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이벤트 대회, 머더러스 하우스(4)
“꺄아아아아아아아!!!”
“히야아아아악!”
딸이 3옥타브파# 정도의 째지는 비명을 내지르자 귀부인도 합세했다.
짝!
“조용히 하세요.”
앨리스가 가차없이 두 모녀의 뺨을 갈겼다.
몹시 시끄러워서 거슬리는 모양이다.
모녀가 덜덜 떨며 입을 닫았다.
“앨리스, 의사선생님을 불러야 해…빨리!”
라비가 다급하게 외쳤다.
앨리스가 어처구니가 없어하며 대답했다.
“라비야… 이 분이 의사선생님이잖아. 부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리고 애초에 의사가 와도 이 모양이 된 사람은 못 살려.”
맞는 말이다.
목이 잘린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의사는 없지 않을까.
있다 해도 그건 치료가 아니라 부활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이 현장은 철저하게 보존하도록 하겠어요.
비트코이스 씨, 가족분들을 거실에 데려다주고, 집사와 아드님도 모이라고 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앨리스가 척척 지시를 내렸다.
비트코이스 가족들이 비틀거리며 나갔다.
나를 돌아보는 앨리스.
“자, 조수.”
“제가 조수입니까?”
“그래. 여기선 그런 설정이잖아. 코치가 아니라 조수.”
“...뭐 상관없지만요.”
“일단 저 시체의 사망시간을 추정해줘.”
앨리스는 진짜 탐정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내게 명령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요 여자애는 나름 탐정흉내를 내고 있지만 영…
“사망시간을 추정하려면 부검을 해봐야 해요. 근데 전 할 줄 모르고, 안다 쳐도 여기서 할 수도 없어서 무리.”
“...뭐? 조수가 그걸 못하면 누가 해?”
“그리고 애초에, 딱히 추정할 필요도 없잖아요. 한시간 쯤 전엔 주치의가 살아있는 걸 우리 모두 봤으니까 그 사이에 죽었겠죠.”
“아, 그렇군.”
앨리스는 아차 싶은 표정을 했다.
라비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셋하고 비트코이스 씨, 부인, 리플은 죽 같이 있었잖아.
그러면 의사선생님을 죽일 타이밍이 있었던 건 아들 모네로 군과 집사 시빅 씨 밖에 없지 않을까?”
“그거야, 라비.”
손가락을 딱 튕기는 앨리스.
“이 사건은 벌써 해결됐어. 그 두 명을 구속하면 끝이야.”
“으으응?”
“굳이 자세히 몰라도 일단 더 이상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막으면 해결한 거 아냐? 나머진 경찰이 와서 알아서 하겠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겠지만요, 앨리스.
여긴 아마 공권력보다 탐정의 사적인 수사에 비중이 실린 세계관일테니까요.
저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면 아마 클리어로 인정해주지 않을거에요.”
“거, 번거롭네. 비현실적이잖아.”
맞는 말이지만 개인 주택 안에 단두대와 목 잘린 시체가 놓여있는 이 상황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일단 돌아가자. 여기서 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겠어.”
앨리스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목이 잘린데다, 벌거벗기까지 한 남성의 시체를 더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흠…
나는 탄탄한 근육질의 시체를 바라봤다.
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과연 그럴까, 앨리스…
나는 소싯적에 추리소설을 조금 읽어서 그런지 벌써 감이 오는데.
어차피 이 <머더러스 하우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얘들이다.
알아서들 하게 옆에서 슬쩍슬쩍 도와만 주자.
***
“그러고보니 잘린 목은 어디갔지? 몸통만 남아 있었잖아.”
“나도 모르겠어.”
라비와 앨리스는 시체를 목격한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심지가 강한 여자애들이다.
“그래도 좀 무섭다. 아무리 여기가 가상현실 게임이라지만… 살인마한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뭘 쫄고 있어.”
“앨리스는 안 무서워?”
“당연하지.”
