튼 그러고나서 대실 시간이 끝나자마자 남자친구는 바로 집에 가버렸데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되고 있데?”
“...연락에서 조금 찬 바람이 부는 느낌이래요.”
“일 났네.”
“...많이 안좋은 걸까요? 친한 애라서 어제 하루종일통화하는데 되게 불안해하고 그래서 너무걱정돼요. 그런데 제가 해줄 수 있는 상담은 딱히 없어서...”
소연은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인 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뒷말을 붙였다.
혜정은 슬쩍 그것을 모르는 척 넘어가주며 상담을 이어가줬다.
“음. 그 남자를 옹호하려고 말하는 건 아니고, 그 남자도 네 친구한테 말한 걸 못 지킨거라서 잘한 거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네 친구도 남자를 몰라서 같이 실수를 해버린 거 같은데?”
“...심한 실수일까요?”
“남자는 자존심 건드리면 안되거든. 그런데 자존심을 건드려버린 거 같아.”
“음... 친구한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 이럴 땐 냉정하게 인지해야 할 게 있어.”
“...뭔데요?”
“그 남자. 네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면 먼저 기분 풀고 다시 연락해올 스타일이야? 음, 속된 말로 네 친구랑 냉랭해지는 걸 못 견디고 매달릴 거 같냐 이거지.”
혜정의 질문을 받은 순간 소연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철렁했다.
“...아뇨. 대화 들은 바로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아요.”
“네 친구는 어제 너한테그렇게까지 속상해 했던 거면, 이대로 그 남자랑 흐지부지 되는 건 싫은 거 아냐?”
‘흐지부지된다고?’
그 표현에 소연은 불안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그동안의 현수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소연은 새삼스레 현수가 언제 자신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성격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떡하지...’
소연은 초조함이 심하게 올라왔다.
“...네.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