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강해지려 하다.] 2
슬픔의 정령 세오.
백발의 소녀의 모습으로 중간계에 등장한 그녀는 슬픔의 정령이란 이름 그대로 너무나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정말 거대한 슬픔...가지고 있어.]
정령 소환진 밖으로 걸어나온 그녀는 자신을 소환한 카이라스에게 깊은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감정의 돌에 자신의 슬픔의 감정을 잔뜩 불어넣고는 감정의 돌, 정확히 이제는 '슬픔의 돌'을 손에 쥐고 있던 카이라스는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이런 슬픔...처음 봐...정말 커...]
그리고 카이라스의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카이라스의 바로 앞에서까지 얼굴을 갖다대며 그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던 카이라스가 물었다.
"슬픔의 정령 세오, 나와 계약을 할 생각이 있어?"
[계약?...계약...당신...슬픔 커...할래...계약.]
세오가 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카이라스는 슬픔의 돌을 세오에게 건네주었고, 세오는 그 슬픔의 돌을 두 손으로 받았고 슬픔의 돌은 세오의 돈에 닿는 순간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안에 들어있던 막대한 슬픔들은 세오에게 흡수되었다가 카이라스에게로 돌아왔다.
슈우우웅!
카이라스의 오른쪽 손등에서는 하나의 문장이 빛을 발하더니 잠시 후 사라졌고 세오는 여전히 슬픈 얼굴로,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완료...당신 슬픔...잘 인식...]
그리고 계약을 마친 슬픔의 정령, 세오의 모습은 카이라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대로 성공했군."
세오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카이라스는 계약이 성공하여 슬픔의 정령이 자신의 정령이 되었음을 느끼었다.
정신계 정령은 원소계 정령이나 자연의 정령들과는 달랐다. 원소계 정령이나 자연의 정령들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들이라면 정신계 정령들은 인간들이 가진 감정에 의해서 탄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신계 정령은 불러내기 위해서는 감정의 돌이 필요했고 그 감정의 돌은 뱀파이어들의 영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었다.
그렇지만 정신계 정령은 물리적 전투능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이었기에 정신계 정령과 계약을 하려드는 사람들도 없어서 안그래도 희귀한 감정의 돌을 통해서 정신계 정령을 불러내어 계약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거기다가 정신계 정령은 그냥 감정의 돌만 있다고 소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로 슬픔의 정령을 소환하고자 한다면 감정의 돌에 자신의 슬픔의 감정을 잔뜩 불어넣어 인식시켜야 하는데 그런 슬픔이라면 적어도 일가족을 다 잃은 슬픔 정도는 있어야했기에 이런 고난이도의 소환 조건들은 정신계 정령들이 더더욱 찬밥 대우를 받게 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신계 정령도 정령은 정령이었으니 정신계 정령의 힘을 사용시에는 그만큼 마나를 소모하는데 여러모로 볼 때 전투에는 정신계 정령보다는 원소계 정령들이 훨씬 강력하고 효율적이었다.
'원소계 정령과는 달리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힘만을 방출하지. 모습을 볼 수 없는 감정 그 자체에서 파생되었으니까.'
여러모로 안 좋은 조건들이 많은 정신계 정령들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카이라스에게 유용했다. 아니 미래에 유용하게 될 것이었다.
"자, 그럼 나머지 정신계 정령들도 소환해볼까."
카이라스는 계속해서 정신계 정령의 소환에 몰입했다. 그리고 나머지 분노, 복수, 신념, 증오, 절망, 공포. 이 6 명의 감정을 상징하는 정신계 정령들과의 정신계 정령들과도 계약을 맺은 카이라스는 이어서 자연의 기운들이 가득 차 있는 드래곤 하트들을 들어올렸다.
'일단 정령왕들을 소환할 수 있을때까지는 모아두려고 했지만 이미 중급 정령들을 소환해버렸으니...그들을 강하게 만들어 정령왕까지 만들어야겠지.'
