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유리아나]
1790년 7월 12일 오전 8시.
아침을 일찍 먹은 카이라스는 연무장에 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로 조용하게 서서 검을 들고 있었다. 수련 때와는 달리 현재 그가 들고 있는 검은 진검이었고 연습용이었기에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 아다만티움 같은 좋은 재료로 된 검은 아니었고 그저 강철검이었지만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쓰는 검 답게 강철로 만들어진 검이면서도 참으로 예리하고 서늘한 날을 지니고 있었다.
"......"
그리고 그는 정신을 서서히 검에다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이미 충분하게 있었기에 그는 4 주 동안 모은 마나를 마나로드를 타고 일어내는데 집중하고 있었고 타고난 재능과 이미 도달해보았다는 경험이 있는 그는 마나홀에 있던 마나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쏴아아-
이윽고 날카로운 검신에 서서히 푸른색의 기운이 서리더니 이윽고 검 표면을 뒤덮으며 물처럼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소드 익스퍼트의 검사들이 다루는 힘이며, 소드 익스퍼트의 상징인 오러였다.
10 살에 소드 익스퍼트 급에 오른 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무척이나 놀라운 재능이었지만 그렇다고 카이라스가 유일하지는 않았다. 시공회귀 이전의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검황 지그문트는 9 살에 오러를 각성한 검술의 천재였고 당장 미래의 검성인 카일라 역시 10 살에 소드 익스퍼트에 도달한 검술의 천재였으니깐.
'문제는 내 재능도 지그문트 녀석에 못지 않다는 것이지만.'
알브레히트 백작가의 출신인 지그문트는 백작가의 차남으로 태어나 자연히 젊은 시절에는 후계자의 구도에서 거리가 먼 녀석이었다. 그의 형이 가문에서 최고로 좋은 마나연공법과 검술을 배울 동안 그는 보다 한단계 낮은 마나연공법과 검술을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강했다. 수준이 떨어지는 마나 연공법과 검술을 익히고 있음에도 자신의 형을 언제나 압도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후계자에 어울리는 자는 그의 형이 아니라 지그문트가 아닐까하는 가문 내의 평가도 오고갈 만큼.
물론 지금은 9 살의 소년일 뿐일테니 카이라스는 아직 기대를 하지 않았고 가문 내로 데려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 그에게 중요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비록 익히고 있는 검술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백작 가문에서 두 번째로 좋은 검술인만큼 아주 못나지는 않은 검법이었고 그는 지금 가문 내에서의 상황 때문에 보다 필사적으로 익히고 있으니 필사적인 마음가짐을 지닌 지금 내버려두는 것이 좋았다. 너무 좋은 환경에 두면 풀어지는 것이 인간이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재능도 있으면서 풀어질 수가 없지.'
미래에 가족들이 전부 다 죽고 동료와 친구들까지 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한 번 수련을 시작하면 정말 쉬지 않고 집중해서 수련을 할 수 있었고 예정한 대로 4 주 만에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비록 바디 체인지로 인해 육체가 최상의 상체에다가 어릴적부터 꾸준히 운동은 하여 체력도 길러두었으며 이미 도달했던 경지였기에 마나만을 충분히 쌓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 등이 있었지만 10 살에 6 서클의 마법사에다가 소드 익스퍼트에까지 오르자 마법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도 검술에까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카이라스를 부러워하는 분위기와 가문의 영광이라는 기뻐하는 모습들이 가문 내에서 보여질 것은 뻔한 일이었지만 카이라스는 누군가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해도 기뻐할 넓은 마음이 충분히 있었다.
