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공포의 스이나(3) (88/109)



〈 88화 〉공포의 스이나(3)

3층 건물을 통째로 차지한 오락실에 들어서니 쩌렁쩌렁한 소음이 우리를 반겼다.

수많은 게임기가 자아내는 무질서한 아우성.
어디선가 텅- 텅- 하는 소리도 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미니 자유투 게임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펀치머신? 뭔지는 봐야 알겠다.

바로 옆에 있는 스이나와 말할 때도 귓가에 대고 크게 얘기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될 정도다.

“뭐부터- 할까요-!”
“...!! ….!!!”

내 목소리도 잘  들리는데 원래 소곤거리며 얘기하는 스이나 목소리는 들릴 리 만무하다.
스이나가 뭐라뭐라 말하지만 큰 소음에 묻혀 알아듣기가 힘들다.

하지만 난 명색이 스이나의 코치, 스이나 전문가거든.


‘난 얘의 입술 움직임만 봐도 뭐라 말하는지  수 있단 말씀.’

(격겜 한 판 해요)


독순술로 읽어보니 대강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싫어요-!!!”
“...!!”



(왜요)

“제가 질 게- 뻔하니까요!!!”
“....!!! ….!!! ….!!!!”

(조금 봐주면서 할게요)

사방에 가득한 최신 아케이드 게임들을 보며 눈이 반짝반짝해진 스이나를 보니, 무슨 부탁이든  들어줄 수가 없다.

동전교환기에 지폐 몇 장을 넣고 찰그랑거리며 떨어지는 동전들을 잔뜩 받아왔다.

 정도면 넉넉잡아 두 시간은 신나게 놀 수 있겠지.

“하고 싶은  골라요-!!!”


잔뜩 신나서 내 손을 잡고 이끄는 스이나.
오길 잘했다.


***

약속과 달리 스이나는 별로 봐주면서 하지 않았다.
아니, 봐준 게 그 정돈데 내가 그것도 못 이길 정도로 실력이 처참한지도 모르지.

여튼 깔끔하게 개발렸다.

‘격겜은 답이 없나…’

둘 다 처음 해보는 게임인데도 스이나 쪽이 훨씬 빨리 게임을 이해했다.
처음엔 비등비등했지만 판수가 쌓일수록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나중엔 일방적으로 농락당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재능의 차이인가.

더 하면 할수록 초라한 기분이 들 거 같아 종목을 바꾸기로 했다.

“노잼-!!! 딴 거 해요!!”
“...!!”

(전 재밌는데요)


너는 계속 이기기만 하니까 재밌겠지.
아무래도 둘이 경쟁하는 게임은 피하는 게 낫겠다.

그럼, 그럼.
같이 즐겨야지.

결코 내가 발리기만 해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코치와 선수의 우애를 돈독하게 다지기 위해.

둘이 사이좋게 할 수 있는 게임들도 많다.


아기자기한 공룡들이 구슬을 쏘아 없애는 퍼즐게임,
틀린 그림 찾기(사실 정확한 표현은 ‘다른 그림찾기’지만),
횡스크롤 비행기 게임.

스이나가 놀라울 정도로 잘해서 우리는 모든 게임에서 하이스코어를 기록했다.
게임이면 뭐든 잘하는구나. 정말 쌉고수다.

어린애처럼 우쭐대는 모습이 무지 귀엽다.


“인형뽑기  판 할래요!!”
“...!!”

(좋아요)



조이스틱으로 집게를 조작해 안에 수북이 쌓인 인형을 뽑아 배출구까지 옮기는 클래식한 인형뽑기.

앙증맞은 인형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나를 바라보는 게, 한 마리 꼭 데려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내가 먼저 다섯 번, 그리고 스이나가 다섯 번 뽑기로 했다.


“저 이거 잘해요-!!”

나는 기세등등하게 컨트롤러를 잡았다.
먼저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인형의 산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인형뽑기의 집게를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
이런 기계의 집게는 생굴 잘못 먹고 노로바이러스로 3일 고생한 환자보다 힘이 없다.
그야말로 ‘바들바들’이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는 약해빠진 악력.

하지만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허약한 집게면 허약한 나름대로 뽑는 방법이 있지.

여러 사람이 계속해서 플레이하다 보면 자연히 배출구 근처에 높게 인형 무더기가 쌓이기 마련.

포인트는 여기다.

멀리 떨어진 인형을 가져와 한번에 배출구에 골인시키는 게 아니라, 배출구 근처에 쌓인 인형의 산에서 인형을 툭툭 건드려 밑으로 쏘옥 떨어뜨리는 것.

내 실력을 보여주지.

처음은 실패.
뭐 손풀기니까. 좋아좋아.

두 번째도 실패, 세 번째도 실패.
괜찮아, 아직 두 번이나 기회가 남아있어.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만 뽑아가자.

