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뱀파이어 후작 보링논] 2
10 명의 뱀파이어 미녀들의 붉은 눈들이 일제히 감겨지며 쓰러진 것을 본 카이라스는 한번 그녀들을 쳐다본 후 카일라가 있는 위치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어두컴컴한 긴 복도를 지나서 카이라스가 1차적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원형 모양의 거대한 홀이었는데 화려함을 좋아하는 귀족 뱀파이어가 지내는 곳이기 때문인지 주로 머무는 저택도 아니고 일종의 별장 같아 보이는데도 무척이나 화려한 외양이었다. 비록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이지만 카이라스는 바닥에도 온갖 화려한 장식들이 그려져있거나 천장에 샹들리에 등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쿠쿠쿠쿡]
그리고 이 홀의 중앙 부분에 그가 발을 디딘 순간 갑자기 어떤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과거로 회귀해서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카이라스는 미래에서는 여러번 들어본 목소리였기에 그는 이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보링논!'
바로 카일라를 납치한 뱀파이어 후작인 보링논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곳 어디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카이라스는 그가 뱀파이어족의 술법으로 먼 거리에서 대화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정말 놀랍구나. 아무리 아르테일 공작가의 직계라 해도 고작 11 살 짜리가 그런 힘을 보이다니 말이야.]
"놀라운 것은 더 많지."
카이라스는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의 비꼬는 말투에도 보링논은 화를 내지 않고는 쿠쿠쿡,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보아하니 원하는 것은 내가 데리고 있는 계집인거 같구나.]
"카일라 누나에게 무슨 짓을 했지?"
카이라스가 살기 어린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지만, 보링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말하자 보링논은 다시금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쿠후후후, 아직은 별로 아무 짓도 안했어. 그냥 걸리적거리는 옷을 벗겨놨을 뿐이야. 후우~ 정말 아름다운 몸이로군. 인간 계집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워.]
보링논의 감탄이 서린 말에 카이라스는 지금 카일라의 상태를 상상하고는 분노로 이가 으득 갈렸다.
'감히, 내 여자에게 손을 대다니...!'
그가 카일라의 알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정말 참기 힘든 분노가 솟아올랐다. 오죽하면 항상 차갑게 분노하는 마법사의 분노 방식마저 잊어버릴 것만 같을 정도였다. 하지만 10 서클 마스터에까지 올랐던 카이라스는 금새 그 분노를 차가운 분노로 변화시켰고 그는 다시금 분노로 불타오르는 눈이 아닌 분노로 싸늘해진 눈으로 되돌아왔다.
[네 녀석은 곧 죽게 될테니, 특별히 알려주지! 나는 이제 이 계집의 피를 빨거다. 그리고 이 계집을 뱀파이어로 만든 후 내 신부로 삼아 내 자식들을 낳게 해줄 생각이다. 쿠후후후, 정말 죽여주는 계집이야.]
노골적으로 자신을 약올리는 말투에 카이라스는 한시라도 빨리 카일라를 구하기 위해 그와 대화를 섞는 것을 그만두고 서둘러 홀을 지나 홀 밖의 복도 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천장에서 공간이 열리더니 무엇인가가 다음 복도로 가는 길과 카이라스의 사이에 떨어져 카이라스의 앞을 막아섰다.
쿠우우웅!
"크르르르릉!"
허공에서 떨어진 물체를 본 카이라스는 급히 거리를 벌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 탓에 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그런 그를 향해 보링논의 조소가 들려왔다.
[쿠하하하하! 네 녀석을 저승길로 인도해줄 저승의 수문장이다. 이 계집은 내가 영원한 세월 동안 귀여워해줄테니 마음 놓고 편히 죽거라.]
자신을 약올리는 보링논의 조소를 무시한채로 카이라스는 잠시 눈 앞에 서서 자신을 향해 크르릉- 거리는 괴물을 쳐다보았다. 시꺼먼 전신에 턱에 수많은 뱀들의 머리가 존재하는 거대한 세 개의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개. 바로 지옥의 수문장이라 불리는 마물, 케르베로스였다.
