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세번째 대회, 이스케이프(4) (30/109)



〈 30화 〉세번째 대회, 이스케이프(4)


“아니, 아니, 그건 좀 무리예요.”

마하가 즉답했다.


“왜?”
“<로즈 엔젤스>면 거기잖아요? 마음을 읽는 오팔라가 있는.”
“...”
“<블랙 이글>도, 호전성이 너무 높아서 걸렸다간 가차없이 공격당할걸요.”

앨리스가 망치를 쾅 내리쳤다. 짜증난 모양이다.


“그럼 하지 마. 됐으니까. 협상 결렬.”
“후우…”


마하는 손을 이마에 대고 잠시 생각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한다고 치면, <블랙 이글> 한 팀만 감시하는  한계예요. <로즈 엔젤스>와 마주치면 저희 전략이 그대로 노출당해버릴테니까요.”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그래도 이것만은 양보 못해요. 저희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탈락해서야 농담도 못되니까.”
“너네 계획이야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대로면 우리가 너무 손해잖아.”

앨리스와 마하의 협상 테이블은 쉽사리의견조율이 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다 세이린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그러지 말고, 앨리스님. 대신에 저희가 보너스를  더 얹어드릴게요.”
“보너스?”
“네. 저희 쓰고 남은 재료나, 도구 전부 다 <홍삼 스포츠>쪽에서  수 있게 드린다면 어때요?”
“우리가 카본파이프니 천막 같은 걸 가져다 뭐에 쓰라고.”

말이야 좋지 그냥 우리한테 남은 것들 짬 시키는 거 아닌가.
하지만 기본적으로 목공 노역을 택한 이유가 도구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던 만큼, 이야기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면 다른 것도 최대한 구해드릴게요. 대신 저희 재료부터 다 입수한 다음에.”
“...삽, 곡괭이, 망치, 정, … 등등. 가능해?”


마하가 혀를 찼다.


“욕심도 많네! 어디 노가다 뛰러 가세요?”
“아니, 너네가  이상한 거 아냐? 당연히 감옥 탈출할  이런 도구부터 챙기는게 정석이잖아.”
“...끄응.”


마하는 자기들의 계획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지 이 주제의 대화를 꺼리는 게 역력했다.
<블루 윙 스포츠>의 두 여자애는 가만히 시선을 교환한다.

“알았어요. 공구들도 챙겨요. 대신에 우리 것부터 챙기는 게 먼저. 알겠죠?”
“<블랙 이글> 감시하는 것도 빼놓지 말라고.”

앨리스가꼼꼼하게 덧붙였다.


뭐, 우리 쪽도 크게 아쉽지 않은 괜찮은 협상이다.
경쟁자의 입장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든든한 앨리스 덕에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마무리했다.

감옥 측에서 맘만 먹으면 이런 어설픈 횡령쯤이야 적발하고도 남았겠지.
하지만 마하 말마따나 너무 노골적으로만 하지 않으면 잡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도구들을 빼돌려서 어떤 식으로 탈옥할지에 관중들의 관심이 쏠려 있을 테니, 이 부분은적당히 넘어가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대놓고 품안에 가득 안고 ‘저 이거 망치 좀 쓸게요. 문 부실  필요할 것 같아요’ 하면서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의상 숨기는 척이라도 잘 해야 한다.

그래서 도구들을 빼돌릴 기회는 하루의 작업 시간  몇  찬스가 나지 않았다.

마하와 앨리스가 조력자들을 필요로  이유도 납득이 갔다.

두 명이서 옮기면 적어도 2~3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러면… 곡괭이, 소형 삽. 우리는  개 가져간다.”


부품 별로 분해한 간이공구지만 분명 쓸모가 있을 터.


“그리고 니네꺼 망치도 나중에 내놔. 그것도 우리 쓸거니까. 
“...”

마하가 질렸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저쪽은 원하는 재료를 반 이상 모았다.
오늘, 내일 작업하면 <블루 윙 스포츠>의 계획은 어떻게든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게 성공하냐 실패하냐는 자기들 하기에 따라 달려있겠지만.

꼭 실패해라. 키킥...

