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친구와의 재회] 4
"그래도 카이라스 형님 정도나 되니 그런 분을 약혼녀로 맞이한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카이라스 형님이 오른 대마법사의 경지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비견되는 경지잖아? 그런 경지를 14 살에 올랐으니 정말 대단하지."
"당대의 아르테일 공작님도 서른이 되지도 않은 나이에 9 서클에 오르셔서 세상을 놀라게 했었는데 그 아드님은 정말 더하군요."
소가주이자 후계자인 카이라스가 14 살의 나이에 9 서클에 입문을 하는 것으로 인해 상당히 잊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서른이 되기 전의 나이에 9 서클에 입문한 루스칼리스는 그 천재적인 재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었고 현재까지도 9 서클 마스터로서 대륙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는 그는 현재까지도 제국의 수호신이었고 대륙 최강의 인간 중 한 명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당대에서 그저 띄워주기로 인해 그와 같은 경지에 두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진정한 최강자는 바로 그 하나였다.
"그럼, 짐도 풀러겠다. 모두들 쉬어. 그 동안 수고 많이 했으니까."
"네, 도련님도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1 시간이나 있다고 하니 그 동안 좀 쉬십시오."
"그래, 일단 식사 이전에 목욕부터 해야겠어."
마침 아까전에 시종이 목욕물이 다 준비되었다는 말을 했기에 지그문트는 그 동안 목욕을 할 생각이었다. 오면서 클린 마법이 담겨진 아티팩트로 산적들의 피 같은 것은 모두 닦아내며 목욕을 끝낸 것과 같은 청결함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따뜻한 목욕물 안에서 피로가 풀어지는 느낌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3 층으로 올라온 카이라스는 욕의로 아슬아슬하게 주요 부위들을 가린채 침대 위에 앉아있는 디아나의 모습을 보았고 유리아나 역시 욕의는 입지 않고 새하얀 어린이용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살짝 촉촉하게 머릿결이 젖어있는 것을 보아 둘이 목욕을 했음을 알아차렸다.
"라스 오빠~"
그리고 카이라스를 보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8 살의 깜찍한 용모의 소녀 유리아나는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그대로 정확하게 카이라스에게 달려가 안겨왔고, 미래에 성장한 그녀를 아내로 삼고자 하는 카이라스는 비록 아직 어리지만 귀엽고 깜찍하기 그지없는 사촌여동생 유리아나를 바로 자신의 품에 받아서 마주 안아줬다.
"아유~우리 유리아나, 깨끗히 씻었구나?"
"응! 응!"
둘은 무척이나 사이가 좋은 남매의 모습이었지만 둘이 이런 모습을 보일때 언제나 그렇듯이 방 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도저히 속에 능구렁이가 있는듯한 카이라스의 평상시 모습과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라스 같지 않아."
"응, 그건 동감이야."
카일라의 말에 디아나 역시 동감을 표했다. 그러자 카이라스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뭐, 어때? 유리아나가 귀여워서 그런데. 그치, 유리아나~"
"응, 헤헤~"
유리아나의 웃음을 볼때마다 카이라스는 시공회귀 이전 카일라 못지 않은 아름다운 절세미녀로 성장했던 유리아나의 모습을 저절로 떠올렸고 그 때문에 그녀에 한해서는 극도의 시스콤 같은 끼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의 목적은 유리아나가 성장한다면 아내로 삼을테지만 그의 시커먼 마음(?)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이 볼 때는 사촌여동생을 과도하게 사랑하는 시스콤 같은 오빠의 모습이었다.
"근데 카이라스, 여긴 설마 유리아나 보러 온거야?"
디아나는 카이라스가 자신은 쳐다보지도 않고 유리아나만 끼고 있자 약간 심술이 났는지, 입술을 삐죽이면서 물어왔다. 그리고 그 말에 카이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연히 너도 같이 보러 왔지. 가끔 하는 짓을 보면 유리아나보다 어려보이니까."
