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수련 돌입(1) (53/109)



〈 53화 〉수련 돌입(1)

2일차 훈련에 도달한 스이나.

놀랍게도 이제는 몸풀기 체조 정도는 수월히 따라할 수 있었다. 어지러워하지도 않고, 토하지도 않는다.
무지 하기 싫어하는 표정이지만 꾸역꾸역 어떻게 따라오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 체력 1에서 이제는 벌써 3으로 올라왔으니까.

조금 부실한 일반인 정도는 된다는거다.

평범한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체력 6 ~ 8 정도를 찍는 걸 고려하면 아직도 갈 길은 멀었지만 말이다.

어째 한 십 년은 의식을 잃은 채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다 막 깨어난 소녀의 재활훈련같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이라는 알 속에 오랜 세월 틀어박혀있었던 만큼 본질적인 의미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보다는, ….아요.”
“그럼요, 어제보다 훨씬 낫네요. 그러면 이제 다음 훈련으로 들어갑시다.”
“...면, ...은데…”
“아니오, 똑같은 것만 하면  힘들겠지만  단련이 되지 않아요.
“...면 ….아요.”
“그러면 아무리 운동해도 계속 힘들지 않냐고요? 갈수록 더 힘든 걸 시키니까?

..그게 운동입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는 것.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

스이나는 이런 열혈스러운 전통적 코칭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일단 걷고 뛸 수만 있으면 돼. 얘한텐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아.
활용할 수 있는 건 ‘염동력’이다.’

다행인 점은 스이나는 앨리스와 달리 스킨십에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다.

아니, 부정적이지 않다기보다 아예 그냥 별 반응이 없다.


어깨 주물러주기.

그냥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릴 뿐이다. 그게 다다.

지쳤을  손 잡아주기.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손이 뭐 버스 손잡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감정하게 잡고 일어나서 오히려 내쪽이 당황했다.

땀 닦아주기.

닦나보다, 하고 가만히 해주는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돌하르방이라도 반질반질하게 닦아주는 기분이다.


...너무 반응이 없는 거 아냐?
지금 분위기로 보면 갑자기 가슴을 쓱 쥐어도 얘는 ‘아, 가슴 만졌네.’ 하고 그냥 넘어갈 지도 몰라.

무반응을 넘어 무방비에 가까운 천연함이었다.


어찌됐건 내 ‘기본 스킨십 풀코스’로 체력, 근력, 의지, 속도를 각 1씩 또 올리고,
‘염동력’도 C단계로 향상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제 앞으로 일주일 정도만 더 돌봐주면 스이나도 자기 앞가림은 어떻게  수 있겠지.

나는 결심했다.

‘좋아. 이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야겠어.’



***

“자, 그러면 <블루 윙 스포츠> 훈련장까지 가는 동안 라비가 둘에게 설명해 줘. <헌팅>에 대해.”
“오옷, 제가요?”
“그래. 이 중에 유일한 <헌팅> 경험자기도 하고, 또 주장이기도 하니까.”

라비의 콧대가 으쓱 높아졌다.

“햐~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앨리스, 스이나. <헌팅>은… 위험해! ...그리고 재밌어!”
“...”

둘 다 별 반응이 없다.
앨리스가 말했다.

“그게 다야?”
“아니,아니,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현재 만능 스포츠에서 <헌팅>이  TOP5 안에 드는 인기 종목인지 간단히 설명부터 한거야.”
“나도 <헌팅>이 인기 많은 건 알아. 최소 참가인원 3명부터 시작하는 스포츠인 것도 알고.
팀을 이뤄 특정 목표물을 사냥하는 일종의 레이드 형식 스포츠라는 것도. 그리고 또...”
“앨리스!”

라비가 앨리스의 손 위에 척 자기 손을 올렸다.
앨리스가 물끄러미 그 손을 바라봤다.


