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운명의 파트너] 3
"그 쪽이 나의 도움을 바란다면, 황녀 아이린. 마신의 성녀. 이 마법을 얌전히 받아들이는게 좋을거야. 성녀라서 받아들일 그릇을 되겠지만 거부하면 백치가 될테니까."
"기억들을 일부 보내주시는거군요?"
"맞아, 그럼 핸드 다운 어 놀레지!"
8 서클의 마법, 핸드 다운 어 놀레지에 의해 카이라스가 가진 일부의 지식들이 아이린에게로 흘러들어갔다.
"......"
카이라스가 가진 지식들, 그가 골라낸 일부의 기억들을 받게 된 아이린은 그 기억들을 정리하냐고 눈가가 살짝 찌푸렸지만 그녀는 그런 모습도 치명적인 요염함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기억의 정리를 끝낸 그녀는 부채로 살짝 얼굴을 가리며 카이라스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후우, 정말 기구한 삶이군요. 당신도..."
카이라스가 그녀에게 보내준 기억은 카일라에게 보여줬던것만큼 자세하고 세세하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이종족들과의 전쟁부터 그가 시공회귀를 하기까지의 내용이 간략하게 압축이 되어있었다.
"제부(언니가 여동생의 남편을 부르는 말)."
아이린이 갑자기 카이라스를 제부라고 불렀다.
"제부?"
"네, 비록 미래에서라지만 제 여동생 플로리아의 남편이기도 했었죠? 그럼 카이라스 공자는 저에게 제부가 되시는거죠. 아닌가요?"
그러면서 아이린은 부채로 가리고 있던 비록 14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요염함을 물씬 풍기는 미소를 짓고 있는 앳됨이 있기는 해도 숨길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며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
카이라스는 아이린의 말에 부정은 표하지 않았다. 미래에서 플로리아와 그는 전쟁 중이라는 것을 감안하며 참석자도 적고, 결혼식도 너무 간촐하게 치루기는 했지만 일단 그녀 역시도 그의 아내 중 한 명이었으니깐.
그리고 카이라스는 여전히 아이린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카일라에게 말했다.
"누나, 이제 검은 치워도 돼."
"응."
카일라는 카이라스의 말에 바로 아이린의 목에 겨누고 있던 검을 치운 후 카이라스의 옆으로 돌아왔고 카이라스는 자신의 옆으로 온 카일라의 허리에 손을 얹으면서 아이린을 향해 쳐다보았다.
"자, 그럼 이제 그 쪽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줄 시간이군. 나는 방금 전의 기억을 보내준 것으로 설명을 모두 해줬으니까 말이야."
"확실히 그렇네요. 시공회귀를 통해서 과거로 돌아오다니, 정말 기억을 받고도 믿겨지지가 않는 내용이에요."
아이린의 말에 여태까지는 조용히 서있었지만 영체의 상태였기에 카이라스에게 기억을 받지 못한 세르티네스가 아이린에게 물었다.
[시공회귀? 방금 시공회귀라고 했어? 린.]
"응, 그래요. 세르티네스, 당신에게는 제가 기억을 보내드릴께요. 말로 설명하기 보단 그게 편할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우아한 자세로 검은 부채를 살짝 위로 올린 아이린은 부채를 천천히 아래로 내렸고 그 순간 그녀의 전신에서는 거대한 신성력, 아니 마신의 성녀를 비롯해서 마신의 신관들만이 쓸 수 있는 기운이라는 암흑신성력이 뿜어져나왔다.
슈우우웅!
주신의 성녀인 실비아와는 달리 마신의 성녀인 아이린의 권능은 치료나 가호 등보다는 보다 전투나 특수한 능력들로 구성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카이라스가 쓴 8 서클의 마법, 핸드 다운 어 놀레지와 같은 종류의 힘을 지닌 권능도 존재했다. 거기에 그녀의 권능은 육체가 있는 상대에게만 가능한 핸드 다운 어 놀레지 마법과는 달리 영혼의 상태인 세르티네스에게도 전송할 수 있었다.
[미래...미래에서 왔다니.]
