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사교 파티] 2
셀리나보다는 존재 자체를 감추는 것은 못하지만,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셀리나의 이상이었다. 10 서클이 되야 찾을 수 있을듯 싶은 수준의 은신에 카이라스는 경계심을 계속해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카일라의 잘록한 갸날픈 허리에 계속 손을 얹으면서 그녀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카일라 누나, 사교 파티에 처음으로 온 기분은 어때?"
"별로야."
카일라가 차갑게 대답했고, 카이라스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럴만 하겠네."
사교 파티에서 카일라는 정말인지 눈에 띄는 외모였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은발의 머리카락에 얼음장 같이 차가우며 도도한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얼굴에 키스를 하고 싶다고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연분홍빛의 입술에 갸날프면서 굴곡진 풍만한 몸매와 백설 같은 피부까지.
화사하고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고모인 엘리나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를 보며 몸이 달아오른 귀족들은 많았지만 그녀가 아르테일 공작가의 차기 안주인이라는 것과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강력한 무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귀족들은 없었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흑심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저 거리를 두고 쳐다보며 그런 그녀를 차지한 카이라스를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가 그녀에 비견될만한 미모를 지닌 여인들을 둘이나 더 데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신들의 집에서 카이라스를 저주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오직 아르테일 공작가의 사람들 뿐이었고 마법사들 답게 입이 무겁고 특별히 소문을 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아르테일 공작가의 사람들은 카이라스가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디아나와 셀리나의 존재에 대해 숨기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리고 형수님."
그 때 아무도 쉽사리 접근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카이라스에게 다가온 소년이 있었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의 상당히 잘생긴 외모의 소년, 카이라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서 13 살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올라 제국의 차기 그랜드 소드 마스터 후보로 가장 유력한 검의 천재, 지그문트 폰 알브레히트였다.
"지그문트, 역시 황궁에서 만났지?"
카이라스가 카일라의 허리를 끌어안은채로 씨익 웃으며 말하자 지그문트 역시 마주 웃으며 말했다.
"정말 형님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설마 제가 황궁으로 초대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카르시스 제국은 그 방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당연하게도 수많은 귀족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귀족들은 각자의 파당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알브레히트 백작가는 기사 가문이었고 상당히 북쪽의 변방 쪽에 위치해있었기에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나 북쪽에 있는 무가들의 경우는 그렇게 소외를 받아온지가 오래였는데 아무래도 카르시스 제국의 북쪽에는 호전적인 성향인 카나타 연합왕국이 있었기에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북쪽의 무가들은 황궁에서는 초대를 잘 하지 않는 것이 300 년 째 이어져오고 있었다.
만약 수장들이 황궁의 초대로 인해 자리를 비울 경우 그 사이 카나타 연합왕국이 공격을 해올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북쪽의 가문들은 대다수가 역사가 깊은 무가들이었고 제국의 약 500 여명의 소드 마스터 중 150 명이 북쪽 출신일 정도였다. 그런 그들이 황궁으로 초대를 받아 떠난다면 그야말로 북쪽은 무방비한 상태나 다름 없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그문트는 차기 그랜드 소드 마스터로서 유력한 인재였기에 특별히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북쪽 출신이면서도 이렇게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겸 열리는 사교 파티에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 보통 14 살에 사교계에 나서는 것에 비해서 1 년이나 일찍 사교계에 진출해보니 어때?"
"좀...어색합니다. 제게 다가오는 귀족 영애분들은...거의 없고요."
은근히 자신에게 아름다운 귀족 영애들이 다가오는 것을 바랬던 모양인지 지그문트의 표정은 암울하기 그지없었고, 카이라스는 어느덧 품에는 여전히 엘리나를 끼고 7 명의 귀족 영애들을 주변에 두고 있는 루스칼리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저 양반...저 버릇 대체 언제 고치는거야."
아버지에게 하는 말치고는 상당히 불경하기 그지 없었지만 카이라스는 아버지인 루스칼리스가 가진 복이 2 개가 있다면 첫번째는 어머니인 엘리나를 아내로 삼은 복이었고, 두번째 복은 바로 아들로서 자신을 낳았다는 것이라고 자부했다.
어찌보면 자화자찬의 극이었지만 카이라스는 충분히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사실이었다. 검술, 마법, 정령술, 요리를 비롯한 가사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그였으니깐.
"카이라스 형님의 아버님은...아직 젊으신거 같더군요."
"바디 체인지를 여러번 했으니 정말 젊음이 오래 갈테지."
9 서클 마스터 쯤 되면 정말 젊음과 수명이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최상급 역시 만만치 않았으니 루스칼리스는 본인도 항상 젊은 모습인채로, 오랫동안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할 엘리나와 뜨거운 나날들을 수백년은 보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 전쟁만 아니었다면.'
이종족들은 그가 25 살이 되는 해에야 조금씩 움직임을 드러냈었다. 물론 본격적인 전쟁이 아닌 천천히 내부에서부터 잠식하는 수법을 사용한 인간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움직이었고 진짜 전쟁은 그가 32 살이 넘어서야 벌어졌지만 그 때는 인간들의 세력이 많이 약해져있었을 때였다.
뒤늦게 그가 몇몇 이종족들이 인간에게 적대심을 드러내는 수준이 아닌 아예 대규모 연합이 맺어져서 드래곤 로드의 주도하에 인간 문명 말살을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그와 스물을 갓넘긴 새로운 젊은 여황제, 플로리아가 인간들을 다시 재정비할 때까지 초기에 전쟁에서 인간들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았었다.
