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프롤로그 2] (2/380)



〈 2화 〉[프롤로그 2]

펼쳐진 커튼을 통해 따스하면서도 동시에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왔다. 그리고 푹신한 침대의 감촉과 함께 따뜻한 이불의 감촉이 느껴져왔다.

짹짹!

이어서 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어...'

소년은 낯선 느낌을 받았다. 전쟁이 벌어진 이후 이렇게 고급스러운 침대와 이불의 감촉은 이미 그와는 거리가 먼 얘기가 되었으니깐.

"라스, 일어나. 라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깨우려는 목소리가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무척이나 젊은 여자였고, 너무나 차가운 음성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마치 천상의 목소리가 이럴까 싶을 정도로 고운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무척이나 귀에 익으면서도 동시에는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뎐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년은 눈을 떴고, 그가 눈을 뜬 순간 보이는 것은 마치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새하얀 얼굴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은발, 그리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다 나온 몸매와 매혹적인 분홍빛 입술을 지닌 차가운 분위기의 20 살의 여인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일라 누나?"

소년이 눈을 깜빡 거렸다. 그리고 카일라라고 불린 여인이 소년의 이마에 주먹을 대고는 살짝 툭- 치면서 물었다.

"평소와는 달리 늦게까지 잠을 자서 깨우러 왔어. 어제 대체 몇시까지 마법서를 읽은거야?"
"아, 미안...아무래도 5 서클을 넘어서 6 서클에 입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카일라는 소년의 말에 겉으로는 차가운 표정의 변동이 없었지만 속으로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고작 10 살의 나이에 6 서클의 경지를 엿보고 있다니? 사실 그가 10 살의 나이에 5 서클인 것만 해도 그야말로 전대미문인 대단한 경지였었다. 그런데 10 살에 6 서클이라니? 현재 대륙 최강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9 서클 마스터인 소년의 아버지인 아르테일 공작조차도 10 살 당시에는 4 서클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금방 자신의 목적을 기억해내었다.

"빨리 일어나. 밥 먹어야하니까."
"응! 알았어, 누나. 잠시 옷 갈아입고 갈테니까 먼저 내려가있어."
"응, 알았어."

그리고 카일라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을 찰랑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소년은 잠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굳은 표정이 되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이 방 안을 살펴보았다. 참으로 그립고 그리운 자신의 방의 모습이었다.

명품임을 알 수 있는 푹신한 침대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불, 바닥에 깔려있는 고급스러운 융단과 바닥 역시도 최고급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벽에는 당장 경매에 올리기만 해도 평민들 수천명을 1 년은 먹여살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값어치의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방 안도 무척이나 넓었다.

거기에 벽에 걸린 깨끗하고 흠집 하나 없는 거울과 더불어 이곳 방 안에 있는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도록 존재하는 전용 욕실은 욕조는 황금으로 되어있었고 심지어 손잡이 등도 전부 황금이었으며 더불어 방 안에는 온도를 항상 일정하게 조절해주는 마법진까지 존재했다. 거기에 항상 차가운 냉기를 지니고 있어 음식들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마법의 아티팩트, 냉장고 등 여러 마법 물품들 역시 곳곳에 존재하여 그야말로 왕족이나 쓸법한 화려한 방이었다.

"돌아온건가..."

잠시 그리움에 잠긴 눈이 되었던 소년은 이내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자 보인 것은 비록 어리지만 이목구비가 나이에 비해서는 제법 뚜렷하고 시원시원한 무척이나 준수하게 생긴 흑발의 머리카락에 흑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의 모습이었다.

"흐음~10 살 쯤인가...대략 40 년 이상 전의 과거로 온 셈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이름은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 미래의 인류 최초의 10 서클 대마법사로 마법황제(魔法皇帝)라는 별명을 지녔던 이종족 전쟁의 영웅이었다.

'아니, 영웅이라 할 수 없지.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머저리가 맞는 표현일테니까.'

카이라스는 거울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미래의 자신은 10 서클 마스터라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구해내지 못했다. 소중한 가족들도, 연인들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수하들도 모조리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으로 생존한 단 한 명의 동료 뿐이었다. 그리고 이종족들을 쓰러뜨리더라도 미래로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그는 성공 가능성이 완벽하지 못한 마지막 수법을 사용했다.

시공회귀.

그가 이 방법을 발견한 것은 어느 한 고대의 유적지에서였다.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다는 시공회귀의 마법의 수식은 10 서클 마스터였던 그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 해석을 틈틈히 하여 겨우 해석에 성공했을 정도로 복잡했다.

그리고 그것을 해독해낸 그는 이종족 전쟁의 결과가 인류의 패망으로 확정이 나버린 순간 마지막 살아남은 그의 동료인 '그녀'와 함께 시공회귀를 결정하였다. 결과는 당연히 보란듯이 성공했다. 이렇게 10 살 시절의 그로 돌아왔으니깐.

"정확한 날짜가...흠...대륙력 1790년인가? 딱 10 살이네."

5 서클의 날짜 확인 마법을 통해서 날짜를 파악한 카이라스는 이 시대에는 모두가 살아있음을 깨닫고는 잠시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플로리아는 그러고보니 지금 갓난아기겠네.'

날짜 확인 마법을 통해 체크를 해본 결과, 지금이 대륙력 1790년 6월 13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790년 5월 19일 생인 플로리데는 아직 태어난지 1 달도 되지 못한 갓난아기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카일라 누나는 20 살, 유리아나는 4 살, 에이미는 5 살, 레이나는 7 살이고...지그문트 그 녀석은 지금 9 살, 그리고 제이크 녀석은 5 살이겠군. 실비아는 아직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말이야.'

