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데이트?] 2
"네?"
카이라스는 카일라가 자신을 부르자 검은 색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고, 카일라의 푸른 눈동자와 정확히 자신보다 10 살이나 어린 소년의 검은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무슨 걱정거리 있어?"
"걱정거리라니?"
카이라스가 아무런 흔들림 없이 무슨 소리냐며 되묻자 카일라가 고개를 좌우로 한번씩 저으면서 아름다운 은발을 부드럽게 살짝 찰랑거리며 말했다.
"아니, 내가 잘못 느꼈나봐."
'역시 이 때도 감은 좋구나.'
카이라스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느덧 마법진에서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고, 주방장은 지금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지 종업원이 대신 와 보석만큼 비싸지는 않더라도 준보석이라 불릴 정도의 값을 지닌 유리잔 안에 차가운 얼음이 동동 떠있는 물을 가지고 왔고 공손하게 카일라와 카이라스의 앞에 차가운 물이 담겨진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유리잔 역시 평범한 유리잔이 아니었고 카이라스는 이전과는 달리 높아진 안목으로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유리잔에 새겨져있는 마법진들을 모조리 알아보았다.
'돈을 꽤나 썼군. 공간 확장 마법에 온도 보존 마법을 유리잔에 걸다니. 거기에 정화 마법과 무게 감량 마법까지 걸려져있어서 무게도 가벼우면서도 물 맛도 좋을 수 밖에 없겠어.'
와인잔으로도 써도 될법한 이 유리잔은 놀랍게도 공간 확장 마법을 통해 잔 안에 담가진 물의 양을 대폭 늘려 아마 15 잔 이상의 물은 충분히 담겨져있을 것이었다. 거기에 무게 역시 마법을 통해서 일반 잔에 물이 담가진 정도의 무게만을 느껴지게 하고 또 얼음들까지 둥둥 떠있으며 온도 보존 마법으로 인해 이 시원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정화 마법이 걸려있으니 너무나도 맑고 깨끗했다.
이 마법 자체들은 모두 카이라스가 볼때는 새기는 것도 유지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은 저 서클의 마법들이었지만 마법진인 이상 마법사가 꾸준히 마력을 불어넣어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 마법진이었고 이전의 5 서클이던 소년, 카이라스는 알아보지 못했겠지만 10 서클의 안목을 지닌 카이라스는 이 마법진을 그린 것이 7 서클 이상의 마법사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식당은 이 마법진을 위해서 7 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계속 돈주고 고용하고 있다는 셈이었다.
'대체 누굴까?'
미래에서 그가 7 서클을 넘었을때 그는 이 식당에 찾아오지 않았었다. 보다 빠른 나이에 8 서클의 대마법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마법에 열중하고 있었고 그 노력으로 그는 16 살의 나이에 8 서클의 대마법사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18 살에는 무려 9 서클의 경지에 입문하였으며 23 살에 9 서클 마스터가 되었고 대륙 역사상 최연소 9 서클 마스터로 당당히 대륙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었다.
그리고 9 서클이 됬을때 그가 이 식당을 카일라와 유리아나를 데리고 찾았을때 이곳에서는 아르테일 가문의 고위 마법사들이 보수를 받고 일을 처리해주는 경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르테일 가문의 고위 마법사들은 카이라스가 알기로 이곳 인사이드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경우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는 대체 누가 일을 대신 해주고 있을지 약간 흥미가 갔다.
"......"
카일라는 종업원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않고 고고한 모습으로 유리잔을 들어서 차가운 물을 살짝 한모금 들이켰다. 그렇지만 예의 바른 카이라스는 종업원에게도 연상이라는 이유로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하자 종업원은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단거리용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내려갔다.
'저 마법진은 효능이 참 오래도 가는구나.'
