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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지하대회, 턴파이트(1) (106/109)



〈 106화 〉지하대회, 턴파이트(1)

이 세계에  이후로 내가 선수로 직접 뛰긴 처음이다.
그것도 목숨을 내건 미친 경기에 나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든 게 미쳐돌아가고 있다.
난 어쩌면 신비로운 소녀를 따라 토끼 구멍에라도 기어 들어온 게 아닐까?
 땅 밑에선 내 상식을 벗어난 이상한 일들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지하 몇십미터 아래에서 벌어지는 금과 폭력의 축제,
아름답고도 무서운 아가씨와의 광란의 섹스,
그리고 이제 <턴 파이트>.

정신이 나갈  같다…



***


예상 외로 메이슨도 경기를 보러 왔다.
기분탓인지 그는 며칠새에 조금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사람을 깔보는 거만한 시선도, 안광을 뿜어내며 번들거리던 맹수의 눈빛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

입술을 핥으며, 몇십분 째 말을 꺼낼 듯 말 듯 하면서 메이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마음을 정리하기 힘든 모양이다.
협박을 해야 할지, 조언을 해야 할지, 응원, 저주, 분노…

그 모든 것을 종합할  마디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지도 모르고.

“...너희들따위 뒈져도 아무렇지 않아.”

씹어뱉듯 읊조린다.
결국 그가 선택한  문장은 허세였다.

“오빠, 난 이런데서 죽을 생각 없으니까 걱정마셔.”
“...”


스텔라는 아까부터 내 손을 꼭 잡고 있다.
메이슨에게 일부러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메이슨이 미간을 씰룩였다.


“그건 그렇고, 너희는… 무슨 사이냐?
내가 생각하는게 맞는거냐?”
“응. 파트너야.”
“...파트너?”
“섹스 파트너.”


스텔라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메이슨이 입을 쩍 벌리고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스...스텔라, 이런 놈하고…”
“오빠가 할 말이야?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들 갈아치우면서 노는 주제에.”
“그건 나니까… 여하튼 넌 안돼.”
“안되긴, 이미 트래쉬하고 할 거  했어.
오빠가 신경쓸 거 없어.”

평소엔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사실 속으론 동생을 애지중지하던 오빠라도 되는걸까.
눈 앞의 남자는 ‘지옥의 징수인’이 아니라 ‘처량한 오빠’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인정 못해…! 이 미친년아.
적어도, 그럴거면 결혼해.”
“뭐어!?”

내로남불의 화신인 메이슨이 갑자기 나와 스텔라에게 서로 미래를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이 세계에도 유교란  존재하는걸까.

“내 동생이 몇 번 즐기고 갈아치우면 그만인 장난감 따위로 치부당하는 건 절대 못참아.
임마, 트래쉬. 듣고 있어?
스텔라하고 결혼하라고. 지금 대답해. 알겠냐?”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하지만 약간 알 것도 같은 심리다.
자기는 방탕하게 놀아도 내 가족은 절대 안돼, 라는 그 마음.
정말이지 내로남불 그자체지만…


“뭐라는거야. 미쳤어 오빠?”


스텔라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까칠하게 쏘아붙였다.
잠시 둘이 옥신각신하는걸 지켜봤다.
이 중요한 승부를 앞두고 남매싸움이라니.

이정도면 됐겠지, 싶은 타이밍에서 내가 끼어들었다.

“결혼은 아직 확언드릴수 없습니다만.”
“응?”
“정식으로 교제하고 싶습니다. 스텔라 씨와.”


스텔라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의 볼에 은은하게 혈색이 돌았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스텔라가 중얼거렸다.

“너까지 왜이래…”
“뭐 어때요. 저도 스텔라 씨를 좋아하고, 스텔라 씨도 저를 좋아하는데, 안될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다.
스텔라는 발끝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 짜증나. 오빠때문에 이게 뭐야. 분위기 완전 맘에 안드네.
됐고, 가자. 이제 곧 경기 시작이니까.”

그녀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먼저 걸어갔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을 한 메이슨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트래쉬 너, 생각 잘해.”
“예…”
“이렇게 된 거 어쩔  없어…
맘에 안들지만 쟤가 이 놈 저 놈한테 농락당하는 것보단 너 한 놈 선에서 어떻게든 끝내는게 나으니까…

스텔라 책임져라.
절대로 나쁜 조건은 아닐테니.”
“...그게…”
“네 놈이 매부....가 되는건가…
별  없지.... 내 패밀리에 들이는 수밖에…
대신 계집질만은 안돼… 그건 내 눈에 흙이 들어는 한이 있어도 용납못해.“
“저, 사실…”


메이슨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날 돌아봤다.

