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공포의 스이나(6)
“어…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사람 없는 저수지에서 ...혼자 놀기엔 아무래도 심심할 테니,
...아마 옛날에 동생과 함께 ...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정확히 스이나 말대로입니다.
‘나’의 앞에 동생이 나타나요.”
나는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동생은 그에게 상냥하게 말한다.
‘나’의 담임선생님은 부모님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나’의 같은 반 아이들도 도둑질 소동이 오해라는 걸 알았다고.
그러니 집에 돌아가자고.
헌데 동생의 얘기를 들을수록 ‘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는다.
식고 식어, 얇은 빙판처럼 얼어붙는다.
이윽고 산산이 깨진다.
기이한 증오가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 깨진 빙판 밑에서 꾸물꾸물한 검은 덩어리가 되어 흘러나온다.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언제부터 동생을 증오하게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동생이 내보이는 따뜻함조차 ‘나’를 초라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쓴 가면처럼 보인다…
문득 깨달았을 때, ‘나’는 동생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동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숨이 끊어진 동생의 몸은 끈 떨어진 연처럼 힘없이 비틀거리다, 저수지 밑으로 풍덩 가라앉는다.
‘나’는 하염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책가방을 다시 짊어지고, 힘없는 걸음걸이로 집으로 돌아간다.
“일기를 쓴 아이는 당연히 자기가 동생을 죽인 사실을 들킬 거라고 각오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하루, 이틀이 지나도 걸리지 않았어요.
초등학생이, 그것도 형제끼리 살해할 거라고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던 까닭일까요.
부모님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저수지 밑바닥에 가라앉은 동생의 시체는 이후로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
일기 속 ‘나’를 둘러싼 상황은 갈수록 지옥도로 변해간다.
동생의 이름은 장기 실종 아동 리스트에 오른다.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와 함께 실종된 동생을 찾아 사방을 헤맨다.
‘나’는 차마 말할 수 없다.
그 동생이 지금 저수지 밑바닥에서 썩어가고 있을 거라는 걸.
결국 부모님은 절망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나’는 텅 빈 집안에 혼자 남겨진다.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나’는 버려진 들개처럼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뜯어먹으며 연명한다.
먹어선 안 될 것들조차 남김없이.
그러다 몸이 몹시 아프기 시작한다.
낫다가, 아프다가, 조금 낫다가, 많이 아프기를 반복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낫지 않고 항상 아파졌다.
‘나’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실낱같은 신음을 흘리며 몇 날 며칠을 보내다, 결심을 내린다.
조금이라도 걸을 힘이 남아 있을 때, ...저수지로 떠나야겠다고.
동생을 보러 가야겠다고.
...여기서 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에 이르러선 일기는 거의 알아보기 힘든 난잡한 글씨체로 희미하게 쓰여있었다.
“이게 이 집이 폐가가 된 이유일까요?”
“...”
스이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어 낡은 노트를 건네받았다.
찬찬히 읽어보는 스이나.
이윽고 그녀가 말을 꺼냈다.
“누가 쓴 걸까요…?”
스이나는 안타까운 듯도, 화난 듯도 한 복잡한 표정으로 노트를 바라봤다.
“...인간의 악의에, 질렸어요...
이런 얘기까지 지어내면서... 누군가를 속이려고 하는 게 말이에요…”
“지어낸 거라고요?”
어, 가짜였었나?
그런 거치곤 일기에 기이한 박력이 있어 진짜인 줄 알았는데.
“예.
애초에 저희 이전에 수많은 사람이 이 폐가를 뒤졌을 텐데,
딱히 숨겨놓지도 않은 이 일기가... 저희가 찾을 때까지 방치되어 있었던 것도 이상하고…
그리고 노트 표지의 이 고양이 캐릭터, ….작년 말에 출시된 거예요.”
“에엥?”
“이 집이 폐가가 된 건... 십 년도 더 된 일이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나온 노트에 쓰인 일기라니...
시간상 전혀... 안 들어맞죠.”
“그렇군요…”
약간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폐가의 진실을 발견한 건가, 하고 두근거리며 읽었건만.
시덥잖은 녀석의 수작질이었다니.
쓸데없이 공을 들인 장난이다.
그대로 노트를 찢어버릴까 하다가, 나만 속는 것도 억울한 생각이 들어 다시 벽장 안에 잘 넣어놓았다.
이 가짜 일기가 우리에게 발견될 때까지 나름대로 보존된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인 건 아닐까.
나 다음의 누군가도 읽고 속아봐라…! 라는 치졸한 심리.
집안에 딱히 주목할만한 건 더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폐가 탐험을 끝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방금까지 으스스한 흉가 안에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밖의 슬럼가가 오히려 인간 냄새나는 밝은 곳인 것처럼 느껴진다.
긴 하루였다.
보람찼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하루 종일 스이나와 재밌게 놀긴 했다.
