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동행을 요청하다.] (18/380)



〈 18화 〉[동행을 요청하다.]

"......"

20 대 중반 정도의 외모의 잘생긴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있었고 그런 그의 옆에 서있는 흑발의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입술은 무척이나 붉고 유달리 탐스러웠고, 그녀는 진주 같은 새하얀 살결을 지녔으며 눈가에 눈물점이 나있는 요염한 인상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미녀였다.

"어머님의 선택이었어, 라스."
"...알아."
"이미 지금 세상에 우리 인간에 대해 희망은 없어. 그 분은 그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신거야."
"그렇지..."

흑발의 청년, 아니 청년의 모습을 한 남자인 카이라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이미 상황은 끝없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마지막 남은 가족, 그의 어머니 엘리나마저도 이 세상을 떠나고나니 정말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 사라져갔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목숨을 대가로 하여 이 대륙 자체를 없애버릴까도 했지만 그의 진정한 원수인 에라시안은 그런다고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이제는 분노도 슬픔도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다.

"....니. 나는 지금부터 마지막 수단을 사용할 생각이야. 성공할 가능성은 100%는 아니고 잘못하면 아예 소멸해버릴 수도 있는 위험이 있지. 함께 시도해볼래?"

카이라스의 제안에 그녀가 호기심을 담은 표정으로 맑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체 어떤 것이길래 마지막 수단이라고까지 하는거야?"
"시공회귀."

그리고 시공회귀를 성공한지 1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              *             *

대륙력 1791년 6월 13일.

시공회귀를 한지도 어언 1 년이 흘렀고 카이라스는 그 사이 11 살의 소년으로 성장해있었다.

11 살이 된 그는 마법의 경지도 7 서클 마스터로 올라있었으며 검술 역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으로서 또래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그가 11 살의 나이에 7 서클 마스터만이 아니라 동시에 검술도 같이 익히면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오르자 수련에 불이 붙은 것은 당연하게도 카일라였다. 검술을 시작한지 불과 4주 만에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 오른데다가 1년이 지난 지금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까지 오르자 자연스럽게 경쟁심리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20 살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올랐고 21 살인 지금은 완숙한 상급의 경지에 올라있는 카일라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그녀의 노력은 그녀를 더더욱 빠르게 강하게 해주고 있었고 빠르게 강해지는 그녀의 모습을 카이라스는 아무도 몰래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늘이 1 년 째..."

카이라스는 자신의 방의 침대 위에 앉아서 체내에 마나를 모은 후 중얼거렸다.

요 1년 동안 그는 계속 꾸준히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마법도 7 서클을 마스터하여 8 서클을 넘보는 수준에 이르어있었고 검술 역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1년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카이라스가 가진 현재의 힘은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 특히나 같은 7 서클 마스터를 상대로는 한 번에 네 개의 주문까지 외울 수 있게 성장한 지금의 그는 완벽한 승률을 보장할 수 있었고 거기다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무위까지 지니고 있으니 검술로도 제법 강자에 속한다 할 수 있었다.

이 경지를 불과 11 살에 이룬 그는 당연하게도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수식어를 받고 있었고 만약 그가 다음 세대의 아르테일 공작이 아니었다면 황실에선 그에게 따로 작위까지 내렸을 것이었다.

'후우, 마나는 드래곤 하트들에 틈틈히 저장해두고 있으니 속도가 잘 오르지 못하네.'

마법만 집중적으로 했으면 지금쯤 8 서클까지는 어떻게든 간신히 들어갔을 터였지만 검술의 경지도 같이 회복을 하면서 드래곤 하트들에 마나들을 모아두고 있으니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르테일 가문의 힘을 통하여 카이라스는 마나가 텅 비어있는 드래곤 하트들을 5 개를 구하였는데 그 드래곤 하트들에 각각 불의 마나, 물의 마나, 바람의 마나, 대지의 마나, 뇌전의 마나를 틈틈히 저장해두고 있었고 그 탓에 경지의 회복 속도가 더더욱 더뎌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

아직은 무척이나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마법진의 도움을 받아서 쌓이는 속성의 마나들은 제법 되는 편이었기에 지금 당장 사용해도 효과를 볼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가 원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라면 앞으로 몇 년은 더욱 마나를 모아야만 했다.

똑똑-

그리고 방문을 손등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졌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에 여신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차가운 분위기의 미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당연하게도 카일라였다.

"라스, 점심시간이야. 수련은 잠시 멈추고 밥 먹으러 내려와."
"아, 벌써 그렇게 됬어? 시간 참 빠르네."

카일라의 말에 카이라스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팔을 앞으로 피는 것으로 몸을 풀었고 이내 카일라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카일라를 그녀 몰래 사랑스럽다는듯 쳐다보던 카이라스와는 달리 카이라스를 보는 카일라의 눈에는 약간의 착잡함이 담겨져있었다.

그녀가 카이라스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다름 아닌 부러움이었다. 그녀 역시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고 21 살에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올라 최상급의 경지를 엿보고 있다지만 이미 카이라스는 11 살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 최상급의 경지와 동급이라는 7 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있었고 더군다나 그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오른 검사이기도 했다.

