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이벤트 대회, 머더러스 하우스(6)
“뭐? 하지만 그 사람은…”
앨리스의 말을 듣자 라비는 크게 놀라버렸다.
하지만 내 생각과 정확히 똑같다.
아마 이게 답이겠지.
어이없긴 하지만…
“그럼 확인하러 가볼까? 다들 연장 챙겨.”
앨리스가 말하며 커팅칼을 다시 꺼냈다.
라비는 부지깽이를, 나는 비트코이스의 묵직한 다리를 치켜들었다.
이 정도면 삼 대 일이기도 하고, 충분히 범인을 제압할 수 있겠지.
우리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조용히 이동했다.
***
“그래서, 이 인체모형 안에 범인이 숨어있다고?”
라비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현관 복도에 우두커니 서있는 인체모형을 가리켰다.
당장이라도 그 안에서 괴한이 뛰쳐나올까봐 쫄은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는 세 방향에서 빈틈없이 수상한 인체모형을 포위했다.
앨리스가 대답했다.
“응. 봐, 크기도 일반인 신체보다 1.3배는 크잖아. 이 정도면 안의 빈공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충분히 숨을 수 있어.”
“그쵸.”
저 안에서 범인은 이 대화를 듣고 있겠지…
나도 약간 오싹한 기분이다.
“그러면 내 추리를 얘기해줄게.
먼저 범인은 왜 맨 처음 시체의 목을 잘랐는가? 그것부터 설명하자.
일단, 목을 자른 도구는 단두대가 아냐.”
“뭐어~~?”
명탐정은 앨리스.
안타깝지만 이순간 라비의 역할은 탐정 옆의 리액션 담당으로 정해진 듯하다.
리액션 담당은 계속 ‘뭐어~?’, ‘진짜야~!’ 같은 말을 옆에서 해주면 된다.
판소리 할 때 옆에서 추임새 넣듯이.
내가 대신 안해도 되니 그건 다행이다.
“그래. 단두대의 칼날을 봐. 피 한방울 안 묻어있고 깨끗하지?”
“어, 그렇네.”
“그리고 밑에 내려와 있지 않고 위에 그대로 고정되어있어.
애초에 단두대의 칼날이 목을 자른 적이 없다는 거야.”
앨리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게다가 저 목의 단면. 단두대의 원리는 무거운 칼날을 낙하에너지를 이용해 내리쳐, 단번에 목을 잘라버리는 거야.
보기엔 잔인하지만 일격에 목이 날아가니 죄수는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지.
의외로 자비로운 마음에서 만들어진 사형도구라고.
그런데 봐. 목의 단면이 어때?”
“으… 막 짓이겨지듯이 찢겨져 있어.”
“그치? 단두대로 처형하면 저렇게 되지 않아.
저건 도끼든 뭐든 다른 날붙이로 여러번 내리쳐 목을 잘랐다는 증거지.”
아주 좋다. 내가 옆에서 보태지않아도 앨리스는 이미 올바른 답으로 향하는 궤도에 올라탄 느낌이다.
“즉, 시체의 목은 미리 다른데서 자른거야.
그러니 여기서 목이 발견될리가 없지.”
“아하.”
숨쉴틈도 없이 앨리스는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팔, 다리는 왜 여기서 자른걸까?
사실 범인은 팔 다리를 굳이 자를 생각이 없었어.
근데 어쩌다보니까 미처 생각지 못한 점이 있어 급하게 자르게 된거야.
들킬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왜냐면, 시체의 팔과 다리에 치명적인 흔적이 남아버렸거든.”
“흔적?”
“그래. 그 바늘에 찔린듯한 자국.
그건 사실 바늘이 맞았어.
주사바늘이지.
생각해보면,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위에서 소란 한 번 없었다는게 이상하지 않니?
주사에 마취제를 담아 푹, 찌른거야.
꼼짝도 못하게.
그래서 저항없이 비트코이스, 모네로 둘 다 처치할 수 있었던 거지…”
“주사? 그렇다면... “
이제는 라비도 깨달은 모양이다.
