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여행을 시작하다.] (94/380)



〈 94화 〉[여행을 시작하다.]

"정말 괜찮겠니? 라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의 뇌새적인 몸매의 착한 인상의 아름다운 미녀, 엘리나의 말에 카이라스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뵈도 9 서클의 마법사에 성인이에요. 둥지에서 어미가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 새가 아니라 날아오를 준비가 끝난 새라고요."

엘리나의 아들의 그 말에 무척이나 기쁘면서도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었다.

아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다는 것은 어머니로서 기쁜 일이었지만, 동시에 이제 자신의 품 속의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독립을 완전히 하였다는 것에 대한 씁쓸함.

"그래...신부들이랑 신혼여행을 겸해서 가는 것이니까 엄마는 빠지는게 좋겠구나...잘 다녀와, 라스. 연락은 꼬박꼬박 해줘. 그리고 카일라도, 디아나도, 셀리나도 모두 책임지기로 했으면 잘 챙겨줘야해. 알고 있지?"
"말씀 안하셔도 알고 있어요. 제 여자들은 당연히 제가 평생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줘야죠."

웃으면서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에 엘리나 역시 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잘 다녀와, 라스."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행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으로 어머니인 엘리나와 나누었던 대화였다.

*              *             *

카르시스 제국의 동부 크롬 산맥.

인간들의 힘이 강성해지고, 몬스터들은 사냥감으로 전락해버렸다지만 일반인들에게 아직 산길은 위험한 곳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몬스터가 튀어나와 습격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척이나 발달된 마법과 검술로 인해 시골 영지에서도 3 서클의 마법사들은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소드 익스퍼트급 역시 누구나 노력만 하면 반드시 오를 수 있는 경지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아직 여럿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일반인은 결코 실력 있는 동료나 호위가 없이는 산길에 함부로 오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사실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기 위함이지만.'

산길을 걸으며 카이라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인간들의 힘은 대륙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마음만 먹으면 멸종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지킬 정도로 힘이 강해져서 더 이상 몬스터들이 위협이 되지 않게 된 현세의 인간들에게 있어서 몬스터들은 더 이상 박멸해야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멸종을 하지 않기 위해 보호를 해야하는 종족들이었고, 400 년전부터 대륙에서 인간들은 생태계를 보호해야한다는 사상을 지녀 무분별한 동물들에 대한 사냥을 금하면서 몬스터들의 경우 새끼는 웬만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등 특정한 종족이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종족들에 대한 인식 역시 인간들과 동등한 개체라는 생각은 1000 년전에 가깝게 퍼져있는 사고들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러했었다.

'이곳은 이종족들은 없고, 몬스터들은 있지만 문제 될 것이 없지.'

카이라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랑스러운 아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카일라, 뱀파이어 퀸인 디아나, 뱀파이어 프린세스인 셀리나.

이 중에서 셀리나의 실력이 가장 딸리기는 하지만 그녀 역시 소드 마스터 수준의 전투능력을 이제는 보유하고 있었고 기습 같은 것만으로 치자면 뱀파이어 퀸인 디아나보다도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유리아나. 괜찮아, 힘들지 않아?"
"하아하아...괘, 괜찮아. 라스 오빠, 문제 없어."

소드 익스퍼트에 오르는 천재적인 성취를 보였지만 아직 9 살의 소녀에 불과한 유리아나는 체력이 부족했기에 산길을 걷는 것에 많이 힘겨워하고 있었다.

"힘들면 내가 업어줄 수도 있어."
"괘, 괜찮아...우우..."

카이라스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붉은 머리카락을 절레절레 저어대는 9 살의 사촌여동생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카이라스는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안쓰러웠다.

'따라오겠다고 해서 데려왔는데...역시 많이 힘들어하네.'

카이라스와 함께 여행을 떠난 것은 카일라와 디아나, 셀리나, 그리고 유리아나였다.

아이린의 경우는 황태녀로서의 지위와 해야할 일들 때문에 카이라스와 함께 여행을 갈 수 없었고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살짝 쓸쓸한 표정을 지었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달리 그런 의무가 없던 유리아나는 카이라스가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눈물을 터트리며 자신도 함께 데려가달라고 졸라댔고 처음에는 유리아나가 힘들 것이라 생각해서 그녀를 두고 갈 생각이었던 카이라스였지만 그는 카일라에게 약하듯이 당연히 유리아나에게도 약했다.

비록 시공회귀 전의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소녀인 그녀였지만 그녀의 모습에서 미래의 성장한 그녀의 모습이 겹쳐보인 카이라스는 결국 그녀의 눈물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두손을 들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숙부인 카이우스의 허락까지 받아서 유리아나를 데리고 같이 여행을 하게 된 카이라스였지만 그녀의 약한 체력이 문제였다.

"리제네레이션."

카이라스는 지친 유리아나를 보기 안쓰러웠기에 다시금 7 서클의 마법인 리제네레이션을 사용하여 그녀의 체력을 단숨에 회복시켜버렸다.

"아..."

여전히 땀방울이 작고 하얀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었지만 그녀의 체력은 모두 회복되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몸이 가뿐해진 것을 느끼며 카이라스를 쳐다보았다.

"미안...오빠..."

유리아나가 침울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마치 인형처럼 깜찍하기 그지없는 어린 소녀인 그녀가 보이는 모습에 카이라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체력 단련이라고 생각해. 수련의 일부라고 생각해두면 나쁘지 않을거야. 그렇지, 카일라 누나?"
"응. 나도 고모...아니 어머님이랑 다닐때 그렇게 체력을 길렀어. 리제네레이션 마법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카일라의 말에 유리아나의 안색이 한층 편해졌다.

