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 3 (24/380)



〈 24화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 3

'기척을, 기운을 숨기고 있었어?!'

내단을 복용하여 체내에 쌓이는 막대한 마나들을 심장 부근의 마나홀로 인도하면서 카이라스는 크게 경악했다. 7 서클 마스터이자 소드 마스터인 자신이 바로 이 근처에 올 때까지도 기척도, 기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숨기는 능력을 지닌 것이 지금의 자신의 육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린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상당히 긴 흑발에 맑고 깨끗한 붉은 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많이 엉망이 된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원피스 차림에 무척이나 예쁘게 생긴 용모였고 자란다면 틀림없이 엄청난 미녀가 될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종족은 인간이 아니었다. 겉으로 봐서는 영락 없는 예쁘게 생긴 귀여운 어린 소녀였지만 그녀의 종족은 뱀파이어였다.

'제기랄...'

카이라스는 10 서클 마스터의 정신력을 한계까지 이용하는 것으로 마나를 강제로 심장의 마나홀로 쑤셔넣은 후 강제로 8 번째 서클을 빠르게 생성했다. 그리고 8 번째 서클을 생성하는 중이었기에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닞라 만약을 대비하여 자신의 옆에 서있는 실프에게도 생각을 하는 것을 통하여 명령을 내렸다.

'실프, 만약 내가 공격을 당한다면 바로 방어를 해.'
[응, 알았어.]

실프는 눈 앞의 소녀에 대해 전혀 경계심을 못느끼는 것인지 참으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눈 앞의 어려보이는 용모의 소녀는 겉모습만으로는 카이라스가 보기에도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땀에 젖은채로 숨을 거칠게 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어 보호본능까지 자극해주는 모습이었다.

"......"

그러나 뱀파이어 소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로 가만히 서서 멍하니 카이라스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녀가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카이라스는 8 번째의 고리를 완성하고는 다시금 생기는 바디 체인지의 현상을 빠르게 간략화시켜서 마나홀만을 거대하게 만들었는데 바디 체인지의 덕분에 체내에 다양하게 있던 다섯 개의 기운들이 모두 완벽한 그의 마나가 되어 정신력으로 억제하지 않더라도 순조롭게 그의 마나와 완벽히 동화가 되어 그의 힘은 이제 바디 체인지의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강해졌다.

'마나의 부족으로 인해 8 서클 마법을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이 정도면 8 서클 익스퍼트에서도 중반 수준은 되겠구나.'

8 서클 익스퍼트이기는 하지만 10 서클 마스터의 깨달음과 운용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8 서클 마스터보다도 오히려 강할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이제 그는 다시 '대마법사'의 반열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급격히 늘어난 자신의 힘을 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깨달음으로 다스린 카이라스는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흑발적안의 소녀를 향해 물었다.

"무슨 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거지? 뱀파이어."
"...아."

카이라스의 차가운 태도에 흑발의 뱀파이어 소녀는 잠시 당황한듯 눈을 살짝 크게 뜨고는 손을 살짝 주먹을 쥐고는 입술 쪽으로 갖다대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속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너무나 착하고 순수해보이는 소녀인 그녀의 이런 모습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카이라스의 표정은 차가움에서 풀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외모만으로 마음을 놓기에는 전쟁에서 겪은 참화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엘프들과 뱀파이어들이 전쟁에서 보인 잔혹한 손속들은 결코 잊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아이들까지도 잔혹하게 살해하던 그들을 향해서 카이라스가 느끼는 분노는 어마어마했고 당연히 어린아이라 해도 뱀파이어가 대상일 경우 그는 결코 자비로울수도, 다정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녀가 카이라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었다.

"저...저는 셀리나라고 해요."

소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목소리만을 떠는 것이 아닌 부러질듯이 가녀린 두 다리도 애처로운 모습으로 떨고 있었고 참으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모습이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카이라스의 두 눈은 여전히 싸늘함을 머금고 있었다. 특히나 지금은 카일라가 뱀파이어에게 납치된 와중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죽여버릴까?'

카일라를 한시라도 빨리 구하러 가야하는 와중이었기에 카이라스로서는 이곳에서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감은 이 소녀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10 서클 마스터에 도달했었던 그의 감은 가끔은 예지 수준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였기에 카이라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옷이나 입어야겠군.'

뱀파이어 역시 순혈의 뱀파이어는 일정 나이대까지는 인간의 성장속도와 똑같고 25 ~ 35 세 사이에서 노화가 멈추어 계속해서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평생 유지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카이라스는 셀리나라는 눈 앞의 뱀파이어 소녀는 11 살 정도의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현재 자신의 육체의 나이와 비슷하다는 알 수 있었기에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디 체인지의 현상으로 인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으로 계속 서있는것도 그랬다.

간단히 아공간에서 예비용의 옷을 꺼내 입은 카이라스는 단도직입적으로 셀리나에게 물었다.

"대체 왜 여기에 있는거지? 그리고 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거고?"
"저, 저...저는 지금 쫓기고 있어요."
"쫓기고 있어?"
"예...보링논이라는 뱀파이어에게요."

보링논. 그 이름을 들은 카이라스의 눈이 더욱 싸늘해졌다. 그러나 그 싸늘함은 셀리나라는 소녀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보링논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 속에는 당연하게도 살기까지 담겨져있었다.

"그래서? 그게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랑은 무슨 상관이지?"
"아, 그...그게..."

