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사고(1)
<블루 윙 스포츠>의 체력 단련 센터엔 기가 막힌 설비들이 있었다.
판타지 세계라 그런지 현실의 과학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별세계의 기계들이다.
먼저, 몸의 치유를 돕기 위한 <극저온 냉동 치료cryotherapy 캡슐>.
안에 들어가 영하 140도의 새하얀 질소 증기를 잠시 쐬고 나오는 독특한 신체 회복 캡슐이다.
주로 피로회복, 염증 경감에 효과가 있다.
이 기계는 원래의 내 세계에도 비슷한 게 상용화되어 있지만, 여기는 뭔가 수상쩍은 마법적인 요소가 더해져 효과가 더욱 극대화 되었다.
거기에, 경구섭취용 <초회복 비타민 보충제>.
이건 거의 선두같은 기적의 회복제다.
한 알을 먹으면 앵꼬가 난 체력이 한 절반 정도 다시 회복된다.
다만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하루 세 알 이상은 섭취하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최면요법 - 리미터 해제>.
인간의 정신에 직접 간섭해, ‘조금 더 할 수 있다’, ‘고통과 피로감이 덜 느껴진다’고 암시를 거는 위험한 요법이다.
자칫하면 정신을 망가뜨릴 위험성이 있으므로 극히 단시간에 한해서 사용해야 한다.
모두 전문가의 관리 아래 부작용이 남지 않게 신중하게 써야 하며 과용은 금물인 설비들이었다.
<블루 윙 스포츠>의 훈련시설에 오지 않았다면 쓸 일이 없었겠지.
오늘 체력 단련 센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이 넓은 공간을 전세낸듯이 맘껏 쓸 수 있다니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군.
체력을 펌핑시켜주는 시설의 도움을 받아 내 코칭 아래 미친듯이 뛰고 점프하고 하며 구른 스이나.
그녀는 분명 죽을 정도로 힘든데 체력이 다시 돌아오고, 또 바닥난 후 다시 돌아오고 하는 기묘한 고양 상태에서 세 시간을 내리 운동했다.
덕분에 원래라면 스이나는 한 번 겨우 하고 뻗었을 체력 단련 코스를 무려 17회나 반복 수행하는데 성공.
“후우….하아…. 더는…. 못해요….”
“오케이.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네요. 스이나, 수고했어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이나가 그대로 바닥에 뻗어버렸다.
오늘 이 이상 훈련 시키는 건 무리처럼 보인다.
[한계 돌파]
[스이나가 그녀의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위업 달성: 지옥의 체력단련 코스 돌파
어느 옛날 네덜란드에서 온 한 감독이 아시아의 축구대표팀을 처음 맡게 된 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이 팀은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오, 체력이 부족한 거지.
이후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그의 수석 피지컬 코치인 레이몬드 베르하이옌은 선수들에게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까지 하면서 극한의 체력 훈련을 도입했습니다.
유산소, 다시 유산소. 고강도와 저강도 트레이닝의 반복.
당신은 이 검은머리 아가씨에게 그 정도로 훈련을 시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훈련받는 당사자 입장에선 마찬가지겠죠.
덕분에 그녀의 심장은 미세하게 더 두꺼워졌고, 이제 한 번의 호흡으로 더 많은 산소를 혈액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능력치가 올라갑니다.
‘초재능A+’의 효과를 받아 더욱 더 상승합니다.
체력: 6 (+2)
속도: 5 (+1) ]
스이나는 내 전문적인 단련 프로그램, <블루 윙>의 설비, 그리고 본인의 탁월한 재능에 힘입어 드디어 일반 평범한 선수급의 체력을 얻게 되었다.
‘감개가 무량하구만. 내가 폐인 하나 사람으로 만들었다.’
스이나가 땀을 비오듯 흘렸다.
하얀 운동복 셔츠가 땀에 푹 젖어 안의 브래지어까지 비쳐보인다. 살구색이군.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에로한 모습이니 조금 땀이 마를때까지 기다렸다 나가야겠다.
“기분이 어때요?”
“...”
“말 할 기력도 없구나. 괜찮아요.”
“...것 같아요.”
