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공포의 스이나(1) (86/109)



〈 86화 〉공포의 스이나(1)

“반드시!! 승리의 월계관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닷!!”
“너무 부담갖지마. 어디 다치지만 말고 와.”


짧은 재충전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홍삼 스포츠>는 다시 앞으로 전진한다.



<퍼플 캣츠>와의 멸망전에서 승리해 주장 카이아나를 되찾아  이후, 우리 <홍삼>과 <블루 윙>은  사이가 좋아졌다.

나름대로의 전우애가 싹터 두 팀 사이의 제휴 건수도 여러가지 오갔다.

그 결실로 우리 라비가 <블루 윙>의 마하와 함께 2인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

대회는 <익사이팅 런>.

3km 정도의 장애물 코스를 달려 1등으로 들어오는 듀오가 우승한다는 스포츠 종목이다.

시작과 동시에 뒤에서는 큼지막한 바윗덩어리가 굴러오고, 코스 밑에는 용암이 흐르며, 기고 구르며 돌파해야 할 수많은 장애물이 가득하다.


가끔 폰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같기도 한  아기자기한 대회.

바위나 용암이라지만 실제 선수들이 죽지는 않게 안전조치가 되어있으므로  점은 안심.


“라비야, 위험한 일 있으면 무조건 마하부터 앞장세워.
 몸이 최우선이야. 알지?”
“걱정마세요. 전 무적이니까요. 헤헷.”
“그래, 열심히 하고 와.”
“넷!”
“앨리스한테도 얘기 잘 전해주고.”

라비보다 한발 앞서 <블루 윙>으로 떠난 앨리스.

앨리스는 라비에게 졌던 <메이즈> 대회가 몹시 뼈아팠던지, 기어코 우승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다며 재도전하기로 했다.

1인 대회지만 <블루 윙>에 <메이즈> 훈련시설도 있기에 조금 빌리기로 얘기를 해뒀다.

완전 블루 윙 훈련시설 이용권으로 뽕을 뽑는 중.


스포츠백을 어깨에 멘 채 크게 빠이빠이를 하며 가는 라비.


‘이겨서 상금 좀 많이 벌어와!’

당연히 라비가 마하보다 고급전력이므로, 우승  상금 비율은 7:3으로 나누기로 했다.

우승하면 우리는 대략 십만 골드 가까이 먹을  있겠지.


***


우리 팀의  대들보가 떠나니 어째 썰렁하다.

자식들 외지에 일하러 보내고 혼자 남겨진 은퇴한 가장이 된 기분이다.

사무실에는 나와 스이나뿐.


“막내야, 너밖에 안남았다.”
“...막내….요?”
“아, 아닙니다. 말이 잘못 나왔네요.”

나도 모르게 스이나에게 헛소리를 해버렸다.
스이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게임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언니들(?)은 대학도 가고 취직도 했는데, 이노무지지배는 방구석에서 꼼짝도 안하고 게임만 한다.
하다못해 노는 시간에 편의점에서 알바라도 하면 지 밥값은 거뜬히 할 것을.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같은 심정이다.

혼자만의 컨셉에 취해 나는 조금 과몰입해버렸다.
그건 그렇고 스이나가 지금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건 분명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긴 하다.

‘억지로 3인 대회를 찾아봤어야 했나…’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 시즌은 괜찮다 싶은 3인 대회가 별로 없었다.

아직 우리는 참가자격도 갖추지 못한 전국대회들.

아니면 너무 수준이 낮고 상금도 적은 시골 피래미 대회뿐.

어쩔 수 없다.


“이벤트 대회라도 나가 볼래요?”
“...별로요…”
“에이, 그러지말고요.

육체적으로는 전혀 안 힘들어 보이는게 하나 있는데 나름 괜찮아보여요.”
“...들어는 볼게요…”


스이나는 별로 관심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그래도 드디어 게임기에 푹 쳐박고 있던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이번에 지방 방송사에서 개최하는건데, <배틀! 호러 퀸>이라나 뭐라나…”
“호...호러요?”


의아해하는 스이나.

“예. 네 명의 선수가 각자 준비한 괴담을 들려줘 다른 선수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면 이기는 대회래요.

듣기로는 선수들한테 심박측정기, 뇌파측정기를 착용시켜서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는지 정확히 측정한다고 합니다.”
“...”

뭐, 들어도 잘 와닿지 않나 보다.
코를 긁적긁적하며 잠시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스이나는 그렇게 잠시 있다가,  마디 툭 던졌다.

“그거, ...스포츠 아니지 않아요...?”

음,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절대, 누가 봐도 스포츠가 아니다.

저번 <머더러스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돈 많은 방송사에서 내건 상금만큼은 어지간한 지방대회 뺨친다.


“스포츠는 아니긴 한데, 일단은...
공포를 견디는 능력…. 더 실감나게 자기가 준비한 스토리를 푸는 능력…. 뭐 그런  겨루나봐요.”
“...”


스이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긴  말했다.


“알았어요… 나갈게요.
그런 게임이라면 당연히 제가 우승할 게… 뻔하니까.”

