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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두번째 대회, 메이즈(3) (13/109)



〈 13화 〉두번째 대회, 메이즈(3)

“허억, 헉…”
“후… 처음 맞아요? 제법인데요.”

지하 4층까지 돌파한 라비와 마하.
슬슬 마하의 표정에 여유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도 그렇겠지. 디펜딩챔피언, 지역대회 최고의 베테랑인 마하가 쌩초심자 라비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초조할거야.
근데 뭐 어쩌겠나. 이게 재능의 차이인 것을!

...그리고 내 전략도  들어맞았다는 거고.

그녀들은 마지막 트랩을 막 통과한 참이었다.
움직이는 자동 경비견 로봇과 전기 트랩, 마취가스 트랩의 3단 콤보.

다음에 남은 건 이제 하나밖에 없다.

지하 5층, 황금의 완드 찾기!

이전 지하 3층에서 여러 장소에 흩뿌려져 있었던 진짜 ‘황금의 완드’에 대한 정보.

그것을 토대로 수십개의 가짜 황금의 완드 중 진짜를 챙겨, 다시 1층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끝이다.

지금까지의 악마같은 트랩 도배와는 달리 의외로 지하 5층엔 어떤 트랩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의도는 명확하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지하 최하층 거대한 아레나는 노골적으로 선수들끼리의 난투를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선두에 선 쪽은 가장 먼저 지하 5층에 내려온 후, 가급적 신속히 진짜 황금의 완드를 찾고 싶을 것이다.

잠시 후면 뒤따라온 선수들이 속속돌이 도착해 이 플로어는 개판이 될 게 뻔하니.

마하의 생각도 그런가보다.

더이상 라비를 신경쓰지 않고 즉시 황금의 완드부터 찾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승부처!

때마침 작전타임에 도달했다. 지금부터 단 5분간, 플레잉 코치가 훈수를 둘 수 있다.

“라비야!”
“아, 코치님!”
“일단 진정하고, 내 말 들어. 작전대로 간다!”
"예!”


뭐 그렇다고 갑자기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진 않는다. 그래봐야 혼란만 가중될 터. 지금은 미리 정한대로 가는게 베스트.

이 지하 경기장은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어 맨 밑인 지하 5층은 가장 넓다.
일일이 와드를 찾아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만해도 시간이 무지 든다.

그렇다면야…

***


“다행히 앨리스는 아직입니다. 라비 쪽은 처음이라 헤맬테고요. 초조해할 것 없어요. 하던대로 갑시다, 마하 양.”
“...네. 정신 사나우니까 잠깐만 조용히 좀.”


마하는 쫑알거리는 햄스터, 라이스 코치의 입을 닫았다.
그녀정도의 레벨이라면 더이상 경기 중에 남의 도움은 크게 필요치 않다.

작전타임이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1초라도 빨리 황금의 완드를 찾고, 확인하는게 전부다.


“손잡이에 빨간색 띠 2개, 둥근 파란색 보석. 이건 아니고.”

완드가 가짜라고 판명이 나도 일부러 제자리에 제대로 꽂아넣었다.
내팽개쳐져 있으면 누가 봐도 가짜인게 뻔해보이니.
뒤따라 오는 다른 선수들을 헷갈리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지금 5개  확인, 뭐 아직은…”


대략 이곳의 총 완드는 30개 남짓. 아직 진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도 운이 나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슬쩍 라비 쪽을 돌아봤다. 저쪽은 종횡무진, 무방비한 움직임. 역시 초보의 그것이다.
그런데 뭔가…

“어?  빠르지 않나…?”

전력으로 달리고 있다.

물론 서둘러야 하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달릴 일인가? 지금은 하나하나 완드를 침착하게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라비가 마하보다 빠른 건 아까부터 눈치챘지만,
이젠 그냥 달리기만 한다고  일이 아닐텐데...


“아… 설마…”

마하는 깨달았다. 라비는 그냥 달리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품에 잔뜩 안은 저것들은…

“마하 양.”
“예. 저도 알아요.”


라비는 수십개의 완드를 전부 들고 튀고 있다.

...일일이 여기서 하나하나 확인할 생각이 없다는 뜻.

마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개판으로 만들고 싶다 이거구나.

멋진 전략이야.


***


“이거 아니야, 다음!”
“옛!”


라비는 위태위태하게 가짜 황금의 완드 꾸러미를 안고 질주했다.
나는 그 옆을 나란히 날며 라비가 하나씩 보여주는 완드를 체크했다.

원래 전략대로면 달려가면서 라비 혼자 품 안의 완드들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이렇게 분업이 가능하면 일은 훨씬 편해지지.

예상에 없었던 플레잉 코치 시스템에 더해, 딱 맞게 작전타임까지 겹쳤다. 지금부터 약 5분은 그야말로 피버타임!

이보다 운이 좋을 수가 없다.

라비는 그냥 완드를 전부 들고 튀는 거에만 집중하고, 진품 확인은 내가 한다!
오직 나는 옆에서 완드를 보고 말만 하고 있을 뿐이다. 룰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거기 서요! 다 들고 튀면 어떡해?”
“트래쉬 코치님! 비겁합니다!”


