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앨리스와 카레(2) (77/109)



〈 77화 〉앨리스와 카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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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마트에서 장보고 오면 별 거 많이 안 샀는데 피곤하더라.
저만 그래요?
카레는 조금 쉬었다가 만들죠.”


옷걸이에 옷을 걸며 말했다.

화장실과 다용도실, 작은 주방이 딸린 원룸.

앨리스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난감해했다.


“앨리스도 코트 이리 주세요.”

내가 손을 뻗자 앨리스는 흠칫 놀랐다.


“뭐...뭐?”
“추우면 입고 계셔도 되고요.”
“아니야, 여기...
음… 그런데 코치는 평소에 방 어디 앉아있어?
내가 못찾은건가? 의자 비슷한 것도 안보이는데...”


앨리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게,  방엔 당연히 쇼파도 의자도 없다.
극한의 좌식생활!
아니, 사실은 와식생활!

가끔 앉아있다가, 대부분은 누워서 지내는 내 방이었다.


“...저기 침대요.”
“치치치, 침대?”

앨리스가 기겁을 했다.


“나보고 코치 침대 위에 앉아 있으란 거야? 어떻게 참 나…”
“그러면 서있으세요. 아니면 바닥에 앉으시던가요.
 편한대로.”

사실은 벌써 한 번 호텔에서 갈 데까지 간 사이지만 이렇게 새삼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는게 앨리스의 귀여운 점이다.

그래서 라비처럼 빠르게 진도를 빼지 않고 느긋하게 즐기는 이유기도 하다.

조금씩 가까워지며 야금야금 즐기는 맛이 각별하다.


“우으…”


앨리스는 어쩔 줄 몰라하다 침대 끝에 엉덩이만 살짝 걸쳐서 앉았다.

깨끗한 걸 좋아하는 나는 의외로 청소를 자주 하는 편이다.
피곤에 쩔어  늦게 퇴근해도 방구석에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굴러다니는 걸 보면 그냥 못참는다.

그래서 방이 좀 많이 협소하고, 전체적인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청결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환기를 자주 시켜서 냄새도  날 터.

“조금 쉬었다가 하죠. TV 틀까요?”
“음…”

앨리스가 제대로 대답을 안하길래, 나는 멋대로 리모컨을 들었다.

3인조 여자 아이돌 그룹이 출연한 예능이 나온다.


-쿠, 아린, 지나!! <어메이징 걸스>의 이번 도전은 10인분 대왕 라면 도전입니다!!
-성인 남성도 다 먹기 힘든 거대한 라면의 산…

시시껄렁한 방송이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메꿔줄 좋은 윤활제 역할을 했다.

자연스럽게 앨리스 옆 침대에 털썩 앉았다.
스프링이 출렁이며 매트릭스가 들썩이자, 앨리스가 긴장하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뭐뭐야, 왜 내 옆에 앉아?”
“그야 제 침대니까…”
“...”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하다가, 앨리스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야. 지금  분위기는 뭔가 아니야.
왜 내가 코치 옆에 앉아서 사이좋게 TV나 보고 있는거야?
그것도 코치 침대 위에서 말야.

여기에 우리 둘이 꽁냥거리러 온 줄 알아?

바로 요리나 시작해. 어서!”
“그럼 그러죠 뭐.”

앨리스가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러면 저는 옆에서 도와만 드릴게요. 요리는 앨리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직접 해보세요.”
“그래.”

주섬주섬 앞치마를 입는 앨리스. 등허리를 톡톡 치며 날 쳐다본다.

“왜요?”
“허리끈 묶어줘.”
“아…”

이정도는 스스로 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뒤에서 앞치마 허리끈 매듭을 지어줬다.

“오,좋아! 뭔가 벌써 요리사가 된 느낌이야.”
“그러네요. 아주 귀여워요.”
“...갑자기 귀엽단 말이 왜나와!? 자꾸 그렇고 그런 분위기로 유도하려고 그러는 거 같아. 기습 칭찬금지!!”
“...”