'나 같은 천재가 두 명만 있었으면 이종족들도 문제가 아닐텐데...'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재수 없는 한탄이었지만 카이라스는 진심이었다. 그를 제외하면 최고의 천재라 할 수 있을 그의 아버지라 해도 10 서클에 오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니, 40 년 쯤 죽어라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10 서클의 경지는 단순히 마법의 재능만으로는 쉽지 않았고, 다른 감각들 역시 매우 발달해있어야만 했다. 오히려 마법만 죽어라 파고든 순수한 9 서클 마스터보다는 검술을 같이 익히며 육감이 발달한 마검사 쪽이 훨씬 유리했다. 물론 9 서클 마스터도 실전 경험을 많이 겪음으로서 예리한 감을 지니게 되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9 서클 마스터 쯤 된다면 쉽게 죽음의 위협을 느끼기는 힘든 법이었다.
위협을 느끼기 힘들었던 것은 카이라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너무나도 엄청난 천재였기에 그런 조건 쯤은 문제 없이 그냥 순수 마법적 재능만으로도 10 서클을 젊은 나이에 달성해내는 위업을 보였다.
'뭐, 덕분에 마법 쪽은 깨달음은 다 있으니 일단 검술에 집중해야겠지.'
그리고 카이라스는 우선은 기초 동작부터 몸에 확실히 익혀놓기 위해서 내려치기, 올려치기, 가로베기, 세로베기, 좌사선올려베기, 좌사선내려베기, 우사선올려베기,우사선내려베기의 8 가지 기초 동작들은 모두 한번 당 20 번씩 한 후 내려치기, 올려치기, 좌사선내려베기, 우사선올려베기,좌사선올려베기, 우사선내려베기, 가로베기, 세로베기 순으로 번갈아가며 연계 동작을 펼쳤고 그렇게 검술 연습을 아침부터 하고 있을때 드디어 이 연무장에 사람이 찾아왔다.
"오빠, 검술 수련해?'
카이라스에게 말을 거는 것은 무척이나 깜찍하게 생긴 4 살 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어리디 어린 붉은 머리의 소녀였다. 아직 4 살 밖에 되지 않아 아름답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그저 귀여운 느낌만 들었지만 카이라스는 그녀가 성장한 모습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일라에 비견될만한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를.
"유리아나. 너도 검술 수련하러 왔어?"
"응, 나도 검술 좋아해. 헤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제대로 사고도 구성되지 못한 갓 아기에서 벗어난 4 살 짜리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리고 작은 목검을 들고 얍! 얍! 거리며 열심히 휘둘러대는 모습을 보니 카이라스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푸훕...이건 반칙일 정도로 웃기고 귀여운데?'
시공회귀 이전의 어린 시절에는 검술에 흥미를 두지 않고 있었기에 유리아나가 검술을 연습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하였었다. 그 시간에 그는 마법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가끔 유리아나가 검술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더라도 그것이 엉성한지 대단한건지 당연히 알 수 있는 안목이 당시의 카이라스에게는 없었다. 그러나 안목 자체는 소드 마스터 최상급의 수준인 카이라스는 지금 유리아나가 보이는 검술이 엄청나게 어설프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시공회귀 이전 카이라스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것은 검의 여제라고 불리우며 허리까지 드리운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농익은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던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도 귀여운 유리아나의 모습이었다. 당연히 카이라스는 뒤늦게 검술을 익힌 후에는 이미 완숙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던 유리아나에게 검술로는 상대도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서 보이는 유리아나는 참으로 엉성하기 그지 없는 자세였고 저 자세만 봐서는 미래에 검의 여제라 불리게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촌오빠이자 미래의 남편으로서 도와주기로 했다.
"잠깐만, 유리아나. 일단 발 동작은 여기에 두고 검은 이렇게 쥐고 내려치기를 해봐."
"응!"
카이라스는 직접 유리아나의 자세들을 고정시켜주고 가르치자 유리아나는 바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라스가 자세를 잡아주게 얌전히 있었다. 그리고 카이라스가 자세를 다 잡아주고는 말했다.
"자, 이제 다 됐어. 휘둘러봐."
"알았어, 얍!"