뒤에서 디펜딩챔피언 듀오가 쫓아오고 있다.
라이스 븅신아, 비겁은 개뿔!
전략이다. 이정도는 예상했어야지.


“어, 이거…”


진짜 황금의 완드! 드디어 찾았다.
나는 눈이 튀어나올정도로 놀랐다.
두번 세번 확인했다.

“라비야, 이거, 이거, 이거...!”
“코치님, 이거? 이거?”
“응, 이거!”


우리는 잠시 대명사로만 대화를 나누었다.
어딘가 언어능력에 문제 있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은 이루어진다.

미친듯이 운이 따라준다.

우리에게 이기라고 깔아준 판이다.

지하 5층에 내려갔을 때 마하쪽에서 진짜 황금의 완드를 찾지 못한 건 솔직히 운이다.   안된다지만 엄연히 그쪽에도 진짜가 있었을 수 있으니.

더욱이 작전타임 5분 안에 진짜 완드를 발견해낸 것도 베스트.

이제 들고 튀기만 하면 우승이다.


그러면 더이상 가짜 완드들을 이렇게나 많이 들고다닐 필요가 없지.

라비는 작전대로, 한 개의 황금의 완드만 손에 쥐고 나머지 완드들은 발 밑에 던져버렸다.

“마하 양! 찾았나 봅니다! 라비가 들고 있는게 진짜 황금의 완드예요!”
“오케이, 직선 주로에선 저쪽이 빠르지만 어차피 저 속도를 끝까지 유지할 순 없어요.  따라잡아서 뺏으면 그만.”


마하 쪽도 다급한 모양이다. 라이스가 큰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맘처럼 될까?
나는 속으로 웃었다.

<메이즈>는 지하5층까지 내려가는 코스는 힘들어도, 다시 올라가는 코스는 내려갈 때의 코스와 달라 트랩이 거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왕복 코스가 아니라 편도 코스인 셈이다.

변수는 경쟁하는 선수끼리 따라잡냐  따라잡냐 그것만 존재한다.
마하로서는 라비한테서 완드를 뺏는건 무리다.

뺏길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응, 여기까지 들고 와주느라 수고했어~”

순간 눈 앞에 뜨거운 불길의 폭풍이 몰아쳤다.
이런 짓이 가능한 사람은 단  명.

앨리스 로잘레스.

***

일순간 태양이 나타났다고 착각할만한 어마어마한 열기와 빛의 파도.
눈이 멀어버리기라도 한듯 백색의 섬광과 알록달록한 반점만 내  앞을 가득 채운다.

다시 시력이 돌아온다 싶을 즈음에 고온의 증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라비는 온 몸이 그슬린 채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올리며 천천히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아하하, 어차피 알아서 가져와 줄텐데 일일이 고생할 필요 없지~ 안그래?”


앨리스가 여유롭게 웃었다.

이 년…

처음부터, 직접 지하 5층에서 하나하나 완드를 살펴보며 찾을 생각이 없었다.

라비와 마하가 지하 5층에서 완드를 찾는 동안 슬며시 질러가, 미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근거는 하나, 자기의 전투 능력이라면 무조건 뺏을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은 사실에 가까웠다.


‘저게 불의 마법… 이름만 들어선  몰랐는데 씨발 개사기아녀. 이게 스포츠냐?’


좁지 않은 통로 전체를 꽉 채우는 화염의 폭풍!

회피 불가능의 광역기다.

레이저를 맞고도 뻗지 않았던 라비가 일격에 쓰러졌다. 바로 일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화력 조절한 거 맞냐?
사람 죽이려고 쓴 거 같은데?
반칙! 쟤 좀 실격시켜요!

나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언젠가  번은 우리 앞을 가로막을거라 생각했는데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정면승부는 진짜 노답이겠군.’


앨리스는 라비 옆에 떨어진 황금의 완드를 집어 들었다.

“아, 이거구나? 황금의 완드란게. 흐응… 쉽네. 갖고 올라가면 끝이네. 이번 대회도  시시하구나.”

라비는 일시적으로 데미지를 너무 받아 저항하기 힘든 상태였다. 앨리스는 그런 라비와 나를 힐끗 바라봤다.

“뭐, 힘조절은 했으니까. 화상이야 좀 입겠지만… 금방 나을거야. 요즘 의료기술이면 흉도 안져. 그럼 난 그만 가볼게?”

천천히 멀어져간다. 굳이 뛸 이유도 없다는 듯, 여유롭게.

그 때 우리 곁을 지나가는 선수 한 명.

안봐도 뻔하다. 마하구나.

“후우… 이번엔 너야? 됐고, 그거 내놔.”
“누군가 했더니, 오랜만이네요. 디펜딩챔피언씨.”


앨리스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아무리봐도 비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하의 뒷 모습에서 ‘빠직’하는 스파크가 튀는 것 같다.


