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경쟁자(2) (24/109)



〈 24화 〉경쟁자(2)

“요새 뭐 걱정 있어요?”
“...응? 아니, 없어. 왜?”
“기운이 없으신  같아서요.”

이 세계에서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은 라비밖에 없다.

지금까지 알아본 결과 ‘트래쉬’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계신다. 형제조차 없다.
이런 점은 전생의 진수현과 똑같다.

그래서 더욱 애정을 갈구하며 주변 여자들에, 따뜻한 품에 이끌리는 걸지도 모를 일이고...

묘한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으니까 과연 신인지 뭔지 모를 누군가가 ‘살아온 인생이 비슷하다’며 날 빙의시켰을 수도 있다.

나는 머리칼 사이에 손을 넣어 흐트러트리듯 라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난 괜찮아.   거나 잘하세요. 크크.”
“진짜죠?”


여전히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라비. 참 이럴때는 눈치가 빠르다.

“그럼.”

훈련 5일차.
사실 라비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난 요즘 크나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씨발… 상대가  너무 강해.’


이전의 세이린, 마하, 앨리스를 상대할때는 이 정도의 압박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녀들의 능력은 상식 선의 범주였고, 앨리스의 ‘불의 마법’도 강력하지만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다.
판타지 세계니까 서로 투닥거리면 이 정도되는 인간도 있기야 하겠지, 싶은.

전투력 최강이라는 <블랙 이글>의 유우&라이카도 능력은 사기적이지만 상식 수준이다.

하지만  한 명만큼은 얘기가 다르다.

‘심안의 성녀’ 오팔라.



 세계에서 처음으로 난 내 인지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벽을 느끼고 말았다.

굳이 열심히 찾아  것도 없었다.

오팔라의 능력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이었기 때문.

그건 바로,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치트잖아! 어떻게 상대하라는거야.’

이런 능력을 가진 선수를 상대로 스포츠란 게 성립하긴 하냐? 싶을 정도였다.

쓰고 싶을 때마다 쓸 수도 없고 페널티. 제한도 크다고 가정해야, 아니 그래도 밸런스가 안 맞는 능력이다.

모든 스포츠의 섬세하게 짜여진 룰과 균형을 붕괴시키는 능력.

애초에 왜 만능 스포츠같은 걸 하고 있냐? 이 세계엔 카지노, 도박장도 없어?
고작 스포츠 계에서 썩기에(?) 아까운 인재다.


‘후우… 미치겠군.’


이미 수없이 많은 감독들이 오팔라를 상대로 대응방안을 준비하며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거다.

대인전 상대로 마음을 읽는 능력은 무적이나 다름없다. 이쪽에서 준비한 모든 전략은 낱낱이 까발려질테고, 상대측은 절대로 우리 입장에서 하길 바라지 않는 그 행동을 핀포인트로 해버릴 것이다.

나도 일단은 대응방안을 알아봤다.

대체로 여러 감독들이 취한 전략은 세 가지가 있다.

첫번째. 오팔라가 마음을 읽어도 아무것도 못하도록 보자마자 문답무용으로 공격해 쓰러트린다.

대부분의 팀에서 채택하는 전략이다.
심지어 자기 선수의 반칙, 퇴장까지 각오할 정도로.
오팔라 본인의 피지컬은 그렇게까지 대단하진 않은지 의외로 종종 먹히고 있나 보다.

다만, 마음을 읽는다는 건 상대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것도  수 있다는 뜻.
‘공격하려는 의사’를 파악하고 반대로 오팔라 쪽에서 역관광시켜버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두번째, 정신 방어의 능력으로 마음을 보호한다.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다면 반대로 마음을 숨기는 능력도 있었다.
정신에 일종의 방어벽을 설치해, 마음을 멋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능력자도 희소하긴 마찬가지라 아무 팀에서나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세번째, 오팔라와 마주하지 않는다.

철저히 운에 맡긴 방법이다. 경기 내내 오팔라와 마주치지 않도록 기도하며 그저 자기 플레이를 한다.

엄밀히 말하면 대응방안이라기보다 희망사항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한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다.
뭔가 효과적인 전략을 짜내야 하는데...
큰 숙제거리가 주어진 심정이다.

***

무능한 감독이었지만 그동안 내가 지켜온 하나의 철칙이 있다.

바로 내 고민과 우울함을 팀에 전염시키지 않는 것.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을 주변에 옮기는 건 금물이다.

이런 타입은 분위기가 좋을 땐 기분파, 유쾌한 감독이 되지만 감독 멘탈이 박살나면 팀도 같이 시궁창에 빠진다.
감독 눈치만 보며 팀원들이 전전긍긍하는 망한 집구석처럼 되는 것이다.

그래, 간만에 쉬는 날이다. 난 끙끙거리지 않고 즐기자고 맘먹었다.

오늘은 오전 시간에 우리 팀이 짧은 휴식을 갖기로 했으니까.

시내에 나가, 앨리스와 라비 생필품도 보충하고 기분전환 좀 시켜줘야겠다.