나는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
18:15 저녁 식사 후, 휴게실


복도에 선수들이 모여 있다.

웅성웅성.


“응? 뭔일이지?”

라비가 고개를 쭉 내밀고 사람들 사이를살폈다.
인파의 중심엔 지글지글타버린 선수  명.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핑크 엘리펀트 스포츠>의  명이당했어! 와… 뭐냐 이거.”
“갑자기문에서 벼락과 불길이…”


문? 불길?
무슨 일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라비가 고개를 갸웃하며 옆의 선수에게 물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일텐데 붙임성도 좋다.

“저기, 무슨 일이에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듣자하니, 식사를 일찍 마친 <핑크 엘리펀트 스포츠>팀은 먼저 휴게실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문의 손잡이를 잡은 순간 휴게실 문에서 거센 불꽃 폭풍, 번개 줄기가 뿜어져나와, 둘을 바베큐로 만들어버렸다고.

한 발짝만  가까이 갔으면 자기도 휩쓸렸을거라며 얘기하던 선수는 몸을 떨었다.


“히익~~”

라비가 어깨를 움츠리며 떨었다.


“아마 감옥에서 무슨 함정 같은 걸 설치한 거 같아. 이런 말은 못들었는데… 너무 치사하잖아!”
“그래, 무슨 트랩이야 이게? 뭐 피할 수도 없이. 순 운빨아녀.”

불만에 가득찬 선수들. 그럴만도 하다. 설령 게임이라도 이런 식으로 맵을 짜놓으면 개씹좇망겜이다.

불과번개라…?
뭔가 머리 한구석에 스치는 생각이 있다.

앨리스도 나와 마찬가지인모양이었다.
라비의 어깨를 톡톡 친다.

“잠깐만 저쪽에서 얘기좀 하자.”

우리는 남들이 오가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갔다.

“코치는 지금 말할수 없으니까 대답은 못하겠지만, 아마 나하고 생각이 똑같을거야. 같은  봤으니까.”
“응? 앨리스, 그게 무슨 말이야?”
“...저거, 나 때문인 것 같아.”

앨리스가 이실직고했다.


“엥? 앨리스가 문에 함정을 설치했다고? 왜? 어떻게?”
“아니, 내가  건 아니야. 점심 시간에 라이카하고 잠시 한 판 붙으러 저 휴게실로 갔었지?  때  일거야. 아마도. 우리 둘 다 주변 신경쓰지 않고 마구 마법을 갈겨댔거든.”

분명히, 화염과 번개가 동시에 연관된 일이라면 점심 때의 그 전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왜 문에서 갑자기 불과 번개가 쏟아져나온걸까?

“나도 라이카도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저 문이 문제야.
‘마력흡수석’알고 있어?”
“몰라!”
“...”


0.1초만에 즉답하는 라비. 앨리스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겠지. 마력흡수석은 자기에게 가해지는 마법을 흡수해 저장했다가, 조건이 되면 다시 방출할  있는 돌이야.

무기나 전함의 엔진 등으로 다양하게 쓰여.
근데 저 문이 그걸로 만들어진  같아.”
“...아…”
“이해 못했구나, 바보. 괜찮아. 어쨌든 요점은 저 문을 조심해야 한다는거야.”
“근데 왜 문을 그걸로 만들었지?”

거야 간단하지.
방금처럼 섣불리 마법을 쓸 경우 역관광시키기 위해서다.

마법을 쓴 사람이나, 아니면 다른 누구라도 불운한 누군가가 마법을 흡수한 문을 멋모르고 건드리면 저렇게 좇되는 것이다.


“감옥측에서 일종의 함정처럼 설치한거지. 나나 라이카도 우연찮게 문을 건드렸다면 저 꼴이 됐을거야. 자기가 쏜 마법에 역으로 휘말려서.”


감옥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부상으로 인해 두 명 탈락.
운도 지지리도 없지, 녀석들.

하지만 정말 방비가 철저하다, 이 감옥.
벽은 마법 무효, 건물의 문은 마법 반사.

마법 능력자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는 건물이다.
어쩌면 그 언젠가 옛날의 대회에서 마법으로 날먹 탈출을한 선수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분명 담당자가 아주 개박살 났겠지.