근데 수백에 달하는 드래곤들은 은거한 절대강자들을 찾아내서 조직적으로 습격을 해서 살해를 하며 인간들의 절대강자의 수를 줄여갔다. 그 도중 드래곤들의 피해도 상당했었지만 흩어져있는 강자들은 그야말로 각개격파를 당하였기에 피해는 인간 축이 훨씬 컸었고 그것은 훗날 전쟁에서도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일단 이놈도 성장을 시켜놔야할텐데.'
카이라스는 지그문트가 자신이 넘겨준 마나연공법을 익혔다는 것을 처음 봤을때부터 알아보았다. 마나의 흐름이 보다 정교해지고 보유한 마나의 양 역시 마지막에 보았을때보다 상당히 늘어나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내가 준 검법과 마나연공법은 써보니 어때?"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형님이 주신 마나연공법은...정말 대단하더군요. 검술도 저희 가문의 검술보다 훨씬 뛰어나면서도 저에게 잘 맞았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뭐, 잘 익힌다니 다행이네."
그리고 그 때 가만히 서있던 카일라가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라스, 잠시 나갔다 오도록 하자."
"...밖에?"
"응, 밖의 바람이 좀 쐬고 싶어."
카일라의 말에 카이라스가 지그문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 잠시 카일라 누나랑 밖으로 나갔다 올께."
"네, 형님. 그럼 형수님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좋은 시간까지야. 아직 미성년자인걸..."
카이라스가 지그문트의 말에 아주 깊은 쓰라림이 담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말만 하면 그에게 몸을 내줄 아름다운 미녀들과 미소녀를 두고도 그가 미성년자인지라 억지로 성욕을 잠재우며 참아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상했다. 그러나 그렇게 쓰게 웃는 와중에도 이제 일곱개까지 동시영창이 가능해진 그의 두뇌는 일곱가지의 사고를 하고 있었다.
'아직 주시하고 있는 시선이...있는데 말이야. 대체 누구지?'
물론 그 대부분의 사고들은 자신을 주시하는 자를 경계하는데 사용되고 있었고 그것은 아마도 그의 아버지, 루스칼리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인 엘리나가 특히나 조용히 있는 것 역시 경계심을 품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가자, 라스."
"알았어."
카일라랑 깊이 밀착하여 그녀의 향기를 느끼면서도 카이라스는 편안한 행복감과 강렬한 성욕을 느끼면서도 다른 사고들이 그런 감정들을 억제하여 지금의 그는 극도의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메리다 궁의 중앙에 있는 홀의 왼쪽 옆 밖의 창가로 카일라와 함께 나간 카이라스는 시원한 밤바람을 눈을 감고는 잠시 즐기다가 이윽고 주변에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두른후 카일라에게 말했다.
"후우, 사람들의 시선이 없으니 편하네."
"라스, 근데 라스는 원래부터 사교계를 싫어했어?"
카일라가 카이라스에게 질문을 했다. 사교계에 이번생에서 카이라스는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것이니 그녀가 묻는 것은 시공회귀 이전의 그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다.
"응, 그랬지. 그 때 나는 카일라 누나랑 약혼을 한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이야 아주 일찍 카일라와 약혼을 하게 되었지만 시공회귀 이전의 그는 15 살까지도 카일라와 약혼을 맺지 못했었고 당연히 카일라 역시 지금처럼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검술만 수련하고 있었었다.
"내가 보내준 기억에서 그런 사소한 것까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솔직히 지겨웠어. 난 15 살 이전부터 카일라 누나를 이성으로서 무척 좋아했었거든. 그러다가 보니 다른 여자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어."
카이라스의 말에 카일라는 평상시처럼 차갑고 도도한 눈으로, 하지만 그 안에는 따스한 애정이 깃든 눈빛으로 카이라스를 쳐다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곤 여자들이 많던데?"
"그럴 수 밖에. 전쟁이란 상황에서 나 역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었거든. 그리고 같이 생사를 오가다보니 서로 정이 많이 싹트다가 일을 크게 치루더라고."
함께 지내온 카일라나 유리아나는 몰라도 황녀인 플로리아, 검의 여왕 레이나, 물의 대주술사 에이미 등은 사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깊은 연을 맺을 리가 없었던 사이였다. 특히나 플로리아라면 몰라도 나머지 둘은 사교 파티에 나올리도 없었기에 만남은 더욱 힘들었고, 설사 만나더라도 깊은 감정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네. 근데 사교 파티에 처음 갔을때는 기분은 어땠었어?"
"최악. 아버지는 내가 약혼녀가 없었던 때여서 그런지 온갖 여자들을 다 줄줄이 소개시켜주는데 나더러 하루만에 5 명의 여자들을 모조리 섹스로 실신시키라는 말까지 했었어. 당시의 나도 14 살로 미성년자였는데 말이야."
"...최악이야."
카일라 역시 카이라스의 말에 동의했다. 미성년자에게 5 명의 여자들을 상대하라고 하다니? 이건 어떤 의미로 아동학대에 가까웠다.
"뭐, 어머니가 그 때 보기 드물게 화를 내셔서...그냥 넘어갔지. 평상시 어머니가 착하지만 누나도 알다시피 화나면 무서우시잖아."
"그건 그래. 하지만 고모님이 화낼 때는 난 좋은 기억 밖에 없어. 항상 날 위해서 화를 내주셨으니까."
카이라스는 카일라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살짝 입맞춤을 하였고 카일라 역시 마주 키스에 응하며 서로를 깊이 끌어안았을 때였다.
"한창 뜨거우신 사이시네요."
누군가가 그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