솔직한 평가를 싫어하는 앨리스였다.
다시  빤히 바라봤다.
‘이제 뭐부터 해야 해?’라는 시선.

“그러면 앨리스는 영리하니까 먼저 전체적인 요리과정의 로드맵을 설명할게요.

먼저 일단계, 재료 밑손질을 합니다.
이단계, 재료를 순서대로 넣고 조리합니다.
삼단계,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춥니다.

사실 모든 요리가  이래요. 이게 끝입니다. 쉽죠?”
“...응.”

나는 양파를 손에 들었다.
씨알이 굵고 건강한, 좋은 양파다. 역시 야채는 마트에서 사야 해.
만고 불변의 진리다.

“저희는 양파, 당근, 감자를 넣도록 할게요.
양파는 껍질을 벗긴 후 잘게 썹니다.
제가 시범으로 보여드릴게요.”

수염이 달린 양파 껍질을  벗긴  칼로 먹기 좋은 크기로 다졌다.

“야채 손질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이겁니다.
너무 힘을 줘서 칼질하면 안됩니다.”
“왜?”
“은근히 야채는 미끄럽거나 아니면 단단한 경우가 많아서 칼질하다 손을 베는 경우가 많아요.”
“음, 그렇구나.”

앨리스의 조각같은 예쁜 손에 흠집이 나는 걸 보고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손을 베지 않기 위해선, 칼도, 야채도 미끄럽지 않은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물기가 흥건하면 절대 안됩니다.

야채를 도마 위에  고정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죠.

자연에서 나는 야채의 겉표면은 대부분이 둥글거나 울퉁불퉁한 곡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점에 유의하세요.

도마위에서 야채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상태에서 억지로 칼질을 하면 위험하겠죠?”
“오오. 그렇네.”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양파는 손질하는 중에 절대로 눈을 비비면 안된다.
감자는 감자칼로 껍질을 벗긴 후 큼직큼직하게 썬다.

당근은 초심자에게 가장 난이도 높은 야채라고  수 있다.

초보자킬러 그자체.

쓸데없이 단단해서 어느정도 힘을 줘서 썰어야하는데, 몹시 위험하다.

...등등의 자잘한 팁.

앨리스는 약간 헤매는가 싶더니 곧 처음치고는 능숙하게 야채 밑손질을 끝냈다.


“됐어! 고기는 어떻게 하지?”
“고기는 이미 주사위 모양으로 손질되어 나온  샀기 때문에 바로 써도 괜찮아요. 소금 후추만 조금 뿌려둡시다.”


다음은 본격적인 조리.
여기서부턴, 솔직히 존나 쉽다.
카레가 남자의 요리, 초보자의 요리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앨리스, 카레를 만들 때는 이거 하나만 기억하셔도 됩니다.”
“...?”
“카레는 적당히 오래 푹 끓여도 맛있어요.
시간을 정확히 재지 않아도 돼요.
카레에는 오버쿡이란 개념이 없어요.”
“엥? 너무 대충대충인 거 아냐?”
“식당에서 파는 제대로 된 카레는 레시피가 따로 있겠지만…

저희처럼 집카레를 만들 때는, 그냥 야채 고기 충분히 익히고, 카레가루로 대충 걸쭉~하게 만들면 충분히 맛있게 됩니다.”

사실 내가 조금 각잡고 만들땐 양파도 오래오래 한시간 이상 볶아 카라멜라이징 하고, 나머지 각종 야채들은 믹서기에 갈아 ‘무수분 카레’를 추구하곤 한다.

가끔은 시판 카레가루 대신 나만의 향신료 배합을 시도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안해도…
카레가루 포장지 뒤에 써있는 간단한 조리법 대로만 만들어도 개꿀맛이다.

카레는 요리계의 날먹, 요리계의 치트키니까.

앨리스는  지시에 따라 양파도 볶고, 고기도 볶고, 야채와 물을 부은 후 냄비 뚜껑을 덮었다.


