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디아나의 하숙비] (40/380)



〈 40화 〉[디아나의 하숙비]

"후우..."

카일라가 나가고 난 후 카이라스는 카일라의 침대에 혼자 드러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카일라가 너무 괴로워하는 것 같이 보여서 원래라면 자신 혼자 간직하려했을 비밀까지 말해주었다. 그녀는 오히려 안도하며 크게 화를 내지 않는듯 보였지만 그래도 약간 삐져있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참으로 행복한 고민이군.'

정말인지 인간에게 최악의 독이란 다른 것도 아닌 행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아니 영혼까지 저리게 다시 체감할 수 있었다.

시공회귀 이전의 모든 것을 잃은 그는 그저 눈물조차 메말라버릴 정도의 슬픔과 더 이상 타오를 수도 없는 증오와 원한, 분노만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잃고, 가족들도 모두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복수 뿐이었고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을 죽이고 이종족들을 멸망시키는 것만이 그에게 남은 의무였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만을 처절하게 실감하여 절망감 속에 빠진 끝에 최후의 도박으로 그는 시공회귀를 택하였고, 멋지게 성공하였다.

그리고...이곳에는 그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지 않은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행복에 너무 물들었지.'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는 솔직히 말해서 시공회귀 이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갈가리 찢어진 가슴을 가진 채로 증오와 분노를 불태우는 차가운 10 서클의 마스터인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은 만약 소수의 생존자인 인간들이 있지 않았다면 아예 중간계를 파괴시켜버리기 위해 마계의 문을 열어버리는 초강수까지 두었을 것을지도 몰랐다.

'지금 내가 해야 할일은 이 행복을 지켜야하는 일이지. 다시는 카일라 누나에게 어제와 같은 일을 겪게 하지 않겠어.'

드래곤 하트 5 개를 갑작스럽게 써버리게 되었지만 디아나에게 하숙비로 달라고 한 그 물품들이면 새로운 힘들을 얻을 수도 있었고, 동시에 또 추가로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똑똑-

밖에서 누군가가 손등으로 카일라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문 밖에서 변성기도 안된 맑은 소녀의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저 셀리나에요. 계시나요?"
"있어, 들어와."

끼이익-

카이라스가 허락하자 여전히 메이드복 차림을 하고 있는 셀리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가 방 안에 가득찬 카일라의 먹음직스러운 체향에 귀여운 얼굴이 굳어지는 광경은 참으로 볼만했다.

"주, 주인님...고모님이 부탁하신 물건들이 왔다고 부르시는데..."
'잠깐, 나가서 얘기하자. 괜히 카일라 누나 체향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 없잖아."
"네, 네..."

셀리나는 코를 손으로 막은 후 방 밖으로 황급히 나갔고 카이라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느긋하게 방 밖까지 걸어왔다.

"그래, 하숙비로 낼 물품들이 왔다고?"
"네...방금 도착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셀리나는 조신한 몸가짐으로 아직 카일라의 체향이 준 충격감이 남아있는지 약간 힘들어보이는 표정으로 카이라스의 말에 대답했다.

"근데 셀리나."
"네?"
"주인님이라는 말을 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이야."

사실 카이라스로서는 셀리나에게 주인님이라는 얘기를 듣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가 아르테일 공작가의 주인이 되었을때 하녀들에게는 주인님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겠었고, 실제로 시공회귀 이전 그는 주인님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봤지만 지금 이 시대의 그는 아직 소가주일 뿐 가주가 아니었다. 즉 지금은 가문의 작은 주인이니 공자님이라는 칭호로 불려야 정상이었다.

"괜찮아요, 제가 부르고 싶어서 불러드리는건데요. 하숙하는 동안 하녀 일은 열심히 할테니 허락해주세요."
"아니,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내가 곤란해지는데..."
"고, 곤란요? 주인님이? 저, 저 폐를 끼친 건가요?"

셀리나가 놀란듯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며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그리고 순수한 그녀의 눈동자가 걱정과 불안감이 담겨지고 그 속에 죄책감이라는 새로운 색이 새겨지는 것을 보자 카이라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달래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아니다. 그냥 불러라."

셀리나가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별로 큰일도 아니었고, 애초 미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휘하에 두어야하는지라 셀리나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게 될 날이 올 터이니 미리 그녀가 부르게 허락하는 것도 상관 없었다.

'괜히 애 울릴 일은 없으니까.'

어제의 그라면 셀리나가 울든지, 죽던지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이미 착하고 순수한 그녀는 뱀파이어 프린세스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어머니인 엘리나에게 무척이나 귀여움을 받고 있었고, 내색하지는 않지만 카일라 역시도 셀리나는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친부모가 아닌 고모랑 함께 생활하는 어린 소녀라는 점에서 어릴적의 자신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카이라스 역시도 뱀파이어라는 점 때문에 편견이 아직은 남아있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볼 때 셀리나가 사랑스럽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네...주인님. 히힛~"

카이라스의 허락이 기쁜지 셀리나는 정말로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메이드복을 입고 그런 표정을 지으니 그야말로 주인에게 칭찬을 받아서 기뻐하는 강아지...아니, 초보 메이드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다.

"자, 그럼 디아나가 준비했다는 것을 받으러 가자, 안내해."
"네."

셀리나는 조신한 몸가짐으로 앞장 서서 걸었고 카이라스의 그녀의 등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리고 디아나와 셀리나는 같은 방을 쓰고 있었기에 그녀들에게 배정된 방으로 도착한 카이라스는 셀리나가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갔고 그를 디아나가 활짝 웃으면서 맞이했다.

"어서와, 카이라스."
"디아나, 하숙비가 왔다고?"
"흥, 그래 왔어."