어디선가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우- 우- 우우-
우- 우- 우우-
나와 스이나는 말없이 걸었다.
폐가를 나올 때부터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맑고 큰 눈을 내리깐 채 잠시 다른 세계에 가있는 듯한 아련한 분위기.
혼자만의 생각에 깊게 빠져 있는 모양이라 나도 방해하지 않았다.
폐가 체험을 통해 그녀는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길.
어딘가에서 뉘집 개가 요란하게 짖는다.
주황색 가로등이 환히 밝혀진 큰 거리로 나오니 조금 전 폐가 체험은 벌써 오래전의 추억처럼 멀게 느껴졌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대도시에 뭔 귀신이고 흉가야.
그냥 낡아빠진 집이지, 뭐.
어쩌면 괴담이니 하는 것들도 다 비슷한 걸지도 모른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들에 그럴듯한 껍데기를 덧붙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괴담을 지어내는 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을 꺼내보려는데, 스이나가 먼저 날 돌아봤다.
“하지만 정말 무서웠어요…”
방금까지 하던 얘기를 이어 하듯 자연스럽게 스이나가 말했다.
“예? 아까 그 폐가요?”
“집보다, 가짜 일기 말이에요.”
막상 들을 땐 별로 안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돌아보니 스이나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는… 이런 테마에 약한 것 같아요.
형제자매간의 증오… 같은 것들...”
그러고보니 스이나의 <우주선 게임> 괴담도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형제 사이에 서로 죽일 수밖에 없는 비극을 다룬 이야기였지.
들을 때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겐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소재였었나 보다.
“아마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나 봐요…
항상 절 믿어주는 언니마저도 결국 절 포기하는 순간이 올까 봐...
미움받게 될까 봐…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무섭게 느껴지는 건지도 몰라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미처 직시하지 못했을 뿐 스이나의 그 공포는 하루 이틀에 걸쳐 만들어진 게 아닐 테니.
이번 폐가의 가짜 일기가 기폭제가 되어 그녀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인 깊은 두려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리라.
깊다.
섣불리 가벼운 말을 건네기엔 그녀의 감정은 매우 깊다.
나는 서투른 위로 대신 그냥 어깨만 토닥여줬다.
그렇게 또 말없이 한참을 걸어갔다.
우리의 대화는 늘어진 테이프처럼 중간마다 길게 끊겼다.
사이사이는 각자의 사색으로 채웠다.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이 보일 때쯤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치만… 언니가 절 미워한다 해도… 전 어쩔 수 없어요…
미워할만한 짓만 했으니까요…
전 지금까지 왜 이렇게 산 걸까요…?
제멋대로,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바보같고 한심해요…”
“...”
“...흑…”
말하다 보니 감정이 과열된 걸까, 스이나는 나직하게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니, 과열되었다고?
잘못된 표현이다.
오히려 이제서야 데워지기 시작한 거겠지.
단단하게 굳었던 그녀의 마음이 겨우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리라.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흑, 흑…”
“유우 씨는, 스이나를 미워하는 마음 같은 건 조금도 없었을 테니까요.”
“...”
“그저 믿고 기다렸을 겁니다.
지금처럼, 스이나가 스스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주길 말이죠.”
나는 스이나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눈물로 젖어 엉망이 된 얼굴로 날 바라본다.
“스이나, 잘하고 있어요.
언니도 틀림없이 기뻐할 겁니다.
미워하기는커녕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동생이라고요.
제가 장담할게요.”
“...저,정말인가요...?”
“그럼요.
지금처럼만 하면 스이나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저만 따라오세요.”
“고마워요… 코치…”
코를 훌쩍, 들이키고 고개를 끄덕이는 스이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코치… 저, 있잖아요…”
“예.”
“코,코치랑…”
“...”
어쩐지 훈훈하게 바뀐 분위기.
스이나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난 눈치 없게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스이나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아, 나직하게 말했다.
“함께 있으면...”
“...”
“잘… 모르겠지만….
… 마음이 편해져요…
그러면서도, 조금은… 두근거려요…
설레요…
코치랑 함께하면… 뭐든 재밌어요…
이게...좋아...한다는...건가요…?”
“...알려드릴까요?
스이나의 마음...”
스이나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벤치로 이끌었다.
서로 고개만 돌려 마주 본다.
지금부터 내가 뭘 할지 스이나도 눈치챈 모양이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천천히 스이나의 입술에 내 입을 맞췄다.
입술로 어루만지듯, 음미하듯.
혀가 섞인다.
스이나와의 키스는 가볍다.
화려하고 교태스럽지 않다.
우리는 톡톡 건드리듯 잠깐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혀는 처음 느끼는 자극에 어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방황했다.
헤매고 또 헤매다, 내게 감겨온다.
긴 방황 끝에 우리는 함께 한다.
깨닫고보니 무너지듯 내 품에 안긴 스이나.
