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1화 〉[아이린과 유리아나] (91/380)



〈 91화 〉[아이린과 유리아나]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벌어졌던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의 성인식과 결혼식이 모두 끝난 다음날.

아르테일 공작가에 모였던 귀족들은 모두 각자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돌아갔지만 손님방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손님이 한 명 있었다.

황태자 알렉스의 실각 이후 여자로서 단숨에 정계를 휘어잡고 다른 황자들을 단숨에 밀어버리고는 당당히 황태녀의 자리를 차지한 1 황녀, 아이린 폰 카르시스가 바로 그 떠나지 않은 손님이었다.

은은히 검은 색이 섞여있는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우아한 태도로 천천히 찻잔에 담긴 차를 살짝 마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차를 마시는 그녀는 차의 향을 도저히 느낄 수가 없었다. 평상시보다 차가 이상할 정도로,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씁쓸하다는 기분이 이런거로군요..."

아이린은 마시던 찻잔을 살포시 탁자 위에 중얼거렸다. 언제나 그녀와 대화를 해주던 세르티네스도 지금은 카이라스의 안에 들어가있었기에 이곳에 없었다.

"네가 너무 가까워서 미처 깨닫지 못했었어~다시 한번만이라도~"

그리고 아이린은 천천히 맑은 미성의 목소리로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염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던 아이린이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고 기품 있는 우아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니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아름다운 음악의 연주가 덧붙여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감정이 잘 안정이 되지 않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 방 안에 있기만 답답했던 그녀는 밖으로 나왔고 지나가는 하녀 한 명을 불렀다.

"저기, 잠깐. 멈춰주시 않으시겠어요?"
"아, 네? 네...넷!"

지나가던 아르테일 공작가의 하녀는 자신을 부른 사람이 바로 황태녀인 아이린인 것을 보고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멈춰섰다.

하녀들 사이에서 동경을 하는 여인을 꼽는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여인이 바로 아이린이었다.

아름답고 기품 넘치는 우아한 엘리나(물론 그것은 연기가 많이 섞여있다.)나 얼음 같이 차갑고 도도해보이는 카일라 등과 나란히 아르테일 공작가 내의 하녀들의 동경의 대상인 아이린의 특징이라면 바로 그 화려한 기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는 화려한 아름다움과 기품, 우아함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그녀가 지닌 무엇인가 요염하고 치명적인 매력은 그녀를 더더욱 화려하게 보이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거기에 황태녀라는 고귀한 신분에 허리까지 드리운 긴 흑비단 같은 흑발에 홍옥(루비)과도 같은 붉은 색 눈동자를 지닌 그녀의 모습은 진짜 과연 황족이라는 말이 나올법한 고귀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인 카이라스와의 염문설 때문에 오히려 그녀는 더욱 유명해져있었고, 특히나 카이라스와 카일라와 결혼식까지 치룬 지금 그녀를 동정하는 여론까지 생기고 있는 판국이었다.

"제가 산책을 좀 하려고 하는데...산책을 하기 좋은 정원 좀 추천해주시겠어요?"

검은 부채로 살포시 얼굴을 가리면서 아이린이 하녀에게 무척이나 정중하게 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태녀인 그녀가 이렇게 정중하게 묻자 하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 물론...산책을 하기 좋은 정원은 뒷문으로 나간 후 오른쪽으로 가면 있습니다. 저희 아르테일 공작가의 안주인이신 엘리나님...아니 엘리나 공작부인께서도 그곳에 자주 산책을 가시고 하시거든요."

물론 남편인 루스칼리스와 함께 가는 산책이었지만 감수성이 전혀 없는 마법사인 루스칼리스에게 정원은 어디어디를 마법을 날려서 박살내고 불태우면 딱 좋을, 그런 장소에 불과했기에 루스칼리스는 그저 보는 사람이 하녀들 외에는 없었고 노골적으로 엘리나의 육체를 마음껏 더듬으며 가는 재미로 함께 산책을 했었다.

그리고 하녀도 그 사실을 떠올리고는 이내 굳어졌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그녀는 제발 그 자리에 루스칼리스가 없기만을 간절하게 빌었다.

'공작님, 제발 이상한 사고는 치지 말아주세요!'

하녀는 이 순간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

그리고 하녀의 그런 상태를 못 알아볼 아이린이 아니었다.

황태녀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어서 대부분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는 엄연히 마신의 성녀이기도 했다.

마신의 성녀인 그녀는 성녀가 가진다는 제 3의 눈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눈을 통하여 하녀의 마음까지는 읽지 못하더라도 영혼과 감정 상태를 읽어낼 수 잇었다.

그렇기에 아이린이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하녀에게는 구원처럼 들릴말을 했다.

"공작 부인께서 자주 산책을 가시는 곳이라면 제가 함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겠네요. 다른 곳을 추천해주시겠어요?"
"아 네...소, 손님들도 마음껏 산책을 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정원이 저택의 좌측 출구로 나가셔서 왼쪽으로 가시면 있을 거에요."
"고마워요. 그럼..."

아이린은 살포시 허리를 숙여 기품 있게 인사를 한 후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갔고,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하녀는 그저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직도 자신이 황태녀와 대화를 했다는 것이 현실 같이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조신한 발걸음으로 걷던 아이린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운을 감지했다. 무척이나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소녀였고, 아이린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미소를 지었다.