카이라스의 물음에 셀리나는 뭐라 말을 해야할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이윽고 눈물이 고여졌다.

"흑, 무서웠어요. 절 죽이려고 이곳까지 쫓아온 그가...그리고 당신은 보링논을 싫어하시는 거 같아서..."

카이라스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 없음을 파악했다. 8 서클에 오른 그는 10 서클이던 시절의 감을 상당수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고 그 중에는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힘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물론 10 서클이던 수준에 비하면 미약하였지만 적어도 눈 앞의 소녀가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 쯤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보호라도 요청하려던 거냐?"
"네..."

셀리나의 말에 카이라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하지?'

카이라스는 눈 앞의 소녀의 처우를 두고 고민했다. 보링논이 왜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지는 대충 짐작은 갔다. 셀리나라는 이름은 시공회귀 이전에는 대륙에 이름을 날리지도 못했고 그다지 비중도 없었지만 적군 측이던 뱀파이어 족에 대해서 정보를 모으고 조사를 하던 카이라스는 그녀가 11 살의 나이에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했었다고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보링논이었군.'

셀리나라는 소녀는 시공회귀 이전에는 뱀파이어들 사이에선 그녀가 인간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취급받고 있었고 그녀가 죽은 후 그저 차갑고 기품이 넘치는 여왕이던 디아나가 서서히 난폭하고 잔인한 성격으로 변해갔다는 것도 카이라스는 확인하였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조사를 통해서 그는 눈 앞의 소녀의 신분도 확인할 수 있었었다.

디아나의 후계자이며, 뱀파이어 족의 차기 퀸.

그것이 그녀가 가진 진실된 신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자 카이라스는 눈 앞의 소녀가 많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링논은 어쩌면...그의 최대의 원수인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의 수하일지도 몰랐다.

또 그녀의 신분을 생각하니 그녀가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기척과 기운을 완벽하게 숨긴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몬스터들이 많은 하라나드 숲에서도 그녀가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뱀파이어의 왕족에게만 이어진다는 '권능'의 종류일 것이었다.

'저 기척을 숨기는 권능 때문에 인간의 군대에서 많은 지휘관들이 암살을 당하고는 했었지.'

어쨌든 보링논이 에라시안의 수하일지도 모른다는 결론까지 나오자 카이라스는 셀리나에게 말했다.

"그럼 보링논을 죽여주면 되냐?"
"네? 주...죽이는 거요?"

뱀파이어인 주제에 누굴 죽여본 적이 없는지 죽인다는 말에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는 셀리나의 모습에 카이라스는 혀를 찼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죽여주면 되는 것으로 알겠다. 그럼 가자 실프."
[응, 가자!]

그리고 실프는 카일라가 끌려간 방향 쪽을 향해서 바람이 불도록 주변의 바람을 조절했고 카이라스는 소드 마스터에 오른 육체에 헤이스트 마법까지 걸어서 전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졸지에 남겨진 셀리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급히 그를 쫓아갔다.

아무리 뱀파이어라고 해도 그녀는 11 살 짜리 소녀였고, 아무리 권능으로서 안전하게 자신의 몸을 숨겨오고 자신을 죽이려든 보링논에게서도 도망치고 했다지만 이 위험한 몬스터들이 많은 하라나드 숲에서 전투능력도 그다지 없는 어린 뱀파이어인 그녀는 혼자 있기가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햇빛도 통하지 않는데다가 권능까지 지닌 왕족 뱀파이어라 해도 아직 전투를 경험해보지도, 누군가를 죽여보지도 않은 어린 소녀에 불과한 그녀는 무척이나 평화적인 성격이면서도 동시에 뱀파이어 족 중에서는 정말 보기 드물고 순수하고 착한 성격이기도 했다. 그리고 겁도 역시 많았고 그렇기에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그녀는 자신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도 모르게 카이라스의 등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쫓아오는군.'

셀리나의 이동 속도는 왕족 뱀파이어이기 때문인지 썩어도 준치라고 어린 나이에 전투 경험이 없다고는 해도 이동속도 만큼은 정말 엄청났다. 하기야 저런 이동 속도가 있으니 남쪽에서 이곳 하라나드 숲까지 후작급 뱀파이어인 보링논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일 것이었다. 물론 결국은 죽었었지만.

카이라스는 그렇게 셀리나에 대한 경계심은 일부만 남겨두고는 실프의 도움을 통해 보다 빠르게 달려가 카일라가 잡혀간 건물의 앞까지 도착했다. 건물의 모습은 그냥 돌로 쌓여진듯한 네모난 모습이었는데 문은 무척이나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져있었다.

'몬스터들의 왕국에 이런 건물이라...이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링논. 카일라 누나에게 손을 댄 순간부터 네 놈은 이미 죽음이 확정되었어.'

적어도 카일라의 순결이나 생명이 위험한 것은 그의 감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했기에 안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지만 카이라스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건물의 안으로 들어간 카이라스의 모습에 셀리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두려움이 미친듯이 몰려왔지만 그녀는 그 두려움을 입술을 깨무는 고통으로 억지로 참았는데 이것은 그녀의 '고모'인 디아나가 비록 무섭더라도 꼭 해야할 일이 있을때 참고해두라며 그녀에게 가르쳐준 방법이었다.

"저 안은...위험해."

8 서클의 대마법사라 해도 인간인 카이라스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왕족의 뱀파이어인 셀리나는 알 수 있었다. 안에 무엇들이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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