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두번째 대회, 메이즈(1) (11/109)



〈 11화 〉두번째 대회, 메이즈(1)

대회 당일.

경기장은 씨엔나 서부 황야지대에 있었다.

“이걸 어쩌지, 오늘 바쁜 일이 있어서… 정말 미안하네.”

레이지 아재가 홍삼 사업 관계로 이번 대회는 같이 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건 괜찮은데, 문제는 차도 못 쓴다는 것이다.

나도, 라비도 면허는 없다. 뭐 원래 세계에서 운전이야 질릴만큼 해봤지만 여기서는 무면허다.

“걸어서 가야 하나.”
“음, 그것도 괜찮겠네요. 워밍업하는 셈치고.”
“바보야, 시간이 늦잖아. 도착하면 대회 다 끝나있겠다.”
“힝…”

우리가 곤란해하는데, 멀리서 익숙한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어, 저거 아빠 차인데?”


차 창이 열리고 타세요, 하며 안에서 손짓한다.

“단장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대회 장소가 어딘지 물어봤더니, 이왕 갈거면 코치하고 라비 태워서 같이 가라더군요. 타요. 데려다줄게요.”


라비네 아버지였다.
휴, 다행이다.

“어떻게 오늘 시간은 되십니까?”
“오늘은 월차냈어요. 아무래도 마지막대회 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봐두려고.”
“아빠도 참… 왜케 불길한 말을 해요.”

우리는 말없이 황야를 달렸다. 씨엔나 시내가  멀리 멀어지고 이제 주변엔 모래밭과 깎아지른 절벽기둥들만 드문드문 보인다.
핵실험이라도 하기 딱 적당해 보이는 좋은 경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라비 아버지가 물었다.


“뭐가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스포츠에 과잉투자하는  말입니다. 이정도로까지  일인가? 가끔 이 생각이 들어요.”


전적으로 동감이다.
아니, 이 세계에 나 말고 정상인이 한 명 더 있었다니.
역시 은행원(처럼 보이는 남자).


“하지만 전쟁이 빈번한 역사고 사람들이 강인함, 신체적 우월함을 추종하는 정서에 끌리는 건 이해할  해요.
어쩌면 스포츠 선수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범상을 제시하는 건지도 모르지. 여차하면 뛰어난 병사로 돌변할 수 있는 초인의 모습을.”
“...”

그 정도까지 생각은 안해봤는데.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사실 라비를 스포츠 선수로 키우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요.
뭐, 항상 이기고  이기기만 하는 일류 스타라면 좋겠지.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너무나 비참해지거든. 재능없는 스포츠 선수란건 그래요.”
“말씀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스포츠에는 이기고 지는 것 말고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요.”
“흠.”


경기장에 도착했다. <트레져 헌트>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벌써부터 약간 떨리기 시작한다. 내가 뛰는 것도 아니건만.

“저는   대고, 관중석에 가 있겠습니다. 어찌됐건 열심히 해봐요. 트래쉬 코치.”
“아...예.”
“아빠, 힘껏 응원하고있어요!”

라비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과잉투자’  자체인 거대한 경기시설을 올려다봤다. 어마어마하게  스크린. 넓은 관객석. 맥주 마시면서 보면 재미야 있겠다.
그런데 경기장은 어딨지?


‘아, 지하에 있구나.’


잠시 깜박했다. <메이즈>의 경기장은 땅 속 깊은 곳에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밖에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아, 트래쉬 코치님. 오셨네요.”
“앗.”

<블루 윙 스포츠>의 라이스 코치다. 저번 만남때 멘붕한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자신만만, 거들먹거리는 모습으로 돌아와있다.
짜식. 안 어울리던 짓거리 하는 것보단,  짜증나지만 그래도 지금이 나아보인다.

“저희 마하는 컨디션 100%입니다. 후후. 어떻습니까.”
“그래요? 그것 참…”

잘됐네요, 라고 하려다 멈췄다. 잘된 일인가, 나한테는? 맘에도 없는 소리다.
그렇다고 아쉽네요, 라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주 거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겠네요. 경기가 기대되는군요.”
“그렇죠? 아, 이번에 플레잉 코치 하실 거죠? <메이즈>니까.”
“플레잉 코치요?”


처음 듣는 말이다. 그게 뭐야 씨발.
선수 겸 감독이냐, <슬램 덩크>에 나오는 김수겸처럼?


“어? 플레잉 코치 안하세요? 의왼데.”
“아니 그게 뭐냐니깐. 에이 씨,  모르는 거니까 좀 알려줘요.”
“예에에? 진짜 모르세요? 아니 그럴수가…”

항상 표정으로 생각을 알기 쉬운 라이스는 이번에도 다채로운 얼굴근육의 변화를 보여줬다.
아니 감독 치고 ‘플레잉 코치’를 모를 수가 있어? 하는 표정.
이 사람 그렇게 초보였어? 하는 표정.
저번엔 우승은 어케 한겨? 라는 표정.

...됐으니까 빨리 알려달라고.