"우우, 뒷말은 좀 빼주지."
앞의 말에 만족했던 디아나의 뒷말에 입술을 다시 삐죽였고 카이라스는 디아나의 모습을 흝어보았다.
하는 짓이 어린애 같아서 그렇지, 외모 하나만큼은 진짜 끝내주는...카일라와 비교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미녀인 디아나였다.
늘 찰랑거리던 금발의 머리카락이 물기에 촉촉하게 젖은채로, 평상시의 붉은 드레스 차림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것이 아닌 새하얀 욕의로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복장을 하고 있어 욕의 아래의 새하얀 허벅지와 늘씬한 두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들어나는 광경은 아찔할 정도였다. 특히나 육감적인 그녀의 몸매와 늘씬한 팔다리가 이렇게까지 강조된 적은 3 년 사이 없었기에 카이라스도 그 모습에 쉽사리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기에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나마 카이라스니 살짝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정신을 차렸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타구니를 붙잡고 미치려 들었거나 아니면 코피를 쏟고 기절했을 것이었다. 그만큼이나 지금 디아나에게서 풍겨오는 색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왜 그래?"
그렇지만 순진한 디아나는 카이라스가 자신을 보면서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의아해하며 물어왔다.
"아니, 그냥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어서..."
카이라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디아나에 대한 증오가 있던 시절의 그였다면 디아나가 이런 색기와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 대한 원한이 남아있지 않은 지금의 그는 디아나의 저런 모습에 저항하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그녀가 귀여워보이며, 또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을 볼 때마다 키스의 충동을 느끼는 것을 억지로 자제하기까지 하는 실정이었다.
"어디 아파?"
디아나가 순진하게 물어오고 카이라스는 그 모습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었다. 이런 순진함...허세도 부리고 솔직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런 순진함 때문에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만 보이는 것일 것이었다.
'이러다가 진짜로 내 년에는 카일라 누나랑 결혼한 후에 디아나에게 청혼할 지도 모르겠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신이 뱀파이어 퀸 디아나를 마음에 들어하다니?
'카일라 누나야 이해심이 넓지만 미안하긴 하네.'
시공회귀 이전의 카일라는 카이라스가 여러명의 여자들을 두고 있는 것을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아르테일 공작가의 가주 쯤은 되면 아내가 7 명은 기본이었고 아내를 엘리나 한 명만 두고 있는 당대의 가주인 루스칼리스가 특이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루스칼리스는 두 자리 수를 넘어서 세 자리 수에 달하는 여자들과 수도 없이 관계를 맺었으니 어느 쪽이 좋다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었다.
'이해는 하고 받아들여주겠지만 약간 기분은 나쁘겠지...'
갑자기 마음이 썼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카일라 하나만을 사랑하고 지낼 수는 없었다. 카일라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당장 시공회귀 이전 유리아나 역시 카일라 못지 않게 사랑했으며 그 외에도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여럿이었으니깐.
"라스."
카일라가 조용하게 카이라스를 불렀다. 그녀 역시 디아나를 쳐다보는 카이라스의 모습을 보고 그가 디아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하긴 일부로 이곳까지 디아나를 동행시킨 것에서 눈치챌 법도 했었다.
"처음은 나야. 기억해."
"당연하지, 처음도, 첫사랑도 모두 누나인걸."
카일라의 허락에 가까운 말에 카이라스는 미소를 지었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리아나와 디아나가 동시에 카이라스를 쳐다보았다. 8 살의 소녀와 성숙한 미녀가 동시에 그런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은 은근히 웃기기도 했다.
"디아나."
"응?"
"어디 아픈건 아니야. 그러니 걱정은 안해도 돼."
"그래? 다행이네....가 아니라..거, 걱정 안했거든!"
카이라스의 말에 안도하며 솔직하게 말을 하던 디아나는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은 것을 깨닫고는 급히 바로 말을 더듬으며 부정했다.
"후후, 그래 알았어."
