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이벤트 대회, 배틀 호러퀸(1) (92/109)



〈 92화 〉이벤트 대회, 배틀 호러퀸(1)

방송사 출연자 대기실.

이벤트 대회 <배틀! 호러퀸>에 출전하는 4명의 선수가 모여있다.

역시 정식 대회는 아닌 만큼 다들 꽤 가벼운 기분으로 나온 모양이다.
나 말곤 따로 코치가 따라오지도 않은 걸 보니.

“스이나~~~ 이열~~~ 웬일이래?”

신디 로퍼같은 고음의 째지는 목소리.
의외의 인물이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블랙 이글>의 라이카다.

“...라이카 언니…”
“만능스포츠 선수가 됐다는 말은 유우한테 들었는데, 진짜 내 눈으로 보니 무지 반갑네~~
그래, 잘됐다 야.”

라이카는 의외로 스이나와 꽤 친해 보였다.

유우와 듀오로 자주 활동하는 라이카인 만큼 유우의 동생인 스이나와도 안면을  모양이다.

노란 트윈테일을 한 작은 폭탄 같은 아가씨가 날 돌아봤다.
스이나에게 보여주던 반가워하는 표정이 싹 사라진다.


“...그리고 <홍삼>의 코치도 왔네.”
“예. 코치니까요.”
“...흠, 뭐 그럴 수 있지. 솔직히 코치까지 따라올 대회는 아니긴 한데,  스이나니까…
와서 챙겨주면 좋지.
그래, 오늘은 그렇게 신경 곤두세울 필요도 없긴 하겠다.”

그렇게 말하며 저 혼자 납득하고 경계심을 푸는 라이카.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잠시 라이카와 악수를 했다.

“조금 의외네요. 라이카 선수는 이런 대회에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요즘은 한가하거든. 대회 비수기니까.”
“흠…”
“내 입맛에 맞는 화끈한 대회들이 별루 없더라구.
그래서 뭐 심심풀이 삼아.”

라이카라면 복잡하게 머리 쓰기보다 직접 치고받는 폭력적인 대회를 선호할 테지.

‘번개의마법’을 쓰는 라이카는 겉보기에도 손대면 찌릿찌릿 전기가 오를 것처럼 온통 노랗고 뾰족한 패션 스타일을 지향했다.

옷이건, 악세사리건 조금 지나치게 날카로운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정도면 지하철에선 찔릴까 봐 라이카 옆에 아무도 못 앉을 것이다.

대기실엔 스이나와 라이카 말고도  명의 선수가 있었다.

느긋하게 녹차를 홀짝이는 차이나 드레스의 미인은, 어디 보자, 내 기억에 따르면 분명 <래피드 팬더즈>의 하루루.

감식안으로 확인해보니 종합 능력치 S의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선수다.

주특기는 ‘환상공간’.

헤에… 확실히 괴담과 잘 어울릴듯한 능력이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여유롭게 윙크를 한다. 귀여운 아기팬더같은 아가씨.


또 한 명은 클리어 파일에 정리된 서류들을 넘기며 뭔가 작업에 매진해있다.
슬쩍 보니 이번 대회 관련된 자료는 아닌  같고, 개인적인 업무 같다.

내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든다.

“아하, <홍삼&인삼 파워 스포츠>의 트래쉬 코치시죠?”



우리 팀 이름을 풀네임으로 불러주는 사람은 오랜만이다.

멋들어진 헌팅캡을 쓰고 조끼와 셔츠, 그리고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은 똘똘한 인상의 여자애.

TS버전의 셜록 홈즈같은 귀여우면서도 영특한 느낌의 이 선수는 분명 <로즈 엔젤스>의 시즈일 터.


“오팔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유능한 코치라고 하던데.
<머더러스 하우스>도 재밌게 봤어요.”
“아유, 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즈 선수시죠?”
“예.
<로즈 엔젤스>에서 스포츠 선수로 활동 중이고, 개인적으로 사설탐정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의뢰하실  있으면 뭐든 맡겨주세요.”


작은 명함을 내민다.
주로 뇌지컬이 필요한 대회에 전문적으로 참가하는 선수인가 보다.
명함 뒷면에는 각종 퍼즐, 심리전, 두뇌 게임류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력이 적혀있다.

“그러고 보니 <홍삼>팀의 앨리스 로잘레스 선수가 있던 걸로 아는데.”
“그렇습니다만. 앨리스 선수를 아시나요?”
“글쎄요…

앨리스 선수보다는, 뒤의 로잘레스 쪽에  관심이 있죠, 저는.

그 가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흥미가 있거든요.”
“로잘레스  말인가요.”
“뭐 아직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시즈는 애매하게 얘기를 마치고 빙긋 웃었다.