“에이, 이제 이 정도론 토 안합니다.”
생각 외로, 정말 잘 따라와주고 있다.
대놓고 하기 싫어하긴 하지만 막상 시키면 또 군말없이 꿋꿋하게 하는 것이다.
의외로 실전에서 꽤 활약하는거 아냐?
난 약간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스이나, 이대로만 한다면 아마 제 생각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구궁-!!
갑자기 우리가 있는 체력 단련실이 진동했다. 제자리에 서있기도 힘들어 난 한 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건물 전체가 잠시 흔들리는 느낌이다.
지진인가…?
지진 발생시 행동 요령.
빠르게 내 기억 속에 저장된 행동방침을 떠올렸다.
가스와 전깃불을 차단한다. 그건 신경 안써도 되고.
튼튼한 탁자 아래에 숨는다. 여기 그런거 없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요?
낙하물이 없는 넓은 공간으로 대피한다.
낙하물, 낙하물…?
그건 있다!
시이팔!
천장에서 끊어진 호스와 파이프, 배관, 다량의 콘크리트 조각이 스이나의 위로 수직낙하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난 기진맥진한 채 바닥에 드러누워있는 스이나에게 시선이 향했다.
조.. 조온나 위험해…!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코치는 씨발, 몸 몇 군데 부러져도 상관없다. 선수가 우선이니까.
난 눈을 감고 스이나의 몸을 내 몸으로 덮었다.
팔굽혀펴기 하듯 최대한 내 팔로 지지대를 만들어 스이나에게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게 공간을 만들었다.
내 어깨, 팔은 분명 아작날 것이다. 잘못하면 내 허리도 성치 않겠지.
그래도 이게 최선이야.
내가 라비처럼 빠르면 스이나를 들고 자리를 벗어났겠지만 그것도 아니니까…
근데 이거 몇 군데 부러지고 끝날 수준이 아니겠는걸?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겠어. 하하.
곧이어 내 몸을 덮칠 거센 충격을, 둔탁한 고통을 기다렸다.
“흐읏…!”
살며시 눈을 떴다.
내 얼굴 코 앞에 깔려있는 스이나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안간힘을 쓰는게 보인다.
그 눈빛이 영롱한 초록색으로 일렁거린다.
‘뭐하는거지…?”
뇌가 반 템포 늦게 돌아가 무슨 상황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서서히 깨달았다.
“스이나, ‘염동력’...”
“버...버티는게… 최선....이에요…. 이 틈에...빠져나가….주세요…”
목을 바르르 떨며 스이나가 중얼거렸다.
거의 500kg는 족히 육박할 콘크리트 덩어리와 온갖 잔해들이 내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듯 위태위태하다.
더군다나 잔해의 산이 우리를 가두듯 하고 있는 구조를 이루고 있어 밖으로 나갈 틈이 안보인다.
꼼짝없이 갇혔다.
“스이나, 나가는 건 무리예요. 혹시 ‘염동력’으로 저 잔해들 움직일 수 있어요?”
“...그것도...무리…지금이… 한계예요...”
당장이라도 스이나의 ‘염동력’이 힘을 다할 것 같다.
이런 젠장…
시간이 얼마 없다. 자칫 꾸물거리면 둘 다 사이좋게 쥐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제가 가리키는 잔해에만 ‘염동력’을 해제할 수 있어요?”
끄덕.
좋아.
지금은 이 방법에 걸어봐야겠군.
지옥의 테트리스 시간이다.
나는 좁아서 몸을 돌리기도 힘든 잔해의 밑, 좁은 틈에서 최대한 전체 구조를 눈여겨봤다.
난 소싯적에 테트리스를 무지 잘했단 말이다. 여기서 T스핀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 길은 보인다.
“스이나, 저 파이프… 제가 지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거. 빨간색 저거. ‘염동력’ 해제해주세요. 괜찮을겁니다.”
털컹.
건축학과 물리학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저런 각도로 기울어진 파이프를 지탱하는 힘을 해제하면 어느 방향으로 쓰러질지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힘을 받지 않은 파이프는 절묘하게 쓰러지며 잔해 사이에 딱 내가 바란대로 걸쳐졌다.
