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첫 대회, 트레져 헌트(3) (7/109)



〈 7화 〉첫 대회, 트레져 헌트(3)

나는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어쩐지 영화에 나오는 존나 냉정하고 강한 킬러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포스가 장난 아니군. 특히…  쪽을 돌아보지도 않는데 내가 어딨는지 항상 아는 듯한…’

뒤에도 눈이 달렸나?
우리는 인적이 없는 곳까지   발길을 멈췄다.


“응, 이쯤이면 되겠다. 너 신경써줘서 일부러 사람 없는 곳으로 온거야. 아는 사람들 주변에서 이런 얘기 하기 싫을테니까. 친절하지?”
“...저, 절 아시나요?”

감식안으로 그녀가 스텔라 라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간단한 인적사항 외에 자세한 정보까지는 알 수 없다.
‘지옥의 여동생’이라는 의미불명의 칭호 밖에…

잠깐? ‘지옥의 여동생.’... 뭔가 어디서…

“이런, 실망이네.  24시간 내내 널 지켜봤는데 말야.”
“24시간이요?”
“하긴  모를수도 있겠다.”


...스토커인가? 그럼 난 제발로 스토커를 따라 사람 없는 곳까지  셈이다.

“아이, 답답해. 우리 오빠 알잖아! 메이슨. 오빠 돈 백 이십만 골드 해먹었다매.”
“...아하!”

호기심 해결! 아, 그 빚쟁이놈의 동생이었나. 남매가 쌍으로 지랄맞은 년놈들이다.

아니, 근데  자식 진짜 24시간 얘를 시켜 날 감시한건가. 그냥 겁주려고 해본 말이 아니었어?
씨발, 도망가려고 했으면 좇될뻔했다.


“이제 생각나나 보네? 둔한 인간. 뭐, 됐고. 돈 내놔.”
“앗.”
“뭐해? 오늘까지  이천 골드 갚아야 되잖아. 방금 상금 받은 거 알고 있어.”


내가 우물쭈물거리자 스텔라는 답답했는지  품으로 손을 집어넣어 돈주머니를 채갔다.

“하나, 둘, …  이십. 오케이, 만 이천 골드 받았습니다.”


 세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은행원 출신인가? 아니면 수금에 이골이 난 사람들은 다 저렇게 되는 건가. 그녀는 조금 남은 돈주머니를 다시 내게 던져줬다.

“남은 삼천 골드, 마저 받아가도  할  없어. 어차피 너한테 받을 빚 백 십 팔만 칠천 구백 구십 팔 골드 남았으니까.
근데 안 그러는 걸 감사하라고.”
“...”
“뭐해? 고맙다고 해야지.”
“...고맙습니다.”

내가 얼떨결에 인사를 하자 스텔라는 싱긋 웃었다. 분명 평범한 여자애였으면 아주 귀엽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무섭다.


“뭐 나도 손에 피 안묻혀도 되니 좋네. 어쩌나 하고 유심히 봤는데 솔직히 놀랍긴 했어.”
“어떤  말입니까?”
“대회 우승. 너, 진짜 여기서 우승할 거 알고 있었던거야? 아, 혹시 승부 조작?”
“그럴리가요!”
“흐응.”


스텔라는 손가락에 돈주머니 끈을 꿰고 공중에 빙빙 돌리며 나를 지켜봤다.

붕- 붕-

아니, 저거 꽤 무거울텐데. 손가락 하나로 저게 돌려져? 힘이 장난 아니다.
오빠도 악력이 미칠듯이 세던데 쟤도 그런가.

“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다행히 돈을 갚았으니 다음 수금일은 일주일 후야~
오늘처럼 얌전히 삼만 골드 준비해 놔.”
“예에~?”

뭐, 다음주?
뭐, 삼만 골드?
미친!