그러면서 카이라스는 살짝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넘겨주었다. 이전이라면 계속 추궁하며 그녀를 놀려먹었겠지만 이제 그는 그렇게까지 짓궃은 짓을 디아나에게 하지는 않아가고 있었다.
"근데 카이라스, 궁금한게 있는데...아까전 여러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는데 그 사람들은 누구야?"
"아, 그 사람들? 잠시 하루 정도 여기 별장에서 머물 사람들이야."
"공짜로 머물어?"
"일단은 공짜지. 그렇다고 그렇게 삐진 표정 짓지마."
카이라스는 공짜로 그들을 머물게 해준다는 그의 말에 디아나가 입술을 삐죽이자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대체 왜 쟤는 남자들에게까지 질투하는거야?'
자신이 게이도 아니고, 남자들에게 성적인 관심 따위가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설마 자신이 남자보다 대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건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럴듯했다. 그리고 디아나가 실제로 삐진 이유이기도 했다.
"흠, 어쨌든...일단 자세한 것은 설명해줄 수 없지만 디아나. 우리 부모님하고 카이우스 삼촌 앞에서 보여주던 그 내숭 연기 가능하지?"
"응, 가능하긴 한데...생각만 해도 오글거려."
디아나가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 당시 내숭을 보이면서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운 고결한 처녀의 연기를 보였던 디아나였지만 그녀는 사실 그 당시 그 연기를 무척이나 오글거려했다. 손발이 떨린달까?
"일단 그 연기를 좀 더 부탁해야겠어. 카일라 누나가 예의 바른 귀족 영애로서의 모습을 마침 보인 상태니까 말이야."
그 말에 디아나는 카일라를 노려보았지만 카일라의 감정을 읽기 힘든 차가운 표정에 "칫!"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아직까지 카일라와 대화를 깊이 나누기를 꺼려했는데 워낙에 차갑고 말투도 무미건조한 카일라다보니 외모는 아름답더라도 대화의 상대로는 별로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공할 먹음직스러운 체향이 풍긴다만이 디아나에게는 마음에 드는 점이었지만 어차피 그녀는 죄도 짓지 않은 인간이라 디아나의 뱀파이어 퀸으로서 죄를 짓지 않은 인간의 피는 마시지 않는다라는 규율을 지켜야하는 입장 상, 어차피 먹지도 못하는 음식(?)이었으니 의미도 없었다.
"카이라스, 슬슬 허기가 느껴지는데 블러디 캔디 하나만 줘."
"알았어."
카이라스는 디아나의 말에 블러디 캔디 하나를 아공간에서 꺼내 건네주었고 그 블러디 캔디를 받아든 디아나는 바로 자신의 입 안에 그 블러디 캔디를 넣었다. 그러자 그 블러디 캔디가 입 안에서 바로 핏물 같이 변하였고 그 피를 모두 마신 디아나는 갈증과 허기가 모두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아, 역시 블러디 캔디는 정말 축복 받은 음식이야. 여왕님을 위한 화려한 음식이라 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배가 찼으면 이제 드레스로 갈아입어. 나는 카일라 누나와 유리아나랑 잠시 나가있을테니까. 셀리나는 지금 저녁식사 차린다고 요리까지 하고 있는데 말이야."
"...알았어. 옷 입을테니 잠시 나가 있어줘."
그러면서 디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이라스는 히죽 웃으면서 유리아나를 끌어안았다.
"자, 유리아나. 우리 잠시 같이 나가자."
"응! 헤헤~"
아무리 시공회귀 이전 검의 여제라 불렸던 유리아나라 해도 지금의 그녀는 그저 검술에 좀 재능 있는 8 살 짜리 소녀에 불과했고 좋아하는 사촌오빠의 품에서 어린아이 다운 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라스."
그 때 카일라가 카이라스를 갑자기 불렀다.
"저녁 먹고 나서 잠시 둘이서 얘기 좀 하자."
"...알았어."
카이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때 그는 카일라가 디아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줄로만 알았지, 그가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를 물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