앨리스는 요리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놓치기 싫다는듯이, 느긋하게 이 대회의 핵심을 즐겼다.
“마취제가 담긴 주사를 자유롭게 구할 수 있고, 그게 사용되었다는 걸 들키면 당연히 가장 먼저 의심을 받고,
인체모형 안에 빈 공간이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은?
그래. 범인은 바로 주치의 에이다야.
그 사람은 처음부터 죽은 게 아니었으니까.
목 잘린 시체는 의사가 아니었어.”
우당탕-!
갑자기 인체모형의 안면부터 사타구니 위쪽까지 장롱문처럼 양 옆으로 열리더니,
그 안에서 의사가 튀어나왔다.
야차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손에는 피에 젖은 손도끼가 들려있다.
“크아아~ 전부 눈치챘구나! 이 자식들, 그러면 너희들도 여기서 입을 막아주지!”
“꺄아아아!”
… 이 연출은 뭐냐.
이게 최선입니까, 시나리오 담당자님?
하지만 인체모형 하반신에 들어가있는 그의 다리는 안에 끼어 제대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뭐 나온다 한들 이미 우리 셋이 만전을 기해 포위하고 있던 상황에서 별 수도 없었겠지만.
라비의 부지깽이가 의사의 머리를, 내 비트코이스’s right leg가 의사의 배를 후려쳤다.
“커..커허억…”
공포영화 <링>에서 TV 밖으로 기어나오던 사다코마냥,
주치의 에이다는 모형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두들겨 맞고 상반신만 축 늘어트렸다.
“이걸로 끝이네. 아마 저 목 잘린 시체는, 저택에 오지 않았던 의사의 조수 아닐까? 몸이 좋다고 하기도 했으니까, 저렇게 알몸으로 벗겨놓으면 우리는 분간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의사의 알몸을 본 사람도 없을테니.
처음에 인체 모형 안에 넣어서 저택으로 가져온 거겠지. 그래서 더 무거웠을테고.”
깔끔한 마무리.
앨리스가 있지도 않은 담배파이프를 피우는 척 하며 탐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정한 명탐정 앨리스는 싸이코 살인마, 주치의 에이다의 범행을 완벽하게 밝혀냈습니다.
그녀에 의해 자칫 어둠 속으로 묻힐 뻔 했던 참혹한 연쇄살인극은 무사히 해결되었죠.
모두가 아름답고 귀엽고 도도하고 우아하고 자신만만한 그녀의 이름을 오래도록 칭송할 것입니다. ]
[<머더러스 하우스>를 클리어했습니다.
잠시 후 대회는 종료되며, 참가 플레이어들은 캡슐로 복귀합니다.]
***
“아~ 재밌었다. 그럭저럭 괜찮네, 이거.”
앨리스는 꽤 만족한듯이 웃었다.
몇 시간동안 캡슐 안에 가만히 누워있어서 몸이 찌뿌둥한지 죽 기지개를 켰다.
밖에서 스크린을 보며 대회를 관전하던 연구원들이 박수를 쳤다.
“이야~ 역시 대단하네요. <홍삼 스포츠> 멋집니다.”
“앨리스 선수, 훌륭해요~”
드림 리얼리티의 대표, 로렐로 아재도 만족한 표정이다.
아재가 말했다.
“좋아, 좋아. 트래쉬 군, 수고했어. 잘했네.”
“...”
“상금 오만 골드도 군말없이 입금하지. 오우, 완전 계탔군. 안그런가?”
“저… 이 <머더러스 하우스>의 시나리오는 누가 짠 겁니까?”
“왜?”
“...좀 여러가지로 허술하지 않아요? 구멍이 여기저기에 숭숭 뚫려있는데.”
로렐로가 빙글빙글 미소를 지었다.
“전문가가 짠 게 아니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아직 테스트단계고. 제대로 된 시나리오는 돈을 주고 추리소설 작가를 고용해야겠지.”
“꼭 그러셔야 할겁니다. 뭔가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잖아요.”
“예를 들면?”