"정말이야, 언니?"
"응, 거짓말 아니야."

단순한 어린아이 답게 유리아나는 이것이 수련이라고 생각하자 보다 편해진듯 더욱 열심히 걷기 시작했고, 카이라스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아우~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니까.'

유리아나의 그런 모습을 보며 웃으면서 걷던 카이라스가 디아나와 셀리나에게 물었다. 사실 물어볼 필요는 없지만 그저 유리아나에게 신경 써준 만큼 그녀들도 신경 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물음이었다.

"디아나, 셀리나 너희들은 괜찮아?"
"흥! 이 여왕님을 뭘로 보는거야. 이 여왕님이 고작 이런 걸로 힘들리가 없잖아."
"괜찮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카이라스의 말에 디아나는 여전히 도도하게 말하는 반면 셀리나는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디아나 역시도 살짝 예쁜 입술이 미소를 그리고 있는 것이 카이라스가 자신에게 신경 써주는 것을 상당히 기뻐하는듯한 모습이었기에 카이라스는 키득 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사랑하는 여인들과 하는 여행은 확실히 즐거웠다. 비록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고 신혼여행도 아니었지만 카이라스는 나름 이것을 신혼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일라 누나."
"왜?"
"아니, 그냥 예뻐서 불러봤어."

카이라스의 말에 카일라의 눈이 살짝 흔들렸지만 여전히 그녀는 차가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쓸데없이 부르지 마."

카일라의 말에 카이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께. 사랑하는 마누라가 하는 말인데 어찌 남편이 거스를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카이라스는 살짝 카일라의 연분홍빛 입술에 키스를 해주었다. 사실은 이제 부부였으니 키스 정도가 아니라 더한 행위도 할 수 있었지만 유리아나의 앞이었기에 자제를 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신부가 될 소녀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줄 수는 없으니깐.

"......"

카이라스가 키스를 해주자 카일라의 새하얀 얼굴에 살짝 은은한 연분홍색의 홍조가 서려왔다.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어도 얼굴에 홍조를 살짝 띄우고 있으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웃으며 본 카이라스는 이윽고 디아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뭐야? 왜 그리 쳐다보는데?"

디아나는 카이라스가 자신을 쳐다보는 표정이 심상치가 않자 웬지 모르게 살짝 겁 먹은 표정으로 카이라스에게 물었지만 카이라스는 디아나의 몸매를 가볍게 흝어보았다.

평상시의 화려한 붉은 드레스는 너무나 눈에 띄기에 카일라가 입는 것 같이 반팔의 상의에 검은 핫팬츠를 입고 있는 디아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을 때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특히나 늘씬한 두 다리와 탐스러운 허벅지가 드러나고 풍만한 몸매의 굴곡이 보여져 더욱 자극적으로도 보였고 또한 그녀 역시 카일라처럼 더 이상 처녀가 아니었기에 은은한 요염한 색기를 이전보다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긴 금발과 더불어 그녀의 눈동자 색과도 같은 붉은 색의 상의와 검은 핫팬츠는 전체적으로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다.

'사실 어떤 옷을 입히기만 해도 다 잘 어울리는거지만.'

거지들이 입을 옷도 디아나가 입는다면 눈부시게 찬란하게 느껴질터였으니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입으면 어떤 옷도 다 그녀가 완벽하게 소화해낸다가 옳은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카이라스가 볼 때는 저 복장은 디아나에게 유달리 잘 어울렸기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니, 그 옷 입은 모습에 예뻐서 그래. 새신부가 입기 좋은 옷이라 할 수는 없지만."
"웃...정말...바보바보..."

디아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살짝 고개를 돌려 카이라스의 시선을 외면했는데 그녀의 뺨은 카일라보다도 더욱 붉게 홍조를 띄고 있었다.

"라스, 라스는 이런 복장 좋아해?"

카일라가 자신의 현재 복장을 가리키며 묻자 카이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무척이나 좋아하는데...뭐, 셀리나가 입고 있는 저런 복장도 새신부인 것 같다는 느낌이 느껴져서 좋지만 말이야."

카이라스의 말에 셀리나가 바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고개를 숙여 쳐다보았다.

어깨가 드러나는 그저 아무런 문양도 없는 검은 색의 원피스...그렇지만 그렇기에 청순함과 순수함이 강조되는 옷이었다. 그리고 그런 옷을 입고 있는 소녀는 바로 착하고 순수한 성격인 셀리나였기에 더욱 그녀는 청순하고 또 순수해보여 비록 어리지만 청순미가 물씬 풍겨졌다.

"저, 정말요?"
"응, 셀리나. 너라도 결혼한 새신부 같은 옷을 입어서 다행이야...다른 애들도 좀 신혼여행 같이 여겨줬으면 하는데..."
"사촌여동생 데리고 하는 신혼여행이 어디있어?"

살짝 한탄하던 카이라스는 카일라의 물음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는 다른 이유로 입을 다문 것이었다.

"여기로군."

그리고 그가 입을 열고 살짝 중얼거렸다.

"......"

가볍게 허공에 무엇인가 손을 저으면서 마나를 움직이던 그는 이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드디어 도착했어.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던 첫번째 '유적'에."

크롬 산맥. 카이라스가 이곳을 온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는 유적을 발굴하기 위함이었다.
 

0