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LOVE파워(2) (2/109)



〈 2화 〉LOVE파워(2)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면 오히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고.

그말대로였다. 나는 웃었다.

‘하하. 뭔 미친…’


그래서, 이게  뭐냐? LOVE파워? 섹스 더 열심히 하라고?

‘누구 놀려  씨발.’


공을 꽤 많이 들인 장난이다. 눈앞에 떠 있는  메세지 창은 뭐 어떻게 만든 거야?

손가락으로 창을 휘휘 저어봤다. 그냥 통과해버린다.

게임인가? 요즘 유행하는 VR인가 뭔가 하는.
근데 내가 알기론 현재 게임업계 기술력은 이렇게 실감 나는 가상현실을 구현할 정도는 못 된다.

기껏해야 눈에 3D글라스 끼고 병신처럼 팔만 앞으로 뻗은 채 에베베 하는 그 정도란 말이다.

그거 보고 주변 사람들은 말하겠지.

‘미친놈이 아닙니다. 우리 집 장남이에요. 지금 게임 중이에요.’

 마디로 게임, 몰래카메라 따위일 수가 없다.

그러면 남은  뻔하네.

‘아, 뭐야. 꿈속인가. 그럼 인정이지.’

꿈에선 뭐든지 다 되니까.
굉장히 실감나는 꿈이군.

그래, 꿈이라면 즐겨주지.  어때.

맥빠지는 거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작게 메세지 창 하나가 떴다.

[감식안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래, 쓸게.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감식안 사용]

[대상은 ‘자신’]

[이름: 트래쉬
나이: 25세
종족: 인간
성별: 남
칭호: ‘무능한 코치’

체력: 4
근력: 4
지혜: 2
기교: 5
의지: 9
속도: 2

특이사항: 성기가 비정상적으로 길고 굵습니다. (남성 중 상위 0.1%에 해당합니다.)

종합능력: F
잠재성: E ]

한번에 정보가 와르르 주어지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까는 스킬에, 이번엔 능력치냐.

옛날에 농구팀 민아가 즐겨했던 폰게임이 생각난다.
소셜게임이라고,
겉은 아기자기했지만 내용물은 순 사람들 돈 뜯어낼 생각만 가득한 악질이었는데.

거기서 비슷한 기분을 느낀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이랬다. 딱 설치하고 게임 실행하면 어떤 게임인지 좀 알아보기도 전에 별 잡다한  우르르 퍼붓는다.

‘신규유저 보너스 마석 500개!’
‘출석체크 이벤트! 1일차, 1000골드 지급’
‘1주년 감사제 SSR 확정 보장 가챠!’
‘지금이라면 첫 결제 한정 66% 할인…’


문제는 처음 하는 사람 입장에선 이 모든 게 다  개짓거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일단 차근히 하나하나씩 정리해보자.


‘이 꿈속에서 나는 트래쉬라는 녀석의 인생을 이어받았다는 설정인가? 흠.’


아까, ‘스킬’을 얻을 때 스쳐 지나간 글귀가 기억났다. 분명 전생의 나하고 비슷한 놈으로 옮겨줬다고 했었는데.

이 놈이 현실의 인간 진수현하고 유사한 놈이라는 건가. 별로 공감은 안 가는데.


근력 4면 높은 거야 낮은 거야? 나는 자문했다.

스스로의 몸을 돌아봤다. 그냥 평범하고 약간 마른 몸. 힘이 뿜어져 나올 건덕지가  보인다.

딱 봐도 웨이트 트레이닝에 관심 없는 몸이네.

‘높은  아닐 듯. 그러면 딴 능력치도 다 고만고만한 거 보니 이놈은 아마… 별  일 없는 녀석일 거 같아.’

그래서 종합능력 F. 성장성 E.
돼지고기 1등급 2등급 분류하듯 너무도 냉정히 이 녀석의 가치가 낙인찍혀 있다.

슬프다.

꿈속이라면 좀… 더  나가는 인생을 살게 해줘도 괜찮잖아.
왜 꿈속에서까지 비참한 기분을 맛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쓸데없이 의지만 9다.

뭐야 이놈은. 딴 능력치는 구린데 의지만 높아.

약간 학창시절에 그런 애들 있었지.

수업시간에도 빡집중하고, 노트필기는 예술 그 자체. 쉬는 시간에 딴 애들 놀 때 구석에서 예습복습.

근데 시험 보면 점수는 30점 나온다. 자기보다 등수 낮은 애들은 운동부밖에 없음.

‘이런 느낌인가. 존나 무능한데 열의만 쓸데없이 넘치는…’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타입!

