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황태자 알렉스] 3
""제국의 주인이신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배알하나이다!""
황제가 황태자와 함께 메리다 궁 안에 모습을 드러낸 후 이곳 궁에 있는 상석의 중앙으로 가 서자 귀족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고개를 숙였다.
'저 놈, 참 오랜만에 보는 낯짝이군.'
제국의 황제가 아닌 플로리아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장인'이 될 사람이었기에 기꺼이 고개를 숙여준 카이라스는 황태자 알렉스의 재수없는 면상을 다시 보게 되자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시공회귀를 갓 했을때야 반갑다고 포옹해줄 생각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이미 예전의 일, 이제 그에게 황태자 알렉스란 존재는 다시금 면상을 후려 갈겨주고 싶은 짜증나고 경멸스러운 재수 없는 놈에 불과할 뿐이었다.
'오늘 네 생일이 네 놈이 망하는 날이 될 거다.'
알렉스 폰 카르시스는 겉으로 외모만 평가하면 생긴건 참으로 멀쩡하게 생긴 놈이었다. 황제가 가진 푸른 색의 머리카락과는 달리 그의 생모인 1 황후가 가진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고, 그럭저럭 잘생긴 축에 속하는 아버지인 황제와 엘리나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상당한 미녀 축에 속하는 어머니인 1 황후의 외모를 섞어 닮아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오만하고 거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참으로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또 알렉스의 시선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본 카이라스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나를 찾고 있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엘리나를 찾은듯 정확하게 엘리나가 있는 방향에 시선을 고정시킨 알렉스의 눈에 강한 갈망, 아니 욕망이 깃들여졌다.
알렉스의 나이는 올해 19 살, 20대 정도로 보이는 겉외모와는 달리 엘리나의 나이는 올해 43 살이었으니 무려 24 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알렉스에게는 엘리나와의 나이 차이도,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도 상관 없이 그저 그가 봐왔던 여인들 중 아름답고 완벽한 미녀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오늘 화려한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들어올리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놓아 황금빛의 생머리가 찰랑거리는 엘리나의 모습은 알렉스에게는 이성의 끈을 유지하게 힘들만큼 아름다웠다.
특히나 풍만하고 아찔한 가슴골에 항상 그녀의 연분홍빛의 입술에 새겨진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늘씬한 팔다리와 잘록한 허리 등 온갖 육체 곳곳이 모두 뇌새적인 매력투성이인데다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이른 그녀는 몸매는 그가 봐왔던 어떤 여인보다도 아름다웠고 완벽했다.
가끔씩 알렉스는 심지어 자신이 훗날 황제가 된다면 막대한 피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아르테일 공작가와 전쟁을 일으켜서 엘리나를 강제로라도 자신의 황후로 삼겠다는 망상 역시 여러번 해보고 있었다.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신하에 불과한 아르테일 공작가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엘리나를 흝어보며 겉으로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은 상당히 음흉하게 변해져있었고, 그것을 알아본 사람은 이 메리다 궁의 파티 홀에 모인 귀족들 중 극소수였다.
'후후, 정말 아름답구나. 저런 계집은 황제가 될 나에게 어울리는 계집이야...아무리 아르테일 공작가라고 해도 신하가 같기에는 너무나 과분한 계집이야. 저 목덜미를 내 침으로 가득 적셔주고 싶구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고 하니 섹스 역시 무척이나 잘하겠지?'
엘리나를 상대로 아예 음흉한 생각까지 품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의 음흉한 생각을 알아차리고 있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인 카이라스는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마법사로서 차갑고 이성적이게 분노한 그는 알렉스가 엘리나에게만 시선이 팔려있는 모습을 보자 아버지가 새삼스럽게 얼마나 화가 날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 다혈질이 아니라 의외로 인내심이 좋으셨군요.'
카이라스는 자신의 여자를 음흉하게 노려보고 있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아버지인 루스칼리스가 느낄 분노가 얼마나 대단할지 생각하며 혀를 찼다.
시공회귀 이전의 그는 이 시간대 때는 황태자의 눈에 음흉함이 깃든 것을 알아보지 못했었기에 설마 저 정도의 수준인지는 자세히 몰랐었고, 황태자가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나에게 품은 집착이 저렇게 강한 것도 예상 밖이었다.
'아이린의 제의를 받아들이길 잘했군. 보다 편하게 무너뜨려줄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카이라스가 속으로 생각할 떄 황제 카를로스 1세의 말이 시작되었다.
"모두, 이 자리에 내 부족한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모여주어서 감사하오. 황제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대들에게 감사를 표하리다."
황제의 말에 귀족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모두 폐하의 은덕이십니다!""
그리고 귀족들이 이렇게 소리칠때 카일라는 그저 대충 흉내내는 모습만 보이고 말았고, 카이라스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 장인 어른. 많이 부족하죠. 아주 많이요. 망할 처남의 버릇을 그래서 오늘 저와 처형이 단단히 고쳐주렵니다. 후후.'
그리고 이 때, 알렉스의 시선이 처음으로 엘리나에게서 떨어졌다. 황태자로서 연설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흠흠, 이곳에 모인 제 생일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모이신 귀족의 여러분들, 그리고 자녀 분들에게 황태자로서 저 알렉스 폰 카르시스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기는 하지만 저만이 아닌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선 형식적으로 귀족들 모두에게 눈길을 주기 위해 알렉스가 고개를 움직였고 이 순간, 조용히 황제의 옆으로 와 가만히 있던 아이린의 붉은 색 눈동자가 살짝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요염하게 빛났다. 그것은 카이라스와 카일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헛!'