네번째...실패.
다섯번째도….. 실패.


“아니 이거  이래.”

여기 사장 미친놈 아냐?
적어도 집게가 다물어지게는 해야지, 완전 노골적으로 힘을 빼놨어.

약이 올라 머리에 열이 훅 뻗친다.

한국의 인형뽑기방도 이렇게까진 안한다.

“절대 못 뽑게 해놨는데요.”


변명하듯 스이나에게 말했다.
내가 부들부들거리자 스이나가 가볍게 눈썹을 찡그렸다.

인형뽑기 안을 빤히 바라본다.

(코치,  뽑아 드릴까요)


“스이나,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이거 순 사기꾼이니까.”

(제가 코치 것까지 뽑아 드릴게요.)

“그럼… 이거 하고, 저쪽 끝에 저거요.”



스이나는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저만 믿으세요, 라는 듯한 자신이 엿보이는 제스쳐.

그녀가 딱히 망설이지도 않고 즉시 컨트롤러를 쥐었다.
고민도 없이 즉시 내가 찍은 인형으로 달려가는 집게.

‘쉽지 않을 텐데?’


전략도 뭣도 없는 초심자의 조작이다.
집게는 탐욕스럽게 인형 정수리 위에서 쩍 손아귀를 벌리고, 천천히 내려갔다.

곰인형의 대가리를 움켜쥐는 집게.

여기까지는 플레이어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과장된 무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집게가 인형을 움켜쥐고, 다시 위로 상승한다.
덜컥덜컥 가볍게 흔들리며 다시 출발지점으로 복귀.

‘...뭐야, 왜 집게 힘이 갑자기 세졌지?’

보통 플레이어를 빡치게 하려고 배출구 근처에서 집게 힘이 확 풀리며 인형을 놓치기 일쑤다.

그런데 스이나가 조종하는 집게는 전혀 악력을 잃지 않고 곰인형을 배출구에 무사히 골인시켰다.


“...”

쪼그려앉아 인형을 꺼내는 스이나.
말없이 내게 내민다.


“어...어떻게?”


의기양양해하며 스이나가 자기 미간을 톡톡 두드렸다.

(썼어요, 능력…)


“아, ‘염동력’...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요.”

(기계가 어느 정도 양심이 있었으면 저도  쓰려고 했는데, 너무 열받게 하잖아요.

맘만 먹으면 집게 필요없이 인형 다 털어가는 거 일도 아니지만, 그 정도까지 하면 범죄니까…)

“잘했어요. 이놈의 기계 빡치게 하는데 더 뽑아버립시다. 크크…”

(뭐 뽑을지 골라만 주세요.)


스이나는 다섯 번의 플레이로 인형 다섯 개를 가져왔다.

스이나 말대로 염동력으로 직접 가져오면 CCTV에 찍힐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집게에 살짝 힘을 주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조작한다면 걸릴 일도 없다.

애초에 사장이 먼저 기계에 사기를 쳤으니 인과응보지 뭐.

***

이것저것 게임을 즐기다 보니 드디어 인기 있는 건슈팅게임의 자리가 났다.

비밀 실험실에서 좀비와 기타 괴물들을 학살한다는 스토리의 2인용 게임.

실제 총처럼 생긴 컨트롤러를 들고 화면에 총구를 조준해가며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진이 다 빠졌다.

우리는 겨우겨우 중후반부까지 도달했으나 나는 일찌감치 게임오버당했다.

스이나 홀로 고군분투하다 키메라의 발톱에 스이나가 당하며 게임 종료.


“응, 이거  재밌다. 근데 공포게임이라고 생각하고 하러 왔는데 무섭기보단 그냥 재밌었네요.”


(네. 그냥 깜놀 계열의 게임이었네요.)


떠들썩한 오락실에서 나오니 이번엔 비교적 차분한 거리의 소리에 귀가 낯설어한다.


잠시 휴식시간.
놀 때도 중간에 쉬어가며 놀아야 오래 놀 수 있다.

3단 콘 아이스크림을 사서 스이나와 하나씩 먹었다.

나는 이빨이 시려도 우적우적 베어먹는 걸 좋아하지만,
스이나는 꼼꼼히 아이스크림 윗부분부터 핥아 맨들맨들하게 먹는 타입이었다.

스이나의 귀여운 분홍빛 혀가 할짝할짝 아이스크림을 핥는  보고 있으니 조금 저속한 생각이 들어  눈을 돌렸다.


“재밌었죠?”
“...네.”

<배틀! 호러 퀸> 대회를 준비하러 취재 명목으로 온 거였지만 어쩌다 보니 둘 다 머리를 비우고 놀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좀…
억지로나마 교훈(?)을 찾으려고 화제를 돌렸다.


