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미디어데이 (58/109)



〈 58화 〉미디어데이

미디어 데이 당일.
오늘은 오전 훈련만 마치고 나와 스이나가 인터뷰가 열릴 장소로 향했다.

씨엔나가 위치한 동부 평원 지대 여러 도시의 대표호텔 중에서도 가장 큰, 최고급 5성 호텔의 1층 컨벤션 홀.

전생의 진수현은 거들떠 보지도 못했던 으리으리한 곳이다.


“스이나는 이런 데 와본  있어요?”


차 뒷좌석에 나와 나란히 앉아있는 스이나에게 물었다.

스이나는 3X3 루빅스 큐브를 손 대지 않고 염동력만으로 공중에서 맞추는 미니 훈련에 집중 중이다.
초능력 전문가가 따로 내준 과제다. 목표는 20초 안에 재조립하기.

괜히  시켰나.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언니…  때.”
“아, 유우 선수가 상 받을  와본  있군요.”
“...”
“그거 되게 뿌듯했겠네요.”
“...예.”


언니를 좋아하는 스이나는 무지 기뻤겠지. 겉으로 티는  내도.
당시 틀어박혀 있는 방구석에서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스이나 선수도 열심히 하면 그렇게 큰 자리에서 상도 받고, 언니도 자랑스러워 하고 그럴 수 있어요.”
“...”

말이 없다. 별로 내키지 않는 건지, 아니면 오르지 못할 산이라고 지레 포기한 건지…

“이번에 인터뷰 장소에 가도 굳이 무리할 필요 없어요. 그냥 평소처럼 편하게 있으시면 됩니다.”
“...자체가, ...해요.”
“이런데 가는  자체가 안 편해요? 하하,  그렇죠.
괜히 데리구 다녀서 미안해요.”
“...”

도착해 차가 멈췄다.  호텔이 보인다. 두시간 반이나 걸렸군.


***

“<래피드 팬더즈>의 코치 몰랑몰랑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 예. <홍삼&인삼 파워 스포츠>의 코치 트래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런 인사를 15번이나 반복하니 나도 벌써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총 참가하는 팀이 20개라 아직도 4번  해야 한다. <퍼플 캣츠>는 거른다 쳐도 3번.

거기다 언론사의 기자들, 협회 관계자들도 일일이 들러서 얼굴 도장을 찍어둬야하지.

사회 생활은 왜 이렇게 번거로운 걸까?

가끔씩 이럴 때면 9세기 북유럽 바이킹들의 호쾌한 삶이 부럽게 느껴진다.

그들은 약자의 이름 따위 절대로 기억해 주지 않았다는데.

-네놈같은 나약한 녀석은 기억해 둘 가치도 없다!  강해지면 다시 와라.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엑스트라들아, 너희들 따위 알게 뭐냐. 하고.

하지만 마음 속으로만 부르짖을 뿐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양을 떨고 다니는 소시민인 나의 모습이었다.

“...성공.”
“예?”

스이나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서 보니 큐브를 슬쩍 보여줬다.


“....19.3초. 이제… 되죠?”
“오케이. 게임 하셔도 됩니다.”

끄덕.

스이나는 큐브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작은 게임기를 꺼냈다. 한 손으로 내 정장 밑자락을 꼭 쥐고,  손만으로 게임기를 들고 시선을 고정했다.

‘염동력’의 수준이 오른 탓에 이제 직접 조이스틱이나 버튼을 손가락으로 누를 필요 없이 의지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이나.

이러라고 훈련시킨 건 아니지만…
저것도 저것 나름대로 ‘염동력’ 숙련에 도움이 되겠지.

“어이고, 이게 누구신가.”
“...”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눈앞에 보라색 인간이 등장했다.
양복도 보라색, 머리도 보라색, 넥타이도 보라색.
어린아이들이 그린 수채화 속 인물들처럼 파트 별 구분이 안된 채 일괄적으로 한 색깔로 칠해진 괴상한 남자.

