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106화 (106/112)



〈 106화 〉106화

소연은 현수가 보낸 ‘나 과제하고 있었는데...?’의 끝에 붙어있는 말줄임표를 보고 있자 울고 싶어졌다.

‘내가 저렇게까지 오버를 했으면, 원래대로면 톡이 더 길게 와야 하는 거 아냐? ...오빠 너무 당황해서 뭐라 말을 못하고 있는 건가?’

현수에게 빠질대로빠져버린 소연은 말 줄임표가 당혹감의 표현이 아닐까 걱정을  정도로 짝사랑 특유의 넘겨짚기를 심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웅.

스마트폰이 또다시 진동했다.

소연은 혹여 현수에게  다음 톡인가 싶어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표정은 허탈함으로 변해버렸다.

[고마웠어 소연아.  너 정말 많이 좋아했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약간의 친분이 있던 남자였다.

대학교에 올라온 이후에도 우연찮게 연락이 닿아서 다른 동창들과 함께 두어 번 만난  전부였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그녀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구애를 해왔다.

당연하게도 소연은 칼같이 선을 그었다. 연애 감정이 눈곱만큼도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소연이 현수를 좋아하게  이후엔 훨씬 심해졌다.

“하아...”

소연은 그저  마디 주고받고, 톡 몇 번 대답해준 게 전부인 남자가 이렇게 나오니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 순간, 소연은 문득 불편한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얘랑 다를 게 뭐지...?’

소연은 순간적으로 민망함이 치고 올라왔다.

그녀는 결국 또다시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서  남자를 차단한  스마트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 . .

‘답장 안 오네.’

현수는 소연이 지금쯤이면 이불을 분명히 찢어놓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아직 조금 더 애를 태워야겠지...?’

굳이 지금 연락을 다시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현수는 스마트폰을 던져둔 채 책상에서 과제를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 내내 쌓여있던 모든 과제들을 깔끔하게 처리 했을 즈음,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 되어 있었다.

현수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소연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서 잠들었다.

. . .

팡! 팡!

이틀 연속으로 밤을 샌 소연은 여전히 이불을 두드려 패고 있었다.

‘진짜 미쳤어! 미쳤어!“

한참을 이불을 두드리던 그녀가 이어서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지...“

어제의 패기는 현수의 답장을 받는 순간, 정확하게는 흑역사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증발했다.

그녀는 현수에게 이어서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끝났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소연은 연락을 하기가 무서웠다.

현수에게서 추가적인 연락이  법도 한데 전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소연은 현수가 굉장히 당황스럽고, 그로 인해 자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식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

’진짜 많이 좋아했는데...‘

고작 몇 번 본 게 전부인데 현수에 대한 애틋함은 엄청났다.

소연은 친구들이 오랜 시간 만난 연인과 헤어졌을 때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갔다.

소연은 갑자기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졌다.

’사과하고 원래대로 돌릴 기회를 한 번은 줘야 하잖아...‘

그렇게 소연은 우울감에 젖어서 침대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이틀이나 밤을  탓인지 몸은 어느새 졸음을 몰고 왔다.

소연이 그렇게 얕은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우웅.

휴대폰이 진동을 했다.

소연은그것에 잠이 어렴풋이 깨어났다.

처음에는 진동 때문에  줄 몰랐기에 소연은 희미하게 돌아오는 의식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우웅. 우웅.

소연은 자신의 스마트폰이 계속해서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화가 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잠이 일순간에 달아난 소연은 화들짝 놀란  스마트폰을 쥐었다.

’헐!‘

[현수오빠]

스마트폰 속 현수의 이름을 보자 소연은 안절부절 못한 표정이 되었다.

’와, 왔어...‘

소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소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현수가 냉랭한 목소리를 보이면 어쩌나 불안감이 치솟았다.

-뭐해?

그런데 현수의 첫 마디에 담긴 톤은 소연의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던 현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소연은 오히려 더욱 당황해버렸다.

”아, 저... 그러니까...“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어제 연락은 네가 씹어놓고.

”...네?“

소연은 그제서야 지금 상황이 자신이 현수가 보낸 마지막 톡에 답장을 하지 않은 꼴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어떡해!‘

그리고 소연이 현수의 목소리를 듣기에 그는 그것에 서운해 하는 듯 했다.

’그냥 혼자 생쑈를 한 거야...?‘

여지껏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후회, 그것들이  헛발질이라는 것을 깨닫자 소연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현수의 조금 더 서운함이 짙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래서 왜 씹은건데?

소연은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느껴지자 더 이상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을  없었다.

”아, 아니에요! 진짜 일부러 그런  아니라...!“

-왜. 무슨  있어?

”그러니까 그게...“

소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이 침묵이 길어질수록 통화 분위기가 점점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소연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됐어. 나중에 연락하자.

”아...!“

소연이 다급하게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현수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연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나 또 헛발질 한 거야...?‘

현수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소연은 미칠 것만 같았다.

이제야 소연은 어제까지 스스로가 착각했던 것을 깨달은 순간이 그녀가 제대로 사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오해할 여지가 없이 현수가 기분이 상해있었다.

자신의 실수로 상황이 한도 끝도 없이 악화되어가자 소연은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소연은 스마트폰을 붙잡았다.