소설 속 탐정들이 으레 그렇듯 얘도  지가 말하고 싶은 부분까지만 말하고 그 뒷이야기는 때가  때까지 입을 꾹 닫는 스타일인가보다.


대기실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쪽 다리를 살짝 저는 품이 인상에 남는다.


“귀한 시간 내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배틀! 호러퀸>의 담당 PD인 브라이언이라고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방송국 관계자들, 그것도 직급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허영이나 거만함이 없어 꽤 호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브라이언은 한  한 명 찾아와 악수를 청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홍삼 스포츠>의 코치님이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조금 핼쑥한 그의 손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약지에 안 어울리는 파란색 보석 반지를 꼈다.
커플링, 아니면 결혼반지?

“저도 반갑습니다.”
“<홍삼 스포츠>, 제가 요즘에 정말 관심 갖고 눈여겨보고 있어요…
이렇게 함께 할 기회가 생기니 너무 좋네요.

저기, 라비 선수나 앨리스 선수는…?”
“다른 대회 참가 중이에요.”
“아하… 기회가 된다면  선수도 꼭 나중에 저희 측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조건만 맞으면 안될 거 없죠.”

브라이언은 비쩍 마른 손을 파리처럼 싹싹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우리  선수들을 꿰고 있어 조금 놀라웠다.

방송국 스튜디오에 <배틀! 호러퀸> 대회 준비도 끝났고, 참가자도 다 모였다.

우리는 PD의 안내를 받아 스튜디오로 향했다.


***

큼직한 스탠다드 카메라  각종 촬영 장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스튜디오.

스태프들이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최종 점검을 했다.


마치 시사 토론 프로그램처럼 원탁을 두고 네 명의 선수가 마주 봤다.

하지만 선수들의 행색은 자못 특이하다.
그녀들의 팔목엔 심박측정기, 머리엔 뇌파측정기가 부착되어 있다.

마이크엔 소음을 측정하는 작은 집음 장치.

신기술이 집약된 하이테크의 장치는 선수들이 흘리는 작은 신음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측정해 전광판에 띄울 터.

일반인들은 살면서 거의   없는 전문장비지만, 우리에겐 낯설지 않았다.

스이나는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예상대로네요.”
“그러게.”

이런 류의 전문적인 장비는 이어폰, 배터리처럼 다양한 브랜드에서 제작되지 않는다.

K방송사도 우리가 사전에 조사했던 몇 가지 제품 중 하나를 사용했다.

“응, 아무 문제 없을 것...같아요.”
“그래. 화이팅.”



스이나의 머리를 한번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나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브라이언 PD가 선수 교대하듯 대신 올라갔다.

“자, 장비 테스트 한 번 해보겠습니다.”


선수들이 PD를 바라봤다.

“다들 비명 한  질러보시겠어요?”
“...”

침묵.
다들 어색해하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아아아~♪”


<래피드 팬더즈>의 하루루만 태평하게 노래하듯 소리를 냈다.
무대  스크린에 ‘하루루: 62데시벨’이라고 표시되었다.


“테스트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실전처럼 생각하고 한 번만 도와주세요.

시스템에 어디 이상 없나 미리 확인해두려는 거니까요.”

PD가 다시 한번 부탁하자 이번엔 선수들도 억지로나마 그럴듯한 비명을 질러주었다.

“꺄아아~~~”
“끄아악!”
“꺅…”


비명에서도 선수의 개성이 드러난다.

스이나는 조금 기운 빠지는 스타일.
겁에 질렸다기보다 방구석에서 바퀴벌레를 봤을 때의 그것에 가깝다.

어쨌든 전부 85데시벨은 족히 넘는다.

하지만 기껏 괴담을 듣고 저렇게까지 비명을 지르리라곤 상상이 잘 안 가는데...

PD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 좋네요.
훌륭합니다.
이따가 본 무대에서도 멋진 모습 기대합니다.

그러면 순서는 대기실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라이카 선수, 하루루 선수, 스이나 선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즈 선수 이렇게 가겠습니다.

다들 궁금한 거 있으시면 지금 질문해주세요.”


별다른 질문이 없자 잠시 후 바로 <배틀! 호러 퀸> 대회가 시작되었다.

방송사답게 떠들썩한 진행.
코미디언 MC가 한껏 분위기를 살리고, 각자 소개와 가벼운 토크를 마친  비로소 본 게임에 들어간다.

첫 타자는 <블랙 이글>의 라이카.

그녀의 경쾌한 하이톤의 목소리로 으스스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또 색다른 맛이 있다.


***

<라이카의 괴담: 4호실의 미스터리>

나는 이야기 지어내는 재주가 없으니 실제로 있었던 일을 얘기할게.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전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실화야.