“<퍼플 캣츠>의 어노잉 단장님이시군요. 안녕하세요.”
“아 그래, 반가워요. <홍삼>이었나…<도라지>였나… 여튼 거기 코치님.”


포마드를 치덕치덕 발라 손가락이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머리를 세운 <퍼플 캣츠>의 단장이 날 아는  했다.

190cm도 넘는 거구의 어노잉이 철저히 얕보는 시선으로 날 내려다본다.

알기 쉬운 녀석이군.
상대하는  기분이 별로라는 건 둘째 치고, 이런 타입은 사실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정직하게 나쁜 놈이거든.
오히려 나를 위해주는  하면서 뒤에서 배신각을 보는 녀석들이 적으로 치면 훨씬 까다로운 놈들이다.


“어? 라비 선수  왔네? 아나,  안 데려왔어요.”
“그거야 저희 마음이죠.”
“집에다 숨겨놓는다고 안 뺏기는 거 아닌데.”
“...단장님은 에이스를 데려오셨나봐요?”


어노잉 옆에 퇴폐적인 인상의 비쩍 마른 놈팽이 한 놈과, 보라색 트윈 테일 드릴 머리를 한 드레스 차림의 여자애가 눈에 띈다.

“그럼. 우리는 무서울 게 없으니까. 이쪽은 우리  감독 폴 세느비유. 그리고 에이스,  친조카 아드린느.”

<퍼플 캣츠>의 감독 폴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스이나를 주시했다.

 눈빛…!?

동족들끼리만 알아볼  있는 감인가.
카이아나가 스이나의 ‘염동력’을 눈치챘듯이,
나도 저녀석이 지금 뭘 하는지  것 같다.


‘감식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쓰는 건 처음 봤는데. 저런 느낌이구나.’

스이나의 능력치를 분석하고 있다.

어쩐지 게임 삼매경에 빠진 우리 스이나의 알몸을 혀로 핥듯이 훑는 기분나쁜 시선에,
순간 손가락을 두개 세워 눈깔을 찔러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건 못참지.’


나도 바로 ‘감식안’을 썼다.

[감식안 사용]

[이름: 아드린느
나이: 23
종족: 인간
성별: 여
칭호: ‘새디스트’, ‘자색 독무’

체력: 21
근력: 20
지혜: 24
기교: 37
의지: 30
속도: 18

특이사항: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수는 본인의 성장 한계까지 도달했습니다.

마법의 화합물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지식, 선호에 따라 화합물은 거의 대부분 유독성 성분을 띕니다.

자신이 상대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폭력에만 익숙합니다. 타인을 공격할 때 쾌감을 느끼며 능력이상의 파워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선수는 윤리의식이 조금 떨어집니다. 스포츠맨십이 거의 없습니다.


보유스킬: ‘독의마법S’, ‘가스분사A’, ‘위기감지A’, ‘마이페이스A’, ‘정신방어B’

종합능력: SS
잠재성: SS ]

‘앨리스와 비슷하다. 마법 특화형. 그런데 딱봐도 무지 까다로워 보이는군. 독이라니…’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스포츠에 독을 써도 괜찮은걸까.
제네바 의정서같은 것도 없나? 전쟁터에서도 독가스는 못쓰는게 국룰인데.

폴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가 어노잉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어노잉이 의외라는 듯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


“오호… 그 쪽도 ‘감식안’ 사용자? 주제에 제법하네.
그래, 뭐 좀 알겠어요?”
“...유유상종이라더니. 단장이나 선수나, 팀컬러 확실하네요.”
“응?”
“아니에요, 팀의 색깔이 잘 드러나서 신기하다는 말이었어요.”
“...뭔가 둘러대는  같은데. 흠, 뭐 됐고.
재밌게 됐네.
솔직히 우리끼리만 하는 말인데, <블루 윙>은 너무 시시했거든.
<도라지>쪽은 조금 재밌게 해줄거지?”