’지금이라도... 늦으면 안돼.‘

. . .

위잉. 위이잉.

거의 1분간 울리던 전화기가 조용해지며 화면이 떠올랐다.

부재중 5통.

그 밑으로는 여러 통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오빠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게 아니였어요.]

[오빠 전화 한 통만 받아주시면 안돼요?]

….

주말동안 소연이 현수에게 보낸 연락들의 일부였다.

‘이것도 생각보다 재밌네. 어장관리를 괜히 하는게 아니구나.’

현수는 주말 내내 소연에게서 연락이올 때마다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또  통의 연락이 도착했다.

[오빠…. 내일학교로 찾아갈 테니까 제발 저 아는 척  해주세요.]

이번 메시지는 벼랑 끝에 몰린 듯한 소연의 간절함이 보였다.

‘음…. 학교까지 찾아오는 건 곤란한데.’

혹여나 소연이 찾아와울고불며 매달리는 모습을 연희에게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뒷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뭐, 지금까지  즐겼잖아. 이쯤 해야겠다.’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기서 더욱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가는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5시네.’

현수는시간을 확인하고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뭘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지만, 오늘 소연과 만나서 해야할 일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

마음을 다잡은 현수는 곧장 그녀에게 연락을 보냈다.

. . .


[현수오빠]

소연은 눈앞에 걸려오는 전화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로 찾아갈테니 만나달라고 빌었던 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에 걸려오는 전화.

‘잘못거신건 아니겠지?’

“후우...”

현수가 무슨 말을 건네올지알  없었던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심호흡을 했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잘게 떨려왔다.

-소연아, 지금 나올 수 있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현수의 말을 기다리던 소연은 뜬금없는 소리에 당황했다.

“네, 네? 지금요?”

-응,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소연은 상황파악을 할 겨를도 없이 곧장 몸을 일으켜 거울을 바라봤다.

‘어, 어떡해!’

거울 안에는 눈이 퉁퉁 부어 초췌한 모습의 그녀가 있었다.

“30분! 30분만 이따가 와주세요!”

소연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말을 내뱉었다.

-알겠어.

의외로 현수는 아무말 없이 알겠다는 말만 두고는 전화를 끊었다.

‘진짜 뭐야...?’

전화를 끊고 나서야 소연은 상황파악을 하려고했지만, 여태까지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상황이 그녀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빨리 준비하자.’

그래도 일단 만나기로 했고, 지금의 몰골을 차마 보여줄 수는 없었기에 재빠르게 준비를 하면서 그녀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거울을 봤을 때, 전보다는 나은 몰골의 소연이 비췄다.

퉁퉁 부은 눈은 차마 다 가릴수 없었지만, 가까스로 어느 정도 초췌한 몰골은 가려졌다.

위이잉.

[도착했어. 준비 다 했어?]

[네, 지금 내려갈게요.]

도착했다는 현수의 연락에 밖으로 나간 소연은 깜짝 놀랐다.

‘저거 비싼  아니야?’

무슨 차인지는 알지 못해도 비싸다고만 알고 있는 차 앞에서 다리를 꼬고 모델처럼 서 있는 현수.

‘진짜 잘생겼네.’

그런 현수를 보자 며칠동안 고생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으흐흠!”

자신이 오는줄도 모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현수에게 다가가 목을 가다듬자 그제서야 현수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어떻게 오신 거예요?”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소연은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한 채 소심하게 물었다.

하지만 소심한 그녀의 물음과는 달리 현수가 대뜸 물었다.

“너 요즘왜 그래?”
날이  있는 현수의 목소리.

“네?”

“내가 혹시 큰 실수라도 저지른거 있어?”

지금까지 소연이 하던 생각을 현수가 내뱉자 뭔가 상황이 반대가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면? 갑자기  나를 피하는 건데?”

소연은 할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오빠가 피했잖아요!’

마음속으로는 벌써 몇 번을 외쳤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현수가 오해할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오해를 풀자니 혼자서 생성한 흑역사를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했다.

‘쪽팔려서 어떻게 말하냐고.’

“피한 거 아니에요.”

“하….”

현수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쉬었다.

“저, 정말 아니에요.”

소연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듯 보이는 현수의 팔을 붙잡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이없던 현수가한껏 날이  표정으로 말했다.

“소연아, 넌 날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현수가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소연이 하고 싶은 말들 뿐이었다.

‘전부 다 오해였구나.’

그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뭔가 자신이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수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어 기뻤지만, 소연은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 서로 좋아하고있는데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에 숨이 막혀왔다.

초조함이 소연의 약해진 마음을 파고들었다.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아.’

흘러내리는 눈물이느껴지자 며칠 간 마음고생을 했던게 생각나며 봇물이 터지 듯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게 뭐야!’

전혀 울 생각이 없었던 소연은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당황하면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못생겨보이면 어떡해!’

우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았던 소연은 급한대로 현수의 품에 안겨버렸다.

“무슨….”

현수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소연이 먼저 그의 말을 끊으며 속마음을 내뱉었다.

“저 오빠 좋아해요! 정말 많이요! 그것만 알아주면 안돼요?”

눈으로 보지 않아도 현수가 꽤나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입을 재차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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