그리고 유리아나의 내려치기 자세가 완벽하게 선보여졌다. 그리고 유리아나는 그 자세를 유지한채 계속해서 내려치기 자세를 반복했고 카이라스는 그것을 보고 혀를 휘둘렀다.
'정말 검술에 재능은 좋구나. 비록 내가 자세를 잡아줬다지만 내려치기는 정말 예리한데?'
물론 어디까지나 또래에 비해서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으니 카이라스는 바로 칭찬을 해주었다.
"잘 했어. 제법 예리한데? 이 정도면 또래에서 비교할 대상이 거의 없겠어."
그러면서 카이라스는 유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고, 어린아이 답게 유리아나는 바로 칭찬에 기뻐했다.
"정말?"
그러면서 푸른 눈동자를 초롱거리는 것이 더 칭찬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오빠 말 못 믿어?"
"아니, 믿어."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사이가 좋은 사촌 지간, 혹은 오빠와 여동생의 모습이었지만 카이라스는 어린 유리아나를 보면서 성장했을때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강인해보이지만 사실 속은 여리고 겁이 많은 면이 있던 귀여운 그녀와는 뜨거운 시간을 참 많이 보내었다. 그리고 화를 내더라도 키스 한 번 해주면 바로 표정이 풀어지면서 수줍게 얼굴을 붉히던 사랑스러웠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아련해진다.
'유리아나, 빨리 커다오. 그리고 오빠에게 시집오는거다...응? 이거 좀 뭔가 그런데?'
유리아나가 빨리 커서 미녀가 되어서 자신에게 시집 오라고 생각을 하던 카이라스는 뭔가 어린아이를 키워서 잡아먹으려드는 변태가 된 느낌을 받으며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지만 이내 그 사실을 철저히 부정하며 정당화시켰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가르친다는 자신과 지금 쯤 수련을 받고 있을 또 다른 동료인 그녀만이 아는 명분이 있었으니 정당화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제 슬슬 실전을 겪어야하나..."
6 서클 마법사에 이어서 소드 익스퍼트의 힘도 손에 넣자, 카이라스는 슬슬 자신에게 실전이 필요할 때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미 4 주 동안 틈틈히 모은 마력 덕분에 보다 많은 6 서클의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었고 이대로라면 1 년도 아닌 반 년 이내에 7 서클에 오를 수 있을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과 경험에는 수많은 실전이 녹아있었지만 시공회귀를 한 이 육체는 아니었다.
정신과 기억은 경험을 가지고 있긴 한데 육체는 그 경험이 없으니 나중에는 그것이 성가시게 될 수도 있었기에 카이라스는 빨리 실전경험을 쌓아두고 싶었다.
그리고 아르테일 공작가는 대륙 최고의 가문이라 불리는 최강의 마법사 가문이었고, 당연히 실전경험을 쌓는 것도 가문 내부에서 가능하였다. 가문의 사람들 끼리의 대련이 아닌 진짜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의 실전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열어달라고 부탁을 해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카이라스를 향해 유리아나의 목소리의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무슨 생각해? 어디 아퍼?"
"후훗, 그런거 아니야. 그냥 잠시 생각하는게 있었어."
카이라스는 부드럽게 유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그녀에게 물었다.
"유리아나."
"응, 왜?"
"오빠는 이만 갈테니까 연습 열심히 하고 있어."
"웅...알았어. 열심히 할께."
카이라스가 연무장에서 나가는 것이 섭섭한지 유리아나는 표정에 그것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카이라스가 식사 때나 잠깐의 휴식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어린아이임에도 참으로 교육을 잘 받아있었기에 투정을 부리지 않고는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무장에서 카이라스의 모습이 사라진 후 유리아나는 카이라스가 가르쳐준 자세가 흐트러진 것을 깨닫고는 울상을 지었다.
"히잉...자세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모르겠어."
결국 그녀는 내려치기를 포기하고 찌르기 자세만을 반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