“참, 한 명은 다짜고짜 전부 들고 튀지 않나, 한 명은 하이에나처럼 대기나 타고 있지 않나…
성실한 사람은 나 밖에 없네.”
“성실? 멍청한 사람이겠죠, 후후.”

우와, 폭발 직전의 일촉즉발의 분위기. 둘의 감정의 골은 이미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하지만 방금 위력만 보면 마하도 절대 못이길 것 같은데… 휘말리지 않는게 상책이다.’


라비야, 일어나라!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 일어나야 해.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라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천천히 고개를 든다.
찬 바닥에 대고 있던 뺨이 납작하게 눌려있다.
라비는 잠시 기절했었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작전타임이 끝났으므로 난 어떠한 말도 해줄 수 없다. 그녀 스스로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할 수 밖에…

라비는 반쯤 감은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끄덕.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날 안심시키려는지, 억지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따봉.
무리하지마, 라비야. 안 괜찮은거  알아.

살짝 무릎을 후들거리지만,  짧은 시간동안 이정도로 회복한 것도 대단한거다. 스킬 ‘회복력S’의 위엄.

전방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예의  섬광과 열기. 전투가 시작되었나보다.

라비는 비틀거리며 왔던 길을 돌아갔다.

***



“시시해, 정말로 시시해.”

앨리스는 중얼거렸다. 역시 별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압도적인 힘 앞에는 8회 우승의 경험이건 뭐건 아무의미도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대비는  모양이었다.

마하는 라비처럼 넋놓고 있다가  방에 당하진 않았다. 지형지물을 활용해 몇 번이나 화염폭풍을 피하고, 페이크 움직임을 섞어가며 앨리스가 오조준하길 노렸다.

사전에 앨리스의 ‘불의마법’에 대한 대응을 준비했다는 증거다.

뭐 그래봐야 거기까지. 10초면 끝날게  1분 정도로 시간을 끌었을 뿐이다.


살짝 머리가 어지럽다. 앨리스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단시간에 마법을 연속으로 많이 쓰긴 했어. 쳇…’

그러나 경쟁자는 전부 사라졌다. 조금 걸은 들 누가 그녀를 위협할 수도 없을 터.


눈 앞이 결승점이다. 황금의 완드, 챙겼고. 이제 나가기만 하면 끝이다.


‘어, 뭔가 소리가 들리는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뛰어오는 소리. 누구야? 마하는 최소  시간은 꼼짝도 못하게 태워버렸는데.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그 하얀 머리의 여자애다.


앨리스는 살짝 놀랐다. 쟤도 화염폭풍을 직격으로 쳐맞아 금방은  움직일텐데?
저 여자애, 생각보다 훨씬 더 튼튼한가보다.


“어머, 용케 따라왔네. 라비.”
“헤헤… 자신있는게 속도랑 맷집뿐이라서요.”

실실거리며 헤프게 웃는다. 거슬려. 앨리스는 생각했다.

“뭐 놓고 온게 있나봐? 이건가?  완드 갖고 싶어?”


황금의 완드를 들어보였다. 한발짝이라도 다가오면 또 한번  화염폭풍을 먹여주지.

“네. 갖고싶어요.”
“그러면 뭐하고 있어, 와서 가져가.”
“...”
“5초 동안 기다려줄게. 5, 4, 3…”

앨리스는 깔보는 시선으로 라비를 내려다봤다. 나름대로 쟤는 속도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봐야 이 거리에서 화염폭풍을 피하는  무리다.

게임은 끝났다.
결승점 직전에서 따라잡은 건 칭찬해주지.
이제 거기서 나한테 우승을 축하하며 박수라도 쳐주도록 해.


“...1,0. 뭐야, 올 생각 없어? 그럼 난 간다.”
“...”

아무 말이 없다. 재미없기는. 여기까지 와놓고 이제와서 무서운거야?


앨리스는 과시하듯 황금의 완드를 들고 결승점을 넘었다.

“정말로 시시해.”


***

앨리스는 승리에 취해있었다. 라비는 뻘쭘하게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얼떨떨한 표정. 나는 생각했다.

‘결국 앨리스를 정면에서 압도하는 건 무리였구나.’


세상은 넓다. 라비의 피지컬로 모두 이길 줄 알았건만. 이런 규격 외의 괴물이 있었다니.

경기 종료를 알리는 팡파레가 울려퍼졌다. 앨리스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회 아나운서가 열광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 정말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이번 대회 우승은 놀랍게도~


앨리스,  확실히 대단하긴 해.



-<홍삼&인삼 파워 스포츠>의 라비 선수!!!



근데 어쩌나, 우승은 우리야.

앨리스의 표정이 미소에서 정색, 충격으로 슬로우모션처럼 바뀌어간다.
나는  표정을 느긋하게 음미했다.

순간 뭐라 말할듯이 입을 연 앨리스. 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자기 손에 들려있는 황금의 완드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녀의 눈썹이 서서히 치켜올라간다.


“이거 찾습니까? 앨리스 선수.”


내가 능글맞게 말을 건넸다. 라비가 어색한 표정으로, 품에서 꺼냈다.


‘진짜’ 황금의 완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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