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네번째 대회, 헌팅(6) (69/109)



〈 69화 〉네번째 대회, 헌팅(6)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라크가 몸을 툭툭 털며 다시 합류했다.

트리게로스의 숄더태클을 정면으로 맞고 멀쩡하다니.
...인간인가? 말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맷집이다.

“어쩌다보니  좋게, 아하하.”
“운으로 설명할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런  뭐가 중요해요. 자, 다시 가보자구요.”

라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웃었다. 점점  정체를  수 없는 아가씨에 대한 공포감이 커져만 간다.

나는 최대한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바로 출발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왜요?”
“도시에 독가스가 살포될 예정이라는군요.”
“독가스…”
“선수, 용군단 가리지 않고 죄다 중독되겠죠. 선수들은 곧바로 대회 측에서 해독제를 투여해줄테니 죽지야 않겠지만…
독가스에 휩쓸리면 탈락은 불보듯 뻔할겁니다.”


라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독가스라… 꽤 잔인한 짓을 하네요. 누군지 얼굴 좀 보고 싶네.”
“아시지 않나요? <퍼플 캣츠>의 아드린느라고, 우승후보  한명이잖아요.”
“<퍼플 캣츠>...”
“어쨌든 지하수도에서 잠시 몸을 피하는 편이 좋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라크. 스이나가 저 멀리 시가지 쪽의 하늘을 가리켰다.


“...벌써, 시작된 것 같아요.”


과연, 저건가.
자욱한 보라색 독무가 스멀스멀 콜드란 시가지를 집어삼키는 광경이 보였다.

싱크대 밑에 숨어 온집안에 뿌려지는 에프킬라를 바라보는 바퀴벌레가 된 심정이다.

***

“저기, 앨리스, 이상한 구름이 퍼지고 있어.”
“구름?”
“응, 뭘까 저거?”


망원경을 눈가 가까이 대고 시내를 관측하던 라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가지 중심구역에 우뚝  시계탑. 그곳을 중심으로 보라색 연기가 사방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용군단에 저런 기술을 쓰는 녀석은 아무도 없어.”
“그러면 다른 선수의 기술인가?”
“아마 그렇겠지. 구름이라… 보라색…”


앨리스는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했다.
문득 한 가지 정보가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독… 그래, 독이야. <퍼플 캣츠>의 아드린느. 아마 걔가 쓰는 ‘독의마법’일 가능성이 높아.”
“히익~~ 그러면 어떻게 하지?”
“어쩌긴! 대피하는 수 밖에.”

앨리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하필이면 바람도 시계탑 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역풍. 최악의 타이밍이다.
아니, 애초에 아드린느가 역풍이 불 때까지 기다렸던 것 뿐인가.

어느쪽이든 이제는 상관없다. 가스는 멀리서 볼  느릿느릿해보이지만 실제 확산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다.
머뭇거리다간 그녀가  있는 의사당도 금새 확산 범위 안으로 들어가리라.


“...무조건 높은 곳으로 가야 해. 대부분의 독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서 지면 가까이 낮게 깔리거든.”
“코치님과 스이나는…”
“그 쪽 신경 써줄 때가 아니잖아. 모르겠니?”
“끙…”
“그리고 코치도 가만히 당할만큼 바보는 아니야. 걱정하지마.”

라비와 앨리스는 다급히 의사당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계탑만큼 높진 않지만 아까처럼 멍청히 길거리에 서 있는 것보단 안전하겠지.

그제서야 앨리스는 한숨을 돌렸다.


“위험한데…”
“코치님 쪽?”
“아니, 거긴 알아서 잘 할거야. 그것보다 말야.”


앨리스가 신경쓰는 건 따로 있었다.
그녀가 빠르게 말했다.

“어지간한 마법 능력자는  정도로 대규모 범위의 마법을 쓸 수 없어. 아드린느가 ‘독의마법’ 장인이라고 해도 말야.”
“그렇다는 얘기는…”
“그래, 라비 너도 슬슬 눈치챘나 보구나.
 말은 <퍼플 캣츠> 쪽에서 싸이커를 얻었다는 얘기야.
그렇지 않고서야 도시 전체를 사정범위에 넣는 독가스는 말이 안되잖아.”
“우와…”

답답하고 초조하다. 그렇지만 바람이 불어 도시를 감싼 독가스를 날려버릴 때까지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저거 봐, 저기 밑에.”


