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뱀파이어 후작 보링논] 4
츄우우웁!
'작년에 카일라 누나에게 몰래 키스하길 잘했다.'
작년에 소드 마스터 상급에 올라 바디 체인지를 겪으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카일라에게 몰래 입맞춤을 했던 때를 떠올리며 카이라스는 뱀파이어에게 첫 키스를 빼앗기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다행으로 여기는 심정으로 셀리나와 입맞춤을 가볍게 몇 번 나눈 후 충분하다 느껴지자 입술을 빠르게 떼어냈다.
"앗...우웅..."
키스에 정말 깊숙히 빠져있던 모양인지 뭔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는 11 살 짜리 꼬마 여자애인(자신도 육체는 11 살이라는 것은 무시하고 있다.) 셀리나를 보아하니 카이라스는 황당한 느낌이었지만 그녀가 준 효과는 확실함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혈기를 다루는 종족인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혈통이라는 왕족의 피를 가진 뱀파이어와 입맞춤을 한 순간 왕족 뱀파이어의 권능인 [로얄 블러드의 가호]의 힘에 의해 혈기는 이제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었다.
"일단은 빚 하나 졌다고 쳐두도록 하지."
옷소매로 입술을 살짝 닦으면서 카이라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약간 서운하게 바라보던 셀리나가 살짝 기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어떻게...로얄 블러드의 가호에 대해서 아시고 계셨나요?"
"뱀파이어에 대해서 연구 좀 했어. 충분하냐?"
사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 마법을 날릴 것만 같은 카이라스의 사나운 기세에 셀리나는 본능적으로 겁을 먹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네."라고 대답했다. 이 모습은 영락 없이 나쁜 남자애가 착한 여자애를 괴롭히는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들어가야겠지.'
혈기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겠다 안으로 들어가는데 장애는 모두 없어진 카이라스는 셀리나를 향해 말했다.
"당분간 숨어있어. 내가 보링논을 죽일 때까지."
"네...저...부디 몸 조심 하세요."
"...실프, 혈기는 너에겐 위험하니 돌아가."
[으...응. 라스도 조심해. 저 안...너무 무서워.]
끼이이익!
셀리나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고 실프를 다시 정령계로 되돌려보낸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카이라스는 지독한 혈기를 더 아이즈 오브 트러스 마법으로 육안으로 확인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로얄 블러드의 가호 덕분에 혈기들이 그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들이 품은 원한이 그대로 느껴져 정말인지 안타까워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서 와라, 시건방진 꼬맹이야."
너무나도 익숙하고 현재 에라시안만큼이나 증오스러운 목소리의 주인, 보링논의 모습을 카이라스는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보링논의 외모는 보라색 머리카락에 붉은 색 눈동자를 지닌, 뱀파이어 답게 무척이나 준수한 용모였다. 그렇지만 비열하기 그지 없는 그의 성격을 생각할 때 확실히 그의 생김새도 비열하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는듯 보였지만 미래에서 이미 그를 여러번 보아온 카이라스는 '이 시대에도 비열하게 생긴건 마찬가지로군.' 이라는 생각을 하며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애초 현재 카이라스의 시선은 그에게 향해있지 않았다.
"카일라 누나..."
카이라스가 안타까움에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보링논의 옆에 서있는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아까전의 뱀파이어 미녀들처럼 검은 색의 브래지어에 검은색의 T팬티만을 착용하고는 눈처럼 새하얀 속살들을 모조리 드러내고 있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너무나도 강렬한 아름다움을 지닌 미녀, 카일라.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붉은 눈동자로 변색이 된채로 그녀는 현재 보링논의 옆에 손에 검을 쥔채로 얌전하게 서있었다.
푸른 눈동자가 붉은 눈동자로 변한 그녀의 모습도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특히나 풍만한 몸매를 아슬아슬한 부위들만 가린채로 거의 완벽히 드러내고 있는 21 살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뇌새적인 매력이 풍겨져왔다. 그리고 허리 아래까지 드리워진 은발은 마치 최고급의 은을 녹여서 실로 만든듯하였고 연분홍빛 입술을 여전히 치명적인 매력을 담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야.'
하지만 카이라스의 눈에는 지금의 이런 카일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오히려 불쾌함만이 느껴졌다. 카일라의 사소한 행동도, 그녀의 사소한 생각까지도 모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카이라스는 지금 그녀가 의식이 없는, 그야말로 인형과도 같은 상태임을 알아보았다. 이건 단순히 세뇌 같은 수준이 아닌 아예 살아있는 인형이나 다를바 없는 상태였다.
카이라스가 사랑하는 것은 겉은 차가움과 도도함, 그리고 시크함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속은 상당히 여린 면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결코 내색하려고 들지 않던 카일라의 모습이었지 저런 껍데기만 남은 모습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이런 모습으로 만든 보링논에게 거대한 살의가 그의 마음에 깊숙히 심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보다도 그가 더 죽이고 싶고 증오스러웠다.
"크후후후, 네 놈 때문에 이 계집을 급하게 뱀파이어로 만들어야했다. 덕분에 아직 미완성작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보링논은 아예 손을 뻗어서 자신의 옆에 서있는 카일라의 동그랗고 탐스러운 맨 엉덩이를 마구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엉덩이를 주물럭거려지는 치욕을 당하는 카일라였지만 그녀의 붉은 두 눈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역시 백치처럼 무표정하였다.
"이 계집의 피는 정말 여태까지 맛봤던 어떤 피보다도 맛있는 달콤했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최고급의 음식을 네 녀석 때문에 빨리 먹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화가 나는군."
그렇게 말하는 그는 카일라의 엉덩이를 움켜쥐던 손을 위로 올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그녀의 풍만한 가슴 한 짝을 움켜쥐었고 아주 노골적으로 카이라스를 도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카이라스는 차갑게 분노하는 것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며 보링논을 노려보고 있었다.
