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카일라의 선택] 2 (39/380)



〈 39화 〉[카일라의 선택] 2

카일라가 무엇인가 그에게 단 둘이서 할 말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 카이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아침 먹고 같이 누나 방으로 가자. 내 방은 지금 정령들이 있으니까."
"응."

한편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하숙하는 하숙녀라는 명목으로 같은 식당에서 홀로 자리에 앉아서 스프를 떠먹던 디아나는 가만히 서서 카이라스를 지켜보고 있며 머뭇거리고 서있는 셀리나를 바라보았다.

"셀리나, 뭐해? 어서 앉아."
"아, 고모님...그게...저는 지금 하녀라 앉을 수가 없는데..."

비록 하룻밤 동안 기초만 속성으로 배운거지만 하녀의 교육을 열심히 받은 셀리나는 너무도 철저하게 교육 받은 것을 지키고 있었고 하녀의 본분에 충실했다. 그러자 스프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디아나는 셀리나에게로 다가갔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문 내의 수많은 마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디아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아침임에도 여전히 어제 입던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고집하는 그녀는 남, 녀를 불문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매혹적인 미의 화신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고 아르테일 공작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아르테일 공작가에서는 디아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정도였지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서 미친 짓들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전부 엘리나와 카일라의 존재로 인해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있는 덕분이었다.

"카이라스."

자리에서 일어난 디아나는 카이라스에게 다가가 그를 불렀다. 그리고 카이라스가 그녀를 쳐다보자 디아나가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카일라...양이랑 얘기 끝나면 나랑도 잠시 둘이서 얘기 좀 하자. 줄 것도 있으니까."
"알았어, 디아나."

디아나가 말하는 것이 자신이 그녀에게 하숙비로 달라고 부탁했던 것임을 알아차린 카이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셀리나. 우리 잠시 나가자."

스프를 먹다 남기고는 셀리나의 손을 잡은 디아나는 식당의 밖으로 나가버렸고 카이라스는 갑자기 디아나가 셀리나를 끌고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여 잠시 기운을 파악하는데 주력했고 지금은 디아나도, 셀리나도 기운도 기척도 숨기고 있지 않았기에 그녀들의 기운을 파악하는 무척이나 쉬웠다. 그리고 카이라스는 그녀들이 향하는 곳이 하녀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곳임을 알고는 살짝 놀라워했다.

'디아나, 설마 셀리나에게 뭘 챙겨서 먹여주려고?'

그러나 기운을 이어서 파악한 그는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내숭 떨면서 먹기 귀찮았던거구나...'

그가 느끼는 기운에서는 디아나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활발하게 이 음식, 저 음식을 고상 떨지 않고 골라 먹는 것을 보니 단순히 내숭 떨며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반면 셀리나의 기운은 조신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얌전하게 음식들을 집어먹고 있는듯 했고 피가 아닌지라 허기를 채울 수가 없는 단순히 미각의 즐거움을 위한 식사였지만 그대로 조신하게 먹는 것을 보니 블러디 캔디만 지급해주면 셀리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듯 했다.

'디아나, 11 살 짜리 조카보다 철이 없으면 어쩌자는거냐...'

그렇게 한숨을 쉬며 아침 식사를 끝낸 그는 옆에서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를 끝낸 카일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라스."
"응, 그래 가자 누나."

카일라와 카이라스는 루스칼리스, 엘리나, 카이우스에게 각각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한 후 식당 밖으로 나간 후 카일라, 그녀의 방으로 향했고 우선 2 층에서 카이라스의 방의 반대 방향에 위치해있는 카일라의 방 안으로 들어간 카이라스는 방 안 가득히 채워져있는 카일라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역시 누나의 방은 천국이라니까.'

아마도 셀리나가 들어왔다가는 카일라의 체향의 자극을 견디다 못해서 뛰쳐나갈 정도로 깊이 그녀의 체향이 스며들어있는 카일라의 방.

그러나 침대를 제외하고는 이 방에는 여자들이 흔히 쓴다는 화장품도 없었고, 그냥 방 안에 간단한 샤워실이 붙어있는 정도 뿐이었는데 어린 시절, 엘리나와 함께 가출을 했던 카일라는 검에 빠져든 이후로 여자로서 자신을 가꾸는 것에 상당히 무신경해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화장품이 없더라도 이미 완벽한 여신과도 같은 미모를 타고난 그녀는 스스로를 가꾸지 않더라도 이미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미모에 대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카이라스와 엘리나, 그리고 그녀의 방을 치우는 하녀들 정도만이 알고 있었다. 즉, 그녀의 타고난 미모와 몸매, 백옥 같은 피부는 가꾸거나 그런 것이 아닌 그냥 타고난 천연인 셈이었다.

"라스...내상은 다 나았어?"
"걱정하는 거야?"
"...다 나았나보네."

카일라는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카이라스에게 내상이 어떤지 물어봤고 카이라스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되묻자 카일라는 바로 고개를 돌린 후 침대 위로 다가가 그 위에 앉았다.

"...라스, 어제 일 다 기억하지?"
"어제? 아...물론 다 기억하지. 일단 마법사니까."

바디 체인지를 겪은 검사 역시도 기억력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지만 마법사는 그보다도 훨씬 더했다. 애초 마법 수식 같은 것들을 모두 기억해야하는 마법사들은 다들 기본적으로 상당한 기억력들을 지니고 있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카이라스는 어제 카일라가 뱀파이어가 되어서 브래지어와 T팬티만 입고 있던 모습도 다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던 모습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 울었던 거 잊어줘."