앨리스가 가리킨 곳엔 용군단의 잡졸 몇이 가스에 중독되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보여?
가스로 도시 전체의 적들을 모조리 싹쓸이하고 있어.

하급간부들은 조금 버틸 수도 있겠지만… 이러면 우리가 포인트를 벌 방법이 거의 없잖아.”
“그러면 어떡하지?”
“나도 몰라… 일단 상황이 끝나고 <퍼플 캣츠>와 우리의 포인트 차이를 계산해 봐야겠지.”

앨리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칫하면, 이걸로 사실상 게임이 끝날 수도 있어.”



***

바야흐로 최종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군.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지하수도 깊숙이 숨어 빈틈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독가스가 지나가길 기다릴 뿐, 딱히 할 일도 없다.


미니 전광판 속 <퍼플 캣츠>의 점수가 버그라도 걸린 듯 쉴새없이 포인트가 가산된다.
미친듯이 올라가는 적 팀의 점수를 보며 난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우리와의 포인트 차이는 아까 전에 800점을 넘어 이제 900점에 이르렀다.
의욕이 꺾이는 격차다.

따라잡을  있을까…?


...


30분 쯤 지난 후에야 시가지 전체를 감쌌던 독가스가 비로소 사라졌다.
아무리 능력증폭헬멧으로 파워업한 아드린느라 할지라도 절대적인 마력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대규모 독가스 투사를 두 번 세 번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뽕은 뽑을대로 다 뽑았겠지만.

“갈까요.”
“...”

스이나가 조용히 일어섰다.

독가스는 피했지만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그래도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

빨리 라비,앨리스와 합류해야 그 다음 행동을 정할 수 있겠지.

우리는 마침내 지하 수도 밖으로 나섰다. 두 시간 가까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는 태양빛이 너무 눈부시게 다가온다.

‘옛날에 지하 PC방에서 친구들이랑 게임 여섯시간 때리고 나오면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하지만 밖으로 나왔는데 지하 수도 안에 있을 때보다 주변이 오히려  고요하다.

...이 도시의  위에는 움직이는 생물체가 몇 남아있지 않다.

인간이고 용이고 가릴 것 없이, 도시 전체가 타락한 세스코에 의해 방역당해버렸기 때문.


“...또, 시체가.”
“시체라뇨. 저 선수들 아직 안죽었어요 스이나.”

사방에 널린 용군단의 시체 사이로 대회 참가 선수들도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의식불명이지만 대회 측에서 보낸 원격조종 드론이 의료조치를 해 죽지는 않았다.

운이 나빴으면 우리 선수들도 이 꼴이 될 뻔했겠지.


“뭐 챙길만한 거 있나 보고 갑시다.”
“...예.”

라크는 아까도 그렇듯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선수들보다는 용군단의 시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결전의 호신부
등급: ☆☆☆☆
보조장비

고대 부족에서 명예를 건 결투를 벌일 때 몸을 장식했던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부적.

주변 100m 안에 부적의 착용자와 적 외에 아무도 결투를 방해할 사람이 없을 경우,
공격력을 50% 상승시킵니다.]


의외의 수확.
그런데… 쓸만할까 이거?
팀단위 전투가 당연한 이 <헌팅> 대회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일대일 상황이 쉽게 나올 것 같지가 않은데.

그래도 이왕 얻은 거 스이나의 팔목에 채워줬다.

“...어…? 코치, 이거…”


스이나가 부르길래 가보니 쓰러진 선수들 유니폼을 보여준다.
너무 무신경하게 남의 유니폼을 들춰 배꼽까지 내보이길래 내 쪽에서 멋쩍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스이나가 여기 보라며 다시  툭툭 쳤다.

균열이 간 날개 모양의 심볼.
<브로큰 윙>.

...응?
그런데, 쓰러진 <브로큰 윙> 선수는 세 명이다.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을 확인해도 세  모두 <브로큰 윙> 소속.

그러면 지금까지 같이 행동한 라크는 대체 어디에서 온 거지?
그녀가 말한 <브로큰 윙> 선수들은 여기 이렇게 전부 쓰러져있는데.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스이나가 작게 속삭였다.

“저 선수는… 그럼 대체…?”
“...쉿.”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 대화를 라크가 듣는다면 뭔가 파국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몇가지 가능성이 있긴 한데… 지금으로선 뭐가 정답이다  말하기 힘들어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라크라는 선수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름이 라크가 맞는지, 선수이긴 한건지 그것도 의문이다만…”
“...먼저 우리가 ….기습하는건…”
“별로 내키지가 않네요, 스이나.
아직 라크의 전력이 어느정도인지 알 길이 없으니.”