“오우, 진짜면 시간이 없네. 간략하게 설명할게요. 그러니까, <메이즈>도 그렇고 중간에 작전타임이 있잖아요.”
“예.”
“그런데 <메이즈>같은 경우는 선수가 작전타임이라고 다시 밖으로 나올수가 없죠?”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앗, 설마…?
라이스는 씨익 미소지었다.

“감 잡으신  같네요. 맞아요. 선수가 코치에게 오는 게 아니라, 코치가 선수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매 경기 상황을 바로 옆에서 확실히 체크하다가 작전 타임에 가장 유효한 지시를 내리는 거죠.”
“말은 그래도, 좀 힘들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해요?”
“역시 직접 보여드리는게 빠르겠네요.”


라이스는 ‘스킬’을 사용했다.
와, 신기하다.
라이스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는 햄스터가 되었다.


그것도 날아다니는 햄스터.
플라잉-햄스터. 귀엽긴 한데, 묘하게 잘난체하는 느낌이 남아있어서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보셨죠? 인간 폼이 아니라 이렇게 플레잉 코치 폼으로 변환하면 저희도 충분히 선수를 따라다닐  있어요.”
“와아…”
“근데 그렇다고 옆에서 도와주거나 훈수두는 건 안돼요. 작전 타임이 아니면 구경만 할 수 있는 겁니다.”


햄스터가 찍찍거리며 조잘댄다. 이런 녀석이 옆에서 훈수 두면 짜증날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무슨 마법소녀와 마스코트도 아니고.
내가  꼴을 하고 라비 뒤를 따라다녀야 한다고?

“근데 저는 그런 스킬이 없어서 못할 것 같네요.”
“뭐 안해도 되긴 하지만 하는게 당연히 승률이 더 높아질걸요. 그리고 대회 측에서 임시 바디를 빌려주기도 해요.”
“아…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곧 대회 시작하니까 빨리 가보시는게 좋겠어요. 운영측 부스에서 도와줄거예요.”


녀석, 그래도 엄연히 난 경쟁자인데 꽤 충실히 도와주네. 마하를 닮아서 원래는 짜증나지만 정직한 성격이었던 건가.
 됐고, 빨리  놈의 플레잉 코치인지 뭔지 하러 가야겠다.


***


으레 그렇듯 경기 시작을 앞둔 대회 진행측 사람들은 아주 바빠보였다.

누구한테 말을 걸어야 좋을지 모를만큼.

“저, 플레잉 코치… 그거 몸 좀 빌리러 왔는데요…”


어색하게 말을 붙이려고 하는데 다들 자기한테 하는 말이 아닌  아는건지 바쁘게 쌩 하고 지나간다.

이 기분 어쩐지 익숙하다. 자대 첫날 행정반에서 얼타는 이등병의 기분… 아무도 날 봐주지 않아. 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야.

그러기를 몇 분, 조금 초조해질 무렵 한 여직원이 나를 알아봐주었다.
고맙게도.


“아, 코치님이시구나. 플레잉 코치 관련이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남은 시간이 넉넉치 않아서 절차는 간단히 생략할게요. 괜찮으시죠?”
“저야 좋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박스에 담겨 있는 인형들을 내 눈 앞에 들이밀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중에서 하나 고르세요!”


설마  인형이 내 몸이 되는 건가.
아아, 최악이다.
진수현의 몸에서, 이 세계 트래쉬의 몸에서, 이제는 또 털주머니 인형 나부랭이로…
내 자아와 영혼의 고귀함을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고를 거라면 신중하게 골라야겠어.’


고질라를 닮은 괴수 모양 인형이 있다. 근데 팔이 너무 짧은  아니냐?
존나 함정템이다. 보기엔 귀엽지만 자기 등도 혼자 못 긁을 것 같잖아.
...그리고, 애초에 보기에 귀여운  중요해? 그것도 하나도  중요하다.

‘딴  됐고 적어도 사지가 내 마음대로 잘 움직이게 생긴 거라야 해.’


무지 재빨라 보이는 거미 인형. 벽을 잘 타게 생겼는데? 좁은 틈도 잘 기어들어갈 수 있을  같다.
옛날보다  스파이더맨을 동경해왔었다.
어쩌면 지금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근데 생각해보니까 거미 다리는 6개잖아. 좀 적응이 안될 것 같네.’

내가 시간을 끌고 있자 직원은 시계를 흘낏 한번 쳐다봤다. 이런, 오래 고를 시간이 없다.


“저기, 날아다닐 수 있는  뭐 있나요?”
“이거요.”
“그럼 이걸로 할게요.”


딱히 뭐라고  집어 말하기 힘든 애매한 형태를 한 인형을 골랐다. 짜리몽땅하고, 연한 베이지색에, 머리 위엔 잎사귀가 몇 개 붙어있다.
진짜, 뭐야 이거? 괴상하게도 생겼네.

앗, 이건.

인삼 그자체가 아닌가.
어린아이가 삐뚤빼뚤 그린듯한 인삼.
마치 운명같다.
<홍삼&인삼 파워 스포츠>의 마스코트로서 이보다 어울릴 순 없다.

