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이벤트 대회, 머더러스 하우스(5) (46/109)



〈 46화 〉이벤트 대회, 머더러스 하우스(5)


“일단  사람부터 묶어놓고.”

앨리스는 집사에게 밧줄을 들고 다가갔다.
묶는걸 좋아하는 취향이 있는 것일까?
나는 혹시 모르니 머리 한구석에 일단 기억해두기로 했다.


“자,잠깐… 하지마!”

집사가 처절하게 소리쳤다. 그가 뒷걸음질치다 바닥에 깔린 카펫주름에 걸려 나동그라졌다.

“걱정마. 아직은 죽이지 않을테니까.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게 확정되면 무사히 보내줄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 ...고, 고소할거야!”
“응, 해. 마음대로 해.”

뒷일이 두렵지 않은 앨리스가 적당히 대답하며 집사도 의자에 결박시켰다.


이제 귀부인, 딸, 집사 세 명의 생존자는 전부 꼼짝못하게 잘 묶어놨다.
어찌됐건 우리가 범인에게 당하는 일은 없겠지.

마음이 안정되니 느긋해지며 여유가 생긴다.


“자, 그러면 라비한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해줄게. 어떻게 된거냐면…”








“...그렇게 된거야.”


모든 경황을 들은 라비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어쩐지 그녀의 표정이 예사롭지않다.

오, 뭔가 보여줄 것인가…?

“내가 생각할 때 범인은 집사야.”

앨리스가 말했다. 우리 이야기를 듣던 집사가 묶인 채로 버둥거리며 “아니라고오!”하며 소리친다.

“일단, 남아있는 사람 중에 범행이 가능한 사람이 집사밖에 없잖아. 여기 부인하고 딸은 우리가 묶어놓은 채 올라갔고, 그걸 너가 계속 감시하고 있었지.

...그리고 위층에서 비트코이스 씨와 아들은 죽은 채로 발견됐고.”


마지막 말은 소곤소곤하며 작게 얘기하는 앨리스.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모질지는 못해서, 귀부인과 딸이 가족의 죽음을 듣지 못하게 배려하는 모양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속마음은 그렇게 매정하지 않은 여자애니까.

“그 후에 네 눈으로 목격했잖아. 집사가 잘려나간 팔과 다리를 가져오는 걸.”
“흐음…”

라비는 탐탁치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앨리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뭔데.”
“그러면 왜 집사님은 직접 자기 손으로 잘린 팔다리를 들고 온거지?
자백이라도 하려고?”
“...음.”


이번엔 앨리스가 고민할 차례다. 그녀는 잠깐 생각한 후 대답했다.

“그건 간단해. 가져온게 아니라, 숨기려고 했던거야. 그 와중에 우연히 네가 그걸 목격해서 들킨거지. 맞지?”
“아닌데?”
“뭐?”
“전혀 숨기려고 하는 느낌이 아니었어. 물론 나도 처음 봤을땐 놀라긴 했지만…

그리고 숨길거면 그냥 담겨있던 봉투에 담아서 옮기는게 낫지, 굳이 꺼내서 피를 뿌리며 들고 올 필요는 없잖아.”

직접 목격한 라비의 느낌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일이 흥미롭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 반응을 노린거야. 숨기려고 하는 느낌이 아닌 느낌을 노리는 자연스러운…
꾸민듯 안꾸민듯  내츄럴한 느낌이지. 그래서 너가 이렇게 속은 거 아냐?”
“앨리스, 헤헤… 약간 당황하면 아무말이나 하는 스타일이구나.”
“뭐어?”

앨리스가 라비를 째려봤다. 라비는 앨리스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였다.

“미안, 앨리스. 이 사건의 진상은 내가 알아버렸어.”
“...말도 안돼.”

명탐정 라비의 출현인가.
지금까지의 그림대로라면, 앨리스가 본의아니게 헛다리 짚는 관계자의 모습을 충실히 연출해주긴 했다.
이제 라비가 답을 밝혀낸다면 그림은 참 보기 좋을 터.

“이건 슬픈 이야기야…
범인은, 아들 모네로 씨야.”
“뭐라고.”


이미 죽은 모네로가 범인?
안되겠어.
내가 조금 끼어들어야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비야, 착각한  아니지? 모네로 씨의 시체는 앨리스와 내가 2층에서 제대로 확인했어. ‘얼굴도 분명히’ 체크했다고.”
“그렇겠죠, 조수님.
하지만 그게 심리적 맹점이에요.”
“허?”
“진상은 이래요.

모네로 씨는 먼저 모두가 모여있는 거실에서 나갔어요. 깜빡한 일이 있어 방에 돌아간다는 핑계를 대고요.

그리고 현관 복도에서 인체모형을 옮기고 돌아오던 의사 선생님을 만났죠.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모네로 씨는 의사선생님을 단두대에 넣고 목을… 으익… 그렇게 해버렸어요.”


나도 앨리스도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숨어서 우리의 동태를 살피다가, 우리가 뿔뿔이 흩어지기만을 기다렸죠.
이후 자기를 찾으러 온 비트코이스 씨를 또… 어유, 참… 그렇게 해버린거죠.”
“그 다음엔? 설마 자기가 자기 팔을 잘라버렸다는  아니겠지?”
“그 설마야, 앨리스.”