합숙훈련  있었던 일이야.

5년 전이었어.

그 때는 나도 신입이었거든.

멋모르는 풋내기였지.

물론 탁월한 재능이 넘쳤으니 훈련  단연 주목받는 존재였지만 말야.

거의 유우 다음으로… 아니, 유우만큼 기대받는 유망주였다고 할  있지.

그래도 자주 혼나는  별수 없었어.

원래 다 그래.

자기 혼자만 잘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지, 단체생활은.


그날도 그랬어.

동기 중에 몇 명이 훈련시간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  같이 잔뜩 기합을 받았어.

얻어맞기도 엄청 맞았지.

겨우 하루 일과가 끝나 숙소로 돌아왔어.

그래도 방에 들어가기 전까진 맘 놓고 쉴 수도 없어.

내가 지쳐서 축 늘어진  선배가 보기라도 했다간, 그 자리에서 싸대기가 번쩍! ...일테니까.


미리 짜인  배치도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방문의 명찰과 대조하며  방을 찾았어.


2호실이 로아나 선배.
3호실이 미카 선배.

그 다음이 나와 유우의 방.

그런데 이상도 하지.

순서대로면 4호실이 내 방이어야 하잖아?

그게 아닌 거야.

4호실은 떡 건너뛰고 5호실에 라이카/유우라고 명찰이 붙어있었어.


‘이방은 누가 쓰는 거지, 그러면?’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그땐 그런  깊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

너무 피곤해서,

그냥 뭐 숙소 측에서 실수로  칸 건너뛰어서 배정했나 보다 하고 넘겼어.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지.

유우는 6호실  침대, 나는 그 의문의 4호실쪽 침대.

얼른 안자면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시간이 더 줄어들잖아.

눈을 감고 빨리 꿈속으로 빠져들려는데,

어디서 자꾸 톡톡톡…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뭘 두드리는 소리가.

‘아씨, 신경 거슬리게 뭐야’ 하고 생각했지.


유우인가? 다리라도 떨고 있나?
하고 보니까 애는 그냥 잘 자고 있어.

유우 쪽 침대에선 그 이상한 톡톡거리는 소리가 애초에 들리지도 않고.

방 이곳저곳을 뒤지다 곧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았지.

벽에서 나는 소리였어.

그것도  내 머리맡에서.

 가까이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톡톡톡… 하고.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4호실에 누가 있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

자다 일어나면 얼마나 짜증 나.

나는 죽을상을 하고 옆방으로 갔어.

내가 어떻게 했을까?

발로 쾅! 문을 걷어찼을까?

야 이 썅년아! 시끄러웟! 하고?



...
아 미안, 방송이니까 욕하면 안 되지.
여기는 편집해줘. 그거 있잖아, 삐-소리 덮어씌우는 걸로.

...다시 얘기로 돌아가서, 지금이라면 그랬겠지.

근데 당시의 난 팀에 갓 입단한 막내잖아.

그랬다가 사실 4호실에 우리 선배 누가 있으면 어떡해.


조심조심 노크했어.

저기요… 계세요? 하고.


아무 반응이 없었어.

한 5분은 서 있었던 것 같아. 4호실 문앞에서.

남들 다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나 혼자 이게 뭐야.

나도 다시 방으로 돌아갔어.

열받게, 딱 누우니까 또 시작되는 거야.


톡톡톡….


톡톡톡톡톡….

유우를 깨웠어.

이거  들어보라고. 옆방에서 누가 계속 지랄 발광을 한다고.

이불 뒤집어쓰고 자라더군.

걔가 성격이 그래.
차가운 계집애 같으니라고.

여튼 그날 밤은 잠을 다 설쳤어.
부득부득 이를 갈고 짜증 내다가, 새벽이 다돼서야 겨우 잠들었지.


다음날 일어나니 컨디션은 완전 꽝이었어.

아, 새벽에 잠들었으니까 다음날이 아닌가?

 어때. 아무튼.

잠을 두세 시간밖에 못 잤으니까 그럴 만도 해.

바로 숙소 직원한테 갔지.
막 따졌어.

4호실 저거 뭐냐고.

그러니까 갑자기 눈이 확 커지면서, 표정이 굳데?


4호실이요? 이러면서 바보처럼 되묻는 거야.

안쓰는방이래.

왜  써요? 하고 물으니까,

이유는 설명 안 해줘.

그냥 몇 년 전부터 비워놓는 방이래.


여튼 숙박명부에도 아무도 없고, 문도 잠가놔서 누가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거야.


더이상  어쩌겠어.

방을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고.

잠도 못 자고 기분도 엉망이라서 그날은 천하의 내가 실수 연발이었지.

