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친구와의 재회]
알브레히트 백작가.
역사가 깊은 가문이었지만 성세가 대단한 가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영지 역시 고만고만한 백작령 수준이었고 영지 내에서 특산물도 그다지 다양하지 못했으며 마법사의 전력 역시 강하지 못했다. 그런 알브레히트 백작가에서 내세울 것은 바로 전통 깊은 기사 가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배출하지 못한지 어언 200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나마 소드 마스터들을 대대로 배출하는 것으로 가문의 명성을 유지하는 알브레히트 백작가에서 후계자인 장남인 링엑은 재능이 또래에 비해서 뛰어난 편이었기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는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재능은 백작가 내부에서 빛을 잃고 있었는데 바로 그의 동생인 지그문트의 존재로 인함이었다.
그는 진짜 천재였다. 9 살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그는 13 살인 현재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올라 단숨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기에 가문 내에서도 200 년 만에 다시금 알브레히트 백작가에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감을 안겨주는 존재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차남이었다.
가문의 후계자는 어디까지나 그의 영인 링엑이었고, 또 무엇보다도 링엑은 아무런 흠이 없었다. 지그문트에 비해서는 재능이 급격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소드 마스터에는 충분히 오를 재능을 가지고 있고 성실한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그문트가 보여준 성과가 가문에서 가장 좋은 검술과 마나연공법으로 보여준 성과가 아닌 그보다 아래인 등급의 검술과 마나연공법으로 보여준 성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링엑이 후계자로서 물려받은 가장 좋은 검술과 마나연공법을 익혔었다면 이미 소드 마스터에 올랐을 것이라는 의견이 가문 내에서 팽팽했다.
그런 와중에 지그문트는 호위 기사들을 데리고 리히테나워 공작가에서 열려지는 검술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길을 떠난 상태였다.
1794년 7월 15일.
리히테나워 공작가는 검술을 최고로 중시하는 가문이었다. 아르테일 공작가가 마법을 중시한다면 리히테나워 공작가는 검술을 중시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국 내에서 최고의 검사들을 배출하는 가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역시 아르테일 공작가에 비하면 같은 공작가라 해도 몇 수 처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제국 내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 중 무려 3 명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리히테나워 공작가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것이었지만 얼마전부터 그 명성도 한풀 꺾인 상태였다.
바로 마법사 가문인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3 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카일라라고 하는 공작가의 차기 안주인 후보이며 공작 부인인 엘리나의 친조카딸이라는 그녀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검사라고 유명하긴 했지만 그보다 미모로 더욱 유명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24 살의 나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르면서 제국이 정말인지 발칵 뒤집혔다.
24 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라니! 그야말로 최연소의 경지였고, 그런 그녀가 공작가의 차기 후계자인 카이라스의 약혼녀라고 알려지자 그녀의 가치는 더더욱 올라갔다. 비록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인 카이라스가 14 살 밖에 되지 않아 그녀보다 10 살이나 연하라지만 이미 대마법사의 반열에 든 그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필적하는 경지에 이르어있었기에 아무도 카일라가 아깝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14 살에 불과한 소년이지만 제국 최고의 가문인 아르테일 공작가의 차기 가주이며, 아버지인 루스칼리스를 빼닮았다는 수려한 용모, 성년도 되지 못한 나이에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대륙 역사상 최고의 천재!
카이라스의 존재로 인해 아르테일 공작가는 후대에 지금보다 더한 성세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에 부정을 표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카일라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름에 따라 보유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숫자까지 같아진 리히테나워 공작가는 보다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들의 영지에서 검술 대회를 열었고, 그 나이 제한 역시 20 세를 넘은 사람들은 출전할 수 없다는 제한을 걸어두기까지 했다.
이는 보다 젊고 장래가 유망한 검사들을 찾아내서 영입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런 리히테나워 공작가의 공작령에 지그문트는 호위 기사들을 대동한채 마침내 도착했다.
"정말, 화려한 도시군요."
리히테나워 공작령을 둘러보며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상당히 시원한 인상의 잘생긴 소년, 지그문트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 13 살 밖에 되지 않고 백작가 내부에서도 거의 항상 검술만 수련하며 보내왔던 그는 백작가 이외의 장소를 가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크게 발전한 도시는 아닌 알브레히트 백작령만을 보아왔던 그의 눈에 리히테나워 공작령은 그야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번화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있었다. 그리고 듣도보도 못한 각종 마법 기물들이 마법 상점들에서 팔리고 있었으며 곳곳에 검술을 대련하는 가벼운 대련장들이 보였으며 용병 길드들 역시 무척이나 거대했다.
"허허, 그야 당연한 말입니다. 황도와 아르테일 공작령을 제외한다면 제국 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니까요."
그를 호위하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검사, 한스가 어린아이 답게 신기해하는 지그문트에게 웃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근데 한스 경."
"네, 도련님."
"아르테일 공작가가 그렇게 대단해?"
