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엘리나와 카일라]
마법사 가문인 아르테일 공작가에 존재하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두 명이었다.
엘리나 폰 카르세드 아르테일.
카이우스 폰 아르테일.
그리고 이 중에서 엘리나 폰 카르세드 아르테일은 결혼 전 제국의 동부에서 한 때 무가(武家)로서 이름을 날렸던 카르세드 백작가의 영애였다. 그렇지만 카르세드 백작가는 100 년전 일어난 내전을 시작으로 하여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영지도 남작가 수준 밖에 되지 못하게 전락한 그들은 작위마저 남작가로 강등되어버렸었고 엘리나가 태어난 것은 카르세드 백작가, 아니 남작가가 최악으로 몰렸을 때였다.
가문의 몰락을 염려하던 엘리나의 아버지인 카르세드 남작은 아들 알프레드와 딸 엘리나가 동시에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것에 크게 기뻐했고 그의 아들과 딸은 그의 기대를 넘어서서 놀랍게도 둘 다 10대 후반과 10대 중반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알프레드의 나이가 스물셋, 엘리나의 나이가 열여덟이던 때 알프레드는 근방의 작은 남작가의 영애를 데려와 아내로 맞이했는데 근방 하급귀족가의 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미모를 지닌 그의 아내인 세르리안느은 은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미녀였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거기에 가난한 영지 사정에 어렵게나마 하급 신관이라도 초빙하여 그녀를 치유하려 했음에도 몸이 약한 것은 신성력으로도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다음해에 카일라를 낳고는 죽어버렸다.
결혼하지 1 년을 갓 넘기자마자 닥쳐온 사랑하는 그녀의 죽음에 알프레드는 실의에 빠져 멍하니 있었고 그 탓에 방치되어버린 카일라를 돌본 것은 주로 엘리나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18 살의 처녀에 불과했고 가정일을 배우기보다는 검술에 더욱 열중하던 성격이었기에 유모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돌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일라는 서서히 자라갔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그녀는 자신을 볼때마다 인상을 찡그리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 알프레드보다는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고모 엘리나를 어릴적부터 따라왔었다.
그렇지만 카일라의 일곱번째 생일이 돌아온 날, 알프레드는 죽은 세르리안느를 떠올리며 그 날도 평소처럼 술을 마셔댔고 술에 취한 그는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바로 어린 카일라를 향해 네 엄마가 죽은 것은 다 네 탓이라는 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술에 취한 와중이었기에 세르리안느의 은발의 머리카락과 푸른색의 눈동자를 물려받은 카일라에게서 세르리안느의 모습이 겹쳐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한 일은 모르고 있던 어린 카일라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아 울음을 터트리다가 급기야 열이 펄펄 나면서 쓰러졌고 그 사실을 안 엘리나는 분노를 하여 알프레드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세드리안느가 죽은 이후 그녀의 죽음을 잊기 위해 미친듯이 검술만 연마해온 알프레드는 서른한살에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올라있었지만 자신의 오빠 이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엘리나는 이미 1 년전, 그녀가 스물다섯의 나이이던 때에 소드 마스터 상급에 올라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검술 자체를 즐기고 있었기에 괴로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검술을 연습해온 알프레드는 그녀보다 아래였고 거기다가 술에까지 취한 그는 취기도 마나로 날려버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엘리나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다가 쓰러졌고 그것을 본 카르세드 남작은 자신의 오빠를 심각하게 두들겨팬 엘리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
카르세드 남작은 딸인 엘리나보다 아들인 알프레드를 더욱 편애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략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식들이 원하는 결혼을 허락하게 해줄만큼 자식들에 대해서는 사랑을 보이고 있어 그것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문제였기에 다른 일로 호통을 친 것이었으면 엘리나 역시 그냥 가만히 혼나고 넘어갔을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일에 카일라가 관계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카르세드 남작은 자신의 손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바로 자신의 며느리를 죽게 해 자신의 아들을 상심하게 한 원인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들과 딸을 사랑하는 그였지만 그는 아들을 상심하게 하고 며느리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손녀를 사랑하지는 않고 있었다. 당장 알프레드의 우울증만 아니었다면 카르세드 남작가는 장래가 기대되는 상급의 소드 마스터를 둘이나 보유하고 있으니, 백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자작가로 복원될 수도 있었을테니, 거기다가 사랑하는 아들이 당당하게 단번에 천재로서 제국에 명성을 떨칠 수 없게 되었으니 그가 카일라에게 느끼는 원망감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엘리나가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주목을 받았다간 유일한 후계자인 알프레드의 우울증까지 주목을 받게 될까봐 카르세드 남작은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엘리나에게서 알프레드가 카일라에게 했던 말들을 듣고도 "틀린 말도 아니구만."이라는 대답을 하여 엘리나를 분노하게 하였고 급기야 그녀는 카일라의 손을 잡고는 가출을 해버렸다.
소드 마스터 상급의 무위를 지니고 있는 그녀는 어디 가서든 카일라를 데리고 먹고 살수 있다고 생각은 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하는 일은 기껏해야 몬스터를 사냥해 그 부산물을 파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일곱살이던 카일라는 엘리나의 옆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검술을 배웠는데 비록 어린나이라고는 하지만 남달리 총명한 그녀는 엘리나가 자신 때문에 집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검술에 필사적이 되었다.
