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네번째 대회, 헌팅(8)
아이언 우먼…?
카이아나가 결연한 각오를 다졌다.
그녀를 둘러싼 자기장이 공간에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만들정도로 강해졌다.
내 뺨을 스치며 쇠파이프 하나가 붕 날아간다.
파이프 뿐 만이 아니다. 사방에 널린 금속 잔해가 전부 카이아나의 몸 주위로 모여들었다.
블랙홀에 이끌리는 소행성의 파편들처럼.
카이아나의 전력.
이전과는 능력 범위, 출력에서 차원이 다르다.
모여든 자잘한 금속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져 강철 거인의 형상을 이뤘다.
눈 앞의 적을 분쇄하려는 결의가 그대로 현실로 구체화한 전쟁 병기의 등장.
8m도 넘는 검은 용의 거체와 맞먹는 강철 거인이 복싱하듯 두 주먹을 치켜올렸다.
전투 준비 완료.
“그래서 뭐 어쩔건데?”
가소롭다는 듯 있는 힘껏 앞발로 강철의 거인을 내리치는 크라고스.
투캉──!!
공사장에서나 들릴법한 강렬한 쇳덩이의 파열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뒤로 몇 발자국이나 휘청이며 물러섰어도, 카이아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강철 거인이 손을 뻗어 크라고스의 목을 잡는다.
그대로 기중기처럼 용을 들어올려 바닥에 메다꽂는 카이아나.
동시에 그 손에서 자기장의 파동이 발사되어 크라고스를 덮쳤다.
섬광같은 파동이 공간을 뒤흔들며 용에게 데미지를 가한다.
“크아아악…!!”
저 정도 사이즈의 거구들이 육박전을 벌이면 그 자체가 주변에 민폐다.
서로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 사방이 작살나고 있었다.
지금이 찬스가 아닐까?
“라비, 앨리스…! 기회일지도…!
카이아나가 놈을 상대하는 사이에…”
“알았어. 라비, 가자.”
“응!”
크라고스에게 프리딜을 넣을 절호의 찬스.
잠시 크라고스의 기세가 주춤하자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다가가는 <홍삼 스포츠>의 냉정한 암살자 두 명.
이래서 사람이건 뭐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이 구역 미친년은 나야’하며 발광하는 크라고스에게 바짝 쫄아 가까이 갈 엄두도 못냈는데,
카이아나와 좀 비비는 거 보니 우리도 할만하겠다 자신감이 생긴거다.
촤각!
피도 눈물도 없는 앨리스가 화염창으로 크라고스의 배때기를 죽 찢었다.
두꺼운 가죽을 찢고 시뻘건 뱃속이 들여다보일 정도.
우와… 존나 아프겠다.
“이...씨이팔…!!!”
갑작스런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크라고스가 보스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천박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너무 강한 말을 할수록 오히려 약해보인다는 건 모를테지.
그만큼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는 뜻이다.
카이아나의 ‘아이언 우먼’에 잡혀 오도가도 못한 채 크라고스는 분노에 찬 눈으로 앨리스를 노려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꼭 죽인다’라는 극한의 빡침이 담긴 시선.
“미안해요, 라크 선수… 어쩔 수 없었어요!”
“...?”
크라고스가 돌아보자 설상가상, 등에는 어느새 라비가 올라타있다.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짓는 라비.
원래 이런 애가 더 무섭다.
“흐아압~~!!”
“크아아아──!!!”
등에 달라붙은 채 뒤에서 대검으로 난도질을 한다.
크기는 모기지만 공격은 살인적.
라비는 용의 피로 피칠갑을 하고도 멈추지 않고 크라고스의 등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쿠궁…!!
크라고스의 거대한 날개 한 짝이 잘려져 나갔다.
이제 이 사악한 용은 다신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없을 터.
“차원 베기!!”
완전히 제정신을 못차리는 크라고스.
라비는 비장의 일격, 특대검의 특수능력인 ‘차원베기’로 즉시 목을 노렸다.
“...!!”
지금까지 입은 데미지도 상당했지만 이번 공격을 허용하면 정말로 죽게 된다는 걸 눈치챈걸까,
크라고스의 표정에 처음으로 공포의 빛이 서렸다.
“포...폴리모프Polymorph!!”
검은 용은 다시 인간으로 변신해 카이아나의 강철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라비의 차원베기가 허공을 가른다.
크라고스도 패닉상태에서 무심결에 취한 행동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최선의 회피였다.
“이… 개 같은 것들이… 다굴을 해?... 다 찢어 죽일거야…”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크라고스가 증오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녀가 알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개과 동물들은 집단사냥을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막말치고는 꽤 정확한 표현인 셈이다.
크라고스가 뿜어내던 절대자의 위세는 사라진지 오래.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는 녀석에겐 더이상 전장을 지배하는 패기가 없다.
그저 마지막 사냥감일 뿐.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됩니다! 할 수 있어요!”
내가 큰 소리로 응원했다.