의외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긍정적인 흐름이긴 한데, 의아하다.
딱히 얘가 무서움을 안탄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말이지.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거 포맷은  예능이긴 한데요…

일단은 주최 측에선 만능스포츠의 한 종류라고 내세우고 있어서, 완전 야매로 대충대충 하는  아니더라고요.
은근히 까다로워요.

우승하기 쉽진 않을  같은데…”
“그야, 저는… 공포를 느끼지 않으니까요.
...그런 인간이 지어낸 괴담, 오컬트같은 걸로는…”

표정을 보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분위기다.

“그렇다기엔…
저번 담력테스트에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엄청 쫄았었던  같은데요, 스이나.”
“그건…”

그 때도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진 담담한  했지만, 막상 정체불명의 사람을 목격하자
패닉에 빠져 앞뒤 안가리고 공격했었지.

하마터면 ‘염동력’으로 스텔라를 담궈버릴 뻔 했던 스이나다.

“그건… 달라요…!
코치, 차이를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는데요.”
“귀신같은 오컬트는… 허구잖아요…

애초에 가짜, 있을 수 없는 일…
하나도 안무서워요...

하지만 담력테스트 때는… 실제로 누군가가 있었고…
저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

그게 다른거예요…!”


보기 드물게 강한 어조로 얘기하는 스이나.
그녀 나름의 철학이 있나보다.


“알겠습니다. 스이나가 무서움을 타지 않는다는  인정해드리죠.

그런데 그것만으론 우승하기 힘들  같은데요…

직접 무섭게 하는 것도 잘해야 됩니다. 가능하시겠어요?”
“그것도 쉬워요…”


스이나는 말했다.

무서움을 못 느끼기때문에 냉정한 눈으로 괴담의 구조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호러 게임을  두  해본게 아니라고.

어차피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요소는 정해져있으니 그럴듯하게 조합만 하면 그만이라고.



“오, 그러면 하나만 지금 들려주세요. 어떤가 들어보게.”

내가 요청하자 스이나는 ‘너무 무섭다고 우시면 안돼요…’라며 얘기를 시작헀다.


한여름도 아닌데, 납량특집같은 분위기다.

조곤조곤 조용히 중얼거리는 스이나의 목소리 하나만큼은 확실히 괴담낭독에 어울리긴 하다...

***

<스이나의 괴담: 공포의 할머니>

때는 여름이에요…

시간은 한밤중이에요…


장소는 국경 근처의 최전방… 군대 주둔지….


두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었어요…

무덥고 습한 날씨….

푹 젖은 군복이 등판에 축축하니 달라붙어요…

지겹고 졸린 눈으로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고 있던  군인….

문득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발견했어요….
군인이 즉시 외쳤어요...

잠시 정지. 거기 누구입니까.
당장 그 자리에 멈추고 소속과 이름을 밝히세요!


...할머니였어요….

아이구 미안혀,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놀랬쟈? 헐헐...


할머니가 길을 잃었던 거죠…

할머니, 여기까지 들어오면 안되세요.
저희가 길 알려드릴테니까 돌아가세요.

응응, 알았어….
저기, 더운데들 고생이 참 많네그려.
마침 내가 시원한 거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이거들 나눠마실텨….?


할머니가 빨간 음료수캔 하나를 내밀었어요…


그것은 콜라였어요…

경쟁사의 파란 콜라가 아니라, 근본있는 빨간 콜라였어요….


그것도 냉장고에서 막 꺼낸 것처럼,
캔 표면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로 차가운...


군인이 침을 꼴깍 삼켰어요….
한여름밤 해가 졌는데도 무더운 열대야…
날벌레만 꼬이는 짜증나는 경계근무….

그 때 마시는  캔의 콜라…. 각별하죠…..

하지만 군인은 말했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할머니가 계속 권했어요….

괜찮여….
이거 하나쯤 마신다고 누가 뭐라고 안혀…
흘흘...

군인은 갈등했지만, 결국 마음을 정했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마실게요 할머니.

캔을 건네받자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감촉….

할머니가 묘한 눈길로 뚫어져라 군인을 지켜봤어요…

아아, 빨리 마시고 싶다….
군인의 머릿속엔  생각밖에 없었어요…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힘을 주려던 순간…

야 이새끼야, 뭐해!


옆에 있던 군인이 그의 손을 거칠게 움켜쥐었어요…

예…왜그러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미친놈아!


군인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그가 말했어요…

너 지금….  손에….



***

“수류탄을 들고 있냐고요?”

내가 끼어들자 스이나의 눈이 똥그래졌다.


“....어떻게 아세요, 코치?”
“그거 유명한 괴담이잖아요. 할머니 수류탄 괴담.”
“....그런가?”

멋쩍어하는 스이나.

유명한 괴담이라지만 어떻게 다른 세계인데 토씨 하나 안틀리고 똑같은 레퍼토리가 있냐.

맥이 빠진다.

“확실히 좋은 괴담이지만, 너무 클래식이랄까…

듣는 사람이 결말을 벌써 알고 있으면 그렇게까지 무섭진 않죠.”
“...”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하겠네요.
스이나만의 괴담.”