“아니, 왜?”
“...내게 간만에, 아주 간만에 찾아온 기회야.
다른 사람에게 내 지식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라구.
앨리스는 모르겠지만… 흑… 나에겐 이런 기회가 그다지 자주 찾아오지 않아.”
“...세상에.”
“부탁이야. 내가 설명하게 해줘. 응? 앨리스.”
“알았어, 알았어. 니 맘대로 하세요.”


라비가 빵긋 웃었다.


“어예~ 그러면 다시 내가 알려줄게.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헌팅>은 정말정말 위험해!

사망자도 심심찮게 발생할 정도야.
참가하기 전에 경기 중에 발생 하는 어떤 위험에 대해서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동의서도 작성해야 하지.

그리고 그래서 재밌는거야. 엄청 리얼에 가깝거든!”


그렇다.
이 돌아버린 스포츠는,

사실 이 세계에선 어지간한 스포츠 대부분이 현실세계 기준으론 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이면 안될정도로 미쳐 날뛰지만,

<헌팅>은 그 중에서도 더더욱 정신나간 스포츠다.

제국력 800년~ 어쩌구~하는 지루한 이야기를 하진 않겠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세계의 역사에는 인류에 대적한 수많은 ‘적’들이 있었다.
인간(원숭이족), 오족, 너구리족  ‘인류’로 분류되는 종족들과 달리 그들은 '유사인류', ‘위험생물’로 낙인찍혔고, 철저히 토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헌팅>은 ‘인류’의 전쟁과 승리의 역사를 재현하는 스포츠다.

과거 역사 속에 존재했던 ‘위험생물’들을 마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구현한후, 선수들이 토벌하는 극한 스포츠.

그것이 <헌팅>이다.

 사망자가 종종 나오는지 슬슬 감이  것이다.

용족, 악마족, 반인반수족, 해수족, 벌레족, 거인족…

대회를 준비하는 최소 오십명의 SS급 이상 마법능력자들이 이 ‘위험생물’들을 충실하게 재현해낸다.

비록 복제된 레플리카지만  파워는 적어도 원본의 50%, 많게는 90%에 달한다.

선수들이 뒤져나가는 것도 당연하다!


“산에서, 사막에서, 바다에서, 폐허에서…

수많은 졸개들을 사냥하고, 하급간부들을 사냥하고, 최고간부들을 사냥하고, 마지막으로 그 우두머리까지!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는 스포츠라 이말씀.”
“왜 너가 흐뭇해하는거야? 내가 알기론 라비 넌 딱히 <헌팅>에서 우승해본 적도 없는 걸로 아는데.”


앨리스가 태클을 걸었다.


“앗…”
“앨리스, 그 부분은 넘어갑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블루 윙 스포츠>의 훈련시설에서 <헌팅>을 연습할거예요.

다른 스포츠는 어떻게든 했다 쳐도 이 <헌팅>만큼은 전문 훈련시설이 없으면 연습할  없으니까요.”
“용케 <블루 윙>에서 허락해줬네? 코치, 의외로 유능한 걸.”
“크크…  사정이 있죠.”


메리가 모는 우리의 작은 봉고차는 잘 깔린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 <블루  스포츠>의 훈련장으로 진입했다.

이제부터 1주일 반 동안 우리는 여기서 동고동락하며 맹훈련에 들어갈 것이다.
물론 <블루 윙 스포츠>의 전폭적인 협조도 받아가며.

작은 플랜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블루 윙>에서 걸어놓은 것같다.


-화이팅! <홍삼 스포츠>, 타도! <퍼플 캣츠>

녀석들, 언제 그랬냐는듯 우리끼리 경쟁했던 건 접어두고 이번 <헌팅>에서만큼은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줄 모양이다.

자기들 주장인 ‘철벽’ 카이아나가 <퍼플 캣츠>에 납치당했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라비는 세련되고 고급진 <블루 윙>의 시설에 감탄했다.