이런 역할극에 깊게 몰입하지 않는 성격인가?
앨리스는 썩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기서 죽어봐야 캡슐 안에서 아씨, 죽었네. 이러고 일어날텐데 뭐.
아, 클리어 상금 못받는건 좀 아쉽겠다.”
“햐… 강하구나, 앨리스는.”
라비가 말했다.
“그런데 만약에, 캡슐 속 나와 앨리스가 따로 있고, 우리는 그냥 가상현실 속 복제된 의식이라면 어떡하지?”
“뭔 소리야.”
“우리의 의식이 여기로 넘어 온게 아니라, 사실은 그냥 원본이랑 똑같이 복제된 거라면?
나는 원본 라비의 복제, 앨리스는 원본 앨리스의 복제라서 말야.
코치님도 원본 코치님의 복제.
그러면 여기서 죽으면 우리는 진짜 죽는거잖아.
아쉬워하면서 캡슐에서 다시 일어나는건 우리의 원본들이고.”
“...너, 가끔 되게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더라.”
“코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철학적인(?) 의문이 떠오른 라비는 심각하게 얘기했다.
내가 대답했다.
“만에 하나 라비 니 말이 사실이라고 쳐도, 우리는 그게 진짜인지 어쩐지 알 길이 없어.
죽으면 거기서 끝인걸. 뒷일은 모르지.”
“아, 그렇네요.”
“사실 너처럼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만은 아냐.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매일 밤 우리가 잠에 들 때마다, 잠자기 전의 내 의식은 그대로 소멸하는 거라고.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는게 아니라.
그리고 깨어난 나는 잠들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지.
기억은 공유하기 때문에 본인은 모르지만.”
“히익~”
“어쨌든 지금은 그런 건 별로 안 중요하니까 사건에 집중하자고.”
우리는 다시 거실로 걸어갔다.
복도에 놓인 인체모형이 우리를 비웃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저 녀석은 목이라도 제대로 붙어있으니, 듀라한이 되어버린 제 주인보다는 사정이 나을지도...
***
앨리스는 주섬주섬 거실의 서랍을 뒤졌다.
모두가 그녀를 지켜봤다.
“저… 뭐하시는 거죠?”
귀부인이 물었다.
“아, 여러분들을 묶을 튼튼한 줄 같은거 없나 찾고 있는 중이에요.”
“예...뭐, 뭐라고요?”
귀부인이 기겁했다.
“이게 최선입니다.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말이죠.
아, 이거면 괜찮겠다.”
앨리스가 노끈을 찾아 길이를 가늠했다.
딸이 못믿겠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앨리스 씨… 왜 저희를 묶는다는 거죠? 살인마를 찾는게 먼저 아닌가요?”
“그야, 그 살인마가 여러분 중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뭐라고!”
어처구니없어 하는 딸의 팔을 뒤로 해 앨리스는 그대로 의자에 결박했다.
어어 하는 사이에 귀부인도 마찬가지로 묶였다.
나도 가끔 추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런 짓을 해보고 싶었는데 앨리스 덕에 대리만족하게 됐군.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이것저것 따지지말고 더이상 아무도 싸돌아다니지 못하게 다 의자에다 묶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나와 앨리스는 마음이 통한다.
“이제 안심입니다. 그러고 계시면 사건이 다 해결된 후 풀어드릴게요.”
“이 무슨…”
“그런데 비트코이스 씨는 어디 계세요?”
그러고보니 거실에는 귀부인과 딸만 남아있고, 비트코이스는 사라졌다.
“아마 모네로와 집사를 찾으러갔겠지.”
“맞다, 그렇겠네. 조수, 따라와.”
“응?”
“그 둘도 찾아서 일단 끌고와 묶어놔야겠어. 여차해서 살인마가 있다 쳐도 우리는 두 명이니 제압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렇게 말하며 앨리스는 장식장에서 편지 봉투 자르는 커팅칼을 “호신용이야”라며 챙겼다.
“저...나는?”