“혹시 스텔라 말고 다른 사귀는 년들이 있는거냐?”
“...”
“씨팔, 비리비리하게 생겨가지고 여자들은 또 정신없이 꼬이는 놈이네.

상관없어.
지금 당장 전부 정리하라곤 말 안할테니.
나도 여자관계로 떳떳하진 않으니 그게 쉽지 않을거라는  알아...

어쨌든 결혼은 스텔라하고 하는 거야.
그것만 약속해. 어?”
“...알겠습니다.”


안하면 당장 이자리에서 죽일거같은 분위기라 어쩔 수 없었다.
별 문제는 없다.
 세계의 문화에 따르면 남자가 굳이 일부일처제를 고수할 필요도 없으니.
능력있으면 부인을 몇  들이든 자기 맘이다.

메이슨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씨이~팔…”

여전히 맘에 안드는지 연신 툴툴거린다.

곱게 자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귀한 여동생인데 내가 낼름 뺏어온 거 같아 살짝 미안하군.

***

메이, 1.42배.
스텔라 3.22배.

배당률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사전 예상은 메이의 우세가 명백하다.

역시 도박사들이 보기엔 <캐비어&시가렛>의 단장인, 자칭 지하 스포츠의 여왕 메이가 승률이 높다고 판단했나보다.

단 한 번의 실전 경험도 없는 나와 스텔라에게 돈을 걸긴 쉽지 않을테지.

‘모두 후회하게 될거다…’

하지만 도박판엔 절대라는 것도, 안전한 선택 따위도 없다.

이번 게임은 보통 승부가 아니다.
참가자도 VVIP, 돈을 거는 사람들도 VVIP다.

최근 몇 년 동안 지하 스포츠에서 벌어진 승부  손꼽힐만큼 큼직한 판이 벌어졌다.

오늘 밤이 지나면 상상을 초월할 만한 거금이 주인을 바꿔 이리저리 오갈 것이다.

“네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난 탓하지 않아.”

선수 대기실에 앉아있던 스텔라가 달관한 듯한 초연한 말투로 말했다.

“갑자기 왜요?”
“부담갖지 말라고.
오빠한테도 말해뒀어.
이번 경기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절대 널 해코지하지말고, 오히려 지켜달라고 말야.”
“...잘도 들어주겠네요.”

메이슨이 그런 부탁을 들어줄리가 없을텐데…
의외로 얘도 순진한 면이 있는걸까.


“처음엔 지 성질을 못이겨서  때려부수니 뭐니 하면서 난리를 피우더라.
그러다 내가 살짝 훌쩍이는  하니까 마음이 약해졌는지, 알았다고 했어.

참 별꼴이야.”
“오빠 마음이란 게  그런거죠, 뭐.”
“...”

경기를 앞두자 스텔라도 긴장하고 있는걸까?
그녀는 불길한 말을 연거푸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3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  하나였어.
이제까지 몰랐던 걸 알려줘서 고마워, 트래쉬.
처음엔 그렇게 생각안했지만…
지금보니 니가 상대라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
“진짜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왜 그러세요.”


사망플래그를 쉴새없이 뿌려대는 통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래서야 승리의 여신이 근처에 다가왔다가도 재수없다고 도망가버리겠다.

“아예 끝나고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한 잔 하자고도 하지 그래요.
그것까지 하면 완벽할 듯.”
“그런가. 아하하.”

이제서야 웃는다.
약간은 긴장이 풀린걸까. 다행이다.


“스텔라 씨, 걱정마세요.
저희가 무조건 이깁니다.
제 계산대로면요.”
“진짜?”
“그럼요. 이깁시다.
이기고 부자가 되는겁니다.”


뭐 어차피 이미 부자인 스텔라에겐 크게 와닿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스텔라는 가만히 웃고만 있다가, “근데 말야…”하며 말을 꺼냈다.

“아까 한  진심이야?”
“어떤거요?”
“왜, 정식으로 교제하고 싶다고… 뻥이지?”
“아닌데요.”
“에이, 나한텐 둘러댈 필요 없어. 그냥 한 말이잖아.”

좋은 건지 당황한 건지  수 없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는 스텔라.

“스텔라 씨하고 사귀고 싶어요.”
“뭐? 그럼 안돼지.
너한텐 라비도 있고, 앨리스도 있고, 스이나도 있고…
많기도 하다.
어쨌든…”
“어차피 지금도 한 명만 사귀는 것도 아닌데 스텔라 씨 한 명  더 들어온다고  문제있을까요.”

사람에 따라선 발칵 화를 내도 무방한 뻔뻔한 발언이지만, 스텔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히로인 4호.
그리고 예비 부인 1호.
스텔라라면, 더이상 바랄게 없지.
별 기대안했지만 순조롭게 내 하렘의 일원이 되어가고있는 스텔라였다.