라비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네로 씨는, 스스로의 팔을 자르고 자살했던거야. 흑…”


***

[하얀 머리 탐정은 슬픈 진상을 공개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대부호의 아들 모네로는 주치의 에이다 씨를 죽이고, 아버지 비트코이스 씨도 죽이고,
그  자살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라비의 결론: 아들이 범인이다.

확정지으시겠습니까?]


“아니,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이야기를 듣던 앨리스가 즉시 일축했다.

“조수, 얘기해줘. 저 결론이 왜 틀린지.”
“어흠.”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얘기했다.

“라비야, 일단 하나만 물어보자.”
“네! 조수님.”


아까부터 ‘조수님’은 뭐야? 코치님과 조수의 융합인가. 애매한 호칭이다.

“그러면 아들의 팔은 대체 누가 주방에 가져다 놓은걸까?”
“...예? 예? 아, 맞다.”


라비가 혀를 내밀며 웃었다.


“잘… 계단에 굴려서…하하, 그건  아닌가.”
“그치? 말도 안되지? 자기가 한 손으로 반대쪽 팔을 잘라서 자살하는 것도 무리순데, 니 말대로면  상태로 벌떡 일어나,
비트코이스 씨의 다리와 자기 팔을 들고 부엌에 가져다 놓은 후,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와 죽었다는 거잖아.

신체적으로 그게 가능하냐는 둘째치고 자기 팔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다니느라 완전 온 집안이 피투성이가 될걸.”
“...그렇구나.”


명탐정은 급 쭈굴해졌다. 의기소침해진 모습이 조금 가엾다.
같은 논리로 비트코이스가 범인이라는 설도 주장하기 힘들겠지.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다닌 흔적이 없으니.

“라비야, 무리할 것 없어. 처음부터 나나 조수나, 너한테는 그렇게 기대를 많이 한 건 아니니까.”
“너무해~!”
“그치만 사실인걸.”

아무래도 얘들은 조금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나보다.
나는 슬쩍 힌트를 주기로 했다.

“그래. 내가 볼 때 중요한  이거라고 봐.
왜 굳이 목과 팔과 다리를 잘라냈을까?
그리고 팔, 다리는 발견되었는데 목은 어디로 간걸까?
그 점을 한번 생각해봐.”
“오, 조수. 되게 그럴듯한 말을 하는걸.”


나는 잘려진 팔과 다리를 살펴봤다.
 예상대로면 분명 특이한 흔적이 있을 터.
...역시.
생각대로다.


“봐. 뭔가  찌른 자국이 있어. 팔에도, 다리에도.”
“진짜?”


라비와 앨리스가 다가와 인상을 찡그리며 잘린 팔다리를 살펴봤다.
잘려나간 단면과는 별개로, 혈관을 바늘로 찌른듯한 흔적이 분명히 남아있다.


“이게 뭐지?”

앨리스가 자국을 신중히 살펴봤다.
그  라비가 다시 외쳤다.

“앗! 방금 팟 하고 왔어. 앨리스, 조수님. 이번엔 진짜야.”
“...”
“...”

우리에게 이미 신뢰를 잃은 라비는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살인마는 바로… 단두대 그 자체야.”
“...”


라비가 명랑하게 말했다.



“리플 씨가 사온 저 단두대… 사실은 악령이 깃들어있는 저주받은 기구였던 거지.
사람의 사지를 전부 모아야 사악한 힘을 해방시킬  있는.

그래서 목도, 팔도, 다리도 자른거야. 원래는 리플 씨와 이더리아 부인의 팔, 다리도 잘라 5파츠 세트효과를 전부 받으려는 계획이었을거야.”
“...그래서  찔린 자국은?”
“당연한  아니겠어? 단두대는 사람을 붙잡을 손이 없잖아.
거기서 기다란 촉수가 나와 팔, 다리를 푹, 찌르고 고정시킨거야.
 후 천천히 끌어당겨 자기 품 속에 넣고, 칼날을… 으유, 무서워. 어쨌든 그렇게 된거지.”

[하얀 머리 탐정은 무시무시한 진상을 공개했다.

딸이 사온 단두대에 깃든 사악한 악령.

모두를 잔혹하게 살해한 건 그 악령이었다.
지금도 저택에 숨어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는…]

[라비의 결론: 단두대가 범인(?)이다.

확정지으시겠습니까?]



“어째 점점 추리가 안드로메다로 가냐. 아까보다 더 터무니없잖아.”

내가 핀잔을 놓자 라비는 또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야, 니가 저질렀지?”
“어어어?”


앨리스가 라비에게 삿대질을 했다.

“보니까 자꾸 헛소리하면서 의도적으로 우리 주의를 어지럽히고 있어.

라비,  아냐?
살인마가 이 중에 있다고 했지, 꼭 저 가족이나 손님중에만 있다고 한 적은 없잖아.
우리도 범인 후보야. 그리고 나와 조수는 계속 같이 다녀서 서로가 범인이 아니란 걸 아니까, 수상한 건 너야.”