조금 전 트리게로스에게 쳐맞고 날아갔는데도 흠집 하나 없이 툭툭 털고 걸어오는 걸 보면, 다른 건 몰라도 맷집만큼은 초월적인 수준임에 틀림없다.

스이나의 염동력으로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게 실패했을 경우 뒷일은 생각하기도 싫다.

“...코치, 라크는 ...왜 우리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스이나와 한 ‘맹세 ’때문은 아닐까요?
마지막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자기의 입으로 한 맹세만큼은 어기고 싶어하지 않는지도…”
“...”


우리가 속닥거리자 라크가 크게 소리쳤다.

“어~~이, 거기서 뭐해요?  재밌는  있어요?”
“아, 아닙니다! 지금 가죠.”

라크가 <브로큰 윙> 선수들을 보게 놔두면  난처한 상황이 될 게 뻔하다.
난 황급히 라크의 시선을 끌며 날아갔다.
라크가 따분한 듯 말했다.

“가자구요. 슬슬 지루해질라 그러네.”


어쩌면 라크는 단지 이 짓이 그저 재밌어서 하는 걸지도 모른다.
자기 정체를 숨기고 우리들의 반응을 엿보며 같이 동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본모습을 드러내며 타인을 기만하는 쾌감을 만끽하는 거지.

그렇다면 지하 수도에 쓰러져있던 선수들도...

소름이 끼친다.

이런 짓을 할만한 녀석은 내가 알기론 한놈 밖에 없다.
설마 정체가 내가 생각하는  녀석이라면...



***



“보고싶었어요, 코치님!!! 스이나도!!!”


뿔뿔이 흩어졌다가 겨우 다시 합류한 <홍삼&인삼 파워 스포츠>.

라비가 나와 스이나를 꼬옥 껴안아줬다.
서로가 무사한  확인하니 절로 마음 속에서 뭉클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한 두 시간 안되게 헤어져 있었을 뿐이지만 분위기는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이다.

“크게 다친 데 없지?”
“네, 이 쪽은 괜찮아요.”

라비는 기운차게 대답했다.
그치만 말과 달리 포이스와 전투하며 몸 이곳 저곳에 잔부상을 입은 모습.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내가 없는 동안 라비 쪽에선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거대한 대검(☆5개짜리)도 새로 구했고, 최고간부 기어다니는 포이스도 쓰러트렸다.

장하다, 기특해.



“그런데 이분은?”


라비가 라크를 가리키며 묻자 나는 조금 난처해졌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수상하기 짝이 없는 동행자에 대해.


“라크… 다른 팀 선수예요. 어쩌다보니 같이.”

난 라비와 앨리스의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

“뭐야, 코치. 왜이래 남사스럽게.”

앨리스는 멋쩍은지 손을 빼려고 했다.
내가 급히 모스부호로 손을 두드려 라크 몰래 암호를 보냈다.


-위험인물.

“뭐?”


앨리스의 안색이 바뀐다.
영리한 앨리스는 이 한 마디만 듣고 순식간에 지금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최악의 가능성까지도.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고 라비에게 말했다.


“...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자. 다른  선수가 우연히 같이 동행할 수도 있지 뭐… 안 그래?”


갑자기 급 융통성 넘치는 사람으로 변한 앨리스였다. 그녀가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의사당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봤는데 말야. <퍼플 캣츠>가 움직이는 걸 목격했어.”
“<퍼플 캣츠>요?”
“응. 요 바로 앞이야. 상인 길드 건물 쪽으로 향하던데.”
“그러고보니 카이아나 선수도 우리와 헤어진 후 그쪽으로 가긴 하던데. 뭘까요?”

상인 길드 근처에 뭐가 있지.
아이템?
다른  선수들?
사냥감?

뭐가 됐든 지금 시점에 녀석들 하고 싶은대로 냅두면 그대로 경기가 끝날  같은 예감이 든다.


“그 쪽에서 뭘 노리던 간에 이제는 무조건 방해해야 합니다. 대회의 주도권이 넘어간 건 괴롭지만…”
“그럼 바로 가자구.”


앨리스가 라크 쪽을 슬쩍 곁눈질했다.
라크가  시선을 눈치챘는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 저는 조금 이따 거기로 갈게요. 상인 길드 거리라고 했죠?”
“아...예. 혹시 따로 볼일이 있으신가요?”
“응. 남아있는 다른 선수들이 있나 한번 확인 좀 해두려고요. 조금 꼼꼼하게 찾아봐야겠죠.”


