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선물]
"정말인지 기가 막히는군."
검술대회가 모두 끝난 후 리히테나워 공작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말인지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후후후, 하하하하!"
그러나 이내 리히테나워 공작은 뭐가 그리 유쾌한지 큰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잠시 후 홀로 집무실에서 웃음을 터트리던 그가 피식 거리며 중얼거렸다.
"맹랑한 놈,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여자를 잔뜩 띄워주고 자기 여자라고 당당히 선언을 하다니. 후후후, 뭐 사내라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겠지."
그리고 이내 리히테나워 공작은 아쉽다는듯 입맛을 다셨다.
"내게 딸이라도 하나 있다면 사위로 삼고 싶은데 말이야. 가문 내 여자를 다 뒤져보아도 그 놈의 약혼녀의 얼굴이나 능력의 반의 반도 따라갈 아이들도 없으니..."
루스칼리스가 정말 아들을 잘 뒀다고 생각하며 리히테나워 공작은 생각했다. 루스칼리스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고 아르테일 공작가도 여전히 재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몇일 전이었다면 그저 열등감을 느끼며 분노를 하겠지만 지금은 열등감 같은 것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
'인류 자체를 위협하다니...일단 이종족들이 꾸미는 음모를 알아차렸다고는 눈치채지 못하게 보다 강한 검사들을 양성해야겠어. 또 비밀은 일단은 나만 알아두는게 좋겠지.'
리히테나워 공작가 역시 이렇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히테나워 공작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우선 자식들을 더욱 엄하게 굴리는 것이었고, 영문도 모르고 휴식 시간들까지 거의 대부분 박탈당한 그의 아들들은 정말인지 피눈물이 나는 살인적인 수련일과에 저주했다.
"으아악,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 저주한다!"
"왜 거기서 9 서클 마법을 써서 잘난 척을 해서 우릴 이 꼴로 만들어!"
"크윽, 너희들은 좀 닥치고 있어. 장남인 내가 제일 고생하는게 안보여?"
평상시 아버지의 아르테일 공작가에 대한, 아니 루스칼리스 폰 아르테일에 대한 열등감이 어떤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것을 다 루스칼리스의 아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자신들에 대해 아버지가 열등감을 느껴서, 또 이번 검술대회가 카이라스와 그의 약혼녀, 카일라의 무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불만의 표출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 * *
"......"
금발에 매혹적인 붉은 색 눈동자를 가진 숨 막힐듯이 고결해보이는 아름다운 미녀, 디아나는 말 없이 방 안에서 침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있었다.
"고모..."
메이드복을 입은 흑발의 미소녀, 셀리나가 약간 안쓰러운듯 그녀의 옆에 앉아서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디아나는 그녀의 부름에도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있었지만 셀리나는 그녀의 기분을 이해하였기에 그저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정말인지 짜증나."
디아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거울의 앞으로 다가갔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에 새하얀 조각 같이 아름다운 어깨와 풍만한 가슴의 윗부분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졌다.
그렇지만 디아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기분 나빠...아까전의 그거...정말 기분 나빠..."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가 떠올린 것은 당당하게 카일라를 자기 여자라고 선언하며 건들면 죽여버리겠다던 카이라스의 선언이었다. 유리아나가 카이라스와 카일라가 중요한 일을 한다니까 자신은 방해되지 않기 위해 집에 남아있겠다고 하는 바람에 셀리나랑 그녀를 같이 돌봐주냐고 직접 경기장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뱀파이어 퀸으로서의 권능으로 패밀리어인 박쥐들을 통해서 그 모습을 생생하게 보았고, 또 들었었다.
카이라스가 카일라를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아까 전의 그 모습을 생각만 할수록 자꾸만 속이 쓰라려오고 화가 솟아올랐다.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 같았기에.
스으윽!