'열받지만...참아야해. 카일라 누나를 안전하게 구출하는게 먼저야.'
뱀파이어에게 감염되어 뱀파이어가 되어버렸다고는 하지만 목덜미에 난 상처는 인간 출신 뱀파이어의 증표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그리고 그 낙인이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카일라의 순결 역시도 아직은 무사했다. 성희롱 적으로 어떤 일을 당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삽입까지는 당하지는 않은 상태임은 확실했다.
'뱀파이어로 급히 만드냐고 덮칠 시간이 없었던게 다행인가?'
뱀파이어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녀에게서 아직 처녀 패턴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깐.
"쿠쿠쿡, 그리고 네 놈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아하니 셀리나가 입맞춤을 해준 모양이군. 자, 셀리나가 어디있는지 불어보지 꼬마? 아니면 널 잡아다가 고문하면 그 깜찍한 년이 튀어나올까?"
보링논의 여유로운 태도가 짜증난 카이라스가 험한 한마디를 날려주었다.
"못생긴 게 실실 대며 쪼개지마. 구더기 썩은 내가 이쪽까지 난다."
"......"
보링논의 얼굴이 카이라스의 폭언에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싸가지...아니, 크흠!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 같으니라고!"
"당신 몇살 먹었는데?"
"위대하신 밤의 귀족이신 이 몸의 나이는 576세다, 꼬맹이."
"그래? 에라시안이 왜 아직도 너 같은 해충을 처리하지 않고 있는지가 의문이군. 디아나에게 무슨 짓이라고 하라고 시켰냐?"
"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카이라스의 말에 보링논의 얼굴이 경악감으로 가득찼다.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과 그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게 어린 인간 꼬맹이라면.
"네 놈, 대체 정체가 뭐냐?"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 마법왕(魔法王)이다. 아니, 이종족들 입장으로 치자면 훗날의 마왕(魔王)이라고 해둘까?"
인류에게는 마법왕이라 불리며 최강의 인간으로서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을 견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반면 그의 강력한 힘을 두려워한 이종족들은 그를 마왕이라고 부르고는 했었다.
물론 마계의 마왕과는 다른 그냥 비유일 뿐이었지만 전쟁에서 인간들이 밀리던 때에 카이라스는 진짜로 이종족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마왕이 되는 것이 간절한 바램이었다.
'역시 저놈이 에라시안의 수하인 것도 맞았고, 디아나에게 무슨 짓을 한 것도 맞았군.'
에라시안의 수하인 이상 더더욱 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디아나에게 무슨 짓을 하여 그녀를 그토록 광폭한 성격으로 변화시켜 인간을 이유없이 미워하고 증오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는 것은...
'놈이 진짜 유리아나의 원수라고 할 수 있다는거지.'
카일라만큼이나 사랑한 여인이며, 그의 사랑스러운 사촌여동생이기도 한 유리아나를 디아나에게 살해당하게 만든 만악의 근원 중 하나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카일라까지 납치를 한 후 저렇게 농락을 하고 있었다.
"네 놈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군, 후후후."
싸늘한 미소를 지은 카이라스는 보링논을 노려보며 손을 움직였고 보링논은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아니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네 녀석 설마! 이렇게 대화를 하고 조롱을 당하면서도!"
"그래, 네 녀석에게 한방 먹여줄 이 때를 노리고 있었다!"
10 서클 마스터의 정신력을 가졌지만 이 1 만의 인간들이 품은 거대한 원한이 녹아있는 혈기를 단번에 다룰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시간만 있다면 이 혈기조차도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었고 카이라스는 보링논에게 조롱당하고 말싸움을 하는 것처럼만 보였지만 실상 그는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혈기에게 자신의 의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너희의 원수는 저기 저 보링논이라는 뱀파이어다!]
[나는 너희와 마찬가지로 저 자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자다!]
[나와 함께 너희의 원수를 죽여버리자!]
[나에게 힘을 빌려줘!]
쿠구구구궁-
카이라스의 거대한 의지가 계속해서 설득을 하자 처음에는 그를 경계하며 공격을 하려다가도 블러드 로얄의 가호에 막혀서 하지 못하던 원한들은 카이라스의 설득에 마침내 응하여 그를 도우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거대한 혈기의 파도가 일렁거리면서 카이라스에게 적극적인 협조의 태도를 보이자 보링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동시에 지으며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거지? 어떻게 혈기를, 인간이...저렇게 다룰 수 있는거냐!"
"후후, 다루는 것이 아니야.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거지."
카이라스에 의해 궁지에 몰린 보링논은 자신이 방심했음을 인정했다. 설마 혈기를 아군으로 만들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녀석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 동안 모은 혈기를 풀어놓으며 함정을 만들었는데 아예 그 함정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릴 줄이야! 이런 황당한 일은 아마 대륙 역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제길, 카일라! 저 녀석을 죽여! 어서!"
셀리나를 찾는 것도 중요헀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우선이었기에 혈기를 움직이는 카이라스를 죽여버린다면 혈기 자체만으로는 보링논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생포하려던 애초의 목적을 포기하고 그는 카이라스를 죽이려는 결정을 내렸다. 자신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뱀파이어가 되어 보다 강해진 카일라와 협공을 한다면 가능성은 보였다. 그렇지만 이 때 또 이변이 일어났다.
"라...스..."
뱀파이어로 감염되고 자유의지를 부여하지 않고 자신의 인형과도 같은 존재로 만들어 아무런 의지도 없어야할 카일라가 검을 카이라스에게 겨눈 상태에서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주르르륵-
거기에 카일라의 눈물이 그녀의 새하얀 뺨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