남아있는 선수들… 확인…
모르면 몰랐을까 정체에 대해 짐작하고 있는 지금으로선 지극히 불길하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라크가 재미있다는 듯 내 얼굴을 살폈다.

“표정이 왜 그래요? 저도 우리 <브로큰 윙> 팀원들과 합류해야죠.
언제까지 <홍삼>팀에 신세만 지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그...그렇죠. 행운을 빕니다, 라크 선수.”



그놈의 <브로큰 윙>...

끝까지 연기할 셈인가. 하지만 라크로부터 멀어지는 건 우리도 간절히 바라는 바.
일단 <퍼플 캣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따 만나요~~~ 라크 선수!!”
“응, 라비라고 했죠? 이따 봐요~ 아하하.”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라비만 해맑게 웃으며 라크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

우리는 서둘러 <퍼플 캣츠>의 목적지인 상인 길드 거리로 향했다.

도착하기 전부터 들려오는 고함과 괴성, 거친 소음.
이미 한창 전투가 진행중이다.

<퍼플 캣츠>에게 들키지 않도록 모습을 숨긴 채 상황을 관망했다.

온통 불바다로 변해있는 거리.
그리고 그 중심엔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세 명의 여자애들.

현 시점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내며 1위 독주 중인 <퍼플 캣츠>다.
가진 놈이 더 한다고, 탐욕스럽게 하나 남은 최고 간부까지 마저 사냥하려는 모양이다.

장비 상태가 다들 충실하다. 템 파밍도 야무지게 해뒀군.
스킬 공격력 상승, 그리고 방어력에 치중한 셋팅이다.
번잡한 특수효과보다는 순수한 스탯향상에 주력했군.

자기들의 타고난 능력에 자신감이 있다는 게 장비 셋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란, 공격, 계속.”
“오케이~~ 거의 다 잡은  같아. 끝까지 긴장 놓지 말고.”

아드린느, 란, 그리고 카이아나 셋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 구렁이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서로 호흡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아무래도 저쪽도 급조한 팀이다 보니 어쩔 수 없나.

그래도   다 워낙 개인 능력이 우수하니 개개인의 파워로 밀어붙여 최고간부를 압도하는 중.


“불꽃어금니 바카...  저 녀석을 잡으러 여기 왔던 거구나.”

라비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문득 내게 속삭였다.


“코치님,   거 아닐까요? <퍼플 캣츠>가 바카를 토벌하면서 체력을 소모하면 이후에 저희가 유리해지잖아요.

이대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조금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지가 않아.”
“왜요?”
“1등인 <퍼플 캣츠>와 2등인 우리 사이의 점수 차이가 지금 912점이야.
 말이 뭘 뜻하는지 알겠어?”
“어…”


라비가 빨리 이해를 못하자 앨리스가 답답한지 끼어들었다.


“간단한 수학 문제야, 라비야.

바카의 토벌 포인트가 200점. 크라고스의 토벌 포인트가 770점.
합쳐서 970점.

 우리가 크라고스, 바카 둘 다 쓰러트리지 않으면 912점이라는 점수 차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거야.”
“맞습니다. 앨리스.
<퍼플 캣츠>가 바카를 쓰러트리면 거기서 게임 종료입니다.
저쪽의 우승 확정.”

녀석들은 역시 영악하다.
미리 사전에 공들여 준비한 계획을 빈틈없이 실행하고, 이후의 자잘한 변수까지 차단해 깔끔한 승리를 노리고 있다.

빌런이니 뭐니 했지만 그 승리공식은 솔직히 인정해줄만 하군.
내가 <퍼플 캣츠>의 코치였어도 비슷한 전략을 채택했을 거다.

게다가 운도 따르는  같고…
좋은 스타팅포인트에, 싸이커까지 가져갔으니…

첫 끗발이 개 끗발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놈들의 운은 꽤 오래 가는 모양이다.


“그럼 어떻게 하죠?”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

또 다시 도박인가.
싫은 상황이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도 없다.

“영혼을 담아 스틸 시도해야지 뭐.
바카가 거의 다 죽어갈 때 쯤에 셋이 막타를 노려봅시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점이라면 대개 이런 상황에선 별 생각 없이 먼저 사냥하던  보다, 기회를 노리다 뺏는 쪽이 조금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작전명은.. ‘날먹’ 정도로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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