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카일라 누나는 돌려받겠다.]
핏빛의 기운, 혈기들로 뒤덮여있는 빛 하나 없는 거대한 연무장.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모습을 대낮처럼 환하게 볼 수 있는 두 남자. 보라색 머리카락의 성인 남성, 보링논과 흑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어린 소년, 카이라스는 둘 다 충격감이 담긴 눈으로 한 명의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미(美)의 여신이 강림한듯한 여신 같은 자태를 가진 아름다운 은발의 미녀, 카일라는 지금 카이라스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였지만 혈기 때문에 멘탈에 충격을 받아서 충격감에 대해 정신적 방어력이 낮아져있던 보링논은 아예 충격감으로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고 있었다.
"말도 안돼...분명 정신은 깨끗하게 잠재워버렸을텐데? 어떻게..."
카이라스는 자신을 부르는 카일라의 모습에 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누나, 정신이 들어?"
"...우으으읏...라...라스...아아..."
부들부들 떠는 카일라는 걱정과 슬픔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카이라스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그녀의 표정이 다시금 백치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제길."
"쿠, 쿠하하하! 그래! 가자, 나의 아름다운 신부! 같이 저 건방진 꼬맹이를 죽여버리는거다!"
카일라가 다시금 자신의 지배권으로 들어오자 보링논은 미친듯이 웃어대며 카이라스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슈우우우웅!
아까와는 달리 완전히 보링논의 인형으로 다시 돌아온듯 카일라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카이라스를 향해 검을 겨누고는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시켰고 상급을 넘어서 최상급의 경지에 이른듯한 오러 블레이드가 카이라스의 눈 앞에 보여졌다. 그렇지만 본래의 푸른 색이 아닌 뱀파이어가 됬음을 뜻하는지 그녀의 오러 블레이드의 색상은 붉은 피와도 같은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로 변해있었다.
"쿠후후후, 꼬맹이. 이제 죽을 각오나 해라. 네 놈을 죽여버린 후에는 셀리나를 찾기에 앞서 이 계집을 완전히 내 마누라로 만들어줄테니 이 계집을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짜증나."
콰과과광!
"크어어억!"
순식간이었다. 카이라스의 "짜증나." 한마디와 동시에 거대한 혈기가 그대로 보링논을 강타하고 보링논이 몸이 박살이 나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나가떨어진 것은.
스으으윽!
반면 카일라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카이라스에게 달려가며 검을 휘둘렀고 카이라스는 바로 블링크 마법을 계속해서 사용하며 그녀의 공격을 회피했다. 소드 마스터 최상급의 경지라고 보기에는 카일라의 공격은 너무나 어설픈 점이 많았는데 인형으로 전락했다해도 몸의 움직임에는 깨달음이 녹아있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결론이 나왔다.
'아직 저항하고 있구나.'
겉으로는 완전히 보링논에게 지배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카일라의 의식은 보링논의 명령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충격파...'
카일라의 오러 블레이드에는 막대한 충격의 기운이 담겨져있었고 카이라스는 일일이 그 충격의 기운까지 피하자니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
8 서클 익스퍼트인 그는 소드 마스터 최상급, 하물며 전력을 다 발휘하지도 못하는 그녀보다는 분명히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였다. 하지만 문제는 카이라스는 카일라를 상처 입히지 않고 제압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아까 10 명의 뱀파이어들에게 썼던 파워 워드, 스턴은 쓸 수가 없고...젠장할.'
사실 제압에는 기절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문제는 지금의 카일라에게 파워 워드, 스턴은 오히려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이었다. 당장에 그녀의 의식이 보링논의 통제에서 반발하고 있는데 파워 워드, 스턴을 쓴다면 보링논의 명령에 저항하던 그녀의 의식이 기절해버릴테고 그럼 카일라는 정말로 완전한 보링논의 인형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었다.
"홀드 & 홀드 & 홀드 & 홀드!"
미친 짓 한다고 생각하고 홀드 마법을 4 방을 연달아서 카일라에게 시전했지만 그녀는 잠시만 주춤했을 뿐 이윽고 오러를 전신에 두르더니 가볍게 홀드 마법을 깨뜨리고는 재차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해왔고 카이라스는 초급이지만 소드 마스터에 이르어 있었기에 혀를 차면서 블링크 마법을 함께 쓰며 마법으로 강화된 감각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카일라의 공격을 계속해서 한 대도 스치지도 않고 완벽하게 회피하고 있었다.
'역시 이대로 카일라 누나의 기운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하나?'
카일라의 공격을 피하면서 카이라스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보링논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크윽, 뭐냐...이건! 크아아악!"
거대한 혈기들에 억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제압되어있으면서 그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혈기들이 살짝씩 체내로 침투하며 주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보링논의 모습. 카일라도 저렇게 제압을 해야하지만 혈기가 카일라를 얌전히 붙잡아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에게도 보링논에게 했듯이 고통을 주려 들 것이 분명했다.
'눈에 의지만 담겨있다면...정말 아름다운 모습인데 말이야.'