-김과장(?) 이게 뭐야! 장난해!
이번대회 우승자 좀 보라고.
대회 시작하자마자 마법 써서 건물 부수고 나가버렸잖아, 말이나 돼!
-아니 저 그게…
-됐고, 시말서 써! 1년마다 열리는 대회가 이따구로 끝나면 누가 좋아하나?
-마법이란게 영 대처하기가 힘들어서…예산도...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했어?

...같은 슬픈 에피소드가 있었을지도.
 결과가  집요한 대(vs)마법 감옥.


어쨌든 중요한 순간에 당황하지 않게 이런 정보를 미리 알아둬서 다행이다.
요긴하게 쓸 수 있을까?

***
-19:30 감옥 안


잠깐의 자유시간 동안 라비와 앨리스는 감옥을 돌아다니며 내부 구조를 탐사했다.

사각형의 형태로 줄줄이 늘어선 감방이 둘러싸고 있는 홀.

식당,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던 휴게실.

배관실, 경비실, 간수실. 여기는 보안구역이라들어가지 못하고 겉으로만 살짝 보고 나왔다.

지하 오물 정화조, 전력실, 창고, 도구함.


“대강 이쯤인가.”
“음… 뭐 감옥이니까 그렇겠지만, 빈틈이 잘 안보이네.”

 좋은 탈출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라비와 앨리스도 마찬가지인모양.

감옥 안에 던져지면 어떻게든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른 팀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코너에서 다른 팀 선수들과 마주쳤다.

“앗…”
“어머나.”


회색 머리의 차분하고 고요한 인상을 한 ‘심안의 성녀’ 오팔라다. 시중 드는 메이드처럼 쿠미도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닌다.

하필 이런데서 마주치다니!

죄수복을 입은 오팔라는 마치 불합리한 이유로 박해받는 오래된 교회의 성녀같은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비하고, 앨리스 선수군요. 이쪽은… 트래쉬 코치님일까요.어머, 귀여워라.  바디, 마음에 들어요.
...실례합니다, 저는 <로즈 엔젤스>의 오팔라라고 해요.”
“아하, 그 대단하신 오팔라가 납셨구만.”

앨리스가 비아냥댔다. 오팔라는 쿡쿡 웃었다.


“아하하. 겉과 속이 한결같으신 아가씨군요. 앨리스 양.”


보아하니 앨리스는 속마음으로도 잔뜩 힐난을 퍼부은 모양이다.
쟤라면 그럴만 하지. 겉으로도 욕하고 속으로도 욕할 타입이다.


“기분나쁘게 사람의 마음을 멋대로 읽다니.”
“저도 원해서 이런 능력을 가진 건 아니니까요. 그점은 양해해주세요.”

말하던 오팔라가 잠시 라비를바라봤다.

“...”
“...”


둘은 말없이 시선을 마주쳤다.


“예, 라비 양.. 읽을 수 있어요. 답은 42죠?”
“우와, 진짜야! 진짜야! 앨리스, 이 분 진짜 내 마음을 읽었어!
12+30이 얼만지 맞혀보라고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했거든.”
“...이제 와서 굳이 쟤 능력의 진위를 검증할 필요 없어, 라비야.”
“그래도 신기해. 그럼 이건 어떨까?”


라비는 힘껏 인상을 쓰고 끄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팔라가 참지 못하고소리를 내어 웃어버렸다.

“아하하. 라비 양,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질러도 제게 크게 들리는 건 아니예요.”
“오오~~ 그렇구나.
앨리스, 내가 속으로 우와아아앙~~!! 하고 엄청 크게 고함을 질렀는데, 별 효과 없었나봐. 깜짝 놀랄 줄 알았는데.”


호기심을 해결한 라비는 만족했다.
앨리스에게는 마음을 읽히는 게 불쾌한 경험이었지만 라비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나보다.

역시 긍정적인 마음가짐의 중요성이이토록 크다…


 아니라, 지금 상황은 결코 우리들한테 이롭지않다.


“그래서,  분의 탈출계획은?”