“영화나 오락실에서 경험한 것 중에 뭔가 써먹을 만한 게 있을까요?”
“...있어요.”
“아, 진짜요? 대단한데요. 전 솔직히  생각 없었는데…”
“괴담이 하나… 떠올랐어요. 들어볼래요?”

스이나는 가만가만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스이나의 괴담:지옥행성의 결전>



마침내 그의 차례가 다가왔어요…

기묘한 광경이었죠…

이음새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매끈하고 하얀 실내…

검푸른 빛이 명멸하는 우주선의 내부 인터페이스,

방 한가운데엔 두 대의 아케이드 게임기…


세상에, 믿기지가 않는군.

그가 중얼거렸어요…


고작 게임으로, 이따위 게임으로  목숨이 어떻게 될지 결정된단 말야?
도저히 납득할  없어…


하지만 그가 받아들이든 어쩌든 이미 더는 그의 의지로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수천만 명의 인류가 마찬가지로 게임기 앞에 앉아있으니까요…

룰은 간단해요…
이기면 생존, 지면 죽음…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이야기는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요...
어느 날 파란 하늘 한복판에 우주선 한 대가 나타났죠…

태양을 가릴만큼 큰, 하나의 도시보다도 거대한 아름다운 우주선이었어요…

역사상 어떤 인류의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독특하고 이질적인 디자인…

거기엔 수많은 우주인들이 탑승해있었어요..


머나먼 은하 저편에서 온 우주선의 함장 눈엔 지구가  특별한 행성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별은 쓸만하군.
하지만 쓸데없이 생명체가 많은걸.

반으로 줄이자고.


우주인들은 즉시 지구 전역에 그들의 일방적인 결정을 통보했어요…

식민지화, 인구 감축… 선별…

당연히 인류는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죠...

거센 저항이 있었고...

인류는 그들의 운명을 건 필사적인 사투를 벌였어요...

하지만 우주인에겐 오전의 티타임과 다를게 없는 가벼운 해프닝이었죠…

본의 아니게 인류 스스로 인구감축을 도운 결과에 불과했어요...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단  전인류가 깨달았죠…

선별 방법은 심플하게, 무작위로 추출된 두 인간의 일대일 승부....

승리하면 생존, 지면 ‘처분’...
게임 종목은 무작위….
3판 2선승…


몇십억번 반복하면 인류는 절반으로 줄어들겠죠…

인류의 총 인원이 홀수라면, 운좋은 누군가 한명은 부전승으로 살아남을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그의 순서까지 돌아왔어요...


천운이 따른 걸까요,
무작위로 뽑힌 게임인데 그가 해본 적 있던 게 걸렸어요…

격투게임… 몇십  전 잠시 반짝 유행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플레이하지 않는…

어렸을  형과 함께 작은 TV에 연결해 즐겼던 기억이 있어요…

형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이겼을까요?


부모님은?
그는 부모님 생각을 하자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았죠 …

게임이라니…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에서 햄버거 주문도 제대로 못 하시는 연로한 부모님이 게임으로 승부라니...

억지로 눌러 참았어요...
고개를 마구 저었어요…


지금은, 이기는 것만 생각해…
어떻게든 나부터 이기고 봐야 해…
 생각 하지 마...
이긴다, 무조건 이긴다…
살아남는다...


게임기 앞에 앉자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땀이 흥건해졌어요…

제발, 제발…

그가 필사적으로 중얼거렸죠…

할아버지, 아기, 누구든 좋아…

제발 내가 이길수 있는 상대로 걸려라…


냉혹한 기원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요…

게임을 플레이할 줄 모르는 노약자나 장애인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대거 학살당하는 중이었으니까요…

안타깝지만 선별이 끝나면 젊은 사람들 위주로 인류 밸런스가 개편되겠죠…



하지만 그에게 운이 따른 만큼, 상대에게도 운이 따랐어요…

이 게임은 상대도 해본 적 있는 게임이었어요…

첫 판을 플레이하면서 두  모두 깨달았죠…

비슷한 실력이라고…


둘 다 잘하진 않아요…

그냥, 해본 적만 있을 뿐…

기본 조작법과 간단한 기술만 알고 있죠…


그는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집중했어요…

손끝이 부들부들 미친 듯이 경련하고…
눈이 충혈되고…
으스러질 정도로 이를 꽉 문 채…

한 번  번의 점프, 펀치에 서로의 심장이 천당부터 지옥까지 왔다갔다했어요…

야속하게도  판은 그의 패배로 끝났어요…

눈물이 뚝뚝 흘러 시야를 가렸어요…
깨닫지 못했지만 콧물도 흘렀죠…

목구멍에서 하수구 막히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끓었어요…

게임기에 머리를 쿵쿵 박았어요…

찢겨진 이마에 피가 주르륵 흐르고 머리에 화끈거리는 격통이 일자 다시 그는 정신을 차렸죠…


아니야, 포기하지마…
실력차이는 거의 없었어…
저 녀석이나 나나 거기서 거기야…

지금 그의 반대편에서 게임기 앞에 앉아있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죠...