세르티네스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카이라스를 쳐다보았다. 눈 앞의 저 어린 소년의 정체가 시공회귀의 마법까지 성공시킨 10 서클 마스터라니...
"이제 그만 설명을 해주지. 너희들에 대해서 말이야. 아니면 나에게도 권능으로 기억을 넣어주려는건가?"
다른 것에 대한 수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는 카이라스라고 해도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은 마신의 성녀에 대해서 아는 지식은 희박했기에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카이라스의 말에 아이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제부가 쓰는 마법과는 달리 제가 방금전 쓴 권능은 영체 상태에 있는 세르티네스에게도 기억을 전송할 수 있었지만 대신 어둠에 속한 존재들에게만 가능하거든요."
"그런가..."
카이라스는 아이린의 말에 또 다른 8 서클의 마법을 준비했다.
"생각을 읽는 힘, 리드 마인드!"
미리 술식을 준비해두었던 핸드 다운 어 놀레지와는 달리 술식을 준비하지 않았던 리드 마인드는 짧게나마 주문을 사용하여 발동되었고, 카이라스는 현재 마음을 읽는 눈을 지니게 되었다.
"생각을 읽는 것으로 단숨에 정보들을 간단히 뽑아가시겠다는건가요? 여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남자는 약간 무서운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이린은 여전히 도도한 눈빛으로 카이라스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회피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을 하겠어. 대답은 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다 읽어낼테니까."
"알았어요, 기왕이면 빨리 끝내주셨으면 하는군요. 이래뵈도 저에게는 첫 사교 파티라 구경을 하고 싶으니까요."
카이라스는 아이린의 그 말이 리드 마인드로 인해 단순히 해보는 말이 아니라 진심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의외로 사교 파티를 재미있어하고 있었고 각자 차려들 입은 화려한 복장들과 화려한 배경의 모습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그럼 언제부터 마신의 성녀가 되었고 세르티네스와는 어떻게 만났지?"
"......"
아이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카이라스는 그녀의 마음을 읽는 것으로 정보를 뽑아냈다.
"마신의 성녀가 된 날은 8 살 때가 처음이고, 세르티네스 역시 황궁의 보물창고에 갇혀있던 것을 마신의 성녀로서 각성하면서 발견한 것이로군."
"맞아요, 수정구 안에 갇혀있는 세르티네스를 제가 발견했죠. 그리고 세르티네스는 저에게 마신의 성녀, 혹은 어둠의 성녀라고도 불리는 제가 가진 권능들의 사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죠."
그리고 카이라스는 계속해서 여러가지 질문을 하며 리드 마인드를 통해 다양한 아이린의 정보들을 추출해낼 수 있었다.
'정말 아무런 혐의도 없군.'
정말 그저 아이린은 친구를 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세르티네스 역시 맹세를 했으니 소멸하고 싶거든 거절하고 싶지 않겠지.'
다크 드래곤 로드, 대마왕에게 마신의 이름을 건 맹세는 절대적이었기에 그녀는 결코 맹세를 어길 수 없을 것이었다.
"누나, 누나에게도 저들에 대한 정보를 건네줄까?"
카이라스가 정보를 모두 빼내자 카일라에게 물었다. 그러나 카일라는 아름다운 얼굴을 좌우로 절레절레 저은 후 대답했다.
"필요 없어, 라스. 네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카일라의 말에 카이라스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차갑게 말하기는 해도 거기에는 자신을 향한 신뢰감이 아주 깊이 깃들여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지금은 리드 마인드 마법을 사용하는 중이었기에 카일라가 품은 자신을 향한 신뢰감과 애정이 정말 강렬히 확인되어 환희에 차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보인 카이라스는 키스를 해주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 구경꾼이 둘이나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세르티네스가 카이라스를 향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지금의 그대는 나를 해방시켜 새로운 육체를 줄 힘이 없구나. 나에게 새로운 육체를 준다면 기꺼이 그대의 편으로서 에라시안을 상대로 함께 싸워줄 생각도 있는데 말이다.]