8 서클 마스터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하다고 하는 마물이었기에 아직 8 서클 익스퍼트인 카이라스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빨리 처리해야겠어.'
하지만 카일라가 위기에 처한 이상 카이라스에게 물러설 때는 없었다. 또 그에게는 단순히 마법의 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의 힘을 보조해줄 소드 마스터에 이른 검술도 있었고 또 정령술도 있었다. 물론 이 건물 자체가 보링논의 시야에 들어오는 영역인듯 했기에 소드 마스터에 이른 검술은 숨겨야했으니 정령술과 마법만으로 가능하면 상대할 예정이었다.
'동시영창은 아직은 네 개까지가 한계지.'
현재 그가 한 번에 외울 수 있는 주문의 숫자는 아직까지는 4 개에서 막혀있었다. 8 서클에 오르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서 지금으로부터 1 달 동안은 지금의 경지를 확실히 안정시켜야 5 개의 주문을 동시에 외울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대로 그냥 당하고만 있기는 억울하지.'
당연한 말이지만 카이라스는 그냥 당해주기만 할 정도로 속이 넓은 성격이 아니었다. 뺨을 한 대 맞으면 자신의 뺨을 때린 상대는 양쪽 뺨을 다 맞아야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은근히 뒷끝이 강하거나 치졸한 면도 있었다.
"아, 셀리나가 참 피곤하겠어. 저런 스토커에게 쫓겨다니니."
셀리나. 그 말에 작은 웃음소리를 조금씩 내던 보링논의 목소리가 문뜩 끊기었다.
[셀리나? 셀리나라고 했냐?]
보링논은 역시나 카이라스의 예상대로 미끼를 물었다.
"왜? 니가 그토록 죽이려고 하는 여자애의 이름을 들으니 놀라냐? 아까 말했을텐데? 놀라운 것은 더 많이 있을 거라고 말이야. 참고로 나는 셀리나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어."
[......]
카이라스의 말에 보링논은 침묵을 했고 그것을 통해서 카이라스는 보링논에게 셀리나를 죽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무척이나 중요한 일임을 확신했다.
"카일라 누나에게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이라면 버리는게 좋을거다. 안 그랬다간 셀리나는 아르테일 공작가 차원에서 보호하게 될테니까."
[...큭.]
카이라스의 말에 보링논은 처음으로 침음성을 냈다.
[케르베로스, 저 싸가지...아니 건방진 꼬맹이를 생포해라! 절대로 죽여서는 안돼!]
역시나 저 케르베로스는 보링논의 명령에 복종하는 애완동물이었던지 크르릉 거리며 경계만 보이던 케르베로스가 돌연 보링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카이라스를 공격해왔다.
"블링크."
그러나 블링크 마법으로 간단히 공격을 회피한 카이라스는 바로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마법을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캐스팅 시간을 급격히 단축시킨 빠른 속도로 7 서클의 마법을 준비했다.
"나는 음속의 파괴자, 소닉 버스터!"
홀의 바닥이 박살나며 음속으로 만들어진 바람이 그대로 케르베로스를 향해 날라갔다. 이 마법의 단점은 직선으로만 날라간다는 것이었지만 그 대신 위력은 7 서클 마법 중 가장 파괴적이었고 거대한 바위는 흔적도 없이 가루로 만들어버리며 강철 역시 갈가리 찢어버리는 위력을 지닌 이 마법이 케르베로스에게 명중했다.
"크아아아아앙!"
그러나 케르베로스는 이 마법에 맞고도 고통스러워하기만 할 뿐 이 마법 한 방에 단번에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크르릉- 소리를 내면서 6 개의 붉은 눈동자가 적의를 가득 담은채로 카이라스를 노려보고 있었고 보통 또래 어린아이라면 거대한 3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개가 으르렁 거리는 광경에 공포심을 느끼겠지만 카이라스는 오히려 착실하게 마법의 연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파이어 캐논 & 익스플로젼 & 록 블래스터 & 윈드 웨이브!"