이 개자식.
난 살아남고야 만다.
죽이고 만다.
살고 싶어? 아니,  죽을 거야.
병신같은 자식.
뒈져.
뒈져.
뒤지라고, 이 쓰레기.

아드레날린이 전신에 돌고 그의 정신은 어두운 증오로 활활 타올랐어요…

기묘한 고양감 속에서 그는 두번째 판의 승리를 거머쥐었죠…

그는 확신했어요…

자기가 이길 거라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는 알아챘거든요…

이 게임의 미세한 테크닉…
공방의 포인트…
상대의 버릇, 치우침…


결국  나은 쪽이 이기기 마련이죠, 게임은…

그렇게 이어진 세번째 판, 승부의 추가 기울었어요…

그는 무자비하게 상대의 캐릭터를 난타했죠…

일말의 쾌감까지 느껴졌어요…

이제 몇십  후면, 나는 살아남고, 저 쓰레기는 ‘처분’당하는거야.

감히 날 죽이려고 해?
너나 죽어, 너나 죽으라고....


하지만 신도 야속하시지.


그런데 갑자기,
그의 캐릭터가 바보같은 모션을 취한 채 정지해버렸어요…

고전게임에서 종종 있는 일이죠…

프로그래밍 실수든 기기의 성능부족이든, 잦은 버그…

이제 두 대만 더 때리면 승부를  수 있는데,
그의 캐릭터가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

뭐라 알아들을  없는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그가 벌떡 일어났어요…

눈물이 펑펑 흐르고 억울함에 입만 뻐끔뻐끔거렸어요...


문이 열렸어요...
선별과정을 감시하던 우주인이 이상을 깨닫고 들어왔죠...

우주인의 목에 걸려있던,
자동으로 지구어를 번역해주는 기계에서 기묘한 억양의 기계음이 흘러나왔어요…


문제 있나?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부짖었어요…


기계가… 버그가… 흐얽… 큭… 크윽…

우주인은 흘깃 게임기 화면을 바라봤어요…

그리고 상황을 이해했죠…

어쩔수 없어. 네 운이 안 좋았을 뿐이야.


크어얽… 크흐흑…

그가 흐느꼈어요...
우주인은 무감정하게, 툭 내뱉었어요…


만약 네 상대가 동의한다면, 세번째 판은 무효로 하고 재경기로 돌릴 수도 있지만.

그는 절망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대체 누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그가 정반대의 처지였다면, 당연히 거부하겠죠…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는 그를 내버려두고, 우주인은 게임기 반대편으로 걸어갔어요…


자네 상대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받아들일 텐가?


우주인이 물었어요…


그 때 게임기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내밀고, 그를 쳐다봤어요…

눈물로 흐려진 실루엣이 천천히 그의 뇌리로 새겨졌어요…

그의 충혈된 눈이 튀어나올듯 크게 떠졌어요...

그가 아는 사람이거든요…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의 형이었어요…



형… 어떻게?
형…. 형….!!

그의 비통한 외침에 형이 대답했어요...

세상에, 너였구나.

형의 표정도 처참하게 일그러져있었어요… 눈물과 콧물…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피범벅이 되어있었죠…

형….!! 제발…. 부탁이야….!!

큭...크흑…


형도 어깨를 떨며 오열했어요…

그의 마음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밝게 빛났어요…

어떻게 이런 행운이…?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몇십억의 사람 중에 형과…?

그랬구나.
그래서 나와 실력이 비슷했던 거였어.

형은 날 버리지 않아.
형이라면,
형이라면…


그는 형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당연하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의 형이니까요...




우주인이 다시 물었죠.


어떻게 할 텐가?
마지막 세트, 다시 할텐가?


형의 눈빛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어요…
형이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아니요, 거부하겠습니다.

***

스이나의 이야기는 3단 아이스크림을  먹고 밑의 콘만 남았을 때쯤 끝났다.

분명 처음 듣는 이야기긴 하지만, 글쎄 이건…

“괴담 아니지 않나요?”
“...역시 그런가요.”
“SF...쪽? 그것도 아닌가. 여튼 들으면서 괴담은커녕 무섭다는 느낌도 별로 안 들었어요.”


스이나는 초콜릿코팅이 발라진 콘을 와작 씹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게임을 하다가… 지면 죽는 게임이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쉽지 않네요…”
“확실히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상당히 압박감이 느껴지긴 할 것 같아요.

근데 문제는 역시 하나도 안무섭다는 거...

그래도 이런 식으로 계속 뭔가 이야기를 생각하다 보면 좋은 게 하나쯤 나올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렇겠죠…?”


과연 얘가 '호러 퀸'이 될  있을까?
나는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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