“저, 제가 이런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적적으로 돈을 구해서 성의를 보였는데, 조금만 더 시간을 주셔야…”
“응. 고려해서 정한 게 이거야. 하루 만에 만 이천 골드 갚았으니 일주일이면 삼만 골드 거뜬하잖아.”
“크흑…”

그럼, 일주일 후에 보자, 하고 스텔라는 가버렸다.
아니, ‘가버렸다’?
그럴리가 없다. 가긴 개뿔. 앞으로 일주일 동안 어디선가 날 감시하고 있겠지.
도망가나 안가나 주시하면서.

이런 씨발. 돈이 들어온지 몇분만에 다시 빠져나갔다.
남은  삼천 골드.


***

하나의 숙제를 해결하면, 바로 다음 숙제가 떨어진다.

한숨이 절로 나올 노릇이다.
근데 이상하다.

‘왜 익숙하지?’


이 감각 낯설지 않다. 물론 원래 세계의 진수현은  같은 걸 진 적은 없지만. 빚은 계기일뿐.

결국 이기고, 또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프로 스포츠란 그런거니까. 그냥 졌을 때 감당해야 할 대가가  가혹해진 것뿐, 본질은 같다.


‘어차피 빚이 없었다 해도 여기서도 나태하게 패배에 익숙한 감독으로서 지낸다면 좋을 건 하나도 없지.’


삼만 골드, 크긴 하지.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무슨 바람인지 이번엔 시간을 일주일이나 줬다.

한 번 우승해서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인정해 준건가? 나로선 다행이다.


“무슨 생각하세요, 코치님?”


라비가 차 뒷자리 좌석에 머리를 묻은 채 물었다. 피곤해서 자는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다.


“아무 생각도 안했어.”
“에이 그짓말.”
“들켰냐? … 다음 대회 생각 했어. 도착하면 깨워줄테니까 한숨 자.”

그래, 지금은 불안해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당장 일 주일 안에 뭐라도 또 이겨서 상금 벌어야지.

씨발, 따서 갚으면 돼! 삼만 골드 그까짓거.

해가 일찍 지는지 벌써 노을이 드리운다. 차 창 밖으로 산이 멀어져갔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서 씻고 푹 자자.
새우잡이 배가 아니라 내 방에서 잠들 수 있다는걸 감사하며.

***


[성공 경험]

[라비는 첫 대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종목: 트레져 헌트
랭크: D

여유있는 승리! 비록 작은 지역 대회지만 우승이라는 성취를 이뤘습니다. 성공을 경험해 라비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지혜: 7(+1) ]

[라비는 아직도 어제의 승리를 잊지 못합니다.]
[라비는 약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오오, 깨알같이 라비의 능력이 올랐다. LOVE 파워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대회 우승을 하면 나름 소질이 오르나보다.
좋은 정보. 아침부터 괜찮은 소식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오늘은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
“음음, 좋네.”


다음 날 아침. 아직도  직장이라는 실감은  안오는 낡은 컨테이너 사무실에 다시 셋이 모였다.
어제는 라비가 피곤해 그대로 뻗어버려 우승 축하파티도 없이 해산했었지.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오늘은 테이블에 과자라도 몇  깔아놓고 있다.

“다들 동의하신대로 진행은 제가 맡죠. 편의상 이번 회의는 녹음도, 기록도 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첫번째 사안.”

낡은 화이트보드가 하나 있길래 나는 테이블 앞에 그걸 갖다놨다. 라비가 과자를 주워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남은 삼천 골드, 어떻게 쓰느냐.”


나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 솔직하게 얘기했다. 상금 중 만 이천 골드로 빚 갚았다고.
어차피 이번 상금은  돈이라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상금을 받을 때마다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솔직하게 처음부터 말하기로 맘먹었다.
레이지 아재도 라비도 그러려니 해주었다.

트래쉬 녀석이 자기 사사로운 욕망때문에 빚진게 아니라 팀 때문에 그런 것이니만큼, 다들 이해해주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좋은 사람들이어서.

“저 의견 있습니다!”
“응. 라비 말해봐.”