스이나치곤 제법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기존에 존재하는 괴담을… 그대로 얘기하면 안되나요?”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걸로 우승을 노리긴 힘들지 않을까요.”
“흠…”


스이나가 눈을 빛내며 다시 말했다.


“코치… 그거야 어렵지 않아요. 예로부터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
그냥 조금만 어레인지하면 그만이잖아요…”
“글쎄요. 말처럼 쉬울까요?”

‘이번엔 확실히 다를거예요…’라며 다시 스이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스이나의 괴담: 공포의 할머니2>


때는 겨울이에요…

시간은 대낮이에요…


장소는 국토 중심부에 위치한 핵미사일 발사기지… 1급 보안시설….

두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었어요…

실내라서 날씨의 영향은 없어요….
쾌적한 냉난방….


지겹고 졸린 눈으로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고 있던  군인….

문득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발견했어요….
군인이 즉시 외쳤어요...


잠시 정지. 거기 누구입니까.
당장 그 자리에 멈추고 소속과 이름을 밝히세요!

...할머니였어요….


어이쿠, 저런…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들어왔지? 미안혀….


***

“저기요, 그거 아까 했던 얘기잖아요.”
“디테일이 다르잖아요… 끝까지 들어보세요, 코치….”
“애초에 지금 들은 것만으로도 태클 걸 요소가 한 두개가 아닌데.”

스이나는 쉿, 하며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올렸다.


“그냥 잠자코 들어봐요…”

***

할머니가 길을 잃었던 거죠…

내가 말여, 조카들한테 서마터폰을 하나, 최신으루다가 선물받았는디…
그게 있지… 쓰는 법을  모르겠어…

으쩌면 좋아?....


군인도 고향에 내려가면 친할머니가 있어요....

남일같지가 않아요…

동정심이 생긴 군인이 말했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할머니.
어떤 걸 하고 싶으신데요?

할머니가 기뻐하며 말했어요….


아, 다름이 아니라, 모바일 메신저에서 말여…

10명 이상의 그룹을 지정해 동시에 같은 채팅방에 초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이 경우엔 어떻게 설정해야할까…?

그리고,

1gb이상의 대용량 동영상을 다수에게 한번에 보내는 방법도 알고 싶은데…
이러면 와이파이로 보내는 것과 데이터로 보내는 거 속도 차이가  많이 나려나? 헐헐...


군인이 잠시 고민했어요…

말로 설명하긴 조금 복잡할  같았거든요…

할머니, 잠깐 저   줘보실래요?
제가 하는  직접 보여드릴게요.


아, 그래줄텨? 알았어. 여기.


할머니는 테이블에 폰을 내려놓았어요…

제가 하는 거 잘 보세요, 할머니.

군인이 꾸욱 꾹, 스마트폰의 액정을 터치했어요…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군인이 그의 손을 거칠게 움켜쥐었어요…

야  새끼야, 지금 뭐햇!!

왜 그러십니까?

다른 군인이 경악한 얼굴로 말했어요…


니가 지금 뭘 누르고 있는지 알아…!?

왜…

핵미사일 발사버튼을 누르고 있냔 말얏…!


***


“...”
“...”

어떻게 반응해야  지 모르겠다.

스이나는 은근한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날 빤히 바라봤다.

설마 이 괴담 진심으로 얘기한건가?

너무 오래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공포에 질려 할말을 잃은 줄 오해할지도 모른다.


“저기, 전보다 훨씬 구려졌는데요?”
“...네?”
“이야기가 너무 허황되고… 말도 안되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원래…. 괴담이  그렇지 않나요…”

스이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 괴담(?)의 유일한 수확은 할머니 연기를 하는 스이나가 귀엽다는  하나 뿐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현실성을 기반으로 해야 무서운거죠.

아니 할머니가 어떻게 길잃어서 핵미사일 기지로 들어와요?
거기부터  엉터리구만.

그리고 핵미사일을 뭔 일개 경계 서던 군인이 아무렇게나 버튼 꾹꾹 눌러서 발사해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판타지잖아요.
무서워 할래도 어이가 없으니.”
“....동의할 수 없어요…”

이런 고집쟁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겠구만.

“그나마 다행인건, 괴담은 미리 저랑 같이 준비해서 만들어도 되니까요.

함께 이거저거 참고해보면서 해보자고요.”
“이거저거...요?”
“예. 공포영화도 보고, 만화도 보고, 소설도 보고…

스이나 말대로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니까 뭔가 여러가지 보다보면 하나쯤은 나오겠죠.”
“헤에…”

스이나는 어쩐지 조금 기뻐보이는 얼굴이다.

직접 몸을 움직이는 훈련을 안해도 되니 그런걸까?

“코치랑 같이… 흠…. 좋아요… 재밌을 것 같아요…”
“좋습니다. 빡시게 한번 해보자고요.
이벤트라지만 우리는 항상 진심으로 가는 스타일이니까.”
“...쿡쿡..”

소리죽여 웃는다.
그럭저럭 할 맘이 생겼나보다.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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