"아, 코치…."
"후우…"
탄식하듯 스이나가 아스라히 중얼거렸다.
"알겠어요…. 이제…"
"저도 스이나를 좋아해요. 아주 많이."
"쿡쿡.."
스이나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한쪽 손을 가볍게 뺨에 가져다 댄다.
진정한 첫 키스의 여운에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느낌이구나…쿠쿳..."
"어때요?"
"...좋아요…"
스이나는 내 눈을 마주 보며 속삭였다.
"코치, 부탁이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이... 알려주세요…
코치랑 같이…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스이나가 방긋 웃었다.
훌쩍훌쩍 울었다가 이번엔 또 웃는다.
틀림없이 그녀가 요 몇 년 동안 표출한 감정보다, 오늘 하루 내보인 감정이 더 많을 것이다.
항상 무표정하고 떨떠름했던 그녀의 얼굴에 환한 빛이 퍼져 나갔다.
석고상 조각이 생명을 얻어 인간으로 변화하는 광경을 지켜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 얼굴은 지금까지 내가 본 스이나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답고, 귀여웠다.
[LOVE파워 사용]
[스킨십: 진정한 첫 키스
앞선 두 번의 입맞춤이 분명 있었죠.
하지만 그건 해프닝입니다.
당신이 그녀에게 말했듯, 진정한 첫 키스는 사랑이 담겨있어야 하는 법.
검은 머리 오족 아가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모양입니다.
부디 서두르지 말고 그녀를 아껴주세요.
애태우지 않아도 그녀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으니까요.
애정 2단계 보너스.
트루러브 보너스.
종합능력치가 B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스이나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체력: 8 (+1)
근력: 5 (+1)
지혜: 17 (+1)
기교: 19 (+1)
의지: 8 (+2)
속도: 6 (+1)
스킬을 얻었습니다. ‘염동력A’. ‘정신방어C’
]
[스이나는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스이나는 당신에게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
돌아오는 버스 안.
버스 뒷자리 2인석에서 우리는 손을 꼭 잡고 행복한 기분에 빠져있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코치… 있잖아요.”
스이나의 목소리가 살짝 녹기 시작한 사탕처럼 달달하다.
목소리,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귀엽기 그지없다.
“왜요?”
“저랑 둘이 있을때는요… 조금 더 다정하게… 불러주시면…. 안될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부탁드려요...“
“...아, 이렇게? 스이나. 좋아해. 하고 말이지?”
“...쿡쿡.. 예…”
만족스러워하며 혼자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스이나가 그걸 원한다면 둘이 시간을 보낼 땐 편하게 말해줘야지.
“그건 그렇고 어쩌냐. 대회 준비, 잘하고 있는 걸까 우리?”
“...아마 괴담은, ...글쎄요… 조금 자신은 없어요…”
“후~ 역시 그런가.”
스이나는 내 소매 밑단 단추를 가지고 손장난을 하며 말했다.
“그거, 대회 기준이 있잖아요…
결국 심박 측정, 뇌파측정... 비명의 데시벨 측정… 이잖아요?
애초에 조금 불확실하다고나 할까…”
“응?”
“괴담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예를 들어 듣는 순간엔 별생각이 없어도…
자기 전에…
아니면 머리 감으려고 눈 감을 때라든지…
불현듯 생각나며 무서워지는… 그런 타입의 괴담도 있잖아요…”
“그렇지.”
“그렇게, 은은하게 계속해서 생각나는 타입의 괴담은 애초에 불리해요…
제 생각엔…
몇년이고 무의식을 잠식하며.... 사람의 버릇, 습관까지 형성하는… 그런 괴담 쪽이…
공포로서는 더 뿌리 깊은 것일 텐데,
대회의 기준으론 별로 평가받지 못하는 거죠…”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괴담을 들은 적이 있다.
책상 안에 의자를 제대로 집어넣지 않고 잠자리에 들면,
한밤중에 귀신이 그 의자에 앉아 내 머리카락을 세기 시작한다고…
다 세면 죽는다나 뭐라나…
탈모인들을 혐오하는 귀신일까?
시시한 괴담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도 그 괴담의 영향을 받아,
자기 전엔 절대로 책상에서 의자를 꺼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 괴담이, <배틀! 호러 퀸>의 심사 기준으로 평가받았다면 어떨까.
무섭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심박을 상승시키지도 않았을 테고, 뭐 비명을 지를 정도도 아니다.
“그렇네. 생각해보니.”
“즉… 제 생각엔 괴담의 구성, 질보다도…
대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평가방식을 직접 노리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대회 최적화로...”
“하지만 방법이 있나? 그게 더 어려울 것 같은데?”
“하나, 생각나는 게 있어요…
대회에선 각자의 ‘능력’을 써도 무방한 룰이니...”
스이나는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마주 대고 싱긋 웃었다.
“저만 믿으세요…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