5 서클의 파이어 캐논 마법과 6 서클의 마법인 익스플로젼과 록 블래스터를 3 서클의 마법인 윈드 웨이브로 마치 파도처럼 케르베로스에게 빠르게 날라가도록 만들어 보다 위력을 높인 카이라스는 네 개의 주문을 동시영창하여 발현시키자마자 드디어 정령 소환을 실행하였다.
"실프, 바람을 저 쪽으로 더욱 거세게 불게 해줘!"
[알았어!]
실프는 카이라스의 명령대로 거센 바람을 일으켰고 파이어 캐논과 익스플로젼은 이미 케르베로스에게 명중하여 폭발을 일으켰지만 록 블래스터는 계속해서 날라가 수도 없이 케르베로스에게 잔 상처들을 입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실프가 일으킨 바람이 록 블래스터를 더욱 빠르게 날라가게 만드니 케르베로스로서는 정말인지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크와아아아앙~!"
그리고 그 때 갑자기 케르베로스는 세 개의 개 주둥아리에서 뜨거운 화염을 뿜으면서 돌격을 했는데 오히려 그것은 카이라스가 바라던 바였다. 케르베로스가 불을 뿜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던 그였고 카이라스는 싱긋 웃으면서 주문을 외웠다.
"폭발하라, 불꽃이여. 플레어 붐!"
이미 존재하는 불꽃을 폭발시키는 7 서클의 마법이 케르베로스의 주둥아리에 발동되었고 케르베로스는 입 안에서 뿜어내던 불이 갑자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는지 눈자위가 뒤집혀지며 쓰러질듯 비틀거렸다. 그러나 카이라스를 향해 돌격해오던 것이 완전히 멈춰지지는 않았고 케르베로스의 세 개의 주둥아리가 카이라스를 씹으려는듯이 공격해왔다.
[안돼! 죽이면 안된다고! 생포해! 그 꼬마를 생포하란 말이다!]
고통 때문에 화가 나서 주인의 명령도 잊었는지 카이라스를 죽이려드는 태도에 케르베로스의 주인인 보링논이 크게 화를 냈다. 그러자 케르베로스는 움찔 거리면서 카이라스를 세 개의 주둥아리로 공격하는 것은 멈추었고 대신 그들의 턱에 있는 수많은 뱀들이 카이라스를 향해 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카이라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뱀의 머리들을 직접 처리하지 않았다. 대신 처리해줄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프, 저 뱀 머리들을 잘라버려!"
[응! 알았어!]
카이라스의 부탁을 받은 중급 정령인 실프는 바람을 칼날 형태로 만들어서 케르베로스의 턱에 나있는 무수한 뱀머리들을 잘라버렸고 비록 뱀들이 신체의 일부이기는 해도 신경은 연결되어있지 않은지 뱀머리들이 잘라져 바닥에 떨어짐에도 케르베로스는 묵묵히 계속해서 뱀머리들로 공격을 해왔다. 아니, 케르베로스라는 거대한 괴물의 신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중 뱀머리들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소모전만 계속 되겠는데?'
과연 괜히 8 서클 마스터만이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닌듯이 케르베로스의 방어력은 정말인지 무섭게 튼튼했다. 그토록 많은 마법들을 명중시켰는데도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정말 소모전이 오래갈듯 했다. 그리고 그 동안 흑심을 품고 있는 보링논에게 잡혀있는 카일라가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몰랐기에 카이라스로서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검술과 함께 보링논에게 쓰려고 했던 마법이지만 여기서 써야겠군.'
숨겨둔 카드 중 하나를 꺼내야한다는 것이 약간 아쉬웠지만 지금 카이라스가 볼 때에 8 서클의 마법을 날리더라도 한, 두방으로는 케르베로스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8 서클 마법은 아니지만 10 서클 마스터이던 당시 그가 직접 창조했던 이 시대의 그 누구도 모르고 오직 그만이 아는 마법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카이라스는 눈을 빛내며 바로 자신이 창안했던 마법을 케르베로스의 세 개의 머리를 대상으로 하여 사용했다.
"나는 공간을 베는 궁극의 검을 사용한다, 스페이스 슬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