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아르테일 공작가] 2
'한창 혈기왕성하실텐데 옆에 자식을 두는 것 보다 예쁜 마누라를 두는게 더 좋으시겠지.'
제국 최고의 가문이라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가주인 아르테일 공작의 아내는 보통 외모로 될법한 자리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의 어머니인 엘리나의 미모는 경국지색이라 불러 마땅한 미모였으며 아직도 사교계에서 그녀의 놀라운 미모는 연신 화제가 끊이지 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미(美)의 종족인 엘프들 중에서도 절세미녀 축에 속할 미녀 엘프가 아니라면 비교할 수준의 상대를 찾기 어렵다는 미모에 군살 하나 없는 농익은 풍만한 몸매와 성숙한 매력을 물씬 풍기는 그녀는 30 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천재적인 검술로 인해 더더욱 유명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그녀를 아내로 삼은 아르테일 공작은 황제조차도 부러워하는 대상이었다.
황금빛의 찬란한 금발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검술을 지니고 있어 호전적일 것이라는 성격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영락없는 현모양처였다. 물론 마냥 순종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바람기가 심한 아버지를 항상 웃으며 맞아주는 것만 해도 카이라스가 볼 때 어머니인 엘리나는 상당한 대인배인 셈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옆에 앉은 카이라스는 그녀에게서 풍겨져오는 강렬한 향기를 바로 맡을 수 있었는데 이 향기도 반가웠다. 미래에서는 그녀를 보지 못한지는 10 년이 훌쩍 넘었으니깐.
"라스, 잠옷은 또 안 갈아입었네?"
"아, 네. 귀찮아서요."
엘리나의 물음에 카이라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약간은 어색함을 느꼈다. 10 살이던 시절의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잠옷을 갈아입는 것을 귀찮아해서 잠옷을 입은채로 1 층으로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고는 했었다. 물론 15 살이 되었을 쯤부터는 항상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지만 지금은 10 살인 때, 갈아입지 않는 편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질 때였다.
"뭐, 그 나이 때는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이지 않아?"
그리고 루스칼리스는 은근슬쩍 엘리나의 손등에 손을 얹었는데 어릴적에는 그냥 둘이 사랑하는구나 했던 카이라스는 비록 몸은 다시 어려졌지만 지식과 정신은 그대로였기에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다가 은근슬쩍 엘리나의 늘씬한 다리 위로 올라갔다.
"어멋, 호호."
엘리나는 아들이 자신의 무릎 위로 올라오자 웃음을 지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꽃무늬가 그려진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엘리나의 치마 부분은 상당히 짧아서 그녀의 무릎 위로 한참 올라오는 상태였기에 카이라스는 엘리나의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느껴졌고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강렬한 농도를 지닌 완숙한 여인의 살내음도 맡았지만 성적인 욕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 어머니인 그녀에게 성욕을 느낄 일도 없었다. 그녀의 향기가 아무리 남자를 유혹하는듯한 강렬한 향기라 해도 카이라스에게 어머니의 향기로 인식이 되어있는 이상 카이라스에게 그녀의 향기는 그냥 포근한 어머니의 향기일 뿐 여인의 향기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육체가 어려져서 인가? 후후, 뭐...기분이 괜찮네.'
그렇게 속으로 웃음을 지은 카이라스는 바로 옆에 복숭아를 먹다가 벌레라도 씹은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버지 루스칼리스를 보며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하긴 예쁜 아내가 아들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예뻐하며 자신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아들에게 질투하는 저 모습도 오랜만이야.'
아들인 자신에게 마누라를 뺴앗겼다며 한탄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들을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더니, 다시 보게 될 줄은 얼마 전의 그도 상상도 못했었다. 옛날에는 나이 먹어서 뭐하는 짓이냐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너무나 반가웠다. 예전에는 재수없다고 생각한 황태자를 만나더라도 끌어안고 반가워해줄 생각도 '약간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루스칼리스와 엘리나가 먹을 아침들이 담겨진 접시 외에도 새로운 접시가 하나 더 놓여졌다. 일하는 하녀가 자신이 온 것을 보고 놓고 간 것이었다.
"자, 라스. 자 해봐."
엘리나가 포크로 베이컨을 하나 찌르고는 맑은 미성의 목소리로 카이라스에게 말을 걸며 베이컨을 그의 입 앞에 갖다대었다.
'으음, 묘하네...'
엘프들의 미모를 가뿐히 뛰어넘는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가 음식을 먹여주는 것은 남자들에게는 환상적인 로망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첫번째 문제는 그게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이었고, 두번째 문제는 자신이 지금 상황을 마치 주인이 먹을 것을 줘서 받아먹는 강아지와 같은 기분이라고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10 살의 소년이었으니 받아먹는 것을 거부해도 어린아이의 치기어린 투정이나 튕기는 행동으로 보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군.'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카이라스는 순순히 현실에 타협하여 그녀가 주는 베이컨을 입을 벌리고는 받아먹었다. 그리고 오물오물 거리며 먹는 그의 모습에 엘리나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맑게 웃음을 터트렸는데 확실히 맑은 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곳곳에서 그녀를 보는 시선들에 경외감이 가득해보였다. 그렇지만 그녀를 보는 가문 내의 시선은 욕망이 아닌 거의 신앙에 가까운 수준의 경외감이었는데 가문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가문의 어린 사람들에게는 자상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는 이미 가문 내에서는 여신과 다름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토록 착하신 어머니가 그런 꼴을 당해야했다니...'