그렇지만 카일라에게는 속옷들만, 그것도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심지어 사타구니 사이는 은빛의 털이 삐져나온 것도 전부 가리지 못할 정도로 심한 노출이었던 것은 어떻게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어도 10 살이나 어린 카이라스의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것은 그녀의 자존심 상 참으로 창피한 일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자기 자신을 잃고 영원히 보링논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굴욕적이었다.

"어제 울었던거?"
"응, 잊어줘."
"......"
"잊.어.줘."

카이라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카일라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며 강조를 했다. 보기 드문 그녀의 이런 강조를 하는 모습이 카이라스의 눈에는 신선하고 귀여워보여 그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아, 제길...어제는 다급해서 몰랐지만 어제의 우는 모습도, 지금 이 모습도 생각해보면 진짜 귀여운데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카이라스는 어제 카일라가 우는 장면도, 지금 카일라의 이런 강조하는 모습도 전부 귀여워서 잊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카일라를 삐지게 하지 않기 위해 카이라스는 일단 말로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잊어보려고 노력할께."
"...약속한거다."
"응, 그럼 나도 부탁 하나만 할께."
"부탁?"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자 카이라스 역시 부탁을 하나 하기로 했고, 어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그녀에게 큰 점수를 딴 모양인지 카일라는 순순히 그의 부탁을 들어줄듯한 태도를 보였다.

"잠시 다리 좀 빌려줘. 하라나드 숲에 갔을때 누나 다리에 머리 대고 누우니까 정말 편하더라."
"...알았어."

카일라는 너무나 쉽게 카이라스의 제안을 수락하고 침대 위에 앉았고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카이라스는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 안에 담겨진 따스함을 읽어내고는 살짝 웃으면서 침대 위에 누우면서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었다. 원피스의 치마자락 역시 그녀가 입던 핫팬츠 정도의 길이였기에 그녀의 새하얀 맨 허벅지에 얼굴을 기댄 카이라스는 살포시 카일라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았고 동시에 그는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밤을 꼬박 새었더니 아무래도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었다.

'잠시만 잘까...'

그리고 카일라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는 호사 속에서 그의 의식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잠들었네."

카일라는 잠든 그의 머리를 살포시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는 살포시 자신의 입술에 손을 갖다대더니 이윽고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 슬픔.

그것이 그녀가 느끼는 현재의 감정이었다.

'보링논.'

목을 깨물려 흡혈을 당하기 전, 그 자는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고는 강제로 키스를 해대면서 그녀의 육체를 마음껏 애무하며 그녀를 농락했었다. 카이라스가 1 년전, 그녀가 바디 체인지를 겪고는 기절했을때 첫 키스를 차지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카일라는 자신의 첫키스를 가져간 자가 보링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미 죽어서 소멸까지 해버린 그를 향해서도 커다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잊고 싶어.'

사실 그 기억이야말로 카일라의 입장에선 가장 끔찍하고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인가? 잠이 들어있던 카이라스가 잠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누나, 정작 누나는 잊지 못하고 있구나. 잠을 못자게 기운이 살벌해."
"...미안, 깨워버렸네."

카일라의 사과에 카이라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보다도 많이 힘든거 같은데...아무래도 말을 해둬야겠어. 사실 몰래 기억에만 간직해두려고 했던건데 말이야."
"무슨 비밀이라도 있어?"

카일라의 물음에 카이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누나. 1 년전에 바디 체인지 했던 거 기억나지? 소드 마스터 상급에 오르면서 말이야."
"기억해."
"그 때 누나가 의식 잃었는데 사실 나...누나에게 몰래 키스했었어."

카일라는 순간 카이라스에게 꿀밤을 먹일 뻔 했지만 카이라스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그럴 마음도 금새 사라졌다.

"보아하니 첫키스를 그 놈에게 뺴앗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틀려. 그러니 마음 놓아도 돼."
"...알았어. 그리고 라스."
"응,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 잠시...고모님께 좀 다녀올테니 머리 좀 비켜줘봐."
"...알았어."

카이라스는 카일라가 일어서려 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순순히 그녀의 바램대로 머리를 비켜주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카일라는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 자신의 고모인 엘리나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엘리나는 이 시간 때에는 항상 마나연공법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있는 장소를 찾기는 쉬웠다.

바로 그녀 전용의 연무장이었으니깐.

"고모님, 계세요?"

연무장에 들어가기 앞서서 카일라가 밖에서 그녀를 부르자, 연무장의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카일라. 들어와."

그녀를 친딸 같이 사랑하는 엘리나의 허락은 금새 떨어졌고 카일라는 연무장의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는 평상시의 기품 넘치는 공작가의 안주인의 복장이 아닌, 뭔가 성스러워보이는 원피스 차림이 아닌 그야말로 수련용으로 만들어진 몸에 붙는 새하얀 천으로 된 상의와 핫팬츠 차림의 그녀의 아름다운 고모가 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다 찾아오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카일라는 엘리나의 수련에 방해가 됬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보아하니 아직 수련을 시작하기 전이었기에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응, 말해봐."
"....4 년이죠?"
"4 년...? 아! 혹시?"

카일라의 4 년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엘리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는 바로 그녀를 푸른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카일라가 그녀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마음을 정했어요. 4 년 후, 라스가 성인이 되면 결혼할께요."
"카일라..."

뜨거운 감격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 엘리나는 그대로 딸처럼 사랑하였고 4 년후면 며느리가 될, 자신의 조카딸인 카일라를 끌어안았고 카일라의 차가운 표정도 이 순간은 잠시 살짝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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