“이렇게 반복합니다. 잔해들이 지들끼리 서로 지지하는 초정밀한 균형상태를 만들 수밖에 없어요. 할 수 있죠?”
“...만약에… 하나라도…”
“하나라도 실패하면 망하는 거죠, 뭐.”
“...”
스이나는 잠시 반쯤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고민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다시 눈을 뜨고 초록색 안광을 빛냈다.
“자, A자 모양으로 삼각형 지지대를 만들겁니다. 일단 저 프레임부터요. 저거는 떨어져도 우리가 들어갈 공간이 나와요.”
“...겠어요…”
“다음은 저 개같은 시멘트 조각. 저거는 왼쪽 경사를 타고 굴러내려가게 합시다. 지금!”
“...흐읏.”
“아직까진 순조롭습니다... “
…
...
잠시 후, 천운이 도왔는지 우리는 천장에서 쏟아진 잔해로 형성된 인공 쉘터 밑에서 겨우 숨을 돌렸다.
일단 살긴 살았다.
다만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고, 서로 마주보고 깔린 상태에서 몸 하나 옴싹달싹하기 힘들지만.
“후우… 이대로 있으면 그래도 금방 누가 구하러 올거예요.”
“...”
“그보다 답답하진 않나요? 제가 너무 누르고 있어서…”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최대한 밑에 깔린 스이나에게 공간을 마련해준다고 몸을 들어올리고 있는데도, 서로 코와 배꼽이 스칠 지경이다.
“...쩔 수 없으니까.”
이 상황에서 스이나가 ‘염동력’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남자 밑에 깔린 상황에서도 별로 부끄러움을 못느끼는 천연한 성격이라는게 다행이었다.
“조금만 참읍시다. 그보다 스이나 전보다 말을 좀 더 분명하게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역시 위급한 상황이라 그런가?”
“...”
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은 자기의 한계를 조금씩 깬다는 건가.
말도 훨씬 알아먹게 하고, 게다가 ‘염동력’도 몇백 kg을 떠받칠 정도로 출력이 올라갔다.
본의 아니게 극한상황에서 스이나가 각성한 걸지도.
답답한지 스이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꼼지락거렸다.’?
어…?
내 시야엔 스이나 손은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그걸 어떻게 아는거지?
아, 이유는 간단하다.
스이나의 손가락이 자꾸 꼼지락거리며 내 아랫도리를 간지럽히고 있으니까.
그렇군.
호기심 해결이다.
...아니, 얘 왜이래?
“저, 스이나, 그, 손, 그거… 잠깐만요, 아니...”
“...뭐가 있어요… 안보이는데… 손에 닿는...튀어나온거…”
하필 (또) 츄리닝을 입어 제대로 억제되지 않는 내 자지를 스이나의 손가락이 핀포인트로 살랑살랑 간지럽히고 있었다.
당연히 일부러 하는 건 아닐텐데, 그렇다고 해서 내 자지가 반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헤이, 스탑!
돈 두 댓!!!
나는 최대한 스이나의 손끝에서 1cm라도 멀어지기 위해 옴찔거리며 엉덩이를 잔뜩 들어올렸다.
하지만 내 필사적인 노력이 무색하게 스이나의 손이 안으로 더 파고들어 핀포인트로 내 자지를 추적했다.
촉수물에서 능욕당하는 불쌍한 남주인공이 된 심정이다.
고운 손으로 츄리닝 위로 한껏 치솟은 내 자지끝을 살살 긁는 스이나.
“딱딱하고...움직여요… 이상해… 코치, ...이건 대체…”
“스이나!!! 일단 정지!!!”
“....?”
“스이나, 그…. 그거 접니다! 제 신체일부예요. 크흑…”
“...”
스이나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떠오른다.
이 사람,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걸까? 하는.
하지만 아무리 무신경한 스이나라고 곰곰히 생각하면 이 의미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노릇.
“...!!”
언제 그랬냐는 듯 즉시 손을 뗐다.
스이나의 동공이 미친듯이 흔들린다.