어노잉이 바짝 내 몸에 얼굴을 들이대고 떠벌였다.
어으, 시발 향수냄새.
레몬향이 너무 과해 겨자와 와사비를 섞은듯한 후각테러를 일으켰다.
 저렇게 쳐부었어. 좋은 향도 과하면 악취라는 거 모르냐?

“그건 모르죠. 스포츠는 이겨야 재밌는 건데, 저는 재밌겠지만 <퍼플 캣츠>야 어떨지 저도 잘.”
“크흐흐흐… 아,  말은 동감이다. 우리 딱 하나 마음이 맞네.”
“?”
“그래그래. 이겨야 재밌지. 진 놈들은 알게 뭐야.”


어노잉이 낄낄거리자 옆에  따분해하던 ‘새디스트’ 아드린느가 그를 째려봤다.


“삼촌,
나, 지루.
저 사람, 노잼.”
“아 그래그래. 그만 가자.”

뭐야, 컨셉충인가?
왜 이렇게 어디 불편한 사람처럼 말해.
외국사람이라 말을 제대로 못하나.
스이나가 슬쩍 눈을 들어 아드린느를 바라봤다.

아주 잠시,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저 븅신은 뭐예요’라는 경멸하는 시선을 보낸 후 다시 게임기에 눈을 돌리는 스이나.

스이나가 보기에도  여자애의 말하는 방식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나 보다.


<퍼플 캣츠>팀은 독한 머스타드 씨앗 냄새를 남긴  떠나갔다.


***


본격적인 미디어 데이 행사가 시작되었다.


여러 팀 관계자들의 사사로운 대화가 이어지고, 인터뷰 회장의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드디어 메인 이벤트, <멸망전>에 대한 화제가 다뤄졌다.

“역시 이번 <헌팅>대회가 또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퍼플 캣츠>의 도발적인 멸망전 신청때문이 아닌가, 하는데요.

그러면 여기서 한 말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퍼플 캣츠>의 어노잉 단장님.
어떤 각오로 대회에 참가하시고 계신지요?”

진행자가 묻자 어노잉은 가소롭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각오… 각오요?
죄송한데, 저희 <퍼플 캣츠>는 그렇게 촌스러운 생각 해본 적 없습니다.”
“오~ 자신감인가요, 아니면 자만심일까요! 단장님, 어째서 그렇죠?”
“그야 그렇죠. 당연히 이기기로 정해져 있는 대회니까.
우리는 동부 최강의 팀이 되고, 다음엔 전국 최강의 팀이 될 겁니다.
지금의 행보는 그저 시작에 불과하거든요.
동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는 과정.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괜찮은 식재료를 고르는 그 정도 과정이랄까.

식재료 고르는데 판매대에서 재료들이 제 손 붙잡고 못 가져가게 막지 않잖아요?

똑같은 거랍니다. 쇼핑할 때 각오를 다지면서 할 필요는 없어요.”
“이야~~~ 재밌네요. 이 뻔뻔할 정도의 태도가  의외로 팬을 모으고 있거든요.”

그야 강팀충들은 좋아할 수도 있겠지.
말했듯이 응원하는 팀이 이겨야 재밌는데 이 <퍼플 캣츠>는 계속 이기기만 하니까.


“그러면 멸망전을 받아들인 <홍삼 스포츠>의 트래쉬 코치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니까 요 다섯 달 동안 네 번이나 멸망전을 신청하셨더라고요.

<홀리 크랩스>, <더티 피죤스>, <그린 터틀 스포츠>, ...그리고 이번에 <블루  스포츠>.

 명이나 다른 팀의 주축을 뺏어가셨네요.

 팀 팬들이 참 좋아했겠어요, 그죠?”

난 일부러 팀의 핵심을 뺏긴 다른 팀들의 사례를 환기해, 이 녀석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기로 했다.