카이아나가 어째선지 크라고스를 쳐잡는데 협조해준 덕에 생각 외로 일방적인 다굴구도가 성립했다.
이대로면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잡을 수 있다고?
이상하다.
지금의 구도는 우리 <홍삼>에게만 너무 유리하지 않나?
이대로 흘러가면 우리가 크라고스를 잡는 결과로 흘러갈 뿐.
왜 <퍼플 캣츠>가 우리를 도와주는 것처럼 된거지?
마음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불안함.
그 때 앨리스가 말도 없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앨리스…!?”
라비도 쓰러진다.
“라비....? 왜 그래요? 앨리스, 라비!”
크라고스의 공격인가? 뭔가에 당한건가?
헌데 그렇다기엔 크라고스도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비웃지도, 기뻐하지도 않는다.
그저 당황할 따름.
크라고스가 별안간 크게 기침을 했다.
“뭐야 이건 또.... 쿨럭.”
크라고스의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각혈.
크라고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크라고스를 지켜보는 카이아나.
카이아나도 마찬가지다.
더이상 ‘아이언 우먼’을 유지할 수 없는지 그녀를 둘러싼 강철 거인이 형태를 잃고 우수수 분해되었다.
“여기까진가…”
카이아나도 그렇게 쓰러졌다.
검은 용을 사냥하던 세 명의 여전사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
“트래쉬 코치님, 끝났습니다.”
폴이 말했다.
그의 옆에 있는 아드린느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멀쩡히 서있다.
“이게 무슨일이죠…?”
“말씀드린대로, 게임이 끝났다는 겁니다. 그냥 그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듣고 싶네요.”
승자의 시선으로 그가 느긋하게 나를 바라본다.
솔직히 재수없다...
“보다시피, 라비, 앨리스, 카이아나, 크라고스. 거기에 스이나 선수까지.
전부 중독된 겁니다.
아드린느의 ‘지옥황천’에.”
“지옥황천…”
아까 카이아나에게 말한 게 이거였나.
‘지옥황천의 효과가 발동될 때까지 크라고스를 막으라’고 했었는데…
내 실수다.
“아드린느의 필살기죠.
무색무취의 독가스. 준비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이무도 눈치 못채게 중독시킬 수 있거든요.
카이아나까지 휩쓸린 건 어쩔 수 없지만요.”
“... 역시 아드린느부터 노렸어야 했나.”
“카이아나가 지켜줬을테니 그것도 소용없어요. 다 계산했다니까요.
크라고스가 끼어든다는 예상치 못한 변수는 있었지만…
큰 줄기는 달라지지 않았네요. 예상대로 저희의 승리입니다.”
“...”
할 말이 없군.
완벽히 당했다.
크라고스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까지 녀석이 노린 작전대로였나.
아까와 달리 중상을 입은 크라고스는 아드린느를 제압할 수도 없다.
아니, 설령 제압한다 해도 별 의미도 없다.
우리가 크라고스를 쓰러트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달라지는 게 없다.
700점의 점수 차이는 그대로.
<퍼플 캣츠>의 승리다.
머리가 아찔해진다.
패배감이 전신을 내달린다.
진건가…
진짜로?
“폴 코치님, 솔직히 인정하겠습니다. 당신 상당히 우수하네요.”
“뭘 새삼스럽게.”
“그런데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퍼플 캣츠>의 승리라는 건 나도 인정한다.
근데 이 마당에 아직도 하나 의문이 남아있다.
진 건 진 거라도 궁금한 건 못참지.
“저희 선수들은 다 탈락했는데, 그러면 전 왜 아직도 여기 남아있는 거죠?”
“...예?”
선수들이 전부 탈락하면 플레잉 코치는 자동으로 경기장 밖으로 소환된다.
더이상 경기에 불필요한 관여를 할 수 없도록.
라비, 앨리스, 스이나 모두 쓰러진 지금 우리 팀에 남은 선수는 아무도 없을 터.
난 왜 여기 남아있는거지?
“버근가?”
“...제가 알겠어요? 어찌 된 영문인지.”
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녀석도 찜찜한지 아드린느에게 물었다.
“아드린느, 쓰러진 <홍삼>팀 선수들 확인사살하세요.
혹시 아직까지 버티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음.”
“저기, 잠시만요. 무슨 소리세요… 스포츠맨십도 없습니까?
이미 움직이지도 못하는 선수들을 공격한다니.”
“알게 뭐예요. 그러게 트래쉬 코치가 쓸데없는 걸 말해서 나도 신경쓰이잖아요.”
아드린느가 라비에게 다가간다.
….설마 진짜 확인사살을 할 셈인가.
내가 어떻게든 말리려던 찰나,
“크윽…”
아드린느가 갑자기 몸을 부들대며 경련했다.
그녀의 이마에 얇은 혈관이 도드라졌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목이라도 졸리는 듯 괴로워하는 아드린느.
털썩.
그녀도 쓰러졌다.
“아드린느, 뭐야? 왜 그래요!!”
폴이 경악했다.