라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코치님 빚 마저 갚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기특한 녀석. 나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하지만 그럴수야 없는 노릇이다.


“아니, 괜찮아… 이제와서 삼천 골드로 빚 좀 갚는다고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도 않으니까.
더 유용하게 써보자.”


사실, 빚도 자원이고 능력이다. 라비에게 여기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최대한 갚아야  시한까지  갚는게 당연히 이득이지.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역시 팀에 투자하는게 괜찮지 않겠나.”


아재가 말했다. 뭐, 평범하게 생각하면 역시 그렇지. 나도 동의한다.


“그럼 저희 팀에 지금 부족한게 뭘까요?”


우리는 화이트보드에 하나하나 생각나는대로 적어봤다.

선수.
훈련시설.
휴식시설.
비서.
프런트.
스폰서.
팬클럽.
장비.
참가비.

...끝도 없다. 아무리 내가 이 세계의 물가에 어둡다지만 삼천 골드론 택도 없다는  알겠다.

“막막하네요.”
“음…”
“이거 과자 맛있어요, 코치님. 어디서 사셨어요?”

잘 먹는군. 아재와 내가 고민하는 사이 쟤는 혼자 과자 절반을 해치웠다. 그래, 선수한텐 먹는 것도 중요하지.


“뭐… 딱히 쓸데가 없으면, 다음 대회 참가비로 쓰면 될 것 같네요.”
“괜찮은 것 같네.”


아재가 동의하며 품에 손을 넣었다. 지갑을 꺼낸다.


“아, 그리고 오늘 아침에 홍삼이 몇 박스 팔렸어. 마누라 몰래 돈통에서 삥땅쳐왔지. 이거도 좀 보태게나.”

삼천 골드! 오옷. 아주 좋아. 근데 이래도 되나? 아재 사업의 재무재표는 안봐도 씹창나있을 것 같긴 하다…
아니야, 따서 갚으면 된다.


“와,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저희가 쓸 수 있는 운영비가 육천 골드네요.”
“그래도 조금 상금이 되는 대회는 참가비가 적어도 오천 골드부터 시작하니까. 이것도 고려해보게.”


참가비 오천골드라. 확실히 어제 참가할 대회를 찾으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상금 삼만 ~ 오만 골드 정도를 주는 대회는 참가비도 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참가비 오천 골드 급의 대회에 출전하는 걸로 하죠. 이의 있으신 분?”
“난 좋네.”
“저도요!”

그렇게 정해졌다. 남은  골드의 사용처는,  이 정도면 되려나.

“...그리고 천 골드, 이걸로 일주일동안 라비를 든든하게 먹이기로 합시다. 저희 팀의 유일한 희망이니까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잘먹어야 힘을 낸다. 헝그리 정신은 개뿔.

***


두번째 사안은, ‘그러면 어떤 대회에 출전하는가.’였지만 이건 꽤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애시당초 레이지 아재나 라비나 다른 스포츠 종목은  모르는 게 문제였다.

이 팀은 알고 보니 <헌팅> 원툴의 팀으로, 라비를 주축으로 해서 미리아와 안젤라가 뒤를 받쳐주는 구성이었나 보다.

익히 알다시피 결과는 몇 달 째 형편 없었고 팀 해체의 위기에 이르렀지만.

그래서 헌팅 말고는 알고 있는 정보가 나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었다.


“하아… 그러면 제가 따로 정보를 더 조사한 뒤 정해보도록 할게요. 라비는 평소 하던대로 훈련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나는 가게 돌아가서 홍삼 인삼 포장 하고 있겠네. 뭔  있으면 부르게.”


모두 있어야 할 곳으로 저마다 이동하고 나 혼자 사무실에 남겨졌다.

‘자,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정해야 해.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어떤 대회에 출전한다…’


1인 출전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이전과 같다.