첫 만남 때는 사실 약간의 경계심도 보이던 소녀였지만 지금 그녀는 꽤나 아이린을 잘 따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유리아나."
"아, 린 언니. 아침 때도 방에 안나와서 마침 걱정되서 언니를 찾아가보려고 했었는데...다행히 괜찮아 보이시네요."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은 바로 나이는 어려도 제법 길러서 허리까지 닿는 강렬한 붉은 머리카락에 마치 청옥과도 같은 눈동자를 가진 9 살의 어린 소녀, 유리아나였다.

"후훗, 별로 괜찮은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속이 답답해서 잠깐 산책을 나왔어요."

부채로 살짝 얼굴을 가리면서 아이린이 살짝 눈웃음을 쳤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강렬한 색기는 어린 유리아나에게도 살짝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문제는 아직 성적인 것에 대해 해박하지 못한 유리아나는 그냥 예뻐보인다. 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랄까?

"저도 좀 속이 그래요. 오빠가 카일라 언니랑 먼저 결혼할 것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이렇게 결혼해버리다니..."

유리아나가 살짝 침울한 표정을 지었고, 아이린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이린, 그녀는 카이라스에게 미래에 대한 지식들을 받았기에 유리아나의 미래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같은 여자인 그녀가 봐도 정말 놀라서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모습!

긴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검을 휘두르는 검의 여제라 불리는 미래의 그녀는 바로 카이라스가 카일라만큼이나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알까? 카이라스가 그만큼이나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고 어린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다는 것을.

'살짝은 언급해줘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이린이 살짝 허리를 숙여 유리아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걱정 하지 않아도 되요. 유리아나. 카이라스 공자는 유리아나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거든요. 유리아나가 15 살이 되어서 성인이 된다면 바로 추가로 결혼식을 올려서 아내로 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저에게 예전에 말했었어요."

어린 유리아나에게도 정중한 말투로 대하며 그녀를 안심시켜준 아이린은 살짝 미소를 지었고, 유리아나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살짝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정말...라스 오빠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제 황태녀로서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요."

아이린의 말에 유리아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유리아나의 모습을 보고 역시 어린아이라서인지 귀엽다고 생각한 아이린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유린의 나이가 유리아나보다 1 살 연상이었다.

'유린이도 돌아가면 좀 많이 신경을 써줘야겠네. 어머니는 다르다고 해도 내 동생이니까.'

그리고 또 카이라스에게 부탁받은 플로리아에 대해서도 보다 더 신경을 써줘야했다. 아니, 부탁을 하지 않았다해도 아이린, 그녀는 플로리아를 잘 챙겨줬을 것이었다.

카이라스가 준 미래에 대해 본 기억에서 죽은 자신을 그리워하는 플로리아의 모습은 그녀의 가슴에 상당히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근데 린 언니."
"네?"
"린 언니는요?"
"......"
"린 언니도 오빠가 받아들이기로 했나요?"

유리아나의 물음에 아이린이 살짝 웃음을 지으면서 그녀의 입술에 살짝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유리아나, 그런 것은 함부로 묻는 것이 아니랍니다. 후훗, 그리고 저는 다음달에 생일이 돌아오면 성인이 된답니다. 3월 13일. 그 때 생일선물은 좋은 걸 부탁해요."

그러면서 아이린은 살짝 한 쪽 눈을 찡긋했고 유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좋은 선물을 준비할께요."

그러면서 유리아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지 강한 결의에 차있었고, 그녀의 결의를 읽은 아이린은 살짝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서 가볍게 자신의 흑발을 살짝 찰랑거리게 했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런 강한 결의감을 보이는걸까?'

뭔가 이상한 것의 상상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아이린은 아무렴 어때. 하면서 가볍게 흘려넘긴 후 유리아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유리아나도 산책을 가려나요?"
"네? 아니...저는 검술 수련을 해야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검술은 나름 자신 있거든요."
"린 언니의 검술은 자신 있는 수준이 아닌데..."

유리아나의 말에 아이린이 살짝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웃음을 지었다. 유리아나가 볼 때는 확실히 그렇게 보일지도 몰랐다.

마신의 성녀로서 온갖 권능들을 사용한 그녀의 힘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카일라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실제 검술 실력은 그냥 유리아나보다 조금 나아보이는 정도였지만 비록 대련에서 패배하기는 했어도 여러 권능들을 중첩하고 카일라와 대련을 해 그녀와 상당한 접전을 보여줬던 것을 카이라스가 쳐둔 보호막 아래에서 구경한 유리아나는 아이린의 실력이 굉장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는 그냥 뭐랄까...편법을 썼던 거에요. 유리아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수준은 아니고 그냥 또래에서 좀 나가는 수준에 불과해요."
"편법이요?"
"네, 나중에 아시게 될거에요. 지금은 좀 말하기가 그렇거든요. 미안해요."
"아, 아니...미안해할 것 같지는 없는데요."
"후훗, 그럼 깊숙히 묻지만 말아주세요."
"알았어요. 근데 린 언니. 오늘은 린 언니가 대련을 해주실 건가요?"

유리아나의 물음에 아이린은 기품 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포시 끄덕였다.

"물론이죠. 유리아나가 혼자 수련하는 것보다 제가 대련을 해주는게 유리아나에게 도움이 될 거 잖아요. 안 그래요?"
"고마워요, 린 언니. 히힛..."

유리아나는 어린아이 다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고, 아이린은 황태녀 다운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함께 사이좋은 모습으로 연무장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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