어차피 엘리나가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온 카일라는 어린 나이에부터 몬스터의 피를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그렇게 가문을 떠나서 밖에서 생활한지 어언 ` 년이 되었을때 카일라는 8 살의 소녀가 되었고, 엘리나는 27 살의 노처녀, 아니 더더욱 성숙한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여인이 됨과 동시에 그녀는 소드 마스터 최상급의 경지에 도달했다.
오히려 가문 내에서 단련만 하는 것보다 밖으로 나와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27 살에 소드 마스터 최상급의 경지라는 것은 참으로 전례가 드문 경지였고 만약 그녀의 경지와 미모가 알려졌다간 제국 내의 유력 가문들에서도 혼담이 올 것이었지만 엘리나는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불쌍한 조카를 사랑해줄 사람은 자신 뿐이었으니깐.
그렇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된 카일라는 날이 갈수록 차가운 성품으로 변모해갔고 엘리나로서는 조카의 그러한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게만 보였다. 그리고 그 때 그녀는 그를 만났다.
루스칼리스 폰 아르테일.
제국 최고의 가문이라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이지만 그 신분을 비밀로 하고 여행을 다니고 있는 30 살의 청년으로 30 살까지는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30 살이 넘는 31 살이 되는 해에는 돌아와야한다는 가문의 율법 때문에 마지막 여행을 즐기고 있던 그는 상당히 호색가인 편이라 엘리나의 미모를 보고 바로 접근을 했다. 처음에 그녀의 옆에 서있는 카일라를 보고 그녀의 딸인가하고 실망감도 느꼈는데 그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는 결코 건들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카일라가 엘리나를 향해 한 말인 '고모'라는 단어에 바로 화색이 되어 엘리나에게 접근해 천천히 작업을 걸었다.
그리고 검술만 익혀서 연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엘리나가 루스칼리스에게 넘어오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28 살의 나이에 이미 8 서클을 마스터하여 9 서클의 입문을 노리고 있는 천재였던 루스칼리스는 가문이 좋고 천재인것만이 아니라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청년이었지만 엘리나는 그저 분위기와 그의 마법의 경지를 통해 그가 가문이 좋다는 것만 알았지 그가 무슨 가문 출신인지 알지 못했다.
귀족들의 사교계에 나가지 않고 검술만 익힌 엘리나는 귀족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만큼이나 사교계에서 유명한 루스칼리스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르시스 제국의 귀족 가문이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그녀에 대해 더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루스칼리스는 엘리나와 함께 카일라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던 도중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는 분위기 좋은 날을 잡아서 그녀에게 반지를 건네면서 청혼까지 하기에 이르었다.
"엘리나,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부디 나와 평생 함께 해주지 않겠어?"
여태까지 다른 여자들이라면 돈을 넘겨주고 헤어졌겠지만 검술은 가문의 돌연변이라 불리는 그의 동생인 카이우스만큼이나 뛰어나지만 귀족 치고는 상당히 순진한 엘리나는 그의 마음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로잡았고 그렇게 그녀가 청혼을 받아들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카르시스 제국 최고의 가문의 며느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엘리나가 청혼을 받아들인 순간 루스칼리스는 바로 자신의 정체에 대해 고백했다.
"실은 말이야. 나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이며 후계자야. 내 풀네임은 루스칼리스 폰 아르테일."
"다, 당신이 아르테일 공작가의 후계자라고요?"
아무리 사교계의 화제들에 대해서는 10 년 이내는 커녕 10 년 이전의 사실도 대부분 모르는 엘리나였지만 적어도 아르테일 공작가만큼은 알고 있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이름은 대륙의 사람이라면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청혼을 하고, 자신이 청혼을 받아들인 사람이 아르테일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말에 놀라하는 그녀는 그 날 밤 루스칼리스에 의해 침대로 끌려갔고 거기에서 어떻게 잃었는지도 모르게 처녀를 잃으며 첫경험을 맛보았다.
그리고 뜨거운 밤을 보낸 후 사이가 둘의 사이는 더욱 깊어졌고, 카일라를 가문에서 가족처럼 키워주겠다는 루스칼리스의 제의에 따라 엘리나는 루스칼리스와 함께 카일라를 데리고 아르테일 공작가로 향했고 그곳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 그녀는 결혼식을 올린지 몇달이 되지 않아 루스칼리스의 아이를 임신을 했고 엘리나가 29 살, 카일라가 10살, 그리고 루스칼리스가 32 살이 되는 해에 그녀는 루스칼리스의 아들 카이라스를 낳았다.
카이라스는 이름은 당연하게도 그녀가 친딸처럼 사랑하고 있는 조카인 카일라의 이름을 약간 변형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르테일 공작가의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까지 낳은 엘리나는 확실하게 공작가의 안주인으로 자리를 잡았고 카일라 역시 공작부인의 조카라는 신분이었기에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특별히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엘리나는 소드 마스터 최상급인 카이우스와의 대결 및 8 서클을 넘어서 9 서클에 입문한 남편 루스칼리스와의 대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32 살의 나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하기에 이르었다.
32 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는 당대로 치자면 최연소라 부를만한 경지였고 또 엘리나의 신분은 아르테일 공작가의 안주인이었기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와 더불어 그녀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그리고 카일라 역시 10 살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에 도달한 후 그녀가 13 살이던 때에 엘리나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르자 엘리나는 그 깨달음들을 정리한 후 카일라를 집중적으로 가르쳐주기 시작했고 카일라는 엘리나의 가르침을 빠르게 소화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