그렇지만 이런 착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나니 카이라스는 가슴이 더욱 쓰라린 느낌도 받았다. 시공회귀 이전,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그녀는 당연하게 전쟁에 참여를 했고 거기서 많은 활약을 했지만 그녀의 끝은 참으로 비참했다. 에이션트급 드래곤을 전쟁에서 셋이나 쓰러트린 그녀는 이종족들 사이에서도 위험인물로 지정되었고 무려 아홉마리에 달하는 드래곤들이 일제히 그녀를 협공하여 그녀를 생포했고 포로로 잡힌 그녀는 체내의 마나 로드들이 모두 부서진채로 엘프들에게 하사되었고 수많은 남자 엘프들에게 능욕을 당한 그녀는 급기야 엘프 여인들도 따라오지 못할 아름다운 외모 탓에 엘프 족의 보물로 지정되어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결조차 하지 못하도록 관리를 받고 있어 엘프들에게 인간을 조롱하는 도구로 쓰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미 아버지 루스칼리스는 전사한 상황이었기에 아들인 카이라스 본인과 그녀의 조카인 카일라의 분노가 엘프 족에게로 향했고, 카이라스가 드래곤 로드를 막아주는 사이 카일라는 엘리나를 구출하기 위해 엘프 족을 특히나 공격하였지만 엘프 퀸 세레시아와의 대결 도중 그녀의 부하들이 하는 암습이라는 비겁한 수법에 걸려 오히려 세레시아의 손에 살해당했다.
그 후 엘리나는 전쟁이 인간의 패배로 끝나갈 무렵에는 카이라스 본인이 가까스로 구출해내는데 성공했지만 이미 몇 년에 걸친 능욕으로 인해 몸도 망가지고, 남편은 물론이고 친딸 같이 여기던 조카인 카일라까지도 자신을 구하려다가 죽음으로서 마음도 모두 망가져버린 엘리나는 말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는 마나로드의 치료가 끝나자마자 바로 홀로 세레시아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서는 자신의 마나를 폭발시켜 자결하며 엘프 퀸 세레시아를 포함하여 수많은 엘프들을 자신의 죽음에 끌어들이는것으로 복수를 했고 그는 그의 마지막 가족이 죽는 그 모습을 말리지도 못했었다.
그런 그녀의 죽음이 있었기에 카이라스는 시공회귀를 결심할 수 있었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가족까지도 사라져버렸으니깐.
'지나간 시간들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라지만, 나는 시간을 되돌렸어...내가 그 미래를 막을거야.'
그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연분홍빛 입술에 그려진 저 미소를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카일라 누나도.'
엘리나의 무릎 위에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외가쪽 친척 누나인 카일라를 바라보는 카이라스의 눈이 살짝 아련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카일라 누나와 카이우스 삼촌의 옆에서 이제는 방을 크림스프에 찍어먹고 있는 유리아나는 전생에 그와 육체적 관계까지 맺었던 연인이기도 했다.
유리아나의 경우야 아직 고작 4 살이었기에 시공회귀 이전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카일라는 20 살이었기에 시공회귀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충분히 떠오르게 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 때의 카일라는 지금보다 몸매도 더욱 풍만하며 성숙한 아름다움을 더욱 농염하고 진하게 풍기고 있었지만 저 얼음 같이 차가우면서도 시크해보이는 아름다움은 이 시대의 그녀도, 미래의 그녀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남자의 접근은 일체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차갑고 굳건해보이지만 그렇기에 그녀가 가끔씩 보이는 미소는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졌고, 또한 사랑을 하기 시작한 후에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귀여운 표정을 지을때는 평소와의 갭차이가 너무나 커 더더욱 귀엽게 보였었다. 그녀의 남자로서 흐뭇하달까?
"라스."
그 때 카이라스의 상념을 깨는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카일라의 목소리였다.
"응, 왜?"
카이라스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듯 대답했다. 방금전까지 그녀의 뜨거운 육체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안다면 지금의 그녀는 10 살 밖에 안된 꼬맹이가 발랑 까졌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으니깐.
"그 눈빛, 뭔가 기분 나빠. 무슨 생각하고 있던거야?"
카일라의 추궁에 카이라스는 등에서 살짝 식은땀이 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듯 고개를 살짝 뒤로, 그리고 그 후 위로 올려 엘리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엄마, 누나 오늘 그 날이에요?"
"그 날이라니?"
엘리나가 카이라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듯 되묻자 카이라스는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담긴 표정을 지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마냥 의아함과 살짝 호기심이 담긴 말투로 물었다.
"그 날 모르세요? 아빠가 말씀하시길 그 날이면 여자들이 예민해진다고 하셨는데..."
"......"
엘리나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찌릿한 시선이 루스칼리스에게 향했고 루스칼리스는 항의도 하지 못한채로 식은땀만을 흘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카이라스가 근처에 있을때도 자주 "오늘이 그 날인가. 많이 예민하네." 라는 말을 자주 중얼거렸었고 어린 시절의 카이라스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의 그는 살아온 세월만 따지자면 루스칼리스보다 연상이었다. 당연히 그 말들을 이해하고 있었고 천연덕스럽게 이 일을 들먹이는 것으로 카일라의 추궁을 가볍게 회피한 것이었다.
"......"
카일라의 차가운 표정은 겉으로 볼때 미동이 없었지만 시공회귀 이전에는 그녀와 수십년간 함께 살아온 카이라스는 그녀의 사소한 취향은 물론이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그녀가 좋아하는 색깔, 그녀의 민감한 부분들까지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기에 지금 그녀가 창피함 때문에 억지로 애써서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는 것임을 알아보았다.
'후후후, 카일라 누나는 역시 이 때도 귀엽다니까.'
루스칼리스의 유전자는 훌륭하게 아들 카이라스에게 유전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