그렇게 카이라스는 이제 정령들에게 물어볼 것이었다. 단숨에 상급 정령이 되고 천천히 느리게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기운들을 모아뒀다가 단 한 번에 정령왕이 될 것인가.
"실프, 운디네, 노움, 샐러맨더, 일렉트론. 모두 나와."
그리고 5 명의 원소의 정령들이 카이라스의 부름을 받고 다시 중간계로 돌아왔다.
[아, 라스 드디어 끝났어~끝났어?]
[주인님~드디어 불러주셨군요.]
[허허, 노움 마스터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주인, 생각보다 빨리 불러줬네.]
[마이 마스터, 하시는 일들은 끝나셨습니까?]
다섯 명의 원소 정령들이 모두 모이자 잠시 그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카이라스는 5 개의 드래곤 하트들을 마나로 허공에 들어올렸고 각자 자신들의 속성과 똑같은 속성을 가진 기운들에 5 명의 정령들은 모두 드래곤 하트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드래곤 하트에 들어있는 깨끗한 자연의 기운들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으니깐.
"너희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해. 지금 이 기운들을 내가 흡수한다면 나의 각 속성의 친화력이 대폭 올라갈테고 자연스럽게 너희들은 단번에 상급의 정령이 될 수 있을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상급 정령에서 멈추게 할 생각은 없어. 왜냐하면 나는..."
카이라스는 긴장감을 형성하기 위해 말을 잠시 멈추고는 뜸을 들였고, 그의 이어질 말이 궁금한 정령들은 호기심 반 기대 반인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카이라스는 혀로 입술을 살짝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정령왕까지 만들어줄 생각이거든."
정령왕! 정령들에게 있어서는 신과 다름없는 존재!
자신들을 이런 존재로 만들어준다고 하자 정령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 주인님.]
그리고 운디네가 살짝 손을 들며 말했다.
"왜?"
[정령왕이...정말 될 수 있나요? 저희가?]
"가능해. 단, 당장은 아니고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거야."
[겨우 몇 년이요?]
"그래, 그리고 당장은 너희들을 상급 정령까지 만들어줄 힘이 있지. 하지만 그럴 경우 너희들이 정령왕이 되는 시간이 늦어질거야."
[어째서 그런데요?]
운디네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카이라스에게 묻자 카이라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령들은 한 번의 단계에서 성장할 때 많은 기운들이 소모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
[네...아!]
운디네는 카이라스의 말에 왜 상급 정령이 지금 단번에 된다면 정령왕이 되는 시간이 늦춰지는지 깨닫고는 손바닥을 짝-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살포시 카이라스에게 안겨왔다.
[주인님은 정말 아시는 것도 많으시네요.]
카이라스는 자신에게 안겨오는 운디네에게서 풍겨오는 체향을 느끼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정령이랑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 때문이었나.'
중급 정령인 운디네는 아직 12 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이대로 상급 정령이 된다면 문헌상과 시공 회귀 이전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는 16 살 정도의 소녀의 모습을 하게 될 것이었고, 그것도 엘프 여성들 이상의 엄청난 미소녀의 모습을 하게 되어 그 아름다운 모습에 상급의 물의 정령사들은 빠져들어 상급 이상의 물의 정령인 운디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결혼을 하여 운디네를 진심으로 아내로서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경우는 최상급의 물의 정령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실 운디네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장 빠져들기 쉬운 정령이었다.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만이 아니라, 물의 정령으로서의 권능은 전투만이 아닌 실생활에도 무척 유용했는데 예로 설거지나 빨래거리도 물의 권능으로 단숨에 깨끗하게 해버리며 맑고 시원한 생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며 동시에 정령인지라 정령사의 말에 절대적인 복종을 보이고, 또 운디네의 평균적인 성격들도 부드러운 성격인 것이 평균적이었으니 그야말로 집안일 잘하고 순종적인 착한 아내의 표본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운디네에게서 풍겨오는 것은 사내를 유혹하는 여인의 체향이었고 아직 중급 정령이라 어린아이 모습일때도 이런데 상급 정령이 된다면 아마 정령사가 남자일 경우는 정말 이성적으로 미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카이라스에게 안겨붙는 운디네는 찰랑차랑 거리는 폭포수와 같은 긴 푸른 머리카락에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부드러운 인상의 미소녀일지 언정 12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카이라스에게 아무런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자, 일단 잠시 떨어지고. 일단 너희들 5 명이서 서로 얘기를 해봐. 단번에 상급 정령이 될지, 아니면 상급과 최상급의 경지를 뛰어넘어서 단번에 정령왕이 될지 말이야."