그 인형같은 얼굴에 누가 색칠이라도 한듯 붉은 기가 돌았다.
“죄,죄...죄송해요. ….몰랐어요.”
“괜찮습니다.”
내가 들어본 중에 가장 또박또박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스이나였다.
그런데 이미 좀 늦은 것 같다.
스이나의 섬세하고 정확한 컨트롤(?)이 본의아니게 내 자지의 브레이크를 해제해버렸다.
내 우뚝 솟은 물건은 츄리닝 위로 삼각산을 세우며 스이나의 비부 위를 천천히 밀어 젖혔다.
‘아니야, 아니야! 애국가 씨발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지만 지금은 내 자지가 백두산이다.
하필 우리 둘은 움직일 틈도 없이 딱 붙어있어,
55도로 상승한 내 페니스가 정확히 스이나의 야한 곳 위에 도킹을 시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서로 츄리닝, 얇은 체육복 바지라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기세에 휩쓸려 갈라진 균열 안으로 자연스럽게 삽입까지 이어졌으리라.
“아…”
스이나가 난처한 듯 한숨을 흘렸다.
아무리 성지식이 부족한 스이나라지만 지금 자기의 은밀한 부분을 짓누르는게 뭔지는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을 테니.
러브코미디 만화를 보면 이런 상황이 종종 나오는데 볼 때는 한없이 부러웠지만
직접 내가 이 상황이 되고보니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스이나는 서로 얇은 옷감 밑으로 성기를 비벼대고 있는 이 음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비비틀며 회피를 시도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용틀임하는 구렁이가 자칫 스이나의 경험없는 균열 안으로 불쾌한 자극을 선사하지 않도록 나 역시 엉덩이를 옴쌀달싹하며 멀어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둘이 동시에 미세한 움직임을 반복하니 오히려 정반대로 너트와 볼트를 세밀하게 비비적대며 돌리는 결합운동의 효과가 발생했다.
하면 할수록 내 자지끝에 익숙한 자극이 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스이나의 보지에도 심상찮은 감각이 전해지고 있을 터.
역효과다.
나는 헛수고를 멈추고 스이나에게 말했다.
“절대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닙니다. 스이나.”
“...니예요… 제가…. 오히려…”
그래, 니 잘못이야.
왜 잠자는 사자의 콧수염을 간지럽혔냐고, 그러게.
“그건 그렇고… ‘염동력’ 엄청 세졌네요.”
“...”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난 말을 돌렸다. 아무말이나 막하자.
“혹시 절 구하기 위해 평소엔 내지 못한 힘을 낸 건가요?”
“...라요.”
몰라요, 라며 시선을 돌리는 스이나.
그녀의 균열에 지금도 가해지는 묵직한 압력이 몹시 신경쓰이는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뭔가… 지금의 힘을 실전에서도 낼 수 있다면… 굉장하겠네요.”
“...”
“지금의 감각, 잘 기억해두는 게 좋을지도…”
“지금….이요?”
스이나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뭔가 오해한 모양이다.
“...아. 그게 아니라… 저희 밑에가 부비적대는 그 감각이 아니라요, 위기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염동력’의 출력을 올린 그 감각… 말이죠.”
“...아.”
그 때 멀리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사람 있어요?
-묻겠습니다. 혹시 이 밑에 깔려있는 분 있으면 소리를…
나와 스이나가 시선을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 여기 사람 있어요!”
“...기요…. 있어요…”
사실 나 혼자 소리친거나 다름없긴 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멈추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람을 부르러 갔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웬 철가루가 스르르 잔해 틈 사이로 스며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의 몸 위에 철가루와 자기장이 섞여 이루어진 미묘한 배리어가 한 겹 형성됐다.
동시에 우르르 위로 솟아오르는 잔해들.
금속 덩어리들은 전부 떠올라 날아가고, 시멘트나 콘크리트, 돌조각들은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방어막 덕에 그 잔해들은 우리 몸에 떨어지지 않고 전부 주변으로 튕겨나갔다.
“후,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큰일 날 뻔 했네요, 두 분.”
이마에 하얀 머리 띠를 두른 심지가 견고해보이는 여인이 말을 건넸다.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