“괜찮아요. 전 하루에 열 번씩 해도 끄떡없으니까요.”
“아니, 그말이 아니라…”


나는 가볍게 키스를 해 그녀의 입을 막았다.
3일간의 특훈으로 이제 너무나도 익숙해진 서로의 혀.

입술을 떼자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침 한줄기가 우리 입술 사이에 늘어졌다.

“못말리겠네…”

이런 상황에서도 성욕이 동해, 은근슬쩍 유니폼 상의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풍만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큰 유방엔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냥 만지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힐링된다.

스텔라는 철없는 어린애 다독이는 상냥한 얼굴로 그냥 내맘대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우리가 이제는 정말 서로 좋아하긴 좋아하나보다.


대기실 문 밖에서 스태프가 곧 경기가 시작된다고 알려줬다.

스텔라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내 어깨를 톡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군.

***


'저게 뭐야 씨발…?'


사람이 저렇게 클 수가 있나?

정말 나랑 같은 인간인가…? 싶은 괴물.

고개를 들고 한껏 올려다봐야 머리가 어디쯤 있는지 보이는 키 3m의 거대타워가 쿵쾅거리며 걸어왔다.

그냥 멀대같이 비쩍 크기만 한 게 아니라 목부터 발목까지 갑옷같은 울룩불룩한 근육으로 뒤덮여있기까지하다.

저놈이 메이의 ‘파이터’.

비현실적인 덩치의 몬스터라 오히려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너답다, 메이야.’

여우눈의 <캐비어&시가렛> 단장,메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귀에 거슬리는 어조로 조소했다.

“코치님, 그리고 <건파우더&시가렛>의 단장님.
잘 부탁드려요. 키킷.”

ADHD환자처럼 쉴새없이 손을 부르르 떨며 뭐가 그렇게 웃긴지,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킬킬거리는 메이.

얘도 상태가 영 안좋아보인다.
뭔가 약같은 걸 쳐먹은 모양이지?
일단 염두에 둬야겠다.

“그쪽의 브레인은?”
“당연히 저죠.”
“그래. 그렇겠지. 우리쪽은 나야.”
“키키킷… 코치님, 아무리 그래도 여자 엉덩이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건… 너무 쪽팔린 거 아닐까요? 시시시…”

목숨이 달린 승부인데 쪽팔리고 말고가 어딨겠냐.
그냥 내 심기를 긁으려는 수준낮은 도발.
코웃음만 나온다.

그러는 지는 뭔 연구소에서 막 탈출한 것 같은 인간 같지도 않은  데려왔으면서.

그리고 애초에 여자고 남자고를 떠나서 스텔라가 나보다 몇십배는 더 쎄다.

일일이 설명해줄 필요를 못느꼈으므로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너나 잘해.”
“크시시시… 코치님, 이거 어때요?”


그녀가 갑자기 즉석 제안을 했다.

“아무래도… 파이터들끼리만 싸우고 끝내기엔… 아쉽잖아요?
브레인… 숨지 말자고요. 응?”


얘라면 이런 제안을 할 것 같긴 했는데, 역시나군.

이 소시오패스 여자애는 어떻게든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 이건가보군.
하지만 나로서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내  백 몇십만 골드를 삥땅쳐서 도주한 이 여자애에게 이자까지 쳐서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니.

오히려 얘가 말을 안꺼냈으면 조금 아쉬웠을거다.


“어쩌자고?”
“간단해요… 파이터가 죽으면… 브레인이 바톤터치…
브레인 겸 파이터로 직접 나오는거죠…
좋죠? 좋죠?”
“메이야, 그렇게 죽고 싶어? 정신 못차렸구나.”
“키킷…”


VVIP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흥분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경기장.

구경하는 입장에선 좋아 죽겠구만.

오늘 경기에서 어느쪽이 될지 몰라도 반드시 두 명은 시체로 변한다.


“그래. 나야 환영이지.”


메이가 발작이라도 일으킬것처럼 배를 쥐고 경련하듯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저러다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싶을만큼.

그녀의 가느다란 여우눈에 오싹한 잔인함이 깃들었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시네요…
옛날에도…. 지금도... 목숨까지 바쳐가며…
키킷…. 제가 그쪽 단장님하고 같이 양지바른 곳에  묻어드릴게요…
그러면 시작합시다…”

우리의 목에 빈틈없이 전기충격 목걸이가 채워졌다.
링을 둘러싼 케이지엔 전류가 흘러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도 나갈 수 없다.

죽이지않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


드디어  눈앞에 내려오는 운명의 카드 세 장.

스텔라가 나를 돌아보며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스텔라, 무조건 이기게 해줄게.'

내 첫번째 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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