“후, 무지 괴롭네. 이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니…”

앨리스가 디저트 가게의 진열장 속 다양한 디저트들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여러 개 골라도 돼요. 제가 쏠게요.”
“코치, 마음은 고맙지만… 선수잖아. 아무거나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야 없지.”
“하지만 앨리스 몸 관리는 아주 철저하게 잘 되어 있어요. 군살 하나 없다구요. 조금쯤은 먹어도…”

앨리스가 피식 웃었다.

“뉘앙스가 이상하잖아? 코치가 내 몸에 대해  그리 잘 아는 듯이 얘기해. 남들이 들면 오해하겠어.”
“그야 매일같이  손으로 체크하고 있으니까요.”
“...그만, 그만! 아 싫다 싫어. 코치가 얘기하면 다 음흉하게 들려.
그냥 마사지일 뿐이라고.”


최근 앨리스는 심경이 바뀌었는지 내 마사지를 적극 주문해 받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앨리스.”
“응?”


라비가 끼어들었다.

“시키고 싶은  다 시켜. 그리고 한입씩 맛봐. 남은건 나하고 코치가 마저 먹을게.”
“...오. 그거 괜찮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테이블 위엔 마카롱, 크레이프, 티라미슈, 쇼트케이크, 도넛, 와플, 슈크림…
온갖 달디  디저트들이 늘어섰다.

‘당분간은 긴축재정이다. 돈이 남아나지가 않겠어.’

맛있는 걸 먹는데 돈 얘기를 꺼내는 순간 분위기가 씹창나니 난 속으로 자제하고 그저 흐뭇한 미소만 지었다.

이 돈이면 국밥이 몇 그릇이냐…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디저트 하나가 국밥 한그릇과 가격이 비슷하다는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거 진짜 맛있어. 먹어봐 앨리스.”
“뭐, 나쁘지 않네. 생크림이 고급품은 아니야. 그래도 먹을만은 해.”

앨리스는 음미하듯 반쯤 눈을 감고 오랜만에 맛보는 단맛을 즐겼다.

좋은 기회다.


“이 길쭉한 초코빵 쥑이네요. 안에 크림도 들어있어요. 앨리스, 한 입 먹어봐요.”
“초코빵? 아하하. 에클레어라고 해. 코치, 촌스럽기는.”

앨리스는 몸에 당분이 돌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가  입 베어 문 것도 신경쓰지 않고 에클레어를 맛봤다.


띠링~


[LOVE파워 사용]

[애정표현: 간접 키스

그걸 아십니까?

당신과 앨리스가 같이 맛본 에클레어는 프랑스 어로 ‘번개’를 의미합니다.
초코 표면의 균열이 번개모양이라는 설도, 혹은 안의 크림이 흐르니 번개처럼 빨리 먹어야 해서라는 설도 있죠.

어쨌든 중요한건, 이 세계에는 프랑스라는 나라도 없는데 에클레어라는 이름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앨리스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애정 1단계 보너스.
트루러브 보너스.

기교: 14 (+1) ]

[앨리스는 간접키스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당신과 라비와 함께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라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앗.
얘는 은근히 소유욕이 세고 질투심도 강한 아이다.

설마 무슨 미연시마냥 이쪽 호감도를 높이면 저쪽은 낮아지고 이런 건 아니겠지?


“코치님, 저도 그거 주세요. 헤헤.”
“응. 여기.”

팔을  뻗어 반대편의 라비에게도 먹여줬다.
라비 마음 속에 아주 미세하게 떠오른 먹구름이 사라졌는지 그녀는 다시 행복하게 웃으며 혀로 초코크림을 핥았다.

“라비야, 혀로 핥아서 깨끗해질 거면 세상엔 티슈란 걸 개발할 이유가 없었겠지.”
“에에…”
“이리 좀 바싹 들이대봐. 닦아줄게.”


물티슈로 입가에 묻은 크림을 꼼꼼히 닦아줬다.

“감사합니다.”
“코치라기보다 보모 같구만. 앨리스도 일로 와봐요. 닦는 김에 닦아줄게요.”
“뭐? 난 됐어.”
“조금 묻었어요.”
“내가 닦으면 돼.”
“에헤이~”


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앨리스는 단 것을 실컷 먹고(조금만 먹어야지 했던 그녀의 처음 결심과 달리) 심리적 가드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다.

약간은 내가 제멋대로 굴어도 될 정도로.

티슈를  장 뽑아 앨리스의 입가도 닦았다.
치과에서 말 안 듣는 아이마냥 고개를 휘휘 저으며 피하다가,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는 듯 체념하고 가만히 있는 앨리스.


“나 참,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크크.  다 깨끗하네요. 만족스럽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코치.”


[LOVE파워 사용]

[애정표현: 입가 닦아주기

사랑하는 사람은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어도 예뻐보인다고들 하죠.
하지만 안 낀게  예쁩니다.

미인은 관리하기 때문에 미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주세요.


앨리스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애정 1단계 보너스.
트루러브 보너스.