오늘 점심 드셨어요, 하고 묻는 마냥 오팔라가 지나가듯 가볍게 말했다.
순간 앨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하, 그렇게 나오시는구만. 진짜 치사하다, 너.”
“주어진 능력이니활용할 수 밖에요.
...흠.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으시구나. 오호, 핵심 전략은 트래쉬 코치님이 전담하고, 두 분은 알지 못한다…
좋은 작전이네요. 확실히 이거라면 제가 마음을 읽어도 두 분의 전략을 꿰뚫어보지 못하겠죠.”
“아, 짜증나.”

오팔라는 주머니의 곷감 꺼내먹듯 아무 저항도 받지않고 우리팀의 현재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해버렸다.
미리 선빵을 갈기라고주문해둘걸 그랬나?
...그래도 배리어를쓸수있는 쿠미가 붙어있는 이상 쉽진 않았을거다.

“이제 만족했냐? 그럼 좀 꺼지지 그래.”
“말씀이 조금 너무하시네요. 앨리스 양.
저희는 <홍삼 스포츠>팀에 도움을 주려고 온 건데 말이죠.”
“도움은  도움. 염탐질이나 하고 있으면서.”
“물론 제 능력을 이용해서 모든 팀의 전략을 파악한 건 맞아요.
하지만 앨리스 양이 물어보신다면  숨기지 않고 제 정보를 공유할게요.”

오팔라 특유의 ‘공평함’인가.
자기가 정보를 얻은 만큼 남들에게도 필요하면 나눠주겠다, 라는 마인드.
천하의 앨리스도 그 기묘한 마인드엔 당황해버렸다.


“어,뭐라고? 거짓말이지?”
“그럴리가요. 뭐가 궁금하시죠?”
“...그러면 지금 가장 탈출에 가까운 건 누구야.”
“<버팔로스>의 데이지&안나 듀오입니다.
놀랍게도 1일차에 벌써 감옥의 마스터키를 획득하셨네요.”
“...!!”



빠르다.
지도, 열쇠를 획득하는 ‘정석 루트’.
데이지&안나는 말도 안되는 속도로, 우리가 한가하게 감옥 구경이나 하고 있을  열쇠에 도달했다.


“그리고, 아마 이번 대회는 4일차까지 가지 않을겁니다.”
“...뭐?”
“<블랙 이글>의 유우&라이카 양은  붙은 도화선이에요. 오래 대회를 끌고 가실 생각이 없더군요.
그 분들도  독특한 생각을 하시고 계셔요.
저는 아마 길면 3일차에 대회가 끝날거라고 보고 있어요.”
“잠깐, 잠깐.”


갑자기 쏟아들어져오는 정보량에 압도된 앨리스는 손부채질을 하며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저기, 오팔라 씨. 근데 그런 정보는 혼자만 알고 계시면 더 유리한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면 왜 알려주시는 거예요?”



당황한 앨리스와 달리 정보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라비는 태평하게 물었다.

“저희는 모든 팀의 모든 전략을 전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팀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아낌없이 드리고 있죠.

즉 대회 종료 시점에서 탈출하는 팀이 어디든 가장 기여도가 높은 팀이라면 저희 <로즈 엔젤스>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러면 <로즈 엔젤스>는 준우승을 노리는건가.
분명 말대로, 이렇게 각 팀들에 필요한 정보를 퍼다 나르면 기여도가 높을  밖에 없긴 하다.
 경기의 특성상 모든 팀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은 일절 안할 테니까.


“아니오, 앨리스 양. 준우승은 그냥 보험이에요.”

묻지도 않았는데 마음을 읽어서 오팔라가 답했다.


“저희는 모든 팀들의 계획 중 가장 좋은 계획을 선택해 취할 것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일어나는 전략을 전부 종합해,가장 우승확률이 높은 행동을요.
그게 저희의 전략입니다.”
“...”
“예. 앨리스 양. 맞아요. <홍삼 스포츠>도 계속 저희의 예상 범주 내에 있어주시면아주 고맙겠지요.”


오팔라는 망설임없이,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굴은,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여사제처럼 고귀하고도 흔들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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