“와…”
“침 흐르겠다, 입 반만 닫자, 라비야.”
“코치님, 저희도 언젠가 이런 시설에서 훈련할 수 있을까요?”
“그럼.”
“예? 진짜요?”
“당연하지. 지금 <블루 윙>에서 훈련시설 빌려준대잖아. 남들 얘기할 때  들었니, 라비야.”
“그게 아니라…
휴, 됐어요, 코치님.”

내가 말을 잘못 알아들은건가?
 그건 그렇고, 우리는 뭐라도 맡겨놓은 사람처럼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들어갔다.
너희들의 구세주가 도착했다, 라는 포스를 팍팍 풍기며.

이제는  자주 봐서 지겨운, 정도 든… 아니, 아직 정까지는 안 든 라이스 녀석이 우리를 반겼다.


“아, 트래쉬 코치님. 그리고 <홍삼 스포츠> 선수들. 어서오세요.”
“또 라이스예요?”
“예? 저면 안됩니까? ...트래쉬 코치님,  이래봬도 여기 수석코치입니다만?”
“뭐 됐어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훈련 들어갑시다.”
“...항상 트래쉬 코치님하고 말하면 뭔가 페이스가 말린단 말야.
...아, 혹시 뒤쪽 선수는? 처음 보는데요.”

라이스가 내 뒤에 숨어있던 스이나를 바라봤다.
스이나가 시선을 피했다.
본능적으로 싫은 놈이란  간파한듯이.

라이스가 고개를 쭉 내밀어 스이나의 얼굴을 보려고 내 등 뒤를 돌아봤다.
스이나가 내 주위를 180도 빙글빙글 돌아 다시 내 뒤에 숨었다.


“둘이 뭐해요, 지금.”
“그게,... 처음 보는 선수라서… 인사를…”
“라이스 코치님,  저희 선수 겁을 줘요?”
“억울합니다…”
“스이나예요. <헌팅>은 3명이서 해야하니까.”
“오호, 그렇군요.”


<블루 윙>의 라이벌인 우리 <홍삼>에 새로 들어온 스이나에게 호기심 반, 경계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라이스가 말했다.


“그러면 저희의 <헌팅> 전용 훈련 시설로 모시죠.”

***


“<헌팅>의 가장 중요한 전략  하나는 어떤 무기를 택하고, 다루느냐는 겁니다.”


라이스가 말했다.
그의 앞에는 작은 부대를 무장시키고도 남을만큼 다양한 무기들이 죽 늘어서있다.

얼핏보기엔 중세시대, 혹은 판타지 세계의 무기들 같지만 자세히 보면 기계부품처럼 보이는 작고 세밀한 것들이 부착되어 있다.


“대회에서 핵심 포인트는 신속하게 자기의 주무기를 획득하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거죠.
무기의 성능이 <헌팅>대회에서 선수가 발휘할 수 있는 공격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까요.”


라이스가 철퇴를 하나 들고,  휘둘렀다.
평범한 철퇴같지만 그 궤적에 전기장 같은 전격이 파즈즈거리며 따라온다.

“개인적으로 저는 <헌팅>에 참가하는 프로선수라면 모든 무기를 어느 정도 이상 숙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무기를 획득하더라도 바로 쓸 수 있게.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적어도 주무기, 보조무기 두개는 마스터해야하죠.”
“근데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그게 가능할까요?”


내가 물었다.
라이스가 고개를 저었다.


“좀 무리지 않을까요…”
“그러면 일단 주무기만 숙련하는 걸로 하죠.”
“뭐 그래야겠네요. 라비 선수, <헌팅> 경험이 있다고 하셨죠. 전에는 어떤 무기 선호하셨나요?”


라이스가 묻자 라비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헤헤, ‘절단대도’요.”
“오우, 화끈한데요.”

지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하길래 내가 끼어들었다.

“라비야, 그게 뭐야?”
“엄청 대빵 큰 칼이요, 코치님.  무겁긴 한데, 공격력이 어마어마하게 세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방어불능의 공격력이 추가됩니다. ‘절단대도’, 이름하여 'BF블레이드'의 특징이죠."

라이스가 덧붙였다.