귀족들의 모습을 흝어보며 속으로는 엘리나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없어 짜증이 나기 시작하던 알렉스는 순간 숨이 막힐 뻔 했다.
'저, 저렇게 아름답다니!'
바로 드디어 카일라가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이었다.
자신의 황금빛 머리카락에 어울릴 화려한 황금빛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엘리나와는 달리 카일라는 자신의 은빛의 머리카락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은빛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드레스의 모양은 전체적으로 비슷했고 또 카일라의 미모 역시 엘리나의 미모에 견줄만한 미모였지만 카일라에게는 엘리나와는 다른 매력이 물씬 풍겨지고 있었다.
일단 겉외모는 카일라랑도 몇살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 엘리나였지만 그녀는 유부녀였기에 저절로 성숙함과 농염한 매력이 풍겨져오고 있었다.
반면 약혼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24 살의 처녀인 카일라는 처녀로서의 순결한 매력이 물씬 느꼈고 또 항상 맑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엘리나와는 달리 얼굴에 새겨진 얼음장 같이 차가운 표정은 그야말로 남성의 정복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저 계집...저 계집이다...! 엘리나를 손에 넣기 전에 저 계집부터 손에 넣어야겠어.'
알렉스의 마음에 카일라를 향한 강한 집착이 새겨졌고, 그는 빨리 연설을 끝내고 싶어졌다.
'걸렸군요. 멍청한 바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니 너무 아쉬워는 마세요.'
기품 있는 모습으로 부채로 살포시 요염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아이린은 알렉스의 시선이 카일라를 향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
그러나 자신이 함정에 빠진 줄 모르는 알렉스는 카일라에게서 연신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연설이 끝났을때 서서히 다시 수십 명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여 홀의 안이 음악으로 가득차며 파티의 시작을 알릴 때 그의 발걸음은 카일라에게로 가장 먼저 향하였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먼저 가서 저 아름다운 귀족 영애에게 춤을 신청하고 그 후 은밀히 유혹하여 자신의 여자로, 황태자비로 삼을 생각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곧 일그러졌는데 바로 카일라와 손을 잡고 있는 한 흑발의 소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소년이었지만, 저 흑발에 흑안! 그리고 빼닮은 외모를 지니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루스칼리스 폰 아르테일의 아들이며 최근 9 서클의 마법사로 이름을 날린다는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저 계집...아니 여인은 엘리나의 조카인 카일라로군."
그제서야 저 아름다운 은발의 여인의 정체를 알게 된 알렉스는 이를 갈았다.
'으득, 아르테일 공작가. 정말 마음에 안드는 놈들이야. 부자가 대를 이어서 저런 미녀들을 차지하다니!'
알렉스의 두 눈은 강렬한 질투와 열등감으로 불타오르며 그의 마음이 서서히 탐욕과 집착, 그리고 광기로 변해갔다.
'엘리나, 카일라. 둘 다 반드시 내 황후들로 만들어버리겠다.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며 카일라에게 접근한 알렉스는 의도적으로 카이라스를 무시하며 카일라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이렇게 아름다우신 레이디가 제 생일을 축하하러 와주시다니 정말 기쁘군요. 저에게 한곡을 출 영광을 주지 않겠습니까?"
황태자 알렉스가 카일라에게 접근하자 수많은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지거나 자신들끼리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저 여인의 약혼자는 다름아닌 아르테일 공작가의 가주인 루스칼리스의 아들인 아르테일 공작가의 차기 가주인 카이라스였다.
그가 자신의 여자에게 접근한 남자를 가만둘리가 없었지만 하필이면 대상이 황태자라는 것이었다.
"제 약혼녀는 저랑 지금 나가려는 중입니다. 그 부탁은 들어드릴 수 없겠군요."
비록 계획이라지만 자신의 여자에게 접근하는 그의 태도에 기분이 당연히 나빠진 카이라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알렉스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알렉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대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 여기 레이디에게 물은 것일세."
안 그래도 아르테일 공작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알렉스였기에 공작인 루스칼리스라면 모를까 그 아들인 카이라스에게까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카이라스의 용모가 특히 그렇게 느껴지게 만들었고 9 서클에 오른 천재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알렉스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저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퍼트린 과장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리고 설사 9 서클이라고 해도 자신은 황태자였기에 공작이라면 모를까 그 아들 따위가 감히 자신에게 맞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 대답을 원하십니까? 그럼 말하죠. 전 제 남편 될 남자 이외의 사람이랑 손을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카이라스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알렉스의 태도에 마찬가지로 기분이 나빠진 카일라 역시 차가운 표정으로 싸늘하게 알렉스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으득!'
알렉스는 이 순간 참을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였다. 항상 모든 것을 가져온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히 자신의 청을 거부하다니? 고귀한 자신이 명도 아니고 부탁을 하기까지 했는데?
'나는 황태자다! 제국의 황제가 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이란 말이다! 당연히 저 계집들은 내가 가져야할 계집들인데! 감히 공작가 따위가!'
그리고 알렉스는 카일라에게 말했다.
"황태자에게 참으로 무례하군. 으득, 감히 황태자인 나에게 눈을 부라려?"
그러면서 알렉스는 강제로 카일라의 손을 붙잡으려고 들었고, 그의 모습에 황제인 카를로스가 급히 말리려고 하였지만 이미 카일라의 손이 황태자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참으로 예의가 없이 천박한 행동이시군요. 황태자 전하."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카일라의 신체능력을 당해낼리가 없는 황태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을 비꼬는듯한(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한 목소리라서 더욱 그렇게 들렸다.) 카일라의 목소리를 볼품 없이 쓰러진채로 들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