나는 이 인형을 집어들었다. 보기엔 줫구려도 이게 최선이라고 확신한다.


“바로 접수해드리겠습니다.”

[스킬을 얻었습니다.]

[스킬명: ‘플레잉 코치 변신☆’

분류: ’변신 스킬’, ‘보조 스킬’

설명: 당신은 귀여운 마스코트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담당 선수 뒤를 졸졸 따라다닐  있습니다.

특이사항: 아직 당신의 전용 바디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변신하기 위해선 변신용 바디가 따로 필요합니다.

현재숙련도: F
잠재력: C
희귀도: C
]

“스킬 쓰는 법은 아시죠?”
“아, 예. 고마워요.”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해보는군.’


일단 받은 김에 시험할 겸 바로 스킬을 써봤다.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플레잉 코치 변신 사용]

[임시 바디로 당신의 의식이 옮겨집니다.]

진공청소기에 몸이 빨려드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전신에 휩싸였다.
순간 몸이 거꾸러지는가 싶더니 시점이 흔들리고, 분명 아까까진 살짝  시선 밑이었던 여직원의 얼굴이 한참 위로 올라가 있다.


“아하하, 귀여워요.”

여직원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내 손을 보니 짤막한게 젓가락도 못 쥐게 생겼다. 아마 내장기관이 없을테니 밥 먹을 필요도 없겠지만.
발도 마찬가지다. 모든 신체가 짜리몽땅하다.

그리고 인형이니까 당연하지만, 알몸이다.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벗고 있는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긴 커녕 귀엽다며 웃는 아가씨.
묘한 기분이 든다.

이거… 뭔가 위험해.
이제껏 잘 몰랐던 쾌감에 눈을 뜰지도…
여러가지 플레이가 생각나려 하고 있어…

“룰은 코치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이 상태에선 경기 중에 작전 타임이 아니면 따로 선수에게 말을 건넬  없어요.

몸동작이나 글씨를 써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안됩니다.

실시간으로 관제실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반칙을 저지르면 즉시 실격됩니다.
주의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목소리만 낮고 굵은 성인 남성의  그대로다.
그나마 이전의 나를 구성하던 것 하나는 남아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이것까지 바뀌면 정말 그냥 귀여운 인형이 되어버리니,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한 조치일지도 모를 일이다.

“됐습니다. 대강 요령은 알았어요. 다시 원래대로…”
“어, 근데 곧 시작 시간이지 않나요? 그냥  상태로 바로 가시는게 나을 것 같기도.”
“아 그럴까요.”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렇게 빠르진 않지만 날  있다! 물 속을 수영하는 것 같으면서  저항이 적은 느낌이다.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나는 거지.

존나 신기해.
이건 좀 좋다.
중력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 중독될 것 같다.

신나서 날아가니 다른 여직원들도 저거 봐, 하며 킥킥거린다.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날고 있는데 세간의 시선이 뭐가 대수랴.

사무실 의자 한 구석에 대충 쭈그려 앉아 있는 내 원래 몸이 보인다.
주인 잃은 빈껍데기.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내 몸. 금의환향해서 돌아올게.’

나는 인삼 바디를 전속력으로 움직여 초속 30cm의 속도로 날아갔다.

***

“@#@[email protected]$~~~!!!”



라비는 변신한 내가 말을 걸자 흥분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질렀다.

“라비야, 진정해. 그리고 인간의 말을 하는 거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여워! 코치님, 너무 귀여워요!”


연신 귀여워, 외치며 그대로 쪼끄만 내 몸을 껴안고 볼을 부볐다.
흠,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내 눈엔 구리기 짝이 없는 인삼 바디인데 또 여자들의 시선엔 평가가 다른가 보다.

“그거구나, 플레잉 코치! 아, 저희는 영영 안하는 줄 알았어요. 얼마나 깜찍한데~”
“괜찮으니까 이 모습에 익숙해지는거다. 이제부터 내가 널 뒤에서 지켜봐주지.”
“와, 진짜 집에다 가져다 놓고 싶다.”
“너 지금 내 말 안 듣고 있지? ….됐다.”

이 인삼 폼일때는 아무래도 내 원래 몸이 아니다보니 LOVE파워는   없나 보다.

지금 기세에 휩쓸려 몰랐는데 스킨십 조금 많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아깝기 짝이 없군. 뭐… 그래도 이건 또 이것대로.’


“그러면 코치님도 경기 중에 저랑 같이 있는 거네요?”
“그렇게 됐어.”
“너무 좋아요. 이거 기합 팍 들어가는데요.”


라비는 꺄악거리며 좋은 의미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셔? 그래야 재밌지.”
“...응? 누구?”

도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비와 나는 뒤를 돌아봤다.

팔짱을 끼고 있는 약간 작은 체구. 자신감에 가득  눈빛.
복잡하게 꼬아 매듭진 황금빛 금발의 머리.

앗, 저 여자애는…

‘앨리스 로잘레스. 실물로 보긴 처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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