실비아는 대륙력 1797 년 생이었으니 앞으로 7 년 후에야 태어날 것이었다.

'미래의 적들은 반면 지금은 다들 살아있지.'

이종족들은 성장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빠른 오크나 인간과 같은 성장 속도를 지녔으면서도 수명이 긴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정도를 제외하고는 성장속도가 느린대신 수명이 무척이나 길었고 지금 이 시대에도 그들은 대부분 3, 40 년 후의 미래 당시 때보다는 약하더라도 여전히 무시못할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었다.

엘프 퀸, 하이엘프이며 최강의 대정령사 세레시아.

오크 로드, 우르크하이(하이오크)이며 최강의 오크 대전사 아조그.

뱀파이어 퀸, 순혈의 최강의 암살자 디아나 블라디미르.

늑대인간들의 대(大)칸, 최강의 수인족 투사 카루스.

고블린 로드, 최강의 대주술사 그리든.

트롤 로드, 올로그하이(하이트롤)이며 트롤족 최강의 대마법사 트루이.

드워프 킹, 최고의 실력을 지닌 마도구 제작자이며 최강의 드워프 대전사 소루스.

이들 7 명이 미래에서 인간들에게 악명을 떨칠 이종족들의 수장들이었고 각 종족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훗날 검성으로 추앙받는 카일라는 엘프 퀸 세레시아와의 대결에서 그녀의 수하들의 비겁한 암습으로 인해 세레시아의 손에 살해당했다.

훗날 검의 여제로 추앙받는 유리아나는 뱀파이어 공작 4 명을 동시에 상대하여 패퇴시킨 후 지쳐있는 상태에서 뱀파이어 퀸 디아나와의 대결에 들어갔다가 장기전으로 밀고 나가는 디아나에 의해 결국은 체력 부족으로 인하여 그녀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훗날 물의 대주술사로 칭송받는 에이미는 고블린의 최강의 주술사 그리든과 주술 대결 도중 뒤를 쳐온 소루스의 습격을 받아 둘을 감당하지 못하고는 살해당했다.

훗날 카르시스 제국의 최후의 황족으로 여자로서 황제에 오른 대정령사 플로리아는 트루이의 함정에 빠져 마법진으로 인해 정령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에서 에이션트급 레드 드래곤, 카르베너스와 트루이의 합공에 살해당했다.

훗날 검의 여왕이라 추앙받던 레이나는 오크 대전사 아조그와의 대결에서 둘 다 서로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그 당시 때 그는 그녀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던 것은 고작해야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을 견제하며 그녀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 한계였었다. 반대로 그의 움직임 역시 에라시안에 의해 막혀있었고 그는 그녀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었지만 그녀와 그녀를 돕던 다른 드래곤들에 의해 마법들은 막혀버렸고 결국 그녀들은 대부분 그의 눈 앞에서 살해당했었다.

그리고 그 후 그의 동료들인 검황 지그문트는 늑대인간 대칸, 카루스와의 대결에서 동귀어진(同歸於盡)하였고 제이크의 경우 자신을 다르는 무인들과 함께 드워프들의 군세와 맞붙었고 그 전투에서 그는 드워프 킹, 소루스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하였지만 그 후 들이닥친 에이션트급 블루 드래곤, 크라드타트와 접전 끝에 크라트타트의 드래곤 하트를 깨부숴 그를 죽이는데 성공했지만 그 후 지쳐쓰러진 그는 쓰러진 그를 향한 드워프들의 공격에 의해 살해되었다.

으득-

거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다시는 그런 일 따위는 생기게 하지 않을 거다. 반드시.'

그리고 그는 마지막까지 생존한 최후의 동료인 그녀를 떠올리며 상념에 빠졌다.

'내가 10 살이니 그녀는 13 살 쯤이겠지?'

회귀를 하기 전에야 10 서클 마스터로서 드래곤 로드와 필적, 혹은 그 이상 가는 힘을 지녔던 그였지만 지금 현재의 그는 고작해야 5 서클 마법사인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회귀전에야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고작해야 은거해있던 여성 소드 마스터인 유리엘의 제자에 불과인 소녀에 불과했다.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래에 대해 얘기를 했다간 바로 미친 놈으로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지금의 그는 시공회귀 이전의 인간들의 최강자가 아닌 그저 재능이 뛰어난 소년 마법사에 불과했다. 아마 큰일이 터지기 이전까지는 그의 말은 그의 부모들조차도 믿지 않을 것이었다.

'일단 힘부터 길러야겠지.'

회귀전의 그가 가진 힘들을 되찾는 것을 우선해야했다. 회귀전의 10 서클에 달하는 힘을 되찾고 또 그 외에 새로운 힘을 얻어야만 했다. 그리고 힘을 얻고난 후에 그는 이종족들이 일으키려는 음모들을 미리 알고 있으니 그들의 음모를 막아야만 했다. 교활한 그들은 바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전쟁을 일으키기 전부터 인간들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을 해왔고 그들의 음모가 무엇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그는 강한 동료들을 모아서 그들을 저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세상을 위해 굳은 다짐을 하는 그였지만...

꼬르륵!

지금은 아침 식사의 시간, 한창 먹어야할 소년의 나이인 그의 배는 정직했다.

"민망하네..."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카이라스는 민망함을 느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스스로에게 클린 마법을 걸어서 세수를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 후 잠옷 차림으로 바로 밑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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