그리고 디아나는 거울을 쳐다보며 자신의 붉은 드레스를 벗어던졌고 그러자 거울에는 새하얀 커다란 가슴을 그대로 내놓고 있는 검은 색의 팬티 차림을 제외하면 완벽한 순백의 나체를 드러내고 있는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대체 뭐가 부족한거야? 이렇게 예쁜데..."
거울을 쳐다보며 자신의 입술을 삐죽이면서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는 디아나였지만 그녀의 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울에서 비치는 금발의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운 기품 넘치는 미녀가 팬티를 제외하고는 드러나있는 그녀의 나신은 그야말로 미의 여신 그 자체라 해도 믿을만큼 완벽한 균형 잡힌 풍만함과 늘씬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순백의 피부는 한 점의 흠집도 나있지 않았다.
그 때였다.
"돌아왔어."
디아나는 거대한 마나의 유동을 뱀파이어 퀸으로서의 예민한 감각으로 파악하였고, 그가 혼자서 온 것이 아닌 옆에 카일라를 끼고 그 주위에 얼마 전에 여기 별장에서 머물던 수많은 남정네들까지 끌고 왔다는 것에 입술을 살포시 깨물었다.
끼이익!
그리고 그녀가 입술을 깨물면서 거울을 계속 쳐다보던 때 갑작스럽게 방의 문이 열려졌고 흑발의 어린 소년, 카이라스가 모습을 드러냈고 당연하게도 디아나의 풍만하고 새하얀 젖통들과 거기에 달린 분홍색의 유실들이 카이라스의 눈에 숨김없이 노출되었다.
"......"
"......"
"...어맛!"
디아나와 카이라스는 잠시 멍하니 침묵을 했고, 그러다가 셀리나의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지르는 비명소리에 침묵이 깨어졌다.
"이...변태!"
셀리나의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린 디아나가 다급히 양 팔로 가슴을 가리면서 새하얀 얼굴을 붉히면서 카이라스를 향해 소리쳤다.
'대체 왜 벗고 있는거야?'
반면 카이라스로서는 기가 막혔다. 그저 별장으로 돌아오자마자 디아나에게 먼저 돌아왔다고 인사를 하기 위해 왔을 뿐인데 왜 목욕도 할 것 아닌데 드레스를 내던지고 거울 앞에서 알몸으로 서있는 것이란 말인가?
'설마 공주병 증상이 내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던건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었지만 카이라스는 이윽고 디아나의 눈에 고여져있는 눈물을 보고는 단순히 그런 상황만은 아닌 것을 빠르게 파악했다.
"우으으으..."
양팔로 가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는 디아나는 카이라스를 표독스럽게 노려보고 있었고 그것이 꼭 주인에게 화를 내는 암고양이 같은지라 역설적으로 카이라스의 눈에는 귀엽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울릴 수는 없었기에 먼저 사과를 하였다.
"일단 가슴을 본 것은 사과할께. 근데 대체 왜 거울 앞에서 팬티만 입고 자기 알몸을 감상하고 있던거야? 그런 쪽 취향이냐?"
"무, 무슨 소리 하고 있는거야! 정말!"
"지금 이 시간에 거울 앞에서 팬티를 빼면 알몸으로 서있는 것이 비정상이라는거지."
"저, 주인님...고모님은 그게..."
셀리나는 디아나를 위해 변명을 하려 했지만 뭐라 해야할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카일라에게 질투가 나서 저러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사실 질투도 아니었다. 그저 카이라스의 카일라를 향한 사랑이 너무 커보이다보니 느낀 불안감 때문이었으니깐.
"디아나, 네가 말해봐. 대체 무슨 일이야?"
"정말 몰라서 물어? 우우..."
눈물까지 글썽이며 디아나가 카이라스를 쏘아보며 말했다.
"혹시 오늘 그 날이야?"
"아, 아니...아닌가?"
카이라스에게 아니라고 쏘아붙이려던 디아나는 오늘이 생리의 주기에 근접해있음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고, 카이라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기 생리 주기 정도는 확실히 알아두라고."