“후~ 잘 되어가나 모르겠네.”
“이제 야채가 익을때까지  끓일때까지 기다리자구요.”
“으응…”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요리하느라 진력이 빠졌는지 앨리스는 처음과 달리 거리낌없이 내 침대 위에 몸을 묻었다.

“그치만 좀 재밌네. 음. 바로바로 손을 움직이는대로 결과가 나오는 점이 좋아.”
“그쵸? 요리 재밌어요.”

앨리스의 어깨를 은근슬쩍 토닥여주자 즉시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는 앨리스.


“또,또!  음흉한 손!
너무 거리낌없는 거 아냐, 코치?
왜 레이디의 몸에 맘대로 손을 대는데?”
“앗… 죄송합니다.”
“확 부러뜨려 버릴까 보다.”


앨리스가 짐짓 으름장을 놓았다.
앨리스를 상대로는 억지로 내가 밀어붙이면 안된다.
나는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상처입은 댕댕이처럼 고개를 숙였다.

“죄...죄송해요. 가만히 있을게요.”


나를 노려보다, 또 무슨 생각인지 화난 표정을 부드럽게 푼 앨리스.


“휴… 코치, 내가 그렇게 좋아?”
“...예?”
“난 도통 이해가 안가네. 맨날 미운 말만 하고, 쥐잡듯 하는데 왜 나한테 자꾸 앵기는거야?”
“그야… 좋은데 이유가 있나요.
그렇게 화내는 모습도 좋아요. 그뿐이에요.”


앨리스는 꼴알못이라 아마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때로는 어떤 사람들에겐 앨리스같은 미인이 화내고 모질게 대해주는 것도 포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혼내주길 바라는 숨겨진 매니아들이 있다는 것을...


쪽!

볼이 축축해서 돌아보니 앨리스가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됐지?”
“됐… 됐다뇨?”
“날 도와준 거, 이걸로 한번에 정산해줬어.”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앨리스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의 애정행위는 볼뽀뽀인가.
순진하고 귀엽기 짝이 없다.

“이정도면,  ‘LOVE파워’도 아마 발동할 수 있을지도? 되려나? 글쎄 확신은 못하겠지만요.”
“LOVE파워?”
“아 예. 제 능력이요.”
“...아, 맞다. 그랬었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손바닥에 주먹을 통, 내려치는 제스쳐를 취하는 앨리스.

“완전히 잊고 있었어. 코치의 능력…
그러고보니까 <헌팅> 대회 준비할  이후로 전혀 안썼네.”
“일부로 꼭  필요는 없어요.”


난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후… 어쩔  없지.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김에 이것도 해버리자.

코치, 카레 가루 넣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려?”
“한 십분 정도? 넉넉잡아 십오분 끓이면 야채도 다 익을거예요.”
“십오분이라…”

큰 냄비에 물도 넉넉히 넣었으니 어지간하면 끓어 넘칠 일도 없을테지.
앨리스가 중대한 결정이라도 내린  엄숙하게 말했다.


“그래. 딱 십오분. 십오분 동안만 연인처럼 굴어도 돼.
코치능력을 써서 간만에 파워업  하고 싶으니까…

대신 너무 심하거나, 뭐 진심으로… 그런건 안돼? 알겠지?”
“어...진짜요?”
“딱 십오분만이야. 카레를 만들러 왔으니까, 카레가 우선이라구.
시간 잰다?”
“어...어… 예!”


얘가 웬일?
역시 둘만의 공간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조금 마음의 허들이 낮아진 모양이다.

나는 우선...

앨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우, 진짜! 소름돋아!!”


벌레라도 붙은 듯 고개를 털며 극혐해하는 앨리스.


“저, 앨리스 입으로 십오분 동안은 연인처럼 해도 괜찮다고…”
“아, 알았어! 참아볼게.”

쓰담쓰담.

앨리스의 찹쌀떡같은 볼따구도 죽 잡아당겨봤다.

앨리스가 죽을 상을 하며 볼을 부풀렸다.

...재밌다. 인형놀이하는 기분이다.