카이라스가 다짜고짜 하숙비부터 묻자 활짝 웃으면서 카이라스를 맞이하던 디아나의 표정이 삐진 표정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카이라스는 그녀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든 신경쓰지 않고는 하숙비 용도로 지급된 붉은 상자를 5 개를 열어보았다.

"감정의 돌 7 개, 블러드 마나석 5 개, 그리고 뇌전, 화염, 물, 대지, 바람의 마나가 담겨진 마나석들이 각각 5개, 피의 정령석 4개, 마지막으로 뱀파이어 족의 역사가 담긴 역사서. 이거면 충분하네."

충분하네. 라는 카이라스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디아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타박했다.

"5 개의 마나들이 담긴 마나석들은 꽤나 비싸다고 알아? 여왕인 내가 왕실의 금고까지 뒤져서 가져왔으면 고마워 좀 해야지..."
"그럼 돌려주고 하숙 그만둘래?"
"누, 누가 그만둔다고 했어? 칫, 꼬맹이가 너무 치사하게...대신 여기 몇 년이고 있을테니 그렇게 알아."
"그러던가."
"그러던가라니! 나 같은 아름다운 여신과 같은 자태를 가진 여왕님이...머물러 주는데...대체 왜 그렇게 무덤덤한거야? 정말..."

카이라스는 디아나의 현재 상태를 당연하게도 간단하게 파악했다. 그녀의 상태는...

'관심을 정말 받고 싶어하는 구나. 나에게 관심 좀 가져다달라는건데...에휴, 하여간 철이 없어. 셀리나의 반만 좀 닮아봐라.'

바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정말...대체 왜 이리 나를 무시하는거야?'

카이라스는 철이 없게 보이겠지만 디아나에게 있어서는 나름 중요한 일이었다. 아름다운 종족이라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그녀와 비견될 미모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그녀의 조카인 셀리나만이 훗날 큰다면 그녀에 비할만한 미모를 가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11 살 밖에 되지 않은 인간 소년은 자꾸 자신을 무시하며 한심하다는듯한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신경을 쓰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사실은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을 찬양받고 자라왔으며 그에 따라 자연히 자신의 아름다움에 자부심이 있는 디아나는 자신의 미모가 이곳 아르테일 공작가로 와서 인간들에게도 잘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곳에서라면 카이라스도 자신을 다르게 봐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하라나드 숲에서 그녀를 대하던 태도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카이라스는 잠시 디아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붉은 드레스 차림으로 앉아있는 그녀는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었고 그녀의 삐진 얼굴이 그녀의 기품 가득한 우아한 분위기와 어울려 상반되는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디아나."
"왜?"

카이라스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어제 대체 왜 부모님과 삼촌 앞에서 그렇게 내숭을 떤거야?"
"내, 내숭이라니..."

카이라스의 지적에 디아나는 얼굴이 확 붉어지며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셀리나가 다가오며 물었다.

"저도, 고모님의 어제 그 모습에 솔직히...많이 놀랐어요."
"세, 셀리나...너까지..."

디아나의 현재 표정은 거의 울듯한 표정이 되었지만 카이라스는 추궁을 멈추지 않았다.

"대체 왜 어제 그런 내숭을 부린건지 묻잖아. 나도 처음 봤다면 영락 없이 속아넘어갔겠는데?"
"우우...그냥...그냥..."

말을 하기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인 디아나는 손가락을 꼬며 말을 하기 힘들어했지만 카이라스가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자 결국은 솔직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냥...카이라스, 네가 날 너무 싫어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쁘잖아. 근데 내 본래 성격을 안다면 너희 부모님도 날 싫어할 거 같아서...그래! 미움받으면서 하숙하고 싶지 않았어, 됬어? 됬냐고!"

결국 디아나는 살짝 눈물이 고인 눈으로 큰소리로 카이라스를 향해 소리쳤다.

'하아, 정말...화를 못내겠어.'

그렇게 생각한 카이라스는 바로 디아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 많이 창피했을텐데 너무 추궁했네."
"에?"

카이라스가 갑자기 사과를 할 줄 몰랐기에 디아나는 잠시 아름다운 입술을 벌린채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가 이내 다시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갑자기 사과를 하고...이래서는 화도 제대로 못내겠잖아."

그러나 카이라스가 사과를 한 것이 싫지 않았는지 고개를 돌린채로 살짝 웃음을 짓는 디아나의 모습을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있어 카이라스는 눈으로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의 웃음소리가 살짝 흘려나온 것을 듣고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정말 어린애 같은데 그게 또 귀여워보여서 화를 못내겠단 말이야.'

유리아나를 죽인 그가 증오하는 뱀파이어 퀸과는 모습은 똑같지만 내용물이 완전히 달라서인지 정말 미워할 수가 없었다.

"저, 주인님. 이거 운반을 도와드릴까요?"

옆에서 조신한 몸가짐으로 얌전하게 서있던 셀리나가 카이라스에게 뱀파이어 공작들이 디아나에게 배달한 상자들을 가리키며 묻자 카이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공간에 넣어서 가면 되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아공간을 열어서 바로 5 개의 붉은 상자들을 모두 아공간의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럼 디아나, 하숙비는 잘 받았어."
"...흥!"

디아나는 카이라스가 사과를 했지만 아직 삐진 것이 가시지 않았는지 카이라스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가 말을 걸어오니 고개를 홱- 돌렸고 그 때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리고 아름다운 금발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모습이 보여져 마치 한 폭의 여신도와 같았지만 카이라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고 그 뒤를 디아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방 밖으로 나간 셀리나가 따라갔다.

"혼자네..."

방 안에 혼자 남겨진 디아나는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그대로 자신의 침대에 앞으로 누운 후 베개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4 년만 큰다면...좀 좋게 봐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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