유리잔에 새겨진 마법진은 몰라도 저 1층에서 단숨에 5층까지 이동을 시켜준 텔레포트 마법진은 카이라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시의 시대는 지금보다 마법이 발달하지는 못했기에 그 시대에는 유일한 9 서클 마스터였던 그의 조상이 이곳에서 스페셜 스테이크를 맛보고는 5 층까지 걸어서 왔다갔다 하기 불편하다며 직접 영구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준 것이었다.
이동하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소모되는 마력의 양도 무척이나 적었고 또 마력 자동회복이 마법진에 추가되어있으니 여러번 사용해도 마력의 소모량이 회복량을 웬만해선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이어서 종업원이 흰 빵과 2 인분의 샐러드가 담겨진 그릇들을 쟁반 위에 담아서 들고 올라왔고 카이라스와 카일라의 앞에 샐러드들이 담겨진 그릇들이 놓여졌고 그 그릇들 옆에 은으로 만들어진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스푼이 놓여졌다.
그 후 정중앙 부분에 흰 빵이 놓여졌고 종업원은 허리를 숙이며 "맛있게 잡수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빠르게 내려갔다. 아무래도 손님이 많아서 바쁜 모양이었다.
"......"
카일라는 말 없이 포크를 들고는 샐러드를 찍어서 입 안에 넣었고, 아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역시 먹는 모습이 귀엽다니깐.'
포크로 살짝 샐러드의 야채와 과일들을 찔러서 연분홍빛의 탐스러운 입술을 벌리고 입술 사이로 샐러드를 집어넣어 먹고 있는 카일라의 모습은 확실히 카이라스가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귀여운 모습이었다.
"라스, 안 먹어?"
카일라는 카이라스가 먹지도 않고 자신만 바라보고 있자 물어보았다. 그러자 카이라스는 고개를 살포시 끄덕거리며 말했다.
"누나가 잘 먹으니까 웬지 마음이 흡족해서 말이야. 내 꺼도 줄까?"
"...됐어."
그렇게 말한 카일라는 다시 아삭 거리며 샐러드를 먹고 있었고 카이라스는 그녀가 살짝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며 히죽 웃으면서 그도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서 아삭 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입에서 아삭거리는 야채가 무척이나 신선하였고 소스 역시 맛이 상당했다.
그리고 샐러드를 먹고 있으니 이윽고 따뜻한 스프를 들고 종업원이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왔다. 마나 버섯으로 만들어진 이 머슈룸 크림 스프는 같은 무게의 금과 맞먹는 값이라는 마나 버섯이 재료인지라 무척이나 가격이 비싸지만 그 맛과 향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었다.
스페셜 스테이크의 가격이 500 골드이고 스페셜 스테이크 풀코스의 가격이 600 골드였으니 오히려 풀코스로 시킨 것은 가격상으로 이득인 셈이었다.
'뭐, 상관없지만.'
뜨거운 스프의 열기로 인해 살짝 이마에 땀에 난채로 붉게 홍조가 진 채, 스프를 스푼으로 천천히 떠먹고 있는 카일라의 모습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전에는 이 말을 하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지금 말했다간 맞겠지?'
...뭔가 처량한 기분이 들었지만 카이라스는 일단 데이트로 진도를 뽑는 것이라 생각하며 스프를 떠먹었다. 그러나 마법사인 천성은 어딜 가지 않아서 식사를 하면서도 그는 벌써부터 내일의 스케쥴 구상에 들어갔고 트리플 캐스팅까지 가능한 수준인 지금의 그는 시공회귀 이전만은 못해도 여러가지 생각을 한 번에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후후, 역시 카일라 누나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귀엽다니까.'
'스프 맛이 역시 비싼 값을 하는구나.'
'후우, 일단 힘을 길러서 초대 마도문명 시대 때의 유적들을 뒤져서 그 강력한 물품들을 손에 넣어야겠지. 같이 갈 사람은 일단 카일라 누나는 같이 갈 수 있겠지만...흐음, 아버지나 어머니, 하다못해 숙부님...카이우스 삼촌이 함께 가면 진짜 든든할텐데 말이야.'