지그문트의 호기심은 그 나이 또래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스는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할지 고민이 들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현재 성세는 마음만 먹으면 제국에서 벗어나 왕국을 따로 세울 정도로 막강했고, 우스운 것은 그런데도 제국의 황실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3 명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5 명의 9 서클 대마법사, 그리고 7 명의 8 서클 대마법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의 발표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는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은퇴하여 칩거를 하며 오직 마법만을 연구하는 숨겨진 전력들이 제외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원로원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오직 아르테일 공작가의 수뇌부들만이 알 것이었다.
거기다가 당대의 아르테일 공작은 9 서클의 마스터. 거기에, 9 서클의 마스터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지그문트가 받을 충격이 너무 클 것이라 생각한 한스는 적당히 현재 드러난 전력만을 알려주었고 그들이 가진 막대한 자금력이나 거대한 생산력들도 설명을 해주자 지그문트의 얼굴에도 경악이 떠올랐다.
"대, 대단한 곳이네...한스 경, 근데 그 정도면 황실에서 견제를 하지 않아?"
"견제를 했다간 제국의 전력이 반토막이 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르테일 공작가는 스스로 정치에 불참을 항상 선언하고 있고, 일단은 황제 폐하께는 충성을 맹세하고 황실파에 속하고 있으니까요."
당대의 황제는 제법 현명한 황제였기에 아르테일 공작가가 정치에 참여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도움을 여러가지 얻어내고 있었다.
예로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제작한 마법 물품들이나 그들이 가진 자금을 지원받는 것만으로도 황실의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아르테일 공작가가 일단 명목상으로라도 황제만을 따르는 황실파인 이상 황제의 현재 권력은 무척이나 탄탄한 상태였다.
"정말 권력에 욕심이 없는 가문이군."
"그렇기보다는 귀찮은 거겠지만요. 올곧은 기사들이 검술의 단련을 위해서 권력을 멀리하듯이 정상적인 마법사들은 권력욕이 아닌 지식에 욕구를 품고 있어서 괜히 권력 분쟁에 얽히기 싫다는 것이겠지요."
한스의 말에 지그문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우리 가문은 아직 한참 멀었네."
'멀었네 수준이 아니라 비교 자체가 안됩니다.'
한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주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여기에서 방이나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면목 없습니다. 예약을 받아주는 여관들이 모두 예약이 꽉차 있던지라. 허름한 여관이라도 찾아야겠습니다. 이미 그럭저럭 되는 여관들도 모두 검술대회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가득한지라..."
지그문트의 말에 한스가 정말로 면목이 없는듯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하하, 어쩔 수 없잖아. 도중에 그래도 좋은 일을 했으니 후회는 안해."
지그문트는 그렇게 한스를 위로하였고 한스는 주위의 호위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들 허름한 여관이라도 좋다. 도련님이 푹 쉬실 수 있는 여관을 반드시 찾아내도록 해!"
""네!""
그들도 지그문트가 왜 늦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의욕 있게 대답했다. 바로 리히테나워 공작가로 오던 도중 산적들에게 자기의 언니가 잡혀갔다고 눈물을 흘리며 지그문트에게 "기사님, 제발 저희 언니를 구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지그문트의 마음을 움직여 그는 그대로 호위 기사들과 함께 산적 소굴을 습격해서 거기에서 잡혀있는 여인들을 구해주고 소녀를 언니와 재회하게 해주었다.
철저하게 기사도를 숭상하는 지그문트에게 레이디란 마땅히 보호받아 마땅한 존재였고, 그렇기에 그 때문에 늦어졌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을 했고, 그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던 여인들과 "기사님, 고마워요."라면서 자신에게 꽃을 건네주던 7 살의 어린 소녀의 모습이 13 살의 지그문트에게는 참으로 훈훈하게 가슴에 각인되어있었다.
'아니, 그래도 그녀들이 그냥 돌아가기 무서워한다고 알브레히트 백작령으로 말까지 태워주고, 사람들을 딸려서 보내준 것은 너무 과했습니다.'
한스는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하였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 역시도 그들을 향해서 감사를 표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가슴이 훈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속세의 때가 묻었던 자신이 어린 시절 기사도를 꿈꾸는 것이 기쁘게 다가오면서도, 이 순수한 도련님의 마음이 세상의 때에 물들어 변하지 않기만을 빌었다.
"보아하니, 머물 여관을 찾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 때 아직 변성기도 끝나지 않은듯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지그문트와 한스를 비롯하여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오는 뒷쪽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상당히 화려한 검은 예복을 차려입고 있는 무척이나 잘생긴 용모의 흑발의 소년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나이는 많아야 열네살 쯤 되었을까? 지그문트와도 거의 나이 차이가 없어보이는 소년은 웃음을 지으며 지그문트에게 물었다.
"내일 검술 대회에 출전을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분명 시녀나 시종, 호위기사들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이거늘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겨져오는 위압감으로 인해 상대의 신분이 보통 신분이 아님을 직감한 지그문트 역시 바로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실례지만 귀하의 신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저는 알브레히트 백작가의 차남인 지그문트라고 합니다."
"네, 저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입니다."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
그 이름이 공개되자 기사들은 충격으로 가득찬 표정이 되었고 그 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시선들 역시 일제히 카이라스를 향한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워하는 지그문트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이라스는 살포시 웃음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