자신에게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어대는 카일라의 모습을 보며 카이라스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카일라의 초점이 없는 붉은 눈동자의 모습은 정말 보기 싫은 모습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해오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다가 오러 블레이드에 썰려 죽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검은 색의 T팬티를 입고 있어서 옆으로 삐져나온 은빛의 가느라단 방초숲의 일부들까지도 아름다운 최고급의 은으로 만들어진듯하고 그녀가 움직일때마다 위로 거세게 출렁거리는 새하얀 젖가슴들과 몸을 돌릴때마다 보여지는 깨물면 즙이 나올것만 같이 탐스러운 새하얗고 동그란 커다란 엉덩이들. 1 년 전에 보았을때보다 카일라의 몸매는 여전히 갸날퍼보이면서도 나와야할 부위들은 더더욱 발육이 좋아져있었고 점점 그가 기억하는 전생의 그녀의 몸매에 필적할 정도로 발육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아까전 그녀가 흘린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묘하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특히 아까 눈물 흘리던 거 진짜 귀여웠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카이라스는 틈틈히 매직 미사일 같은 약한 마법들을 은근슬쩍 보링논에게 날렸고 보링논은 그 잔 공격들에 큰 데미지는 당연히 입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얻어맞는 것이 당연히 좋을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랜드 소드 마스터 초급에 이른 자와 버금갈 수준에 이르어있는 그의 무위도 지금 혈기에 억눌려서는 발휘할 수가 없었고 그의 환술 역시도 혈기가 간섭하여 제대로 발동이 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카이라스를 약화시키기 위해 파놓았던 함정이 상상 이상으로 그에게 되돌아와 그의 힘을 약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무력화시켜버린 것이었다.
'제기랄 마물을 소환할 수만 있다면 탈출할 수 있을텐데!'
케르베로스 수준은 아니더라도 잠시 시간을 벌어줄 마물을 소환하기만 한다면 그 마물이 저 괴물 꼬맹이를 막아주는 동안 자신은 카일라와 함께 이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현재 그에게 카일라를 두고 떠난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냥 카일라를 두고 떠나기엔 카일라가 너무 아름다웠고, 두고 가기가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카일라! 어떻게든 나를 붙잡고 있는 이 혈기들을 떨쳐내봐라!"
보링논은 카일라에게 자신을 해방시키라고 지시를 내렸고 카이라스를 공격하던 카일라는 공격을 멈추고는 보링논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음 보링논을 억누르고 있는 혈기에게 자신의 오러 블레이들르 휘두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볼 카이라스가 아니었다.
"그렇게는 안되지! 헤비 스틸 테더 & 헤비 스틸 테더 & 헤비 스틸 테더 & 헤비 스틸 테더!"
무형의 밧줄로 묶어버리는 바인드 마법의 상위 마법인 헤비 스틸 테더는 3 서클의 마법에 불과했지만 무거운 강철 밧줄이라는 이름 답게 카일라는 순식간에 전신을 귀갑 묶기로 제압당하였다.
"......"
그렇지만 그녀는 소드 마스터 최상급. 비록 전신이 묶여있다고는 하지만 전신에서 오러를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마력의 구속력을 급격히 약화시켰고 금방 풀려나기 직전이었지만 그녀가 아주 잠시만 움직이지 못하는 때면 카이라스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보링논은 탈출을 위해서 카일라더러 자신을 구하라 시켰지만 그 때문에 카일라가 카이라스에게 등을 보인 바람에 그녀가 잠시나마 3 서클의 마법 따위에 묶여지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혈기를 통해서 마법을 구현할 수 있을까?'
카일라의 공격을 피하던 때 카이라스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자신은 마나가 부족해서 쓰지 못하는 것이었지 이미 깨달음과 정신은 10 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해있는 상태였다. 만약 혈기를 자신의 마나를 대체해서 사용해본다면? 아마 10 서클 마법도 간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상으로는 가능한데 말이야.'
비록 자신의 마나가 아닌 대기 중에 있는 기운에게 허락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해서 하는 것이지만 이곳에 모여있는 막대한 혈기의 양이라면 10 서클 마법을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없군. 카일라 누나가 구속력을 끊어버리기 직전이야.'
모든 것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10 서클 마법을 안타깝게도 쓸 시간은 없었다. 그렇지만 9 서클 마법이라면 달랐다!
"나는 위대한 마법의 끝을 본 자, 간절하게 나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빈다. 위시!"
카이라스는 주변의 혈기들을 이용하여 지금의 그의 경지로는 불가능한, 9 서클의 마법의 주문을 외운 그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이 때 그는 체내에 있는 마나들을 아주 약간만 사용할 뿐 그가 주로 사용한 것은 허공에 있는 막대한 혈기들이었고, 그 혈기들이 허공에서 마법의 수식에 따라 재배열이 되어 강력한 9 서클의 마법을 실행한 것이었으니 거의 혈기들로만 실행된 마법이라 봐도 무방했다.
혈기들은 그 마법이 보링논에게는 절망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카이라스의 설득에 넘어가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며 마법에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사용한 9 서클의 마법은 위시. 기적을 불러일으켜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9 서클의 마법이었고, 막대한 소원일 수록 그에 대한 리스크가 큰 마법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카이라스가 바라는 바램은 이종족들을 멸망시켜서 인류를 위협에서 구해달라거나 드래곤 로드인 에라시안을 죽여달라는 것 같은 거창한 소원이 아니었다. 애초 그런 소원은 10 서클 마스터이던 시절에도 불가능했다.
그가 지금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카일라 누나의 의식이 돌아오게 해!'
그리고 10 서클 마스터의 정신력을 바탕으로 하여 9 서클의 마법이 현세에 발동하였고 그 바램은 이루어졌다.
"아읏...라스...하아하아..."
전신이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밧줄로 묶인채, 무표정한 얼굴로 오러를 뿜어내며 떠있던 카일라의 붉은 눈동자에 빛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다시 흐르며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