다만 상금이 최소 삼만 골드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이 저번과 다를 뿐.
가급적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쓸  있도록 딱 일주일 후 열리는 대회면 좋겠다.


‘상금 삼만 골드 이상이면 지역 대회라도 역시 주목도가 좀 올라가는구나. 경쟁도 꽤 세보이는데.’

이 정도 라인이면 1군 무대는 아니지만 나름 경쟁이 빡센 바로 아래 정도다.
나는 신중히 하나하나 대회 정보지를 읽어나갔다.

문득 고개를 들고 시계를 보니 벌써 다섯시간이나 지나있다.


‘와,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


한창 감독 생활에 열정이 넘쳤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실제로 여기선 신체나이도 젊어지기도 했고.
그래도 시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니라, 일단 하나의 종목을 추려내는데 성공했다.


‘<메이즈>. 이걸로 하자.’

지역 대회, 랭크C 급.
1인 참가에 참가비 오천 골드, 상금 무려 오만 골드!

특이하게도 지하에서 벌어지는 스포츠다.

층층이 내려가는 거대한 지하시설을 탐사해, 시간 내에 최하층에 있는 목표물을 가지고 다시 올라오는 사람이 우승하는 룰.

변수가 많아 매번 누가 우승할 지 쉽사리 예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종목 특성상 1등 아니면 전원 탈락이다.
승자 독식! 한 명에게 몰빵!
그래서 지역 대회 치고 상금이 세다.


‘조건으로 봐선 이게 최선이야. 시간도 적당하고.’


하지만 이정도 경쟁이면 라이벌들도 수준이  올라갈거라고 보는 게 맞겠지.

저번처럼 종목에 대한 이해 없이 피지컬로 승부하는 전략은 잘 안먹힐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충분히 살려서 전략을 숙지하는 편이 좋겠다.

나는 기지개를 쭉 폈다.

‘후… 좀 쉬어야겠어. 그럼 라비한테 이걸로 정했다고 말해줘야지.’

컨테이너 창문 밖을 바라봤다. 운동장에 아무도 없다.
한 시간  전만 해도 헉헉 거리며 뛰는 소리가 들렸는데.

‘얘도 잠깐 쉬고 있나?’

몸 좀 풀 겸 라비나 찾아보기로 했다. 찾는다고 해도 우리 팀 시설이 워낙 초라하니 사무실, 운동장, 탈의실 세 개만 돌아보면 끝이다.

사무실엔 내가 있으니 아니고, 운동장엔 보니까 없고, 그럼 탈의실이지.


“라비 안에 있니?”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자고 있었구나.

문을 열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바로 깨달았다.

자는데 난 여기 왜 들어온거지?

라비가 긴 의자 위에 천장을 보고 누워 단잠을 즐기고 있었다.
땀으로 푹 젖어 축축한 하얀 머리카락이 이마에  가닥 달라붙어 있다.

지퍼를  잠궈 무방비하게 흐트러진 트랙탑 사이로 보라색 스판 셔츠가 그대로 보인다. 살갗에 쫙 달라붙는 재질.
라비의 가슴이 숨소리에 맞춰 천천히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누워 있는데도 가슴은 거의 퍼지지 않고 천장을 향해 봉긋이 솟아있다.

칠칠맞게… 배를 까고 자네.
하얀 배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배꼽 모양이 귀엽다.
배 뿐만이 아니다. 허리도.
운동 선수답게 군살 없이 잘록하다. 오직 여자에게만 허용된 아름다운 곡선.

라비가 살짝 몸을 뒤척거렸다. 바지가 아주 살짝 내려가 허리를 감고 있는 1cm 정도의 파란색  하나가 드러난다.  당연히… 팬티겠지.


‘씨발 괜히 들어왔다. 그리고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어 난.’

보면 안될 걸 본 기분이다. 지금 당장 나가야 해. 스스로를 믿지 마, 트래쉬 개새끼야.
 자제력을 시험하지 마.


근데 내 자지는 생각이  다른가 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