검술을 익힌지 1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카일라가 볼 때 카이라스의 검술은 도저히 검술을 1 년 밖에 익히지 않은 어린 소년의 검술이 아니었고 기본기만큼은 그녀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보였다.

정말인지 같은 인간인지 의심이 될 정도의 무서운 천재성이었다.

그런 카일라의 심정을 카이라스라고 모를리는 없었다. 너무나 뛰어난 초천재를 보는 천재의 자괴감은 그로서는 감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이성적으로는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로서는 카일라에게 더욱 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전생에 그의 검술의 경지는 고작해야(?) 소드 마스터 최상급으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는 발을 디디지 못했으니 오히려 카일라의 검술에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그의 어머니, 엘리나가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10 서클 마스터인 그였다면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엘리나나 카이우스 숙부의 허락을 받는다면 둘 중 한 명의 감각을 카일라에게 연결시켜주어 그녀가 간접적으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감각을 체험하게 하여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보다 빠르게 올라가게 해주겠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그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뭔가 무능하고 쓸모 없는 인간이 된 느낌이야.'

사랑하는 여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슬픈 현실에 카이라스는 입맛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카일라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려가자."라는 말 한마디를 하자 "응."이라는 대답을 한 번 해주고는 그녀를 따라서 같이 밑으로 내려가 식당으로 향하였다.

식당에서는 이미 아르테일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한창 하는 중이었고 그 중에서 카이라스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아버지인 루스칼리스도, 어머니인 엘리나도, 현재 그의 검술 스승인 삼촌 카이우스도 아니었다. 바로 카이우스의 옆에서 작은 손으로 포크를 쥐고 음식을 찍어 먹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아주아주 작은 어린 소녀, 유리아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버지 루스칼리스와 어머니 엘리나의 모습이었는데, 카이라스는 둘의 광경을 보며 바로 살짝 눈을 찌푸렸다. 루스칼리스의 스테이크를 썰어준 엘리나가 포크로 스테이크를 찍어서 하나하나 직접 루스칼리스에게 먹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정성스러운 아름다운 절세미녀 아내의 모습은 정말 부럽기 그지없었지만 아들인 카이라스는 그것에 부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보기 좀 오글거릴 뿐이었다.

'쪽팔리게! 하여간 부끄러운 것들도 없으시다니깐.'

단 둘이서 있는 장소에서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곳에는 수많은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런 애정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은 보통 배짱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에휴, 밥이나 먹자.'

이제 곧 검술 수련의 시간이었기에 카이라스는 든든하게 배를 채워두기 위해서 부모와 떨어진 빈 자리에 앉아서 하녀에게 주문을 했다.

"레어 정도로 구운 안심 스테이크와 통감자, 그리고 소스는 블랙페퍼 소스로 갖다줘."
"네, 공자님."

하녀는 카이라스의 주문을 받고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때 카이라스는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안는 것을 감지했고 기운이나 기척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풍겨오는 향기만으로 자신의 옆의 앉은 사람이 카일라임을 알아차렸다.

"나도 똑같은 걸로 줘."
"네, 아가씨."

카이라스의 주문을 받고는 주문을 전달하러 떠나려던 하녀는 카일라의 주문도 받고는 그녀에게도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후 떠났다. 그리고 하녀가 떠난 후 카이라스는 자신의 옆에 안은 카일라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웃으면서 물었다.

"누나, 오늘은 어머니랑 마주보며 식사 안해?"
"두 분 사이가 너무 좋아보이셔서 가기가 힘들어."
"누나도 그래? 나도 그래. 오글거려서 여기 와있는데 외롭게 식사하진 않겠네."

사랑하는 카일라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것이 무척이나 좋은 카이라스는 저절로 올라가는 입술을 억지로 참으면서 물었다.

"누나, 소드 마스터 상급에서 최상급으로 가는 단서는 좀 잡혀?"
"...아직. 잡히지 않고 있어."

카이라스의 물음에 카일라는 고개를 살포시 저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녀의 얼굴이었지만 카일라의 사소한 표정변화도 놓치지 않는 능력을 지닌 카이라스는 그녀가 초조해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럴 때 그가 해줘야할 것은 위로였다.

"너무 초조해하지마. 이럴때는 보다 수준 높은 검술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기초 부분들을 연계하며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시도해봤어?"
"응, 시도해봤어."
"그럼 계속해서 열심히 수련을 하고 또 우리 어머니나 삼촌하고 대련을 해보면 될거야.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잖아."
"...라스."
"응, 왜?"
"...아냐."

무엇인가를 말하려던 카일라는 입술을 살짝 움츠리더니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카일라의 사소한 입술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은 카이라스는 이번에도 그녀의 현재 상태를 알아차렸다.

'부끄러워서 말하려다가 포기헀군. 후후.'

정말 미칠듯이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카이라스는 자신이 11 살 밖에 되지 않은 상태임을 다시 한번 한탄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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