아이린에게 하는 말투와는 달리 카이라스에게는 여전히 상당히 딱딱한 말투로 말을 하는 세르티네스였지만, 카이라스는 상관하지 않았다. 애초 초면인 상대였으니 그에게는 이게 편했으니깐.
"흐음, 그래? 사실 본래의 영혼은 수정구 안에 있고 그 환영만을 밖에 내보낼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처지인 당신을 꺼내줄 방법이 있긴 있어."
[꺼내줄 방법이라고?]
"후후,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조건이라니요?"
세르티네스와 아이린이 동시에 카이라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카이라스는 카일라의 허리를 더욱 거세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향기로운 체향을 가까이에서 더욱 음미하는 것으로 보다 맑아진 기분으로 자신의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세르티네스. 당신이 내 내부로 들어오는거야. 당신은 대마왕이지?"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날 그대의 내부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인가?]
"여성체가 딱딱하게 굴지마.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 쪽이 대마왕이기 때문이지."
카이라스가 원하는 것은 대마왕이 가진 권능, 그리고 고유의 힘이라는 암흑투기였다.
대마왕의 영혼이기도 한 세르티네스의 영혼을 자신의 육체에 받아들인다면 한 육체에 두 개의 영혼이 존재하겠지만 카이라스는 자신의 영혼이 세르티네스의 영혼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하고 거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원래 육체의 주인이기도 하기에 그의 육체 안에서 세르티네스의 영혼은 50%의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카이라스는 100%의 힘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었다.
즉, 세르티네스가 카이라스의 육체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육체를 빼앗으려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소멸로 이어지며 무엇보다도 그녀는 맹세까지 하였기에 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네가 나의 몸으로 들어오면, 그 쪽은 일단 내가 10 서클에 다시 올라서 육체를 만들어줄 때까지는 내 안에서 내가 겪는 일들을 모두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테고 그 답답한 곳에 갇혀있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나는 암흑투기와 마왕의 권능을 얻음으로서 에라시안과 싸울 힘을 추가로 얻게 되는거고 말이야."
카이라스는 현재 9 서클의 익스퍼트였기에 수정구 안에 갇혀있는 세르티네스를 완벽하게 해방시킬 수 없었다. 수정구에 걸려있는 주문들은 카이라스가 볼때 10 서클의 마법들이었고, 아마도 1대 마도시대 때 당시의 10 서클 마스터에 의해 만들어진듯한 수정구였다.
'세르티네스는 마음을 읽기가 어려워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에라시안만큼이나 정신력이 강한 세르티네스는 리드 마인드 마법으로도 마음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어 정보를 얻기 힘들었기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카이라스는 수정구에서 세르티네스의 영혼을 자신의 육체에 강제로 가두는 것으로 그녀의 영혼을 수정구의 내부에서 꺼낼 수 있다고 여러가지 계산 결과 확신하고 있었다.
"대신 내 육체에서 빠져나오면 다시 세르티네스의 영혼을 잡아들이려는 수정구의 힘에 의해 다시 수정구의 안으로 빨려들어갈테니...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육체의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야."
카이라스의 말에 세르티네스와 아이린은 잠시 침묵했다.
"세르티네스, 어쩌실 생각인가요?"
[...나는 받아들이고 싶다, 린.]
그리고 세르티네스가 카이라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카일라가 카이라스의 팔을 붙잡으며 그에게 물어왔다.
"라스, 진짜 마왕이라도 될 셈이야?"
카일라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감정이 담기지 않은듯한 목소리, 그렇지만 사실은 카이라스와 엘리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상당히 걱정이 담겨져있는 목소리에 카이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시공회귀 이전, 이종족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마왕이라도 기꺼이 되고 싶어하던 자신이 보내준 기억에서 본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일 것이었다.
"아니, 인간으로서 대마왕의 힘을 추가로 잠시 빌리는 것 뿐이야. 여기 책임져야할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내가 미쳤다고 마왕이 되겠어?"
그러면서 카이라스는 대범하게도 아이린과 세르티네스가 보는 앞에서도 카일라의 연분홍빛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그녀를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