라비가 물었다.
“너는 여기 거실에서 두 사람을 감시하고… 아니, 지키고 있어.
우리 셋이 다 올라가고 혹시 살인마가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이 둘을 보면 큰일나잖아.
동물원에서 사자한테 먹이 주는 것도 아니고말야. 꽁꽁 묶어놨으니.”
“나 혼자서? 으으…”
“괜찮아. 별 일 없겠지. 여차하면 큰 소리로 윗층까지 들리게 우리를 불러.”
“힝…”
라비는 여기 혼자 남겨지는게 무서운 모양이다. 이 선택이 맞는 걸까?
내가 탐정이라고 놓고 생각하면, 인원을 분산시키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일일이 따질 때도 아니겠지.
얘의 판단대로 가게 냅두자.
“가자, 조수.”
“네.”
***
2층으로 올라오니 이상한 적막함만이 느껴진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복도를 두고 멀리 떨어진 양 반대편에 총 두개가 있다.
살인마를 쫓을거라면 양 쪽 계단으로 한 명씩 올라와 2층에서 못빠져나가게 하는게 낫지 않나?
근데 그러면 어느 한 쪽의 사람이 살인마와 단둘이 마주칠 수도 있다.
두 선택지는 저마다 리스크가 있는 셈이다.
“비트코이스씨, 계세요?”
대답이 없다.
좋은 징조는 아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살인마가 2층 어딘가에 숨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조수, 앞장서. 뭐해?”
“제가요?”
“그럼. 난 탐정이잖아. 몸 쓰는 건 조수가 해야지.”
“쩝…”
그러고보니 한가지 의문이 든다.
“전 앨리스가 아니라 라비 조수 아니에요? 그런 설정인 걸로 아는데…”
“뭐 어때.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말자고.”
“...”
본의 아니게 조수를 NTR당한 불쌍한 라비.
지금쯤 혼자서 덜덜 떨고 있겠지.
“그러면 지금 이 집에 남은 위험 인물은 세 명이군요. 비트코이스, 아들, 집사. 맞나요?”
“그런 셈이지. 의사는 죽었고, 부인과 딸은 내가 묶어놓고 왔으니까.”
“왜 의사를 죽였을까요? 그것도 목을 잘라서.”
“낸들 알겠어. 뭐 갖다 붙이면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겠지. 그냥 싸이코라고 할 수도 있고.”
“...”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걸음을 멈췄다.
강렬한 피비린내.
냄새에 이어 시선에 들어오는 건 선명한 크림슨 색의 액체다.
대량의 선혈이 헛되이 바닥에 흐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서 이 광경을 본다면 틀림없이 크게 분노하리라.
“비트코이스 씨…!”
오른 다리가 허벅지 바로 윗 쪽에서 통째로 썰려진 비트코이스가 경악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2층 복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조수, 이 사람...”
“이미 죽었어요.”
“엥? 보자마자 어떻게 알아.”
“그냥 그럴 거 같아요. 분위기 상.”
“...”
일단 맥박은 재봤다. 역시 죽었다. 그냥 시체다.
이것이 과감한 투자로 떼돈을 번 대부호의 최후였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보자.”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또 한 구의 시체가 우리를 맞이했다.
이번엔 왼 팔이 잘려있다.
“이걸로 세 명 째네요.”
“...”
앨리스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 옆얼굴이 의외로 약간 미소녀 탐정같기도 하다.
음, 어울려.
라비는 약간 애가 맹해서 영 아닌데, 앨리스는 귀엽기도 하고, 똘똘해보이기도 하고.
이런 여자애가 주인공이라면 흥행 확정이다.
“의사는 머리, 비트코이스는 오른 다리, 아들은 왼 팔… 뭔가 이유가 있나?”
“그냥 싸이코니까, 라고 갖다 붙이면 설명된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언제 누구한테 들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꼭 신체를 절단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잖아.”
“그건 그렇네요.”
머리를 긁적이는 앨리스.