카일라의 모습을 감상함과 동시에 음식의 맛을 품평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그는 3 가지의 생각을 너무도 손쉽게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방장이 직접 스페셜 스테이크를 담은 접시들을 담은 쟁반을 가지고 올라왔고 그 접시들이 카일라와 카이라스의 앞에 내려졌다. 마침 둘은 스프를 다 먹은 참이었다.
"여기 스페셜 스테이크입니다."
그리고 주방장은 이어서 으깬 감자들이 담겨진 접시들을 내려놓고는 와인잔을 카일라의 앞에 놓고는 그 와인잔에 알타이르 산 와인을 따라주었고 일단 검술을 익히고 있더라도 예법 교육은 배운 카일라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예법에 어긋나지 않은 태도로 와인을 받았다. 겉으로 볼때는 무덤덤한 모습이었지만 카이라스는 사실 그녀가 속으로는 비싼 와인을 공짜로 마시는 것을 기뻐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돈이 생기면 어머니의 가문인 리에스 남작가로 보냈으니 정말 다급한 때를 위한 비상금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으니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이 바로 그녀일 것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이번 생에서는 이런 스테이크나 와인을 맛보지도 못하였다. 물론 자존심 강한 그녀의 성격상 어린 카이라스에게 얻어먹는 신세인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겠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이상 음식을 제대로 즐길 생각이었다.
"이건 스테이크 소스입니다만...적절히 뿌려 드십시오."
그리고 소스까지 내려놓은 주방장은 마지막으로 찻잔에 차를 따르고는 칼리투스 차가 담긴 주전자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이며 카이라스의 인사를 받고는 마법진으로 밑으로 내려갔고 남은 카이라스에게 카일라가 물었다.
"...이거 꽤 비쌀텐데 부담 안돼?"
겉은 담담해도 막상 음식이 나오자 값이 부담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지 카이라스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미안함과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부담감을 지워주는게 자신의 일이었다.
"부담 될리가 없지. 돈을 거의 안 쓰고 모아둔게 몇 년인데 이것에 부담이 가겠어? 그리고 미안해할 것도 없어. 오늘은 소드 마스터 상급과 6 서클의 경지에 각각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잖아? 그래도 정 미안하다 싶으면 나중에 내가 유적 탐사를 할 때 도와줘."
"안 미안해."
카일라를 그렇게 카이라스의 말을 부정하고는 와인잔에 연분홍빛 입술을 대고는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였다. 얼음 같이 차가운 아름다운 얼굴에 신비스러운 은은한 빛을 내는 긴 은발에 아름다운 은빛 드레스를 입은채로 와인을 천천히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지만 카이라스는 저 아름다운 모습의 비밀을 파악하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와인을 마시는 것으로 이 상황 넘겨버리려는거지.'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찻잔에 따라진 차를 한모금 들이킨 후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천천히 예법에 맞춰서 우아한 동작으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러나 그는 이 와중에도 세 개의 생각을 한 번에 하고 있었다.
'차 향도 맛도 깊이가 깊은 것이 과연 칼리투스 차야...그리고 고기 육질도 참 좋구나.'
'앞으로 이종족들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5 년 후 쯤 되겠지. 일단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어.'
'그녀는 뭐하고 있을까? 나처럼 미래를 생각하며 힘을 키울 계획을 짜고 있을까? 흠...그녀는 마법에 재능은 그다지일텐데...뭐,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까지 도달한 경험이 있으니 금방 경지를 회복할테고 그랜드 소드 마스터만 해도 어마어마한 전력이지만 말이야.'
어쨌든간에 둘의 데이트(?)는 카이라스가 느끼기에는 나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후후, 표정 풀어지는거 참으려고 애쓰는 것 좀 봐.'
그리고 카이라스는 스테이크와 와인의 맛을 볼때마다 자꾸만 저절로 차가운 표정이 풀어지려고 하여 억지로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려 드는 카일라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렇게 그 날 오후 2 시를 약간 넘은 시각에 시작한 늦은 점심식사는 즐겁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