카이라스가 선택권을 주며 자신에게 안겨붙어서 애교를 부리려는 운디네를 떼어내자 운디네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미련이 남은듯 그를 힐끗 쳐다보다가 정령들의 사이로 돌아간 그녀는 4 명의 정령들과 함께 잠시 몇 초 동안 말로 얘기를 나누지 않고 정령들이 가진 '정령의 의지'를 통하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회의를 하였고 몇 초의 회의를 끝내자 정령들은 서로 자신들이 카이라스에게 보고를 올리고 싶어했지만 운디네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장난기 많은 실프나 샐러맨더까지도 기가 죽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운디네는 정령들에게 보여준 도끼눈이 거짓인듯 화사한 미소를 방긋방긋 짓고는 카이라스에게 다가가 자신이 직접 보고를 올렸다.
[주인님...상급 정령이 당장에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찬성 3표, 반대 2표로 결정이 났어요.]
역시 늦게 정령왕이 되더라도 당장에 강해지는 것에 대한 유혹도 상당했는지 회의의 결과는 찬성이 3 표로 반대의 2 표를 앞서고 있었다. 강함에 대한 갈망은 정령들 역시 인간들에 못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 그럼...이 드래곤 하트들에 담긴 기운을 흡수할께. 그럼 너희들에게 공급해주는 기운도 늘어날테고 너희들은 상급의 정령이 될테지."
그들을 상급 정령으로 만드는데는 드래곤 하트에 담긴 마나를 80% 정도는 카이라스 본인이 흡수하고 나머지 20%는 그녀들이 승급을 하는데 사용될테지만 카이라스는 아깝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나 6 서클의 마법사 수준의 강자를 한 번에 5 명이 생기는 것이니까.'
소드 마스터에 필적하는 힘을 지녔다고 알려진 상급의 정령이 5 명이나 되는 것은 그만큼의 전력의 상승을 의미했다.
'정령왕들은 중간계로 오면 약화된다고 하지만 하나하나가 에이션트급 드래곤들에 맞먹는 존재들. 정령왕들과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이른 무위에 10 서클 마법의 경지를 되찾는다면...에라시안도 막을 수 있을거야.'
강해지려 하는 이유들은 다들 다양했지만 이렇게 아르테일 공작가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강해지려 하고 있었다.
"자, 그럼 누구부터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흡수할래?"
[당연히 저부터죠. 주인님~]
이번 것은 다른 정령들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 들 것을 안 운디네는 바로 선수를 쳐서 윙크를 살짝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강조했다.
"그래, 그럼 우선 20%를 흡수하고 완전히 소화시키지 말고 있어. 내가 80%를 모두 흡수하고 나면 그 때 네가 흡수한 20%는...너를 상급의 정령으로 만들어줄테니까."
[네!]
운디네는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고, 이 날 5 명의 상급의 정령들이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탄생하였다.
'자, 이제 그럼 아버지에게 적당히 사실을 밝혀볼까.'
상급의 정령들이 탄생한 날, 카이라스는 마침내 아버지에게 어느 정도 진실을 밝히기로 하였다. 이전이라면 그를 미쳤냐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이라면 시공회귀가 아니더라도 이종족들의 위협 같은 것은 충분히 설명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