“... 의사는 대체 뭔 수로 신출귀몰하게 들키지도 않고 소리도 안내고 초인처럼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여댈 수 있었나요.”
가장 의아한 부분이었다.
“그건 이상하긴 하지.”
“중간에 저희가 우연히 돌아다니다 범행 광경을 들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아, 들키지는 않을 걸세.
애초에 의사가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없거든.”
“네?”
배를 통통 두드리며 로렐로가 말했다.
“그냥 비트코이스는 정해진 위치에 간 후 알아서 죽고, 다리도 뿅하고 잘린다네.
아들도 마찬가지야. 아무도 아들에게 간 적 없지만 알아서 죽고, 팔이 뿅 잘리지.
프로그래밍된 대로.
뭐 게임이 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이 아니니까 말야.”
“...”
“또 궁금한 거 있나?”
“저, 의사가 가족을 죽인 이유는 뭐죠?”
“싸이코니까 그렇다네. 싸이코의 심리를 누가 이해하겠나.”
“그… 집사의 소개 메세지에, 어두운 비밀 운운하는 대목이 있던데… 그건 뭐죠?”
“알콜 중독이라네.”
“...커피를 조심하라는 건요?”
“맛없게 타니까 조심하라는 거였네.”
“...”
허탈함이 밀려온다. 어쩐지 열심히 참가한 내가 바보같게 느껴진다.
“트래쉬 군, 그래도 원래 다 처음은 이런 거 아니겠어.
어설프고 바보같아 보여도, 점점 좋아지는 거지.
자네 <홍삼 스포츠>나 우리 <드림 리얼리티>도 그럴거야.
안그런가.”
“그건 그래요.”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하네. 같이 100년, 200년 해먹자고.
아, 그리고 시나리오는 사실 내가 짠 거였어.”
"헉!
...어쩐지 아주 흥미진진하고 개꿀잼이더라니, 그랬군요."
로렐로 아재가 악수를 청했다.
난 그의 두툼한 손을 마주잡았다.
의외로 굳은 살이 단단히 배겨있다. 저래보여도 젊을 때는 꽤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았나 보다.
‘어찌됐건 우리는 상금도 벌고, 운동장에 잔디도 깔고. 잘된거지 뭐.”
그런데 유일하게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 단 한 명 있다.
“하우~~ 저는 그냥 추태만 보였어요. 이게 모야~~~”
“괜찮아. 관객들은 다 만족하셨대.”
“그래도 명탐정인데… 흑…”
“충분히 라비다웠어. 아무도 뭐라 안할거니까 걱정마.”
“아니~~ 코치님, 저다운게 뭔데요?”
가끔씩 아침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를 종종 말하는 라비가 내게 물었다.
너다운 것은...
나는 라비의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시선을 회피했다.
“가자. 돈도 벌었으니 앨리스하고 같이 맛있는 거 먹자. 고기 어때? 고기 좋지?”
“코치님, 이런 건 저다운 모습이 아니라구요오…”
“그래도 네 ‘저주받은 인체모형’설은 아주 약간이나마 앨리스에게 힌트가 되었을거야. 그걸로 위안삼자구.”
나는 어깨동무를 한 채 라비를 적당히 끌고 나갔다.
명탐정 라비는 사건 해결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는 결말.(해피엔딩)
***
“그래서, 새로운 선수를 뽑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날, 모두가 모인 앞에서 내가 말했다.
레이지 단장, 비서 메리, 라비, 앨리스, 그리고 나.
잘하면 여기에 새로운 뉴페이스 한 명이 추가될지도 모른다.
“뽑을 수도 있다?”
“맘에 안들면 안 뽑을 수도 있거든요.”
내 ‘감식안’을 이용해 철저히 가치를 파악한 후, 적어도 잠재성 S 이상이 아니면 전부 거를 생각이다.
나는 우리 팀을 소수 엘리트로 키우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어정쩡한 애들 잔뜩 데려다 모아봤자 월급만 축낸다.
애초에 이 만능 스포츠는 선수가 많다고 좋은 그런 게 아니야.’