“이런 걸 하고 싶었던거야?”
“예. 앨리스, 귀여우니까요.”
“이해할 수가 없네…”

다음으로,  안 깊숙이 꼭 껴안아줬다.
앨리스의 자그마한 체구가 꼬옥 안겨온다.
긴장한듯 살짝 뻣뻣하게 굳었지만, 크게 거부하지는 않는 앨리스.

“하아, 참… 그래도 이건 좀 낫다.
응, 연인끼리 할 법한 일이야.
...별로 코치랑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이러고 십오분 동안 있어도  것 같아요.”


십초… 이십초… 삽십초…
단지 앨리스의 따뜻한 몸을 껴안은채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앨리스쪽에서 오히려 답답해하며 벗어나려고 바동거렸다.

“아이, 뭐 이래? 내가 죽부인이야? 답답해 죽겠네!”
“저는 이러고 있는게 좋은데요.”
“그만할래. 취소, 취소!
연인은 무슨. 그럼 그렇지.”

앨리스가 홱 삐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진짜 막 이거저거 다 해도 뭐라 안하실거예요?”
“누가 이거저거 하래?
살아있는 사람으로,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란 말야.

집에 가지고 온 마네킹 대하듯 하지 말구.”


 앨리스의 허리를 감싸며 강제로 침대 위에 다시 눕혔다.

“뭐야, 왜, 왜이래…”

앨리스가 반사적으로 가슴 앞에 손을 모은 채 당황해했다.
앨리스의 약한 모습, 이것은 귀하군요...


“저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 본격적으로 놀때 이렇게 합니다.”
“취,취소라니깐? 끝났어! 그만해!”


말과 달리 그렇게 거칠게 거부하진 않는다.
사실 내심 바라고 있었던 건가?
모를 일이다.
얘가  생각을 하는지는 나도 잘 파악하기 힘들다.

앨리스의 앞치마 한쪽 어깨끈을 밑으로 젖히고, 블라우스 위로 작고 부드러운 가슴을 어루만졌다.

“꺅!! 자, 잠깐만!”
“꺅?”
“아니, 거기는 싫어… 만지지마, 코치.”
“저는 앨리스 가슴 좋은데요.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요.”
“...내가 싫다구. 누가 코치 좋은지 물어봤어?”


일부러 무시했다.
앨리스의 양쪽 가슴을 안마하듯 위아래로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그, 그만…”
“괜찮아요.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흐읏… 따,딴데… 가슴은 싫어…”


계속 무시했다.
블라우스 단추를 밑단 두개만 남긴 후 전부 끌르고, 앨리스의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얘는 쇄골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참 예쁘다.


“그만하래두… 바보…”
“사랑해요, 앨리스.”
“후…”

진심 애정표현에 약한 앨리스. 귓가에 대고 사랑을 고백하자 앨리스의 작은 몸이 버터처럼 노곤노곤하게 녹아내리는게 느껴졌다.

어쩌면 겉으로는 틱틱대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지 좋아하는 거 아닐까?

브래지어 위로 손을 집어넣어 미니미니한 앨리스의 유두를 희롱하듯 간질였다.


원래라면 하면 안되지.
하지만, 연인끼리는 오케이다.

그리고 십오분 간은 앨리스가 허락한 연인들의 시간이니까.

“여기 기분좋아요?”
“...그, 그런 걸 내가 말할리가 없잖아…”

나만 진심인가? 어쩐지 약이 오른다.
애무도 티키타카가 중요한데 말이지.

안되겠군. 원래는 이정도로 분위기만 즐겨보려고 했는데, 조금 더 가볼까.

얘의 입에서 진심이 나오도록 만들어주겠어.

바로 앨리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목표는 작은 분홍빛 유두.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나오지 않는 젖을 찾아 앨리스의 가슴을 쪽쪽 빨았다.

대번에 반응이 온다.


“후앗…! 코치, 제, 제발 그만… 간지러워, 간지럽다구...흐읏…”


그만? 이제 시작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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