이럴수가.
바야흐로 충격적인 전개로 나아가는,
혹은 개판으로 나아가는 <머더러스 하우스>.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오…? 말도 안돼에~!”


라비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건 어색한 연기일까, 아니면 진짜 마음에서 우러난 반응일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앨리스… 난 너를 정말 믿었는데…
살인마라고 모함을 하다니…흑.”
“아니지. 라비.
우리는 저 가족이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
그래서 오히려 마음 놓고 죽일 수 있는 거야.
안그래?”

그건 그렇다.
굉장히 리얼하긴 하지만, 저 가족들은 가상의 존재에 불과하다.
그냥 NPC인 것이다.
죽이든 뭘하든 아무도 죄를 묻지 않을 터.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단두대로 목을 자르고, 팔 다리를 동강 내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상황적으로도 내가 범인일 수가 없는걸?”
“왜?”
“왜긴. 앨리스, 그게 그렇잖아.
나도 비트코이스 씨의 시체를 발견할 때까진  너하고 조수님하고 같이 있었고, 그 후엔 부인과 리플 씨와 함께 있었어.

 혼자 따로 움직였으면 누가 알아채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까 보니까 부인하고 딸의 의자는 너를 등진 채로 있어서 니가 어디 갔는지 어쩐지 그 쪽에선 못보는 각도던데?
 그대로 너만 그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감시할  있는 위치였지.”


라비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명탐정이 사실 범인! 이라…
개인적으로 무지 좋아하는 반전이긴 하다.
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런 트릭을 성립시키려면 범인이자 명탐정이 무지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다.

라비야 어떠냐면…
흠, 말을 아끼겠다.

“아니아니! 앨리스, 말이 안된다구.
그러면 둘이 2층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내가 반대쪽 계단으로 뛰어올라가서 두 명을 죽이고 다시 순식간에 내려왔다는 거야?
절대 불가능해…
날 믿어줘, 앨리스!”
“네 놀라운 피지컬, 특히 그 빠른 달리기. 그리고 ‘시간가속’ 스킬을 생각해본다면 못할 것도 없지.”
“헉!”

[탐정 앨리스의 추리.

살인마는 바로 그녀의 오랜 라이벌, 하얀머리 귀여운 명탐정 라비였다.

수사를 혼선시키기 위해 허황된 이야기를 주절대던 명탐정은 사실 인면수심의 잔혹한 살인마였던 것이다.

하지만 앨리스의 추리대로 라비가 그런 상상초월의 피지컬을 지니고 있다면 지금 위험에 처한 건 오히려 앨리스와 조수 쪽일지도...]

[앨리스의 결론: 라비가 범인이다.

확정지으시겠습니까?]





이쯤에서 내가 컷해야겠군.


“앨리스, 재미있는 가설이지만 그건 무리예요.
여기선 원래 갖고 있던 스킬을 못쓰거든요. 그리고 피지컬도 제대로 적용이 안돼요.
의심가시면 한번 ‘불의마법’을 시험해보세요.”
“...뭐?”


나와 라비는 저택에 들어오기 전 실험을 해봐서 알고 있지만, 앨리스는 그 사실을 미처 몰랐나보다.
‘불의마법’을 쓰기 위해 잠시 집중하던 앨리스는 곧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뭐야, 진짜네. 안 써지는구나. 그럼 이 가설은 폐기.
미안해, 라비야. 의심해서.”
“힝… 너무 무서웠어.”

라비가 앨리스에게 꼬옥 안겼다.
앨리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조금 미안한지 라비의 등을 토닥여줬다.


“앨리스, 사실  생각난  하나 있어.
복도에 세워져 있는 인체모형… 사실 거기에 악령이 씌여서…”
“아니야. 그런 오컬트는 이제 됐어.
그리고 애초에 ‘저주받은 단두대’하고 근본적으로 발상이 똑같잖아.”

[하얀머리 탐정은 공포스러운 진상을…

저주받은 인체모형…]


메세지가 뜨자마자 앨리스가 닫아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된거지? 누가 범인이야?”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슬슬 이 대회를 관전하는 시청자들도 결말을 바라고 있겠지.
 조수로서의 소임을 다해야할 차례다.


“앨리스. 이미 사건 해결에 필요한 도구는  갖춰졌어요.
디테일한 건 적당히 무시하고, 제일 그럴듯한 생각을 추려내보세요.”
“이미 다 갖춰졌다고?”

 힌트를 모두 정리해주기로 했다.


“첫번째 힌트, 처음 발견한 시체의 잘려진 목은 어디로 갔을까요?

두번째, 범인은 왜 목과 팔, 다리를 자른걸까요?

세번째, 팔과 다리에 남은 자국은 어떤 의미일까요?

자, 이정도면 앨리스가 해결할  있을겁니다.”

“저는요?”하고 라비가 옆에서 깝죽댔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관자놀이에 중지 두번째 마디를 톡톡 두드리며 고심하는 앨리스.


“...흠...아?”
“눈치채셨나요?”
“...그래! ...아니, 좀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아마…  것 같아.

범인은…”

깨달은 모양이다.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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