“그래서? 다음엔?”
앨리스가 물었다.
“저를 도와줄 분이 한 두 명 필요해요. 아무래도 저 혼자만의 평가로는 놓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호… 맞는 말이군. 그런데 난 패스해주게.”
레이지 아재가 말했다.
“왜죠?”
“난 사람 볼 줄을 잘 몰라. 그리고… 나머지 안 뽑은 사람들을 떨어트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마음이 아프거든.”
“하하, 의외로 꽤 감상적이시네요. 뭐 알겠습니다.”
그러고보면 이 아재가 라비를 <홍삼&인삼 파워 스포츠>에 뽑은 게 기적이다.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되었으니…
사람에겐 일생에 몇 번은 운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 아재에겐 그 운이 바로 라비였겠지.
“저요! 저! 저는 돕고 싶어요, 코치님!”
“라비야, 잠깐만.”
“왜?”
수업시간에 발표하듯 손을 든 라비를 앨리스가 제지했다.
“선수가 다른 선수를 선발하는 면접에 참여한다는 건, 꽤 예민한 문제야.”
“그래?”
“일종의 서열의식이 은연중에 생길 수도 있다고.
내가 널 뽑았으니까, 난 너보다 위야. 이런.
뽑힌 쪽에서도, 우리가 뭐 엄청 대단한 것마냥 착각할 수도 있잖아.
선수인사에 직접 관여하는, ‘선수 위의 선수’인 것처럼.”
오, 앨리스. 생각이 깊군.
솔직히 난 별 생각 없었는데.
그래도 괜찮지 않나? 하고.
저렇게 우리 팀 여자애들이 자발적으로 팀의 질서를 잡아주니 몹시 바람직하다.
“모든 선수끼리는 팀내에서 서로 동등한 위치여야 해. 연봉이나 실력하고 상관없이.
오로지 ‘주장’을 제외하면 말야.
그런 점에서 난 우리들이 면접에 참여하는 건 반대.”
“알았어. 앨리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라비는 순순히 손을 내렸다.
자연스레 남은 메리에게 우리의 시선이 쏠렸다.
“어… 선배님, 저도 좀 힘들 것 같은데요.
그 날엔 일이 좀 많아서…”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 일들은 그동안 내가 안하고 미뤄서 쌓인 것들이니 불평할 도리가 없다.
결국 나 혼자 뽑아야 하나.
“그러면 제 판단에 따라 잘 뽑아볼게요. 다들 불만없죠?”
“오케이.”
“예.”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 팀은 묘하게 내 의견에 따라 대부분의 결정을 맡기는 경향이 크다.
개국공신이자, 팀의 브레인으로.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반대로 부담감도 꽤 있다.
내 결정에 따라 팀이 곤두박질칠 수도 있으니.
그리고 난 전생에 진수현으로 감독생활을 했을때 맡은 팀을 그렇게 나락으로 메다 꽂은 경험이 매우 많다.
...괜찮은가, 이거.
점점 팀의 구성원이 늘고, 발전해나가면 자연스레 내 비중은 줄어들겠지.
그때는 내가 비로소 코치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을 터.
“그러면 메리야, 면접대상 선수들한테 연락 좀 해줘. 날짜하고 장소도 같이.”
“알겠어요.”
그렇게 아침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또 정해야 할 게 하나 더 있지만, 이건 이거야말로 코치의 몫이다.
다음 대회 종목!
아직 여유는 있지만 그래도 스텔라에게 상환할 십만 골드의 납기일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사실 내 마음은 이미 꽤 기울어져있긴 하다.
‘이제 한 명 더 뽑아서 3명 채우면, 드디어 참가할 수 있거든.’
총상금 삼십만 골드, 지역을 넘어 씨엔나가 소속된 동부 도대회.
라비의 주종목 <헌팅>.
3명이 참가하는 대회부터는 상금도, 권위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헌팅>의 상금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전까지의 대회 상금이 푼돈으로 느껴질만큼.
‘다 뒤졌다…. 딱 대고 기다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