“...자기 자신까지 중독시켜버린거 아닐까요? 그 지옥황천인가 뭐시기로.”
“그럴리가! 아드린느는 독기술에 면역이라고.”
우리가 투닥거리는 중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대회 내내 들어왔던, 보폭이 작고 조용한 발걸음소리.
설마…
“코치, ...저만 남았어요.”
“...스이나!?”
스이나가, 지금까지 어디 짱박혀 있었는지 솔직히 나조차도 잠시 존재를 잊었던 스이나가 내 옆에 섰다.
***
“스이나, 어떻게?”
“아니, 뭐야!?”
나와 폴이 놀랐다.
“지하 수도에서 얻은… ‘저주인형’...
자동으로 발동되었어요.”
스이나가 까맣게 탄 짚인형을 들어보였다.
저건…
자신에게 가해지는 데미지를 단 한 번 팀원에게 옮기는, 치사한 아이템.
그렇군…!
아드린느의 ‘지옥황천’에 당했을 때, 자동으로 라비 혹은 앨리스한테 그 데미지를 옮겨버린 거구나.
스이나 본인도 모르게.
그래서 모두가 중독되는 와중에 혼자만 살아남은 거였어.
‘전혀 예상도 못했다…’
폴의 경악한 표정.
녀석의 몸 주변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아, 그거예요! 선수들이 전부 쓰러지면 원래 코치도 자동으로 퇴장하잖아요.
역시 버그 아니네~”
“이런 씨…”
내가 놀리자 폴이 입술을 씰룩였다.
차마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녀석은 그대로 마법진에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놈의 계산에 설마 이것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퍼플 캣츠> 완전 탈락.
남은건 스이나와 크라고스 단 둘뿐…
“하지만 스이나, 괜찮겠어요?
저 꼴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크라고스인데…”
“...아마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이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가 폐허가 된 거리를 터벅터벅 돌아다녔다.
폐품 수거하듯 사방에 널려있는 장비를 하나씩 주워모으는 스이나.
“...라비의 ‘가보 갑주’. 이걸로 공격력 1.5배…”
“거기에 ‘싸이커’... 염동력 강화…”
“크라고스와 나 ...단 둘만이니까, ‘분노의 호신부’ 발동... 곱연산으로 다시 공격력 1.5배…”
장비를 주섬주섬 갖추고 크라고스 앞에 선 스이나.
SF틱한 헬멧에, 일본식 갑옷. 괴상하기 짝이 없는 외견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저 셋팅을 갖춘 스이나의 위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크라고스, 아니, 라크… 지금이라면, 저 정도의 ‘염동력’이라도 당신에게 먹힐까요?”
크라고스의 체념한 듯한 눈빛.
이미 전의가 사라진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후욱… 후욱… 너 따위가… 젠장…”
스이나의 몸 전체가 초록색 광채를 발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은 머리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흘러넘치는 염동력이 주변의 돌조각까지 공중으로 띄워올릴 정도다.
지금의 스이나라면 손가락 한 번 까딱해 거대한 빌딩도 일격에 조각낼 것이다.
이게 훗날 훈련을 통해 재능을 개화한 스이나가 도달할 경지…
나는 그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라크, 맹세… 지켜줘서… 고마워요.
적어도 저는... 당신이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헛소리 하지 말고, 죽여, 씨발년아.”
크라고스가 독기를 담아 중얼거렸다.
고오오오──
검은 머리의 초능력 아가씨는 잠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으로, 허공을 꽉 붙잡는 스이나.
크라고스의 목이 비틀린다.
우두둑.
목뼈가 꺾이는 살벌한 소리.
용군단을 지배하던 검은 용의 몸이, 이윽고 축 늘어졌다.
“스이나…잘했어요.”
“...”
스이나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싸이커를 벗어, 바닥에 떨어트린다.
“...불쾌해요, 코치.”
“예?”
“아무리 마법으로 재현한 레플리카..라지만,
...정말로 살아있는 생물을... 죽인 듯한 감각…
비디오 게임과는 전혀 달라요…
눈으로…
냄새로…
소리로…
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요...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나는 스이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확실히 라비나 앨리스와 달리 스이나에겐 조금 가혹한 경험이었으리라.
내가 너무 무신경했다.
“미안해요. 제 실수입니다.
스이나, 다음부터는 너무 폭력적인 스포츠는 안하는걸로 합시다.
억지로 시키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이제 끝인가?
끝난거 맞겠지?
미니 전광판을 켰다.
3등, <굿보이 댕댕스>. 474포인트.
2등, <퍼플 캣츠>. 1252 포인트.
그리고…
1등, <홍삼&인삼 파워 스포츠>.
..1310 포인트.
마지막에 ‘불꽃 어금니’ 바카와 ‘비열한 크라고스’를 연속으로 쓰러트리는데 성공하면서,
경기 시간을 8분 남겨 놓고 극적인 역전에 성공한 우리 <홍삼 스포츠>.
솔직히 조금… 많이 아슬아슬했다.
이겼으면 된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