“그리고 보조무기는, ‘참격도’와 ‘진동파 쌍검’정도일까. 응,  개를 주로 썼던  같아요.”
“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군요. 괜찮은데요.”

라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 선수는 그대로 가도 될  같아요.
굳이 바꿀 것 없이. 빠르고 민첩한데다 검까지 다루면 아주 정석적인 근접 딜러 역할을 맡을  있죠.”
“그럼 그래라, 라비야.”

뭐  녀석이 잘 아는 모양이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떡은 떡집에 맡기라고, 굳이 비전문가인 내가 참견할 이유 없어보인다.


“그러면 앨리스 선수는?”
“난 무기 필요없어.”
“흐음… 그래도 되긴 하지만, 굳이?”
“괜히 익숙하지도 않은 무기 일주일 동안 숙련해봐야 별 도움도 안될 것 같아.

 ‘불의마법’으로 싸울래.”
“그럴 수 있죠. 사실 ‘불의마법’ 정도 되는 스킬이라면 어지간한 ☆☆☆☆급 무기 정도의 공격력은 나오니까, 그것도 괜찮겠네요.”


중간에 모르는 개념이 나오길래 내가 물었다.

“저 라이스 코치, ☆☆☆☆급 무기가 뭐예요?”
“무기 등급입니다. ☆1개부터 5개까지 등급이 있어요.”
“흐음…”


그러면 앨리스는 억지로 무기를 다루게 가르칠 것 없이, 타고난 마법으로 승부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대신 앨리스 선수는 저희 <블루 윙>의 스킬 개발 전문가들의 코칭을 받는  어떨까요?
‘불의마법’을 더 강하게 숙련하고, 여러가지 응용기술도 찾아보게요.”
“아, 그건 괜찮겠다. 코치, 난 그걸로 할게.”

다음으로 라이스는 스이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길에 약간의 의구심이 비친다.

“혹시, 스이나 선수도 앨리스 선수랑 비슷한 타입? 마법특화형 선수인가요?”
“뭐 그렇다고 봐야겠죠.”
“스이나 선수, 특기가 뭔가요?”
“...”

보다못해 내가 끼어들었다.

“스이나, 대답해도 돼요.”

꼭 옆 집 사람한테  말 아니면 안 듣는 강아지를 보여주는 기분이다.
낯을 엄청 많이 가려 모르는 사람하곤 절대 얘기하지 않는 스이나가 슬쩍 나를 보더니 입을 자그맣게 열었다.


“...요.”
“스이나 선수, 저기, 제가  못들었어요. 죄송해요 뭐라고요?”
“...요.”
“예?”
“...”

스이나는 빡쳤는지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말을 몇번을 시키는 거예요, 라이스 코치.”
“아니… 잘 안들려서…”
“염동력이라고 두번이나 말했구만.”
“...죄송합니다.”


내가 옆에서 갈구자 라이스는 풀죽은 기색이 역력하다.
불쌍한 녀석.

“...일단 마법특화형 선수들은 ‘레이저 석궁’이나 ‘폭발, 마비 활’, 아니면 ‘암기’를 추천해요.
아무래도 접근전은 불리하니까요.”
“일주일 안에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스이나는 그러면 원거리 무기로 갈게요. 괜찮죠, 스이나?”
“.....지만, …..지마요.”
“스이나 선수가 뭐라고 했어요?”
“해보긴 하겠지만 너무 기대하진 말래요.”

아참, 깜박할 뻔 했다. 난 급히 말했다.

“맞다. 스킬 개발 전문가들 스이나에게도 코칭해줄 수 있나요?
스이나의 ‘염동력’도 이참에 단련해두고 싶은데.”
“예, 물론이죠.”


좋아 좋아.

이래서 <블루 윙 스포츠>의 협력을 원했던거다.

우리같이 작은 팀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육성시스템이 갖춰져있거든.

내가 말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합시다. 라비, 앨리스, 스이나. 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오세요.
저희는 남은 준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알차게 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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