유명한 스타들을 모은 올스타팀이 아니라, 그저 다른 팀의 에이스들을 멋대로 약탈해 간 도둑놈으로 이미지를 전락시키기 위해.

BAD ASS같은 멋진 빌런 행세하게 놔둘 수야 없지.


“이기면 그만 아닙니까? 자기들도 받아들여놓고 이제 와서 졌다고 투정부리면 그것도 좀.”
“받아들이지 않을  없게 언론플레이를 하셔놓고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겁쟁이에 뭐에 막말은 다하셨구만.”

어노잉은 살짝 발끈했는지 마이크를  손에 힘을 줬다.


“원래 아쉬운 팀이 더 무리하고, 자기 무덤 파기 마련이에요.
까놓고 말합시다. 저희가 데려온 선수들은 원래 있던 팀에는 과분한 선수들이었어요.

<퍼플 캣츠>가 대우도 더 잘해주고,  높은 수준의 대회에 나가게 해줍니다.
뭐가 문제예요?”
“그러면 제대로 대우해주지 못하는 팀은 선수들을 데리고 있을 자격이 없다  말인가요?”
“그래요.”


나는 살살 미끼를 쳐 어노잉이 극단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말을 하도록 유도했다.


“허, 그거 참…
혹시 여기 참가한 <굿보이 댕댕스> 저격하는 발언으로 이해해도 되나요?”

인터뷰석 한 쪽에 있던 <굿보이 댕댕스>의 단장과 코치, 에이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팀은 지방의 전통 명문팀이지만 최근 팀과 스폰서의 자금 사정에 문제가 생겨  선수들에게 3개월 째 급료 지급을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처럼 하나로 똘똘 뭉쳐, 팀을 사랑하는 직원들과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급료를 삭감하고,
팬들은 모금활동을 벌이는  열악한 조건에도 의리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팀이었다.

많진 않아도 팬들의 충성도는 압도적이고, 스태프와 선수들의 팀워크도 끈끈하다.
단지 돈만 없을 뿐…
그래서 모두가 동정하는 팀이기도 하다.

“아니 왜 말이 그렇게 흘러요. 내가 <댕댕스> 얘기 꺼낸 적이 없구만.”
“근데 어노잉 단장님 하시는 말씀이 지금 그렇잖아요.

저는 <굿보이 댕댕스>가 위기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엄청 감동받았는데, 단장님은 그거 보고 그냥 한심하게 생각하셨나 봐요.”
“아니, 아니라고. 왜 하지도 않은 말을 막…”


하지만 다른 팀들은 벌써 차가운 시선으로 <퍼플 캣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돈만 많은 부자 약탈자 팀에 대한 증오…!

딱 내가 바란 분위기다.
자기 일 아니니 별 생각이 없던 팀들도 이쯤되면 ‘그건  아니지’라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할 터.

“예~~~  들었습니다. 벌써 팀 대표로 나온 관계자분들의 인터뷰 시간도 다 되어가는데요, 혹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 분?”
“저요.”

내가 즉시 손을 들었다.
어노잉이 혀를 찼다.


“말씀하시죠, <홍삼 스포츠>의 트래쉬 코치님.”
“아까 <퍼플 캣츠>의 어노잉 단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퍼플 캣츠>한텐  대회가 이기기로 정해져있는 대회라고요.

그러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번 대회에 누구누구 나올지, 출전 라인업 까봐도 되는 거 아닌가요, <퍼플 캣츠>는?”

어노잉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옆에서 수석코치 폴이 그에게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혹시… 두려우신 겁니까? 사실 속으론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기요, 그런 도발 안먹힙니다.”
“하하, 그건 시청자 분들이 판단하시겠죠.