칭호도 ‘무능한 코치’. 이런 놈도 감독인가? 주제에 누굴 가르친다는 건가. 지 앞가림도 못할  같구만.


‘아니야, 이건 인정 못 해 씨발!’

나는 고개를 세게 내저었다. 억울하다.

적어도  25살 때부터 무능하진 않았어!
그때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감독이었다고.

‘악몽이야. 깨어나자.’

마치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조롱하기 위해 제작된 한 편의 블랙코미디 속에 빠져있는 기분이다.

철저하게 바보 취급당하고 있다.

꿈에서 깨려면…

나는 볼을 꼬집으려다 손을 멈췄다.


‘진부해. 꿈인데 고작?’

분명 이 놈은 자지가 길고 굵다고 했다. 어디 현실의 진수현 자지하고 누가 더 대단한지 한번 겨뤄보자.

털썩.

해진 츄리닝바지와 사각 트렁크를 벗어던졌다. 현실의 나는 명품 브랜드 드로우즈만 입지, 아저씨처럼 트렁크는 안 입는데…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어 시발?’

근데 물건이 좀 크다.
길이는 비슷한데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일본이라면 AV 제작사 건물 앞에서 자지만 꺼내놓고 있어도 사장이 계약서 들고 달려나올 훌륭한 사이즈다.

‘이거 하나만큼은 그래도  만족스럽네.’


나는 씨익 웃으며 아랫배에 힘을 줬다. 옛날부터 꿈 속에서 꼭 해보고 싶던 짓이 하나 있었다.


방에다 오줌 싸갈기기!

누구나 한번  생각해본 적 있지 않을까.

아닌가, 나만 그런가?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어쨌든 나는 해야겠다. 꿈이잖아. 이건 못 참지.


단전에 힘을 모으고 방광으로 마나의 흐름을… 아니, 소변의 흐름을 집중시켰다.
요도 끝이 간질간질해진다.
수문 개방!


쏴아아아-


역시 포신이 기니 사거리,화력(?)도 장난이 아니다. 소방전 호스처럼 방 전체에 오줌이 흩뿌려진다.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어차피 진짜 내 방도 아니고.

‘어우 쥑인다.’


자기 방에 오줌을 싸갈겨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맛.

현실에선 상상도  할 일이다.
어떤 미친놈이 이러겠는가.
꿈이니까 가능하지.

침대도 젖고, 바닥엔 흥건히 오줌웅덩이가 고였다. 나는 꼼꼼하게 어디 하나 빠진 곳 없이 은총을 내려줬다.


‘미쳤다 미쳤어.’

근데 이상하다. 이 정도면 꿈에서 깰 줄 알았는데 안 깨네.

원래 ‘휴 진짜 오줌 싼 줄 알았는데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이러면서 일어나지 않나?


‘아직도 자극이 부족한 건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모양이군, 내 몸.’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더 파괴충동을 충족시켜주지.

오줌이 뚝뚝 떨어지는 작은 의자를 손에 들었다. 할거면 철저하게!

쨍그랑!


그대로 있는 힘껏 거울에 던져 박살 냈다.
액션영화 주인공이  기분이다.
혹은 그냥 집에서 깽판 치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가  기분이다.


유리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완벽해.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왜 안 깨어나지? 저기요? 에이 장난치지 마요.


밖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어어어 무 무슨 일인가, 젊은이!”

한 할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들어왔다. 아니, 들어오려다가 방문 입구에서 정지했다.
 천지가 오줌 범벅이라 본능적으로 멈춘 것이다.

“허억…! 방 꼴이 이게 다 뭐야?”
“... 누구시죠?”

할배는 기겁을 하며 놀랐다. 일단  흉악한 자지에서 애써 눈을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냐니? 나 집주인이잖아, 왜 이래, 젊은 친구가.”


그런 설정인가. 내 집이 아니었군. 이거 꿈이지만 미안하게 됐어.

나는 ‘감식안’을 써봤다.
 메커니즘인진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 속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자동으로 발동된다.


[감식안 사용]

[스포츠 관련 인물이 아니므로 간략한 정보만 표시됩니다.

이름: 맥켄지
나이: 62
종족: 인간
성별: 남
칭호: ‘친절한 집주인’ ]


맥켄지라… 트래쉬가 신세 지고 있는 집주인 할배였구나. 허리디스크에 좋은 운동법을 발명한 박사와 이름이 같군.

“거울은  깨졌고… 킁킁. 이거, 오줌인가? 맞네! 아니 왜이래,  친구!”
“...”
“평소에 그렇게 얌전하고 착한 청년이 갑자기 정신이 어떻게 된 거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맥켄지 씨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럴만도 하다. 빨가벗고 방에다 오줌을 갈기며 물건을 깨부수는 놈이 실제로 있으면 그건 정신이상자다.