선배들한테 솜이불 먼지 털듯 맞았어.



그랬는데,

그날밤 잠자리에 드니까 또 그놈의 톡톡 소리가 들리는거야.

4호실엔 선배든 누구든 없다는  알았잖아.
누가 장난치려고 거기 들어가서 벽을 두드려대는 거지 뭐야.

열받아서 노크를 쾅쾅 했지.

나와보라고. 시끄럽게 뭐하는 짓이냐고.
안에 있는 거 다 안다고.

아무 반응도 없었어.

3호실에서 미카 선배가 대신 나왔어.

선배가 소리 질렀지.
이 씨발년아, 미쳤어? 니가  시끄러워, 하면서…


...
네? 뭐라고요?
아, 또 욕했구나.
아이구, 나도 모르게.
죄송해요. 주의할게요.



...
흠흠, 계속해서, 여튼 미카 선배가 나왔어.

선배는 내 머리가 바닥에 처박힐 정도로 쥐어박았지.


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코웃음을 쳤어.

그래도 같이 확인해주더군.

선배가 강제로 문을 따서, 사실 그냥 문고리를 부숴버린 거지만,
마침내 그 4호실에 들어가  거야.


아무도 없는데?


선배가 말했어.

말도  돼. 안에서 문을 잠갔는데 그러면 어디로 간 거야.
창문엔 안전 바가 설치되어있어서 드나들지도 못하고.

나는 도저히 못 믿어서 일일이 확인해봤어.

짐도 없고, 사람이 있던 흔적도 없어.

침대보를 만져봤지.
누가 누워있으면 체온으로 더워져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아.

정말 아무도 없던 거야.


쥐가 기어들어왔었나 보지.
어쨌든 문 수리비는 니가 내야 한다?


선배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가버렸어.

졸지에 돈까지 내게 생겼잖아.
가뜩이나 신참은 월급도 쥐꼬리만 한데 말야.


짜증나서 방으로 돌아가 다시 누웠지.


톡톡톡…

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잠은 완전히 달아났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가 들려오는 벽을 노려봤어.
그렇게 한 삼십 분 있었지.

그러다가 문득 희한한 생각이 들었어.

가만있어봐,
내 쪽에서도 두드리면 어떻게 될까?

난 톡,  하고 두 번 벽을 두드려봤어.


그런데…

톡, 톡

맞은편 벽에서도 똑같이 두 번 두드리는 거야.

우연인가?
다시 해봤지.

톡,톡,톡,톡.


이번엔 네 번.
마찬가지였어.
저쪽 벽에서도   똑같이 두드렸어.
내 메세지를 수신해 다시 돌려주듯이.

내가 두드리는 대로 따라 하고 있잖아.

이걸로 분명해졌지.
의지를 가진 무언가가  건너편에 있다는 게.

갑자기,
소름이  끼쳤어.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 정체를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 보고 있는 거야.

방금 전에 4호실에 들어갔을 땐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는데 대체 뭐냔 말야.


톡톡톡, 톡톡톡, 톡톡톡…

톡톡톡, 톡톡톡, 톡톡톡…


내가 얼마나 복잡하게 두드리든
마치 놀리는 것처럼 따라하고 있잖아.
돌림노래도 아니고.

잠시 가만있으니 벽 건너편에서도 똑같이 멈췄어.

어쩐지 머릿속에 이런 광경이 그려지더군.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벽에 가만히 귀를 대고,
내가 또 두드려주길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이 개자식.
사람 열받게 하네.

내가 어떻게 했을까?


손바닥으로 쾅!
벽을  번 쎄게 내리쳤지.


깜짝 놀랐을 거야. 건너편에 있는  뭐든 간에.


의외로 효과가 있었나 봐.
톡톡톡 소리가 멈췄어.

나는 만족해서 잠자리에 누웠지.

그리고 눈을 감았는데…





쿠쿵쿠쿵쿵쿵쾅
쿠쿵쿠쿵쿵쿵쿵쾅쾅
쿵쿠쿠쿠쿠쿵쿵쿵쿵쾅
쿵쿠쿠쿠쿵쿠쿵쾅


***

“꺄앗!!!”

누군가가 비명을 내질렀다.

깜짝 놀랐다.
갑자기 라이카가 쿵쾅거리며 소리를 질러 놀란 것도 있지만,

그보다 스튜디오 안 곳곳에 스파크가 터지며 어둠으로 휩싸인 게 더 충격적이었다.

벼락같은 섬광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불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며 어둠과 스튜디오의 광경이 번갈아 교차한다.

망막에 잔상을 남기며 명멸하는 일련의 영상이 뇌에 극심한 혼란만 가중시켰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 게 낫겠다.

스튜디오는 수많은 사람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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