근력: 14 (+1)
속도: 17 (+1) ]

[앨리스는 당신이 그녀를 어린아이 취급하는게 불만스럽습니다.]
[앨리스는 당신과 어울리는걸 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좋았어. 이 정도면 앨리스가 체감할만큼  능력치가 올랐다.

앨리스는 마사지의 효과때문인  알고 있겠지만.

이 디저트가게에서 퍼부은 돈이 얼만데.
국밥이  그릇이냐 이 말이다.

 정도는 당연한 보상이지.



***



“살 거 다 샀나요? 슬슬 돌아갈까요.”
“나는 볼 일 다 끝났어요, 코치님.”
“음…”

이제 훈련장으로 돌아가면 오후엔 실전 훈련이 남아있다.

첫 날 했던 탈출 훈련. 다만 그 때는  혼자 간수역할을 도맡았지만,

이번엔 레이지 아재, 나, 우리 <24시간 큰손 그랜드파더 순대국>의 팬 세 명이 5인의 간수가 된다.

고맙게도 메리와 그녀의 부모님까지 열성 팬으로서 우리 훈련을 도와주기로 했다.

쉽지 않을거다.

라비와 앨리스로서는.

“아, 코치. 나 잠깐  좀 빼먹고 온 게 있어.”
“뭔데요? 같이 갈게요.”
“으휴, 눈치없이. 말해야 알아? 코치하고 같이 사고 싶지 않은거야.”
“...아.”
“뭐가 깨달았다는 듯이 ‘아’, 야. 하나하나 눈치가 없네.”
“알았어요. 앨리스, 여기 돈 줄테니까…”
“흥.”


여성용품인가.  나이도 그렇고 이상할 일은 아니지.
오히려 내가 앨리스 말마따나  센스가 없었다.
여자 선수들은 특히 그쪽으로도 신경써서 챙겨줘야 컨디션 조절에 도움이 된다.


“그럼 저하고 라비는 여기 벤치에서 기다릴게요. 천천히 갔다오세요.”
“응.”
“조심해서 갔다와~”

앨리스는 다시 상점가로 멀어져갔다.


“하지만 이상한데요? 코치님.”
“왜?”
“아마 코치님, 앨리스가 ‘그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음…”
“근데 저는 하루 종일 앨리스하고 같이 있잖아요. 어지간한건 알게 되죠.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그거’는 벌써 끝났어요.”
“뭐 용품이 떨어져서 미리 보충해두려나 보지.”
“이상하다? …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앨리스니까  생각이 있겠죠.”

라비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깊게 생각하는 건 그녀의 성미에 안 맞는 일이다. 복잡한 생각을  털어버리듯 상큼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코치님, 하나 질문이 있어요.”
“뭔데?”
“저하고 앨리스중에 누가 더 좋아요?”

쿠궁.

조금 갑작스럽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아니, 갑자기?

근데 의외로 라비의 표정은 그리 무겁지 않다.
생글거리며 눈에 장난기를 담아, 내 반응을 살피고 있다.


“누가 더 좋긴. 코치는 어느 한 선수만 편애하지 않는단다.”

실제론 당연히 구라다. 현실에서 특정 선수를 편애하지 않는 감독은 매우 드물다.


“으응~ 선수 말고요. 개인적으로.”
“그럼 너지.”
“헤헤.”

라비가 만족했다는 듯 쿡쿡 웃었다.

“근데요, 있잖아요.”
“...”
“앨리스도 아껴주세요, 코치님.”
“엥?”
“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애예요. 어쩌면 저보다도 더.”
“그래…?”
“처음엔 저도 걱정했어요. 앨리스가 너무 뛰어나서, 코치님을 저한테서 뺏어가진 않을까 하고…”
“...”
“근데 그런 고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라비는 멀리 날아가는 참새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벌써 가을이 다 되어간다. 바람이 기분좋게 내 뺨을 간질인다.


“코치님이 저와 앨리스를 사랑해주는게… 팀에도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헤헤, 무슨 말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셋이 사이좋게 지내야 으쌰으쌰하면서 팀도  나간다, 그 말을 하고 싶은건가?”

전부터 느꼈던거지만 라비는 묘하게 감이 좋다.

설마  능력을 눈치챈건가?
까놓고 말해서 정황 증거는 차고 넘쳤다.
당장 라비의 있을  없는 능력치 향상부터가, 그녀와 내 사이가 가까워지기 시작한 시점과 겹치는 것이다.


선수로서 아무리 둔감하다해도 이정도 대폭의 능력치 향상이 있으면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정확히 내 능력이 뭔지, 어떤 메커니즘인지 그것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마 기껏해야 ‘내가 사랑한 사람은 능력이 오른다’ 정도로 애매하게 이해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그냥 전부 내 섣부른 어림짐작일수도 있지만…

그렇다해도…

얘한테라면, 솔직히  ‘LOVE파워’에 대해 말해도 괜찮다.

말해버릴까?

“아, 저기 앨리스 온다. 코치님, 저희 숨을까요?”
“응?”
“숨었다가 깜짝 놀래켜줘요. 앨리스 안절부절하는거 보고 싶어요. 키키…”

라비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참, 의외로 방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애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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