“서, 설마… 어제 일이 너무 안 풀린다고 펑펑 울면서 하소연하더니, 그것 때문에 그러나?”
“...”
“아니 이 못난 친구야. 삶이 마음대로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걸 이렇게 정신을 놔버리면 어떡해?”


맥켄지 씨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이 할배는 착한 사람인 것 같다.
꿈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절로 솟아올랐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 꽉 잡고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
일단 빨리 옷 입고 출근부터 하게.
괜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뒤는… 으이쿠… 에휴…. 내가 치울 테니까.”

과연 ‘친절한 집주인’. 이런 집주인이 현실에도 존재할까.

그보다, 출근?
트래쉬가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모른다.
꿈 속에서 또 일하러 가야 하는 것도 웃기지만…

“저… 제가 평소에 어디로 출근하나요?”


할배는 경악했다.



**

할배는 손수 날 병원에 데려다 주려고까지 했다.
큰 정신적 충격으로 빚어진 이상 행동, 일시적 기억 상실.

환자를 보는 듯한 동정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맥켄지 할배.

“아닙니다.  정도면 충분해요.”
“정말 괜찮겠는가?”
“그럼요. 저… 방에다 난장 피워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신 안 그럴게요.
깨진 거울도… 그 밖에 다른 것도  변상하겠습니다.”


꿈이지만  필사적으로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됐네.신경쓰지 말게.
그보다 자네 절대 나쁜 생각 하면 안 돼. 알겠나?”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나는 일부러 밝게 웃어 보이며 방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슬쩍 보니 맥켄지 할배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날 지켜보고 있었다.

할배요….미안합니다.



일단 직장까지 가는 길은 들었으니 길을 나섰다.
이 트래쉬란 놈은 대체 어떤 인생역정을 겪었길래 이렇게 싸질러도 할배가 납득할 정도란 말인가.

혹시 나보다  심각한 거 아냐?

우울한 기분이 든다. 현실의 나, 꿈속의 트래쉬.  다 최악이다. 한심한 놈은 꿈속에서도 한심한 놈밖에 못 되는 건가.

‘설마…’


일부러 생각하지 않고 있던 불길한 가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혹시.. 아니야… 하지만… 아니야… 그치만…’
‘꿈이… 아닌가? 이게... 현실? ...사실 안 깨는 꿈이면 그냥 현실인 거 아니야?’

팔자에도 없는 철학적인 고민을 했다.
난 온갖 지랄을 했는데도 깨어나지 않았다.

슬슬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진짜로 지구의 진수현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세계의 트래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으아아아아!’


모든 상식과 가치관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이세계 같은  실존했다니… 소크라테스 형도 이건  버틸 거다.

‘근데 사실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닌가.’

잠시 가치관의 충격이 가라앉고 나니 차분하게 생각할 여유가 조금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실의 진수현 인생이 더 구렸던 것 같아.

신문에  추문이 실리기도 했고, 앞으로 지옥 같은 일만 남아있었지.
적어도 여기선  정돈 아니잖아.’


생각할수록 지금 상황이 꽤 낙관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찌 됐건 젊어졌어. 13년 회춘한 거야. 우선 이것만으로도 좋은  아닌가?’


무엇보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

‘스킬’!

난 좇사기스킬을 두 개나 받았다. 게임을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딱봐도 희귀도 SSS면 치트스킬이다.
‘감식안’도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의 트래쉬면 몰라도, 진수현이 바톤 터치한 트래쉬는 인생 역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어.’

잘은 몰라도 ‘LOVE파워’는 선수 육성에 특화된 능력처럼 보인다.
섹스를 할 수록 내 선수들도 강해진다니.
감독에게 이것보다 좋은 스킬이 있을까?

그야말로 나를 위한 능력!


‘트래쉬, 새끼야. 니가 싼 똥 지금부터 내가  치워준다.

일단 이 ‘무능한 코치’ 타이틀부터 바꿔줄게.  대고 기다려.’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갑자기 내 직장에 빨리 가보고 싶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최근 십몇  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정.

여기서라면 난 좆되는 감독이  수 있을지도…?

그때였다.

“개새꺄, 빨리 빚 갚아!”

한 사내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았다.
뼈를 부숴버릴 기세로 손에 힘을 준다.


조...존나 아파! 끄아악…!


“아야야야.... 빚, 빚이라뇨? 전 잘…”
“씨발놈이 장난치냐? 오늘까지잖아!”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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