“일단 돌아가자. 내생각엔…”
“예.”
“집사 한 명밖에 안남았지? 그 위험 인물 중에.”
“맞아요.”
“어쨌든 이 둘이 죽어준 덕분에 범인 후보가 집사 한 명으로 압축되긴 했어.
좋아, 점점 해답으로 나아가고 있군. 그치, 조수?”
응?
그… 그런가?
희생자가 늘어나는만큼 범인 후보가 줄기야 하겠지.
하지만…뭐, 됐다.
난 태클을 걸려다 그냥 그만뒀다.
“어서 라비한테 돌아가자, 조수.”
“예.”
우리는 시체들을 뒤로 하고 2층에서 내려왔다.
***
“그,그,그 자리에 가만히 계세요! 집사님!”
큰 외침소리가 나서 달려가봤더니 라비가 부지깽이를 들고 집사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엑스칼리버를 치켜든 용사마냥 라비의 부지깽이 앞에 집사가 맥을 못춘다.
“이...이건… 오해요. 탐정님. 내가 한 게 아니란 말이야…”
“무슨 일이야, 라비야!”
우리가 달려가자 라비가 압도했다.
“범인 찾았어요! 코치… 아니, 조수님! 저거 봐요.”
“응?”
보니 집사의 발치에 중간 두께의 인간 다리 하나, 가는 팔 하나가 떨어져있다.
막 잘라냈는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진다.
“앗…”
앨리스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누...누가 주방에 이걸 던져놓고 갔어.
아무도 안 마셔서 와인이 많이 남았길래… 아까워서 내가 구석에 숨어 몰래 마셨어…
그리고 취해서 살짝 졸았는데 일어나니까 이런 게 있길래…
웬 갈색 봉투가 놓여있는데 사람 손이 비쭉 튀어나와 있어서 열어보니…으으...
나도 발견하자마자 놀라서 가져온거야…
이게 웬 팔다리인지…
진짜야, 믿어줘!”
“집사, 유감이야.”
“뭐...라고?”
앨리스가 커팅칼을 품에서 꺼냈다.
“물론 정황증거만 있을 뿐이지.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명백해보여.
여기까지군… 집사.”
“잠시만! 이봐… 탐정! 무슨 짓이야!”
“나는 그저 당신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는 것뿐… 심판은 신께서 내리시겠지.”
쓸데없이 멋진 대사를 읊조리며 앨리스가 집사의 가슴에 칼을 겨눴다.
“앨리스, 잠깐만요. 우리가 범인을 처치할 필요는 없어요.”
“...아, 그렇네. 미안. 조금 심취했어.”
앨리스가 생각한 이 대회의 장르는 더 본격 하드보일드에 가까운 것이었나 보다.
탐정이 범죄자를 즉결처분하는…
좋게 말하면 야성적이고 거친 세계지만 냉정하게 얘기하면 치안이 개판인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근데 범인, 집사 맞지? 이 정도면 다 나왔잖아.”
“글쎼 아니라니까… 날 믿어줘! 아가씨들!”
“당신은 조용히 하고.”
중요한 국면이다.
과연 이 연쇄 살인사건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우리의 눈앞에 메세지가 떴다.
[목 잘린 시체, 오른 다리가 잘린 시체, 왼 팔이 잘린 시체가 발견되었다.
대부호 비트코이스 씨의 붉은 저택엔 충격과 공포가 감돌고…
그 와중에 잘려나간 팔, 다리를 가져오다 들킨 집사 시빅.
여기서 당신이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앨리스의 결론: 집사가 범인이다.
확정지으시겠습니까?]
“그래. 확…”
“잠깐, 잠깐만, 앨리스. 나도 좀 들어보고.”
“응?”
라비가 말했다.
“그래도 여기선 내가 명탐정이라구. 한번 내 생각도 들어봐봐.”
글쎄, 어떨까.
솔직히 라비한테는 큰 기대가 안가지만, 얘한테도 어쨌든 기회는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