말로는 무조건 이긴다고 해놓고 전력은 꽁꽁 숨기고 싶다, 이거 참 모순되는데요.”
“진행하시는 분,  사람 입 좀 닫아줘요.
자꾸 우리한테 시비를 거는데…”


어노잉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고추장 바른 가지처럼 변한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모두의 앞에서 일방적으로 극딜을 당하는 경험이 별로 없었나보다.
이렇게 금새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걸 보면.

하지만 진행자는 분위기가 재미있게 달아오르는 것에 그저 만족한 모양.


“뭐 미디어 데이가 다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어노잉 단장님.”
“무슨…”


내가 말을 이었다.


“예에~ 무조건 이기는 대회지만 사실 엄청 진심으로 젖먹던 힘까지 써서 최선을 다하는 <퍼플 캣츠> 잘 알겠습니다.
그쪽도 절박하신가 보네요. 질까봐. 그죠?”
“이런 씨… 아드린느에 란, 카이아나 나간다. 됐어?”

어노잉이 홧김에 외쳤다.
옆에서 수석코치 폴이 머리를 감싸쥐었다. 예정에도 없던 전력공개에 그의 계획이 다소 어그러진 모양이다.


“진짭니까?  바꾸시는 거 아니예요?
이 악물고 이길라고 또?”


나는 살살 긁으며 약올렸다.

“안 바꿔, 안 바꿔,  바꾼다고! 그러니 그 입 좀 닫아. 아까부터 나불나불…”
“어노잉 단장님, 공식 석상입니다. 폭언은 조금....”
“왜 나한테만 그래? 저쪽이 먼저 시비걸었는데.”

진행자와 옥신각신하던 어노잉이 억울해하며 책상을 쾅 쳤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 내가 말을 이었다.

“저희 <홍삼 스포츠>는 이 기회에 말해두죠.
지금까지 <퍼플 캣츠>에게 선수들을 약탈 당한 팀을 대신해서, 언더독의 입장에서 일격을 가하겠습니다.

물론 저희가 압도적으로 전력이 약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꼭 지라는 법은 없죠.
많이 응원해주십시오. 열심히 노력해 기대에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빗발쳤다.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이 사진이 대회가 끝난 후에 다시 쓰일 수 있기를 바라며.


***


이걸로 <퍼플 캣츠>는 이기는  당연하고, 이기지 못하면 쓰레기 취급 당하는 입장을 강요받았다.

본인들이 처음부터 어그로를 끌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건방지고 유쾌한 빌런의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승리에 목숨 걸고 온갖 짓을 마다하지 않는 리얼 쓰레기 팀으로 이미지가 낙인 찍힌 것이다.

분명 이번 대회의 최강자 포지션은 <퍼플 캣츠>다.
하지만 어노잉은 이번 인터뷰에서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을 곰씹으리라.

“피곤하죠? 돌아가서 좀 쉽시다.”


별 반응은 없어도 스이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스이나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이제, 17초…”
“예? 아까까지만 해도 최고기록은 19초였잖아요.”
“내내 심심해서…”


미디어 데이가 진행되는 내내 슬며시 하품도 하고 꼼지락대며 뭘 하나 했더니 몰래 큐브 연습을 계속했나보다.

“그리고, 아까…”
“아까 왜요?”
“...라고 했는데, 코치가…”
“앗…”

 팀의 대표선수 인터뷰 시간.
평소처럼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게 중얼거린 스이나를 대신해 내가 말을 전달해줬었다.

-저희 스이나 선수가 긴장도 많이 하고,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잘 말이 안나오는 모양이네요.
이번 대회 잘 준비해서 열심히 한  해보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 워낙 스이나가 미인이라 또 첫인상부터 먹고 들어가니 말이다.

그런데 스이나는 자기 말을 내가 멋대로 바꿔서 전달한게 영 불만인 눈치였다.

“그래도 곧이 곧대로 전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공식석상에서.. 
“...”




“어떻게 ‘<퍼플 캣츠>는 재수없는 쓰레기팀이에요.’ 라고 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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