"우...정말...기분 나빠. 이런식으로 약올리기나 하고."
평상시와는 달리 원망스럽다는 감정을 강렬히 드러내는 디아나의 모습에 카이라스도 당혹해했다. 그저 다녀왔다고 인사 한 번 하러 와서 이게 뭔 일인가?
"카이라스, 너에게 뱀파이어 퀸 디아나 블라디미르로서 묻겠어."
"물어봐."
여전이 가슴을 양팔로 가린 상태에서 디아나는 화가 단단히 난 아름다운 얼굴로 카이라스를 쏘아붙이며 물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어? 그렇게 내가 싫은거야? 대체 내가 왜 싫은건데? 말해봐!"
디아나의 철이 없이 떼를 쓰는 듯한 어린아이의 태도에 카이라스는 그녀의 불만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한층 예민한 날에 단단히 예민해져서 독이 올랐군.'
그렇지만 카이라스의 눈에는 귀엽게만 보였고 디아나와 같은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여자를 다루는 방법은 그에게 식은 스프 먹기였다.
"내가 널 언제 싫어했다고 그래?"
"정말 싫어! 저런 태도라니..."
카이라스가 살짝 미끼를 던지자 디아나는 바로 그 미끼를 물어버렸다.
"디아나. 난 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휴우, 네가 날 싫어한다니...속이 쓰리네."
"뭐, 뭐?"
카이라스의 갑작스러운 말에 디아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셀리나까지도 카이라스의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란듯 붉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카이라스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원래는 뱀파이어다보니 경계를 많이 하긴 했었어. 그런데 3 년이나 같이 지내다보니...너 없는 삶은 이제 생각하기 힘들더라. 셀리나도 마찬가지지만."
"저, 저도요?"
셀리나가 얼굴을 붉히면서 묻자 카이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디아나에게 물었다.
"그래, 디아나. 생각해봐. 내가 언제 너 싫다고 한 적 있었어? 미워한 적 있었어?"
"하, 하지만 나더러 맨날 철이 없다고 구박했잖아...철 좀 들라고..."
디아나의 말은 어느사이 화가 난 목소리가 아니게 변해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본인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완전히 카이라스의 페이스에 넘어가 있었다.
"솔직히 가끔 가다가 디아나, 네 입술이나 셀리나의 입술을 보면 키스해주고 싶다고 충동을 느끼고는 하는데...문제는 나는 아직 카일라 누나랑 결혼도 못했잖아? 그리고 카일라 누나가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너희 둘 다 받아들여도 된다고 허락을 해서 솔직히 말해서...설사 고백했다가 차이더라도 내 년에 카일라 누나랑 결혼하고 나서 너희들 둘에게 청혼할 예정이었는데...마침 다음 해면 셀리나도 성인이니까."
"...그, 그랬구나."
"주인님..."
디아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고, 셀리나는 감격에 찬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디아나."
"으, 응?"
"그래도 내가 널 미워한다고 생각해?"
"아, 아니..."
디아나는 기쁨에 찬 밝고 활기가 가득한 발랄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살포시 디아나에게 다가간 카이라스는 천천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직 그의 키보다 디아나의 키가 약간 더 컸지만 그래도 내 년이면 충분히 키로서는 앞 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카이라스에게 안겨진 디아나는 잠시 머리 속이 혼잡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카이라스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그녀의 분노를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일단...선물이라고 생각해둬 디아나. 다루기 쉬운 귀여운 여왕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카이라스는 디아나의 가슴의 맨살들이 자신에게 닿는 것에 의한 짜릿한 감각을 맛보면서 솟아오르는 성욕을 억지로 억눌렀다. 카일라와 결혼하기 이전에는 누구도 안을 수 없었고, 어떤 여자와도 입맞춤을 해서는 안된다가 그가 정한 불문율. 그는 이 와중에도 그것을 착실히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